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안으로 황급히 두 여자가 들어왔다. 내가 특정한 입장 자격이나 드레스 코드를 요하는 대단한 바를 운영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데에 손님으로 올 만한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역시나, 화장실을 좀 쓰자고 한다. 편하게 쓰시라고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둘은 교대로 화장실을 쓰고 나갔다. 나는 바로 화장실을 확인했다.
대체로, '화장실 좀 쓸게요'라고 말 하는 사람 치고 화장실을 깨끗히 쓰는 경우란 없다. 편견? 글쎄다. 내 바 바로 옆에는 굉장히 시끄럽게 노는 클럽이 있다. 경찰이 자주 출동하며. 도로 앞은 언제나 난장판이다. 대체로 옆 건물 2층까지 올라와서 '화장실 좀 쓸게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난장판을 이루던 사람들 중 하나다. 나는 길 위에 있는 만취한 사람을 믿지 못한다.
분홍색 변기 세정제를 쓴 기억이 태어나서 단 한번도 없음에도 변기는 분홍색 물을 머금고 있었다. 혈변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았거나 생리대를 변기통에 쑤셔박았거나 둘 중 하나다. 자세히 살펴보니 안타깝게도 후자다. 전자였더라면 레버를 누르고 세상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남의 가게 화장실에 똥을 싸고 물을 안 내리는 자에게 혈변을 내리는 우주적 정의가 존재함을 찬양하면 끝이다. 하지만 후자라면 욕을 하며 그다지 기분좋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 욕 대신 쓴웃음을 지으며 할 일을 한다.
화를 삭히러 가게 밖으로 나가본다. 빌어먹을, 내 가게에서 내가 담배를 피우지도 못하는 건 너무한 일이 아닌가. 역시나, 아까 손님이 밀리던 시간에 건물 입구에 물을 안 뿌린 것은 실수였다. 또 알 수 없는 외국인과 한국인 무리가 건물 입구의 단을 점거하고 앉아 즐겁게 소주를 기울이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영업중인 건물이오니 입구에 앉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자, 무리의 한국인이 대답한다.
'그런데, 술집 입구에는 이렇게 사람이 좀 앉아 있고 해야 장사가 되는 것 같지 않나요?'
당신이 한국인이라 아쉽다. 옆의 미국인이 자기 나라에서 그런 개소리를 지껄였다가는 대가리에 굉장히 멋진 환기구가 생겼을텐데. 그것은 당신의 텅텅 빈 대갈통에 어울리는 매우 적절한 장식이 될 것이다. '아, 그렇진 않아요. 치워주세요.'하고 가게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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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손님에게 추천받았다며 어떤 사람이 왔다. 처음에는 아주 나쁜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다만 취기를 전혀 통제하지 못하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한참 욕을 먹다가 싸대기를 맞았다.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나는 딱히 운동에 소질이 없는 편이지만, 만취한 손님 정도는 안전하게 제압할 수 있다. 문제라면 역시 상대가 여자일 경우다. 우리 모두 잘 알지 않는가. 오해를 살 짓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저런, 날아간 안경이 있는 쪽의 테이블에 앉은 단골 손님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경찰에 신고를 할 느낌이다. 아니, 경찰은 좋지 않다. 테이블로 가 손님에게 사과한다.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나는 경찰을 꽤 좋아하고 신뢰하는 편이다. 다른 바텐더들과 마찬가지로 경찰 일을 하는 단골 손님도 있다. 하지만 여기는 <업장 안>이다. 어떤 문제라도 결국 복잡해지고, 복잡한 상황의 손해는 내 것이다. 물론 저 미친 자가 다른 손님에게 시비를 걸었다면 나는 여자고 경찰이고 귀찮은 일이고를 떠나 <적절하고 신사적인> 해결책을 고려했을 것이다. 가게에 손해를 끼치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 못하는 문제를 떠나, 내 통장 잔고와 채권자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까.
손님에 대해 악담을 하는 가게 주인을 믿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저 미친 자는 손님이 아니다. 저 미친자를 손님으로 인정하는 가게가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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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손님으로 받은 이상, 세상에는 좋은 손님과 그냥 손님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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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바텐더가 있다. 나는 그의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전화를 받고, 내게 '급한 일이 생겨서 잠깐만 나갔다 올게요.'라고 하고 자리를 비웠다. 십여분 후에 그가 왔다. 셔츠와 얼굴이 피투성이었다. '아 이거 내 피는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옆 가게에서 시비가 생겨서 수습좀 해 달라고 해서 갔는데, 손님이 자해를 해서 온통 손이 피투성이더라고.' 그는 피묻은 바 셔츠를 벗고 일상복으로 환복했다. 나는 술을 마시며 비슷한 추억을 떠올렸다.
아직 동생들은 없지만, 근처에서 장사하는 누나들은 몇 안다. 가끔 일이 생기면 누나들은 아는 동생들을 부른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일단 수습하라. 신고는 저 미친 자를 내보낸 직후에 하는 것이다. 자세한 인상착의와, 저들이 가려는 방향과, 저들이 한 짓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메모와, 당시 업장에 있던 사람들의 호의적인 증언을 바탕으로. 우리는 철저해야 한다. 나는 완전히 합법적인 발 마사지 샵을 운영하는 누나를 안다. 누나는 그곳을 성매매업소로 착각하고 들어오는 취객과 자주 싸울 일이 생긴다. 누나의 원칙이나 나의 원칙이나 내가 존경하는 바텐더의 원칙이나 그를 긴급한 상황에 부른 옆 가게의 아가씨나 비슷한 원칙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참자. 철저하게 승리하기 전까지는.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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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휘말리면 여러가지로 귀찮아진다. 그걸 오용하는 건 현대 사회의 에티켓 같은 것이 되었으나, 그걸 악용하는 미친 자들도 충분히 많다. 소방 점검을 하러 왔다는 자들이 유명하다. 자영업 2년차까지는 왜 당신이 하는 말이 헛소리인지, 왜 당신이 전형적인 사기꾼인지에 대해 충실하게 설명했다. 그 후에는, 간단하다. 소화기 눈금이 이상하다구요? 네. 제 생각도 그래요. 당신이 소속된 소방서에 전화해서 기준을 다시 확인해 봅시다, 하고 미소짓는다. 그들은 나간다.
물론 돌아서는 그들의 등 뒤로 야이 개-들아 그따위로 살지 마라, 라고 소리쳐주면 기분은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기범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전술하였듯, 가게에 어떤 종류의 잠재적 손해도 가지 않도록 고려해야 한다. 이미 사기를 치려고 들어온 저들이 더 쓰레기같은 짓은 못 할거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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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처에서 전화가 왔다. 미납금을 입금하지 않으면 물품 출고가 불가능하다는 경고성 문자다. 하긴, 나는 그 업체의 사정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 억 단위의 미납금을 떼먹히고 나면 몇 년을 거래했건간 미납에 대해 예민한 경고 문자를 보낼 수 밖에 없겠지. 다른 납품처에서 다른 업장을 고소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대체 얼마를 미납해야 고소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걸까. 그래도 나는 저 정도는 아니니 다행인 걸까. 하지만 어쩌죠 지금 나는 돈이 없는걸요. 여기서 빌린 돈은 얼마 전에야 갚았다. 그러고 또 빌려달라면 이건 좀 아니지. 어디서 빌리지. 머리속이 하얘진다. 아마 나만큼 주변 친구들의 금전적 상황에 밝은 놈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장사꾼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도저히 답이 없어 애인에게 전화한다. 그리고는 끝없는 자기혐오다. 나한테 이 돈을 안 빌려줬으면 애인의 삶이 더 행복할 텐데. 내가 뭐라고 이 고생을 시키는 걸까.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나니 어 이런 왜 생각보다 돈이 더 없지. 아 맞다 사대보험 빠지는 날이구나 아 이런 젠장 어쩌지. 아니 잠깐 그런데, 두 달 전에 외주받은 꽤 큰 건의 번역비는 왜 안들어오지? 당장 회사에 전화해서 '미납금을 입금하지 않으면 더 이상 번역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하고 싶다. 그러면 그들은 '네 그동안 수고하셨어요'라고 답하겠지.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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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착한 건물주를 만나 다행이다. 나는 오 년 전까지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다. 착한 건물주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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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는 것들은 죽음을 맞이하고 전기가 들어가는 것들은 반드시 고장난다. 제빙기가 고장나는 건 어떻게 버텨볼 수 있는 일이지만 냉난방기나 카드기가 고장나는 건 답이 없는 문제다. 왜 항상 저것들은 주말에 고장나는 것일까. 이게 우주의 의지인가 하는 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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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격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옆 가게 사장님과 마찬가지로. 뭐, 가게를 하기 전에는 확실히 좀 더 안 좋았다. 길에서나 인터넷에서나 시비를 거는 사람들에게 <적절하고 신사적인> 응대를 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누가 시비를 걸던 나는 움츠리고 내 갈길을 간다. 그것이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이다. 며칠 전, 친구의 연애 문제를 상담해줬다. 내가 제시한 전략에 친구는 '그건 너무 내 자존심을 굽히는 문제 아니냐.'라고 답했다. 자존심은 물론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친구야, 장사 하는 사람 앞에서 자존심이란 단어는 쉽게 꺼내지 말자. 그건 좀 우울해지는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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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눈앞에서 논문 초고를 발기발기 찢어버리는 지도교수를 마주친 대학원생의 이야기나, 사내 왕따로 고생하는 회사원의 이야기에 대해서 알고 있다. 내 이야기가 그들의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도 알고 있으며, 그들의 이야기가 내 삶에 전혇 도움이 되지 않을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장사란, 그런대로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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