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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1/16 17:40:27
Name 소년의노래
Subject [일반] 디지털을 바라보는 몇가지 불편한 시선들
스마트폰이 21세기의 대세 문화로 정착된 요즈음....뭐 전부터도 이런식의 지적들은 늘 나오곤 했습니다만..

사람들이 '디지털 매체'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pgr에서도 얼마전에 게임에 관한 글에 여러가지 댓글을 달았었고...하면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오른 대로

정리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얼마전 '스마트폰의 폐혜'라는 제목으로 된 기사가 인기검색어에 오른적이 있었습니다.

뭐 뻔하디 뻔한 예전 '디지털 청정시대(?)'를 살았던 아이들의 모습과 '디지털 공화국'이 된 오늘날의

아이들의 모습을 대조한 사진을 올리고 그 밑으로 쓰여진 여러 댓글들...

'아 진짜 내 얘기네' '예전에 밖에 나가 놀았었는데 요즘은..' 이라며 적어도 지금보다는 낭만적이었던

과거 회상식 댓글들을 내용으로 기재한 식이었죠.

또 어느 한 미국 시트콤에서도 몇 년 전만 해도 술자리에선 사람들 얼굴을 마주하며 즐겁게 얘기를

나눴는데 오늘날에는 서로 스마트폰을 만지며 대화가 단절된 세태를 풍자하기도 하구요.

그에 관련된 여러가지 서적들도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속도에서 깊이로'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등등등...

이런 주제로 관련한 기사들과 서적들을 볼 때마다 한편으론 공감이 가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 것은 비단 나의 현시절의 문화를 배척당한 자의 쓸데없는 광폭만은 아닐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아마 두가지 의견이 존재할 것입니다.

'디지털로 인해 아날로그적 가치가 훼손되며 그로 인해 인간과 인간사이의 직접적인 접촉이 줄어들며 자연스레

인성이 훌륭하게 성숙되지 못할 것이며, 또한 끊임없이 연결된 사회에서 의존증이 심화되어 독립적인 자아형성도

지체될 것이며 동시에 차분하게 오래도록 생각하는 깊이보다 당장의 즉흥적인 반응만을 이끌어내야 하는 속도의

개념이 심화되므로 인류의 발전사도 더뎌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라는 부정적인 견해와....

'디지털은 도구일 뿐 그것의 효용을 결정하는 것은 쓰는 자의 몫이다. 사람들이 디지털에 대한 의존증이 있다면

그렇게 의존하게 되는 사람의 문제이지 도구의 문제는 아니다. 도구는 도구일 뿐. 문제 그 자체가 될 순 없다.'

는 시니컬한 견해...

두 의견 모두 나름의 일리가 있고 충분히 수긍할만한 근거가 있긴 합니다. 비판하는 자의 의견은 그 나름대로

겸허하게 받아들이면 되고 시니컬한 견해에는 또 그나름의 의견을 수렴해 이 문화를 발전해 나가면 될테니까요.

하지만 저 두 의견 모두 결론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결국 디지털 문화를 문화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 태도요. 디지털은 우리를 해롭게 하는 도구이거나

혹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도구일 뿐이거나...그 어느 누구도 새로운 매체에 대한 긍정적 견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바꿔 말해 현실에 도움이 되면 '나이스', 도움이 안되면 '도구일 뿐' 해롭게 하면 '꺼져'라는 아주 기능주의적인

관점에서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는 시선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언제든 '디지털 찬양론'에서 '디지털 X세끼론'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전부터도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어째서 디지털은 그 자체로서의 세계관을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일까

하고 늘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진중권 교수님의 씨네21 기사들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아쉽게도 이런 부분에 관해서는 너무 알려지지

않는게 안타깝더군요.)

우선 저는 디지털은 '도구'가 아니라는 견해입니다. 따라서 디지털로 인해 야기된 폐혜들은 (물론 그것을 쓰는 이의

상태에 따라 정도는 달라지겠지만) 디지털로 인한 영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부정해버린다면 결국 디지털 문화가

가진 독자성마저도 부정해버리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고 보구요. 어떤 부분 부분마다 과대와 과소된 해석들이 난무할 수

있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새로운 매체 문화를 받아들인 이상 우리는 그것의 영향 아래, 변화해 나갈 수 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자 그럼 우리는 다시 묻게 됩니다. '변화로 볼 것이냐' '변질로 볼 것이냐'

이 부분에서부터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변질'로 보시는 분들은 디지털로 인한

영향에 긍정하든 부정하든 사람은 모름지기 사람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는 입장이겠죠.

(전 이것을 '문화적 보수주의자' 혹은 '문화순혈주의자'라고 부릅니다.)

그럼 저는 한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떠한 문화의 절대적 지배 아래 놓여있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소위 지켜야만 한다는

그 '아날로그적인 가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굉장히 인위적인 요소들로 점철된 것에 불과하다면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문자'입니다. 혹시 그거 아시나요? 문자문화가 없는 곳의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한마디로 이런겁니다.

'시계' '달' '동전' 이 세 단어들의 공통적인 요소를 찾으라고 하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마 많은 분들이 으레 당연하다는 듯 '동그라미'라고 하실 겁니다. 하지만 문자문화가 부재한 곳의 사람들은

거의 그 단어를 떠올리질 못합니다. 활자식 사고력이 발달되지 않은 것이지요.

'북극에 있는 동물들은 모두 하얗습니다' '곰은 북극에 주로 서식합니다' '북극에 사는 곰의 색깔은?'

이런 삼단논법식의 질문에도 그들은 '글쎄요. 제가 가본적이 없어서 말이죠' 라며 머리를 긁적였다고 합니다.

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자연적인 상태 그대로의 문화가 아닌 인위적으로 배열한 텍스트 문명을 기반으로한

수많은 문명의 위대한 업적들은 한낫 '인위적 요소'에 지나지 않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마는걸까요?

'시간'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1년은 365일, 한달은 약 30일, 어버이날, 어린이날

빼빼로 데이, 크리스마스' 등의 기념일들도 다 인위적으로 분절시켜버린 요소들에 불과하니 모두 배척해야할

反자연적인 요소에 불과한 것일까요? 물론 이런 질문들도 가능할 겁니다.

앞에서 열거한 모든 예시들은 '인간의 직접적인 삶'에 필요한 요소들이 아니겠냐고...디지털은 고작해야

'가상에서의 문화'일 뿐이지 않냐고....그것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전부일 순 없지 않겠냐고...우선해야할 건

현실이지 않겠냐고.....네 맞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가상에서의 문화는 가상일 뿐이죠.

그럼 다시 질문을 드려봅니다. '가상공간에서의 문화는 진실일 수 없을까?'

SNS의 발달로 너도 나도 '소통'을 외치고 있는 요즘....어쩐지 현실에서의 우리들의 모습은 전혀 소통은 커녕

불통의 시대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사람들은 말합니다.

'SNS는 역시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어' 'SNS 백날 해봐야 외로움은 가시지 않는다' 'SNS가 오히려 소통을 차단한다' 등등..

뭐 아주 지긋지긋하죠. 잘되면 내 탓, 안되면 도구 탓입니다. 이 역시도 가상문화를 그저 현실에 적합해야할 어떠한

도구로 상정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기존의 주장들과는 하등의 다를 바 없는 부분들이죠.

왜 이렇게 사람들은 가상 혹은 모방이라는 것들에 대해 네거티브하기만 할까요? 웃긴건...이런 식의 주장을 하시는

분들 중에 있는 '인문학자'들입니다. 다른 일반사람들이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는데 도대체가 '문학'과 '시' '철학'이라는

명백한 가상의 세계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하는 학자들이 왜 디지털이라는 가상 세계에 대해서는 그토록 경멸 혹은

부정적인 입장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디지털에 대한 여러 합리적인 비판들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고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면 본인들이 연구하는 그 학문 그 자체마저도 부정해야만 합니다. 한마디로 본인들

역시도 인간과 인간사이의 자연적인 접촉을 차단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을요. 허나 그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결국 '익숙한 것'의 가치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놓고 비교한 오늘날의 '낯선 것'들에 대해

평가절하 하려는 수구스런 세태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요? 물론 '옛 것은 낡은 것'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식으로

사람들의 가치를 속도에 편승시켜버리려는 작금의 세태 역시도 비판적입니다.

(그래서 전 오늘날의 디지털 문화에 대해서 그리 긍정적이진 않습니다.)

자. 지금까지는 디지털에 대한 '실드(?)'였구요. 이제 이런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변화는 무조건 옳기만 한 것일까?'

최근 들어 이런 질문들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우리는 어쩌면 '변화만'을 외치는 시대에 살면서 자칫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어떤 것이라 이미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변화에 대한 보다 더 깊은 사유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런 변화에 대해 또한 약간의 삐딱한 시선들을 가지게 된데에는 대선시즌을 거치면서 들었던 여러가지 사회문제들을

바라보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이 혼탁한 시대의 피해자들은 모두 '변화'의 희생양들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디지털이라는 매체 역시도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제도와 더불어 함께 발전되어온 측면도 분명히 있더군요.

(어찌 보면 이게 다 '신자유주의'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약간은 근거 없는 생각을...)

자본주의와 디지털의 환상적인 궁합이라는 말도 있었구요. 그런 식의 글들을 접하면서 들었던 여러가지 생각들...

디지털 매체는 누구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생각이 미치자 이제 무조건적인 '디지털 옹호론'에서 약간의 중립을 유지하게 되더군요.

인류의 도구의 발전사라는 것도 결국은 '가진자'들의 통제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디지털이라는 것도

결국 그렇게 변질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어쩌면 이 문화에 네거티브한 입장들도 다 이런 근거에 기반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부분들을 떠올리며 이제는 또한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디지털로 인해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가지게 된 것도

맞지만 그 말은 다시 말해서 가진자들의 권력 집중화도 용이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할테니까요. 인쇄의 발달이 그러했듯...

그러고보면 '디지털을 끊어라' 식의 선동적인 구호들에도 약간의 반응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말처럼 '멈춰라 그리고 생각해라'는 정신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물론 이 논리에는 많은 허점도

내포되어 있을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거부, 정지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테니까요.

어쨌든 이런 네거티브한 견해들은 결국 사회구조적인 부분들로 발전되어야지만 보편적인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사회'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글이 너무 길어지니 나머지는 댓글을 통해 얘기해봤으면 좋겠어요. 팔 아파. 흑..글고 필력이 떨어져 글의 논지가

좀 어지로운 측면이 있습니다. 부디 넓은 마음으로 양해를...(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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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이리
13/01/16 17:53
수정 아이콘
그래서 디지털 문화란게 뭔지를 정의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소년의노래
13/01/16 18:36
수정 아이콘
아이고 부끄럽네요. 필력이 딸리니 횡설수설이네요. 이거야 원....

글 중간에 '인문학자' 얘기 하면서 나온 얘기인데...
'소설과 시'는 가상의 공간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인류는 상상의 영역을 넓힘으로서 현실을 증식시켜 왔듯이 디지털 문화도 그리
보고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게 사실이긴 하지만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13/01/16 18:14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근데 글쓴이분이 주장하는바가 뭔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제 생각은 ...

늘 세상은 변화를 추구하는 자와 과거를 지키려는 자의 대결로 점철되었고,

미시적으로는 어느누가 옳은지 명확하지도 않고, 전자가 이기기도 하고 후자가 이기기도 하지만,

거시적으로는 늘 변화를 추구하는 자가 이겨왔고, 그만큼 세상을 발전시켜왔다고.. 말이죠.

디지털도 크게 보면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소통이 줄어든 사람도 있고 더 불편해진 사람도 있고 소외를 느끼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뭐 요새 보니 디지털문화에 '찌든' 아이들의 지능이 실제로 떨어졌다.. 라는 결과도 있더라고요~~)

어쨋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좋은게 아닐까 하구요~~
소년의노래
13/01/16 18:38
수정 아이콘
주장하는 바가 정확하지 않다는 의견 받아들입니다. 요즘 하도 디지털의 폐혜에 대한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어 그에 대한 반감글이다보니
횡설수설 했네요. 그냥 분노글입니다.^^

음 글고 또 한가지 궁금한점이...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대립은 언제까지 계속될지...이건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실재'냐 '모방'이냐의 대결인데....미래에는 디지털의 아날로그화가 가속될 것이라던데...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합니다.
13/01/16 18:52
수정 아이콘
제가 이해력이 부족한지 글이 조금 어렵네요..
그냥 제 생각만 말씀드리자면 디지털을 아날로그랑 비교해면서까지 거부해야되나 싶네요.
예를 들어 어릴적에 동네에서 뛰놀던게 지금 피시방에서 게임하는거 보다 뭐가 더 좋냐는 이말입니다. 뭐 향수쯤은 느낄수 있겠죠..
막상 그 시절로 돌려보내줄게, 하지만 나이는 그대로야 한다면 아무도 안갈걸요. 지금 후회하는 일을 다시 되돌아가 고치려고는 하겠지만요.
친구들 전화번호 못외우고 술자리에서 카톡만 하는게, 전화번호를 못외우지만 디지털로 더 쉽게 다른 학문을 배우고 카톡으로 더 쉽게 약속을 잡고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건 제 바램이지만 한마디 말로도 집에 불을켜고 자동차 시동을 걸며, 침대에 누으면 자동으로 천장에 TV가 나오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소년의노래
13/01/16 20:35
수정 아이콘
님의 이해력이 부족한게 아니라 저의 필력이 떨어지는 것이죠.

음 쨌든 '동네에서 뛰놀던게 피시방에서 게임하는거 보다 뭐가 더 좋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는 '그래도 기왕이면 동네에서
뛰어노는게 더 낫지 않겠냐'라는 대답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딱히 게임문화에 대한 부정적 견해라기보단
심증적인 상태 역시 무시할 수 없지 않나 싶어요. 물론 기성세대는 좀 극단적이긴 합니다.
jjohny=Kuma
13/01/16 18:55
수정 아이콘
디지털의 효용에 대한 고찰은 이미 차고 넘칠 만큼 이루어졌으니까요. 그냥 균형을 잡아 가려는 노력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현 시점에서 디지털 자체에 대한 회의론은 그 자체로 좀 설득력이 떨어지거니와 주장하는 사람도 거의 없지 싶습니다. 당징에 그런 주장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디지털이 배제되기 어려운 상황인데요. 흐흐

앞으로도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흐흐) 디지털 의존도는 더욱 올라갈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그 디지털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혹은 디지털이라는 패러다임을 누리는 주체인 '사람'은 결국 아날로그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한 고찰들은 나름의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언급하신 디지털의 아날로그화도 그런 맥락이겠구요.

요즘 한 광고에 나오는 카피가 이런 접근의 핵심을 잘 짚어주지 않나 싶습니다.
[사람에서 기술로, 다시 사람으로]
소년의노래
13/01/16 20:37
수정 아이콘
디지털 자체에 대한 회의론은 여전합니다. 본문에서 피력했다시피, 대표적인 예가 '인문학자'들이에요. 거의 그런 논리를 주도하고 있는
쪽이 바로 이 계열입니다. 저는 디지털 회의론에는 딱히 부정하지는 않는 입장인데, 명백히 시대의 앞날을 통찰해야 할 학자들이란 작자들이
나서서 그런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는 게 다소 의외로 느껴지더군요. 약간의 실망도 느끼구요.
켈로그김
13/01/16 18:59
수정 아이콘
디지털이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는 데이터를 처리, 저장하는 일종의 언어양식일 뿐이죠.
디지털 시대.. 뭔가 좀 와 닿지는 않습니다.

플랫폼을 이용한 커뮤니티, 소통기능은 얼굴을 보고, 음성을 듣고, 몸짓을 보는 소통과는 다르긴 합니다.
편리하지만 결여된 소통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죠.
3분 레토르트 식품과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식사의 차이라고 비유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그걸 문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유효한 선택지가 늘어난 것을 반기면 모를까.
발생하는 문제들은 변화.적응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일 뿐입니다.
혹은, 누군가에겐 이 변화가 아주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요.
(비유를 연장하자면, 아주 바쁜 사람들에겐 손에 들고 걸어가면서 먹는 음식이 필요한데
그 음식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런 음식이 우리의 식문화를 좀먹는다" 라고 하는 것에다 비유할 수도 있겠지요.)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고, 게중엔 폄하와 비난의 관점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것 역시 "너무 빠르니 좀 천천히 변해가자 응?" 정도로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변화든 그 변화의 방향 자체가 바람직하다고 하더라도 부작용을 줄이는 일 역시 중요하기에
그러한 관점 역시도 존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소년의노래
13/01/16 20:40
수정 아이콘
공감합니다. 제가 하고픈 얘기를 심플하게 요약해주시네요. (필력 좀 가다듬자 어흑..)
말씀하주신 대로 저 역시 아날로그적인 가치가 조금 더 인정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보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좀 약간 있어보이는 척을 하자면,
'디지털은 가장 후진 아날로그며, 아날로그는 가장 완벽한 디지털이다' 랄까요?^^;;
레지엔
13/01/16 19:13
수정 아이콘
디지털.. 이랄까 도구적 변화로도 문화는 굉장히 쉽게 변하죠. 대표적으로 레코드. 축음기나 LP판이 처음 나온 시절에 녹음 음악이라는 건 '생음악을 가공 변조한 열화품', '음악에 대한 몰이해를 유발하는 문화 파괴자'였죠. 더군다나 녹음 시간이 짧던 시절에는 '음악의 호흡을 짧게 강요하는 인스턴트 식품'이라는 얘기까지 나왔고. 지금도 몇몇 보수적인 음악 애호가들은 저 견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논쟁은 LP=>CD이행기에도 나왔고(이때 나왔던 가장 유명한 의견은 역시 '디지털의 차가운 음색으로는 LP만의 고유하고도 우수한 음색을 이길 수 없다'겠죠), CD=>mp3 이행기에도 나왔습니다.
그 논쟁 속에서의 다양한 사유들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만, 결국 언제나 결론의 방향은 '사용자가 알아서 조절해라'로밖에 귀결될 수 없었다는 점에서 편리함의 증대라는 마약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종합적으로 보면 더 좋은 것일 가능성이 아주 높고요(핸드폰과 문자메시지, 카카오톡으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변화가 엄청나고 부작용도 엄청납니다만, 예전으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과연 몇이나 돌아갈런지?).
소년의노래
13/01/16 20:47
수정 아이콘
본문 하단쯤에 적은 부분에서 좀 더 첨언하자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애써 가르려는 행태도 참 웃기다고 생각합니다만...그것이 유효하다는 전제에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자면..

컴퓨터의 발달 이전까지의 도구는 말 그대로 인간의식의 지배 아래 있었다면 이후의 디지털 혁명을 즈음하여 도구가 인간을 지배하는
형태로 변해버렸다는 견해 역시 충분히 수긍할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조건 '변화'라는 통시적 프레임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네거티브한 입장의 논리를 조금 더 가다듬어 이 유효하고도 뛰어난 디지털 문화를 우리 의식의 지배력 안에 놓아둘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근데 그렇게 되면 또한 디지털만의 고유한 문화가 퇴색되겠죠. 어렵다..)
다구다구
13/01/16 19:20
수정 아이콘
글쓴 분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싶으신 건지는 잘 모르겠어서 일단 부분만을 보고 제 생각을 써 보자면..

글쓴 분께서는 디지털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보고 도구임을 부정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은 도구라고 봐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에 따르면(지금 읽고있는 중이고 절반밖에 읽지 못해서 이해가 일천하지만..)
정상과학을 지탱하는 어떤 과학활동의 여러 이론, 방법론적인 것들을 하나의 범주로 패러다임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패러다임이 바뀔 때마다 과학자들은 작게는 어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크계는 전체 세계를 조망하는 세계관의 변화를 겪게 되죠.
그러면서 과학자들은 이전 정상과학에서 사용하던 패러다임이라는 도구를
지금의 정상과학에선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새 도구를 사용하여 과학활동을 수행하게 됩니다.
즉 패러다임은 우리가 착용하고 있는 안경이라는 도구와도 같은 것이고
패러다임의 혁명은 이 안경이 잘 안보인다는 것을 서서히 자각하게 되면서 안경을 갈아끼우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디지털이라고 하는 것이 아날로그의 여러 이상異想이 쌓임으로 인해 출현한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세계관의 변화로써 디지털을 바라보려 한다면 오히려 디지털을 도구로써 바라보는 게 맞겠죠.
여기서 아날로그적 세계관과 디지털적 세계관을 적용시켜 본다면
이전의 아날로그적인 안경을 끼고 있었을 때의 정상활동(정상과학 대신에)중 하나로 Z라는 목적을 위해 A를 수행하였다면
지금은 같은 목적을 위해 D라는 활동을 수행한다고 할까요.
소년의노래
13/01/16 20:49
수정 아이콘
제가 참 필력이 많이 부족하죠?^^ 그래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흐흐
근데 님의 글이 더 어려워요...ㅠ....암튼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다구다구
13/01/16 23:50
수정 아이콘
아뇨 제가 공돌이라 이런 글을 이해하거나 이해시키는 게 많이 부족합니다 ㅠㅠ
제 요지는 결국 디지털을 세계관과 결부짓는다면 도구로써 바라보는 게 맞으며
도구이기 때문에 나쁘다 혹은 좋다는 식으로 가치중립적으로 바라보는, 글쓴 분께서 탐탁치 않아 하시는 그런 관점이 제 생각엔 맞을 것 같다. 뭐 이런 것이지요.. 아무래도 공돌이라서 디지털을 기술적 관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해울림
13/01/16 19:56
수정 아이콘
디지털이라고 하니,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생각나네요.
이인성 작가의 '한없이 낮은 숨결', 그리고 이에 관한 우찬제 교수의 비평(네이버 캐스트에도 있습니다.)
예술가 제프리 쇼(Jeffrey Shaw)의 작품 세계 등이 제가 최근 디지털에 관해 고민해보게 되었던 계기가 되어준 것 같습니다.
13/01/16 20:00
수정 아이콘
아날로그의 가치라는 게 무엇인가요?
누군가는 말을 통해 생각이 훼손되기에 그 이전을 동경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말을 안하고 살아가기는 그렇죠.
구텐베르크 이전의 시대로 돌아간다면 보다 그에 가까워질 수는 있겠지만 마찬가지 의미로 무의미한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선가 본 바로는
먹을 갈고 마음을 다스린 다음에 글을 쓰던 사람들은 펜으로 바로바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글에 마음이 담겨있지 않다고 비난했고,
그렇게 펜으로 원고지에 글을 쓰던 사람들은 후에 컴퓨터로 타이핑하는 사람들에게 퇴고의 작업이 부족하다고 비난했다고 합니다.

본문에서 예로 든 대화의 단절과 디지털매체(혹은 문화)의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저는 상관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면에는 시대의 격변으로 인한 문화의 변화가 크게 작용하겠지요.
그리고 저야 생각의 깊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아가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관련 링크를 걸겠습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cid=472&docId=1395153&mobile&categoryId=1142
소년의노래
13/01/16 21:10
수정 아이콘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관련 링크글도 잘 읽었구요. 펜으로 바로바로 글을 쓰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건 저도 몰랐군요. 흐흐..
변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이것 역시도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도구적 이성의 극대화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도
한번쯤 논의해볼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 그런거지 뭐'하며 제껴두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말씀하신 그 '생각의 깊이'라는 것 말인데요...꼭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저는 도저히 사람들이 말하는 그 '깊이'라는게 뭔지를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옛날에는 지금보단 '깊이'가 있었다라는 것인데...다 인정하고서라도 보자면...왜 그 '깊이'라는 것을 꼭 지켜야
할 어떠한 것으로 두려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깊이'라는 게 없으면 어떻고 있으면 또 어쩔건지 참...디지털 시대가 아무리 '속도'의
시대라지만 그런다고 '깊이'라는 것이 발생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말이죠. 느림의 가운데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이 '깊이'라는 건
인정하겠는데 깊어지기 위해 부러 느려질 이유는 없는거잖아요?
13/01/16 23:27
수정 아이콘
구체적인 방식이야 제가 그것을 논할 수준이 아니라서 뭐라고 말을 꺼내지 못겠네요. 개인적으로는 살아가면서 배우다보면 어느 순간에 느끼는 바가 오지 않을까 합니다.
안산드레아스
13/01/16 20:07
수정 아이콘
저 역시도 같은 생각을 합니다. 확실히 스마트폰의 존재감은 세상에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출시될 때 세상이 바뀌니 생활이 바뀌니 했지만 그거야 당연히 식상해빠진 광고 문구인 줄 알았는데,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졌죠.
이젠 길 가다가도, 버스안에서든 어느 곳에서든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보는 사람들만 있습니다. 과거에는 버스에 앉아서 창가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전혀 없죠. 그리고 사람들과 만났을 때에도 서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광경.

저도 뒤늦게야 최근에 스마트폰을 처음으로 마련했는데.. 왜 그런지 이해가 가더라구요. 정말 하는 거 없이도 무심결에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배경화면이나 넘기고 있고.. 아무튼 뭔가 의존하고 싶고 없으면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네요.
소년의노래
13/01/16 20:54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분명 안산드레아스님처럼 이런 변화가 좀 생경하고도 낯설게 느끼시는 분들이 있을겁니다. 일종의 위화감이랄까요?
나름의 해법(?)을 알려드린다면...그런 의존증이 불안하시다면 차라리 유익한 것에 의존을 해보세요. 가장 좋은게 E-BOOK이라고
생각하구요. 그것도 아니라면 인문학 관련된 양질의 글들이 있는 파워블로거들의 게시물을 찬찬히 읽어보든지 하는 식으로요.
그럼 뭔가 의존증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을까요? 뭔가 얻은 듯한 기쁨도 있고 말이죠.^^
사자비
13/01/16 21:40
수정 아이콘
전 디지털은 디지털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아날로그 신호를 구분하기 쉽게 끊어내어 숫자로 표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변하게 만든건 "편리함" 이고 더 큰 편리함을 만들어내는 도구의 개발속도가 빨라졌다는 것 뿐이죠.
스마트폰이라는 편리한 도구가 사람들을 변하게 만든거지 디지털이란 기술이 사람들을 변하게 만든게 만든건 아니죠.
어차피 스마트폰도 통화버튼을 누르면 아날로그로 서로 소통합니다.
문자나 이메일도 편지나 다름없이 문자라는 매개를 이용해서 서로 소통하는 거죠.
달라진 건 내가 전하려는 아날로그 신호를 집으로 전화하지 않아도 전할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내가 전하려는 문자가 2~3일씩 기다릴 필요없이 바로 전해진 다는 것 뿐이죠.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트화 하면서 잃어버리는 값들을 아쉬워해 아날로그를 그리워한다."는 주장이면 모르겠습니다마는
디지털이라는 기술 자체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은 디지털일 뿐이죠.
소년의노래
13/01/16 21:47
수정 아이콘
변화라는 것의 기준을 얼마만큼 둘 것인가에 따라 견해는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쨌든 '디지털은 디지털인 것이죠'
몽키.D.루피
13/01/17 01:14
수정 아이콘
매체가 우리의 인식 구조 자체를 형성한다는 매체결정론의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매체가 우리의 행동방식을 결정하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매체결정론의 문제는 매체 또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매체가 전지전능하게 사람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거죠. 모든 것이 매체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사회문화적인 요인들도 같이 고려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기술결정론도 비판받고 있습니다. 기술철학에서 현대 기술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학자들은 기술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기술 결정론의 함정에 빠지는데요, 기술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마치 기술의 홀로 살아 움직여서 진보해 나가는 유기체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기술은 기술일 뿐이죠. 그것도 사람이 만든 건데요... 이에 반하여 사회구성주의자들은 기술은 우연적으로 생겨나고 발전할 뿐이라고 오히려 너무 기술의 역할을 축소시켜 버렸죠.
기술에는 기술을 만든 사람의 정치적 의도가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기술은 만든 사람과 관계없이 발전하거나 정치적 의도들을 함의하기도 합니다.
랭던 위너라는 학자가 든 재밌는 예가 있는데, 바로 로버트 모제스(Robert Moses)라는 사람이 만든 뉴욕의 고가도로입니다. 모제스는 1920년부터 70년대까지 뉴욕주와 맨하탄의 도시 설계를 주도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롱아일랜드의 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위의 고가도로를 낮게 설계했는데 위너는 모제스의 전기 작가의 증언을 빌어 이것이 당시 버스를 주로 타고 다녔던 흑인과 저소득층의 통행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위너는 이것을 아무리 정치적으로 상관없어 보이는 인공물이라도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정치적 목적을 실현시키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로 제시한 거죠. 반대로 제작자의 정치적 의도가 드러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제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정치적 함의를 지닐 수도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든 것이 태양열과 핵발전소인데 전자는 분산적이고 민주적인 관리시스템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지만 후자는 중앙집권적이고 위계적인 시스템과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즉, 태양열 발전소가 핵발전소보다 더 민주적이고 사회참여적이라서 더 윤리적일 수 있다는 겁니다.
만약 디지털 매체의 윤리를 찾는다면 비슷한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디지털은 아날로그에 비해 좀 더 참여적입니다. 사회참여의 측면에서 보자면 디지털 기술이야말로 가장 윤리적인 기술일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참여자의 윤리의식이겠죠. 그렇다면 그건 딱히 답이 없습니다.
결론은 디지털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디지털은 역사상 가장 참여적인 매체이고, 랭던 위너의 사회참여의 기준에 따르면 가장 윤리적일 수 있는 매체입니다. 하지만 디지털이 덜 윤리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기술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거기에 참여하는 참여자들, 즉, 대중들의 성향 때문이겠죠. 그렇기 때문에 요즘 시대에 다시 윤리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는 거 같습니다. 결국 기업윤리, 매체윤리, 공학윤리, 기술윤리 등등 각 분야의 윤리학은 하나의 윤리학 담론으로 연결 되거든요. 얼마 전까지 정의문제가 화두였지만 엄밀히 따지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그 책은 윤리학 책이죠. 현대 사회의 윤리학의 부재가 많은 사회문제를 낳는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아닌 걸 아니라고 해야 되는데 모든 가치들이 상대적으로 해석되면서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는 거죠. 모든게 취향차이로 치부되지만 취향으로 봐줄수 없는 뭔가가 있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인문학이 해결 못하고 있는게 안타깝네요.
ps. 여담이지만 매체철학자들의 이론들을 살펴보면 인터넷이야말로 진짜 매체의 끝판 대장격인 거 같습니다. 단적인 예로 마셜 맥루한이 쿨미디어/핫미디어를 이야기했을때 쿨/핫의 기준이 매체 사용자들의 정보에 대한 참여도였죠. 사용자에게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하고 참여하게 만드는 매체는 쿨이고 그 반대의 매체는 핫입니다. 정보의 밀도가 비어 있고 꽉 차 있는 것의 차이라고 볼 수 있죠. 라디오는 쿨미디어고 상대적으로 텔레비전은 핫미디어입니다. 만화는 쿨미디어이지만 상대적으로 영화는 핫미디어죠. 그런데 인터넷은 가장 쿨하면서도 가장 핫한 미디어입니다.(제 견해입니다만.) 가장 참여도가 높으면서도 가장 정보 밀도가 높은 매체죠.
소년의노래
13/01/17 01:44
수정 아이콘
긴글로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회적 문제의 야기는 디지털 기술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데에 공감합니다. 헌데, 제가 본문 하단 쯤에 적었듯이..
과연 문명의 이기가 우리를 더 윤리적인 환경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요즘 들어 좀 회의적인 입장으로 변했습니다.
일전에도 게임에 관해 답글을 달았었는데...이전과는 달리 현대사회에서의 기술발전이라는 것은 기업주도식의 자본의 집중화 현상을
통해 발생되는 것이고 그것은 그만큼 서민 경제의 영역이 침해된다는 뜻인데....한마디로 기술이 더 세련되고 정교해진다는 것은
거대자본의 집중화 현상이 더 심화되었다는 것의 반증이라고도 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러니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성이 점점 더
쇠퇴한다는 이 터무니없는 말에 요즘 들어 은근히 공감이 가기도 하구요.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사회구조적인 부분이겠죠.
(한마디로 교통사고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CCTV를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바쁘게 운전하지 않을 수 있게
여유로운 일상을 조성해줘야 하는데 계속 그 해결을 기술로만 하려다보니 쓸데없는 돈낭비를 하게 되는...)
그리고 이런 부분을 사실 가장 정확하게 짚어내야할 인문학자들이 외려 디지털 문명을 자꾸 거부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는 작금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조금 화도 납니다. 뭐 그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구요. 그래서
더 열폭을....
옆집백수총각
13/01/17 14:35
수정 아이콘
인문학자인데요, 싸잡지는 말아주세요. 좀 그렇습니다. 당장 저만해도 그런 시선은 아니었는데.. 메인스트림 의견이 그럴 수는 있겠지만 학계의 일관된 시선이라 한다면 섭섭하겠지요.
소년의노래
13/01/17 15:00
수정 아이콘
아이쿠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네요. 학계의 일관된 견해는 아닐겁니다. 다만 이 혼탁한 시대 변화에 그나마 가장 호응해줄 수 있어야 할 인문학자들이 의외로 이 문화를 나이브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어서말이죠. 그 정도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아예 병리적 현상으로만 진단하려하니 좀 화가 나서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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