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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3/18 11:06:38
Name 알고보면괜찮은
Subject [일반] 간 큰 부마들-의산군 남휘
  조선시대 부마들은 왕녀와 결혼한 대가로 이런저런 제약들이 참 많았습니다.  우선 벼슬을 받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명예직이고 다른 관리들처럼 정치 생활을 할 수 없었죠.  그리고 아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첩을 들일 수 없었고,  아내가 죽은 뒤에는 재혼할 수 없었습니다.(다만 아내가 죽고나서 첩을 들이는 것은 눈감아줬던 모양입니다.)  더군다나 부마 재혼 금지는 거의 관습에 가까웠던 것이 숙종 때는 아예 법제화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마냥 안좋은 것만 있었던 건 아니었죠.  왕들은 딸을 시집 보내면서 으리으리한 집을 지어줬고 막대한 재산도 부마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부마 본인만 벼슬살이을 못했다 뿐이지 일가 친척과 부마의 후손들은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내의 처가가 왕실이라는 건 꽤나 부담이었을 겁니다.  부마의 부모, 그러니까 왕녀의 시부모들은 며느리에게 함부로 하대하지 못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개념을 어디로 멀리 보낸 듯 이따위 부담 같은 건 멀리 치워버린 부마들도 있었죠...

태종과 원경왕후는 4남4녀를 두었는데 태어난 순서대로 하자면 정순공주-경정공주-경안공주-양녕대군-효령대군-충녕대군(세종)-정선공주-성녕대군입니다.  의산군 남휘는 태종과 원경왕후 사이의 막내딸 정선공주의 남편입니다.  부마의 작위는 ~위로 알려져 있지만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군호를 붙였죠.
정선공주는 1424년 1월 25일에 21살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당시 왕이던 세종은 하나뿐인 친여동생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아직 부왕인 태종의 3년상이 끝나기도 전이었죠. (여담으로 정선공주가 죽은지 한달 만에 세종의 큰딸 정소공주가 13살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세종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세종은 누이동생에게 제문을 보내 조문하고 당시 예문 제학 윤회가 묘지명을 썼습니다.
  그리고...반년도 채 지나지않아  정선공주의 남편 의산군 남휘가 죽은 칠원부원군 윤자당의 첩 좌군비 윤이와 간통했다는 얘기가 들려옵니다.  더 나가서 윤이가 4촌 누이의 집으로 돌아가자 남휘는 질투하고 노하여 그 집으로 가서 4촌 누이와 그 남편을 거의 죽을 지경으로 두들겨 팼습니다.
  세종은 노합니다.  아내가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다른 여자, 게다가 비록 죽었지만 남편이 있는 여자와 간통을 한데다가 거기에 폭행이라니...
세종은 남휘를 불러 꾸짖습니다.  실록을 옮겨 보면 이러합니다.
  “종실에 관련 있는 자는 마땅히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무슨 공덕이 있어 이런 부귀를 누리나.’ 하고 더욱 경계하고 근신하여 편안하고 영화로움을 보전할 것이어늘, 너는 무술년에 조정의 관원을 구타하여, 헌부에서 소를 올려 죄주기를 청하였으나, 내가 관대하게 용서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였었고, 또 임인년에 공주가 병이 나서, 내가 진념(軫念)하여 사람을 보내어 문병하게 하였는데도, 너는 병증세가 어떠한지 알지도 못하고 내시를 데리고 쌍륙(雙六)만 치고 있어, 조금도 가장(家長)된 도리가 없었고, 또 윤자당(尹子當)의 비첩(婢妾) 윤이는 남편의 거상을 입고 있는 지 백 일도 못된 것을 첩으로 삼았으니, 비록 상가(常家)의 처첩(妻妾)이라도 그렇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늙은 공신(功臣)의 첩이란 말이냐. 이제 또 죄도 없는 사람을 구타하여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어찌 그렇게도 광패(狂悖)함이 심하냐. 네가 집으로 돌아가서 내 명령이 있지 않으면 비록 이웃이나 동네라도 출입하지 못한다.”
  남휘와 간통을 한 윤이에 대해서도 처분을 내립니다.
  “군비(軍婢) 윤이가 대신(大臣)의 첩으로서 남편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다시 다른 사람에게로 시집갔으니, 이치로는 의당 중하게 논죄할 것이나, 지나간 일은 우선 용서하고 말하지 아니할 것이니 고역(苦役)의 소임을 맡게 하라.”
  신하들은 들고 일어납니다.  남휘를 처벌하라고 말이죠.  그 중에서 우사간 이반 등이 올린 상소의 일부를 보면,  
  "~~신 등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부부(夫婦)는 삼강(三綱)이 근본인데 이제 휘가 공주에게 장가들었으니, 지위가 이미 극진한 것이요, 은총이 이미 지극한 것이온즉 마땅히 삼가고 조심하여 상덕(上德)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것을 생각할 것이온데, 한번도 이런 생각은 하지 않고 일찍이 공주께서 생존하여 계실 때에 거상을 입은 남의 첩을 빼앗아 들여 남편의 거상을 마치지 못하게 하였고, 이제 공주께서 세상을 떠나시기에 미쳐서는 거상이 돌도 되지 못하였으므로 슬픔을 잊지 못할 때인데, 조금도 근심하고 슬퍼하는 마음이 없이 그 황음(荒淫)한 행동을 마음대로 하다가, 첩이 달아나는 것을 쫓아서 황득룡(黃得龍)의 집에 가서 득룡을 구타하는 등 분이 나는 대로 방자히 굴었으니, 그 음욕을 방자히 하고 슬픔을 생각지 아니하는 마음씨를 보면, 평시에도 그 첩에게 혹하여 사랑하고 공주를 소박하여, 비록 병이 위독한 지경에 이르러서도 근심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을 이것으로도 알 수 있으니, 태종의 군부(君父)의 덕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또 성상의 남매간의 은총도 생각지 아니하고 삼강의 근본을 파괴한 것이 분명하오며, 또 득룡의 집은 왕자께서 피접(避接)하신 곳이온데, 이제 그 집에서 소요를 피워 왕자께서 편안히 거처하시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금지(金枝)를 중하게 여기고 성상을 공경하는 것이겠습니까.~~"
  예,  이 남자 첩에 빠져서 정선공주를 소박 놓고 공주가 병에 걸렸을 때도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누구보다 속이 끓었을 세종이었지만 세종은 끝내 의산군 남휘를 처벌하지 않습니다.  이 이후로도 남휘는 중국에 사신으로도 가곤 했지만 그 외에도 여러 말썽을 일으킵니다.  광흥창의 녹을 받아먹으려 한 죄로 처인현에 부처(벼슬아치에게 어느 곳을 지정하여 머물러 있게 하던 형벌)되기도 하구요.  
  다음은 남휘가 처인현에 간 이후 세종과 신하들 사이의 대화입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의산군은 지금 어디 있느냐.”
하니, 대언 등이 대답하기를,
“처인현(處仁縣)에 있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의산군은 별다른 공덕도 없이 극품(極品)의 자리에 이른 것은 부마이기 때문이다. 마땅히 경계하고 삼가야 할 것인데, 이에 방자하여 기탄없이 걸핏하면 비법(非法)에 저촉하여 공주가 살아 있을 때부터 그러하였다.”
하였다.
  남휘는 문종 대에도 사사로이 불상을 만들어 물의를 일으켰지만 문종은 그를 눈감아 주었고,  의산군은 단종 2년에 사망합니다.


그리고 백여년 뒤 더한 부마가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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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마스터
13/03/18 12:16
수정 아이콘
재미있습니다. 후속편 써주세요~
13/03/18 13:27
수정 아이콘
가만가만... 정선공주?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듯하여 글을 검색해 보니...
이 글의 주인공이 요 며칠 전에 눈시BBbr님께서 언급하셨던 남이의 할아버지군요.
Je ne sais quoi
13/03/18 13:32
수정 아이콘
재밋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도 어서~ ^^;
13/03/18 14:41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100년 후의 부마는 누구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궁금하네요.
Moderato'
13/03/19 07:0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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