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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0/21 01:11:15
Name 뽀로로
Subject [일반] 첫사랑


1.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았다.
3월이라 봄 냄새가 풍기곤했지만
그 달콤함과는 달리 아직 쌀쌀해서
저녁에는 도톰한 외투에 몸을 덜덜거릴 때였다.

그 무렵 만나던 누군가가 있었는데
밥먹고 차마시고 영화보기라는 일련의 단계를 말하며
금요일 저녁에 우리는

만났다.






2.
23살
연애도 많이는 아니지만 남들만큼은 했고
나 좋다는 사람도 많았고
어디가면 이쁘단 소리를 듣곤했으니 그리 못생긴것도 아닌것같고....

살아오면서 연애나 남자에 관해서 스트레스 받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내 삶은 남자가 전부가 아니었다.






3.
나는 비극이 좋다.
항상 웃는 일만 반복되는 밝은 것들보다는
눅눅한 색채가 묻어있는 것들을 더 좋아한다.
1인자보다는 2인자를 더, 음악도 단조가 더....

기분 좋은 우연으로 해피엔딩을 맞는 영화는 허무하다.
가슴 먹먹하게 나를 울리는 영화들이 좋다.
이별 때문에 흘리는 눈물
누군가를 사랑해서 나를 버리기까지 하는 상황


하지만 고작 남자때문에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의문이다.




4.
남자들은 건축학개론을 보면 그렇게도 첫사랑이 떠오른단다.

난 여잔데,,
내가 건축학개론을 봐도 첫사랑이 생각날까



영화속 승민은 서연 앞에서 어떤 말도 못하고
항상 납득이한테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조언을 구한다.
내가 아는 누군가의 모습과 닮았다.






5.
나는
여럿이서 함께 있는 자리에서 몇마디, 행동 몇가지를 보곤
관심의 대상, 정도를 금방 파악해버리곤 했다.
덕분에 친구들에게 말하면 아니라며 손사래치는 모습만 보다가
몇일뒤 그 선배가 고백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으니
영 꽝은 아니었던 듯 하다.

같은 선상에서 봐도 되는것일까.
주변 친구들이 내게 상대방을 안달나게 한다는 말을 하곤했었는데
그땐 별 생각없이 난 잘 모르겠다 대답하곤 했으나
지금 생각하니 난 그 때 사랑에 별 관심없는 어린 아이일 뿐이었다.








6.
15년 뒤 만난 두 사람은
15년 전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더이상 서투른 모습으로 머뭇거리던 그도 아니고
마냥 순수해보이고 사랑스럽던 그녀도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어떤 영화들이 보여주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여운이 남았다.







7.
승민이의 모습은 숨겨두고
돌아오는 길엔 납득이가 웃기다는 이야기만 했다.

바래다주는 그 길이 왜 그리도 짧게 느껴졌는지
아파트들이 붙어있어서 집을 잘못찾겠다고 다와가면 이야기하라는 말에
알았다고는 했지만 신호가 멈춰주길
시간이 천천히 가길 속으로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이윽고 집앞에 도착했을때
내 짐을 들어다주며 잘가라고 해달라는 인사

조심해서 가

내 마음과 같은 말을 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20대 초반의 첫사랑은 사춘기의 여자아이가 하는 말밖에 하지 못한다.

" 가다가 사고나 나라 "








8.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옆자리의 누군가를 생각하느라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나간 어떤 이를 떠올리지도 않았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름다운거라던데
나에게는 아름답다기보단 성숙을 위한 고통으로 남을 뿐이었다.

사랑때문에 슬프다던 영화속의 그 여자들....
나를 먹먹하게 만들던 그 장면, 그 이야기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그녀의 마음을 알기때문에 나도
슬프다.





15년 후에 다시 만난다면
이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어쩔줄 몰라하던 사춘기 여자아이가 아니고 싶다.
그 때의 현실에 살고있는 너와 나를 마주쳐도
아무렇지 않을 내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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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과열무
13/10/21 01:1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뽀로로
13/10/21 09:58
수정 아이콘
부족한글ㅠㅠ 감사합니다
언제나맑음
13/10/21 01:16
수정 아이콘
노는게 제일좋아 친구들 모여라
언제나 즐거워 개구쟁이 뽀로로
뽀로로
13/10/21 09:59
수정 아이콘
뽀로로...노래몰라요 ㅠㅠ
KillerCrossOver
13/10/21 01:23
수정 아이콘
아무렇지 않고 싶지만,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없습니다.
쓸쓸한 가을이네요..
뽀로로
13/10/21 09:59
수정 아이콘
쓸쓸한 가을 지나고
따뜻한 겨울되세요!
HOOK간다
13/10/21 01:36
수정 아이콘
첫사랑을 다시 보긴 했는데 전 아무렇지 않더라고요.
그냥 담담했습니다.
추억하면 참 좋고 설레이는데 막상 보니....
전 그렇더라고요.
뽀로로
13/10/21 09:58
수정 아이콘
저도 그랬음 하네요
아직 같이 가던 곳이나 같이 듣던 노래에 짠~해서..
은하관제
13/10/21 01:52
수정 아이콘
요즘은 하루하루가 무언가로 무언가를 잊어가고 잊어가는 듯한 삶으로 느끼는지라, 가끔 이러한 시간에 이런 글을 보게 되면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거 같습니다.
혹자는 남자는 처음을 잊지 못하고, 여자는 마지막을 잊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사람 사는거 뭐 여러가지니까요.
문득. 예전 생각이 잠시 났네요.
뽀로로
13/10/21 09:57
수정 아이콘
아직은 누구를 봐도 만나보고 싶다 생각이 안들더라구요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던데.. 그게 언제일지
라울리스타
13/10/21 02:10
수정 아이콘
첫사랑을 다시 만난 적은 없지만, 당장 내일 봐도, 더 진전되어 매일 보는 사이가 된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아요. 벌써 6년이란 시간이 흘러서 그런 것도 있지만요. 관계가 끝난 이후에도 몇 번 전화나 메신저로 이야기 했었는데 매번 같은 이유로 싸운 것 밖에 없네요. 그 이후 연락을 끊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애틋함보다는, 서로가 그냥 서툴고 못났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다시 만난다면 더 잘해주고 저를 더 좋아하게 만들 자신이 있네요. 그 때 워낙 못해줬기 때문에...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관계가 끝났을 때 그때는 정말 가슴 아팠습니다. 아마 가슴이 '시린' 경험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고 기억해요.
지금은 아프시더라도, 아마 15년 후...정말 긴 시간이네요. 그 때는 영화처럼 서로가 어색해서 밀어내는 것은 없을 겁니다. 일단 외모가 엄태웅과 한가인처럼 유지가 되어야.......는 농담이고,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서 다행인 것이죠.
뽀로로
13/10/21 09:56
수정 아이콘
저도 가슴이 '시린' 경험은 처음이더라구요
다만 아직 후회가 되는건 너무 서툴러서요
내가 더 좋아하는 걸 안들키려고 버티고 버티고...
다시 돌아간다면 솔직히 말하고 잘해주고 싶어요.
얼마전 들은 소식으론 앞으로 평생 지나가다 마주칠 일이 없더라구요.
라울리스타
13/10/21 13:53
수정 아이콘
원래 후회라는 것이 최선을 다해 사랑한 쪽보다, 그걸 감춘 쪽이 많이 하나 봅니다.
저도 남자임에도 먼저 다가온 것은 첫 사랑이었고, 그래서 제가 너무 어린 나머지 그녀의 감정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었거든요.
항상 나중에서야 제가 더 좋아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구요.

근데 더 웃긴건 다음에 사랑이 찾아오면 더 잘해줘야지....라고 마음먹고 TV속 연인들이나 주변 오래오래 사귀는 친구들처럼 잘 해주려해도 잘 안되기는 마찬가지더라구요. 크크 제가 전에 경험했던 관계가 뒤바뀔 뿐이었습니다. 입장이 바뀌는 그 때는 제가 후회를 별로 하지 않더군요.

결론적으로 사랑엔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온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또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내 사랑이고, 진짜 내 인연이겠죠. 힘든시기가 며칠 혹은 몇 달은 계속되실거에요. 그래도 그 시기가 지나면 또 좋은 인연이 반드시 찾아오실 겁니다~!
현실의 현실
13/10/21 04:57
수정 아이콘
첫사랑의 기준을 여러개로 두어도
난 도대체 내첫사랑이 누군지 뭔지
모르겠네요 아니
근본적으로 진짜사랑이 뭔지모르겠달까
뽀로로
13/10/21 09:51
수정 아이콘
저도 그랬던것 같네요
진짜 사랑이 올거예요~
추워춥다구
13/10/21 11:28
수정 아이콘
억지로 미사여구나 잘쓴 글처럼 보이게 하려 애쓰지 않은.
담백한 글 참 잘 읽고 갑니다.
13/10/21 13:26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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