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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1/24 23:26:13
Name 때보아빠
Subject [일반] 아버지와 함께한 한라산
공항에 도착하니 형형색색의 등산복 차림의 여행객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아마 어디 산악회에서 단체로 한라산에 등반하기 위해 새벽 첫비행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미묘한 긴장감과 설레임을 느끼며 이륙한 비행기는 금새 제주도에 도착했고, 예약해 놓은 차를 빌려 한라산으로 향했습니다. 한라산은 5개의 등반코스가 있는데 백록담 정상을 오를 수 있는 관음사 코스, 성판악 코스와 윗세오름까지 갈수 있는 영실 코스, 어리목 코스, 돈내코 코스가 있습니다. 처음의 계획은 백록담 정상에 가고싶어 성판악 코스를 생각했지만 평소에 숨쉬기 운동만 하고 사는 저의 저질 체력을 감안해 영실코스로 변경하였습니다. 등산로 입구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눈덮힌 등산로를 따라 아버지와 천천히 걸었습니다. 눈이 많이 녹아 기대했던 눈꽃이 핀 아름다운 한라산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아버지와 한라산에 올라가는 동안 평소에 하지 않았던 이런저런 얘기를 하였고, 중간에 쉬면서 초코렛, 김밥도 나눠먹었습니다.

영실코스가 그렇게 어려운 코스가 아니라 등반하는데는 크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가 힘들어 하는게 보였고, 제가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산에 다니시는 것을 좋아해 자주 산에 오르셨던 아버지도 이제 많이 늙으셨구나 생각이 들어 한편으론 마음이 아펐습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습니다. 기능직 공무원 생활을 30년 가까이 하시다 5년전 정년퇴임을 하셨는데 평소 말수가 별로 없으시고,  없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고생하시며 살아온 평범한 가장의 모습입니다. 저는 이런 아버지를 보면서 막연히 아버지 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인생은 답답하고 재미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섭도록 아버지가 살아온 삶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고 제 어깨에 지워진 짐의 무게는 점점 늘어만 갔고,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닌 가족을 지키고 내 아이의 입에 맛있는 음식을 넣어 주기 위해 한마리의 일개미 처럼 살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많이 느낍니다. 우리 아버지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윗세오름에 올라 대피소에서 파는 컵라면을 너무 맛있고 먹고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해물탕과 고등어 회에 소주한잔 하고 힘든 하루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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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andertal
13/01/24 23:31
수정 아이콘
제주도 출신인 저도 아직 못 올라가 봤다는 백록담 정상인가요?...크크...
좋은 시간 보내시다 돌아가세요...^^
13/01/24 23:49
수정 아이콘
좋네요. 해물탕과 아버지. 저도 산을 참 좋아합니다. 늘 대전이 살며 뒷산을 올랐고 지금도 주말마다 관악산을 오릅니다. 그 한걸음 한걸음을 떼며 즐기는 산세와 운치가 참 중독이라면 중독이에요.
불량품
13/01/25 00:02
수정 아이콘
헉 해물탕 비쥬얼이 최고네요 ㅠㅠ
별을쏘다
13/01/25 00:10
수정 아이콘
저도 2008년에 아버지와 2011년엔 저희
가족 모두와 성판악코스를 통해 백록담정상 완주를 했습니다^^ 성판악은 진달래대피소부터 가파른 편이라 힘들지만 할만한편입니다^^ 아 그리고 하산후엔 유네스코에서 주는 인증서도 받을수있습니다 천원정도 부담해야하지만요^^ 그리고 산에 지친 심신을 위해 좀 멀지만 산방산탄산온천에서 몸을 물에 담그고 피로를 풀었었어요^^ 식사는 물론 고기였어요! 저는 제주도 살진않지만 제주도를 너무 좋아합니다!^^
지바고
13/01/25 04:47
수정 아이콘
해물탕, 고등어회 ㅠ_ㅠ

예전에 여름에 한라산 갔다가 비오는데 정상까지 올라갔다온적 있네요. 비 흠뻑 맞으면서 (기분은 좋았습니다만).. 다만 올라가니 백록담이 안보이더군요 안개도끼고 비도 오니까 흑흑
Guy_Toss
13/01/25 08:26
수정 아이콘
오는 2월경에 한라산을 갈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진을 보니 더욱 가고 싶어지는군요^^;;
아버지와의 좋은 추억은 부럽습니다!!
2막2장
13/01/25 08:58
수정 아이콘
저는 7~8년쯤 전 성판악코스로 갔다온 기억이 있네요.
친구랑 같이 갔었는데 어찌나 그놈이 빠른지 ^^;;
운좋게도 날씨도 쾌청해서 백록담을 내려다 볼 수 있었고요(물은 별로 없었던 건 함정..)
저 멀리 일본(?)으로 추정되는 섬도 보였던 것 같네요.
정상에서의 그 상쾌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날풀리면 뱅기 타고 주말에 혼자서라도 다녀올까 싶어요~
방과후티타임
13/01/25 10:26
수정 아이콘
음식 비주얼이 사기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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