*반말체인 점 양해바랍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리뷰] 신과 함께(2017) - 이러면 안 울 수가 없다


원작 웹툰을 오래 전에 읽기는 했다. 하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한 탓에 원작의 스토리는 모두 기억에서 지운 채 오로지 이 영화에만 집중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신과 함께>는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 영화다. 좋았던 점부터 떠올려보자면, 우선 구구절절한 설명이나 시간 끌기 없이, 주인공의 죽음과 함께 바로 지옥세계로 입성하는 초반부의 빠른 전개가 좋았다. 그리고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으로 이어지는 일곱 개의 지옥도를 훌륭한 CG로 매끄럽게 구현해낸 점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CG범벅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터라 <신과 함께>에서 보여준 현란한 CG의 향연을 보고 있자니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게임을 단계별로 클리어해가듯, 무시무시한 형태의 각 지옥의 판결에서 살아남으며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하는 설정 자체도 흥미로웠다. 물론 이러한 설정이나 과정은 당연히 원작 웹툰으로부터 대부분 빚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관객의 눈앞에 어떤 식으로 설득력 있게 펼쳐내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결국 이러한 시각적 성취에 있어서는 충분히 박수를 쳐줄만 하다. 특히나 초반부 지옥 입성부터 중반부에 봅슬레이형 보트(?)를 타고 이동하며 악귀들과 싸우던 시점까지는 영화의 시원시원한 흐름에서 빚어지는 텐션이 매우 높은 상태로 유지되며 많은 볼거리와 재미를 선사해준다. 현란한 보트 액션씬으로 대표되는 이 영화의 액션 장면들 또한 이 정도면 합격점을 줄만하다.






풀려가는 밧줄의 팽팽함


하지만 이러한 텐션은 중반부, 그러니까 김자홍(차태현)의 동생 김수홍(김동욱)의 죽음으로 강림차사(하정우)가 지상으로 내려가면서 눈에 띄게 쳐지며 꺾이게 된다. 그 이유는 김자홍의 저승 재판과 김수홍의 군대 이야기가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따로 국밥처럼 각자 논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원작에서의 전혀 다른 두 가지 이야기(김자홍의 재판과 군인 이야기)를 영화에서 형제의 이야기로 각색해 하나로 엮어내려는 무리수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이승의 직계가족이 원귀가 되면 저승이 어지럽혀진다.'라는 한마디 말로 퉁쳐지는 갑툭튀 설정 자체가 형제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연결시키려는 무리수에서 기인했다고 밖엔 볼 수 없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갈수록 쫀쫀해지는 것이 아니라 팽팽하던 밧줄이 갈수록 한타래씩 풀리며 느슨해지는 느낌을 점점 받게 된다. 여기에 쓸데없이 플래시백으로 삽입되는 강림차사의 과거 사연까지 더해지면 신선하고 흥미롭던 전반부와 다르게 후반부의 전개는 난삽하고 방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군다나 김자홍의 재판도 처음 몇번은 눈요기 덕에 흥미롭지만 재판이 거듭될수록 [김자홍의 뜻밖의 잘못이 밝혀짐 -> 김자홍과 차사들 당황함 -> 지옥으로 떨어질 위기에 놓임 ->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사연이 드러남 -> 위기 해소] 의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뒤로 갈수록 지루함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지루하지 않다’는 평과 ‘지루하다’는 평에 둘 다 공감한다. 흥미로움과 지루함의 두 가지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개인적으로 전반부는 꿀잼, 후반부는 좀 쳐지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후반부의 감동 코드를 위한 신파적 장치들의 과도한 설정이다. 확실히 매끈하고 시원시원하게 전개되는 전반부와는 다르게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는 관객을 울릴 준비를 시작하며 여러 가지 비극적 설정을 여기저기 심어놓는다. 이를테면 엄마를 장애인으로 설정하여 가족의 비극을 강조한 점, 세가족의 동반자살을 시도하다가 결국 집을 나와 15년간 가족과 연을 끊고 살았던 주인공의 드라마틱한 사연, 그런 주인공의 살해 시도를 다 알고 있었던 엄마의 반전, 그리고 주인공이 엄마에게 선물하기 위해 준비했지만 미처 전하지 못한 누룽지 밥솥과 그 안에 든 편지 등등, 이처럼 영화의 신파적 설정은 노골적이고 작위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설정들이 공감이 가고 피부로 와 닿기보다는 감동을 주기 위해 너무 꾸며낸 이야기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대본 티가 너무 난다. 눈에 훤히 보이는 이 과도한 드라마틱함이 오히려 자연적인 감동을 반감시키고 무언가 거슬리게 만든다는 얘기다. 아들의 살해 시도를 엄마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반전 또한 놀랍기보다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범주라는 느낌이었고, ‘누룽지 밥솥과 편지씬’ 또한 마치 밥솥 광고를 보는 듯 솔직히 좀 오글거렸다. 결말로 흘러가는 흐름이 너무 뻔했기에 ‘저러다가 김자홍이 결국 엄마의 꿈에 현몽으로 나타나 눈물로 잘못을 빌고, 현실 속의 누군가가 누룽지 밥솥을 전달하며 감동의 화룡점정을 찍겠지.’라고 생각했다. 김자홍의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엮은 스토리 라인으로 차곡차곡 관객을 울릴 준비를 하는 게 너무 눈에 훤히 보이는데다, 주인공 차태현의 연기조차도 너무 무난하고 예측범위 내여서 별로 슬프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 문제였다. 김자홍이 예측 그대로 엄마의 현몽에 나타났다면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 채 극장문을 나섰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짝퉁의 늪 속에서 건져낸 한줄기 진퉁


그런데 이 영화가 내 예측을 벗어난 게 딱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김자홍의 현몽이 아닌 동생 김수홍의 현몽 장면. 원작 웹툰의 스토리라인은 거의 다 잊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원작 웹툰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한 것인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설령 그대로 따라했다 해도, 원작을 보지 못한 관객들이 훨씬 더 많을 테니 관객의 예측을 벗어난 장면이라는 것 또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다른 장면들에선 크게 감정의 동요가 없던 나는 이 부분에서만큼은 펑펑 울고 말았다. 권투로 치자면 눈에 뻔히 보이는 상대방의 잽과 훅, 스트레이트 등을 여유만만하게 피하며 상대를 과소평가 하다가 예상치 못한 어퍼컷 한방에 넉다운 돼버린 느낌. 이 현몽 장면을 보며 가슴 속 깊은 무언가가 툭 건드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어쩌면 엄마를 향한 내 자신의 마음 한조각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관객들을 울리기 위해 영화의 중후반부, 곳곳에 심어진 여러 가지 장치와 설정들은 신파가 맞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히려 이러한 신파적 장치들이 다소 유치하고 때로는 너무나 노골적으로 뻔하게 드러나기에 관객들의 감동을 증폭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감소시키는 측면마저 있다. 이처럼 이 현몽 장면까지 오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을 다소 억지스럽다고 욕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동생 김수홍과 엄마가 마주한 현몽 장면만큼은 억지 감동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건 그냥 죽기 전에 엄마에게 전하는 아들의 마지막 마음일 뿐이다.

이 부분에서 울음이 터진 이유는 숨겨진 어떤 장치나 강요 때문이 아니라, '나 이제 하늘나라 가서 대법관하니까, 앞으론 부대로 찾아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아들의 그 마음 때문이었다. 이 마지막 말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걸 억지 감동이라고 부를 순 없다. 내가 그 아들의 입장이었다 해도 똑같이 엄마에게 그런 말을 했을 테니 말이다. 그 말 한 마디에 담긴 아들의 그 마음이 나를 울렸다.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이러면 안 울 도리가 없다고. 신파고 자시고, 억지감동이고 나발이고, '엄마를 향한 마음'이라는 가장 단순한 본질이 가슴에 와 닿을 때, 관객의 한사람으로써 울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영화의 후반부 감동코드를 위해 내달리는 신파적 장치와 일련의 조잡한 흐름들은 ‘짝퉁’일지 몰라도, 현몽 장면에 담긴 아들과 엄마의 마음만큼은 ‘진퉁’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감동코드를 인정한다. 뻔하고 난삽한 짝퉁의 늪 속에서 한주먹의 진퉁을 보여줬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얘기다.






선택과 집중의 명과 암


<미녀는 괴로워>의 마지막 '콘서트 무대씬'에서도 느낀 것처럼, 김용화 감독이 이런 건 참 잘한다. 뻔하디 뻔한 감동코드 속에서도 한줄기 진심을 비벼내어 보는 이의 감정선을 툭하고 건드려내는 능력 말이다. 이러한 김용화 감독의 장기는 여전히 살아있으며 2017년의 관객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듯 하다. 이렇듯 김용화 감독은 자신의 전공 분야에 무게를 싣고 힘을 주며 이른바 '안전빵'을 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는 흥행성적이 보여주고 있지만 이러한 연출 방식을 택한 <신과 함께>를 두고 한국형 판타지 액션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하기는 다소 민망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파'라는 요소에만 국한시켜 이 영화를 단순히 '조잡한 신파극'으로 규정하고 까내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 영화에서 신파적 감동코드가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은 맞지만 그것만이 이 작품을 지배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신파적 설정과 감동코드'를 완전히 도려내고 바라봐도 이 영화는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감동 코드가 조금 과할 뿐, 새롭게 시도된 동양적 판타지 액션물로서의 신선한 매력과 재미를 고려해볼 때 '신파코드'의 유무에 관계없이 이정도면 범작, 그러니까 딱 볼만한 평작쯤은 된다. 연말 한국 극장가에서 가족영화로서 흥행하기엔 딱 적당한 수준의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다만 동양의 지옥도라는, 더 깊고 풍부한 상상력을 담아낼 수 있는 좋은 원작의 재료를 가지고 이 정도의 얕은 수준에서 멈춘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