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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10/13 10:22:17
Name fd테란
Subject [일반] 심야 데이트 후기4 - 철딱서니 없는 것 -
서울에서 가장 큰 찜질방 안입니다.
3년만에 재회한 남자사람과 여자사람은  30분정도 뜨거운 탕속에 몸을 담구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까요.


남자사람이 먼저 샤워를 마치고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나옵니다.
여자사람도 샤워를 마치고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나옵니다.
예전에도 같이 찜질방을 간적이 있지만 단둘이서 찜질방에 온것은 처음입니다.

남자사람과 여자사람은 서울에서 제일 큰 찜질방을 둘러 봅니다.
꽤 시설이 큰 오락실을 제외하면 그냥 동네에 있는 여느 찜질방과 별 다를 건 없는거 같습니다. (오락실)노래방도 몇개 있습니다. 흔히 오락실에서 보던 것보다는 조금 사이즈가 큰 느낌입니다. 4명정도는 너끈하게 들어가서 즐길 수 있어 보입니다. 커플들을 위한 초미니 노래방이 아니라 가족들을 위한 노래방인거 같습니다.

새벽 세시가 넘은 시간이기 때문에 오락실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남자사람의 한때 취미였던 펌잇업을 작동시켜 이윤석이 울고가는 극강의 몸개그를 보여줄까 생각해보지만
그리 쓸만한 구경거리도 아니고 그리 좋지 않은 결과를 남길거 같습니다. 무리수입니다. 패스
잠시동안 몇가지 시설을 둘러보다가 둘은 금새 흥미를 잃고 작은 황토방으로 들어갑니다.

새벽 세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자지 않고 조곤조곤 수다를 떠는 아가씨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부부로 보이는 일행은 저 만치에 널부러져 단잠에 빠졌습니다.

남자사람과 여자사람은 다시한번 황토방의 은은한 화장실 조명속에서 마주 앉습니다.


'화장을 하나 지우나 뭐 달라진게 없네.
원래 화장이 안먹는 얼굴이냐. 아니면 그냥 니가 화장을 못하는거냐?
아니다 생얼이 편하네.  아니 역시 생얼도 이쁘다'.

'아 왜 자꾸 안하던 소리를 하구 그래. 원래 화장 잘 안하거든.'


'내가 몇년전에 너한테 그런말 하지 않았나 이제 막 고등학생쯤 되는 피겨하는 여자애가 있는데
너랑 웬지 닮았다고 하니깐 니가 사진보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었지 아마?'

'그때는 김연아 교정하기 전이였잖아! 안이뻤을때지! 그리고 안닮았어'

'그럼그럼 당연하지. 지금 어디가서 닮았다고 하면 그 책임을 누가지니. 어휴 끔찍해. 하하
사실 얼마전에 문득 생각난건데 김연아보다는 명세빈 살짝 느낌이 좀 나는거 같기도 하다.
둘다 좀 단아한 느낌이랄까'

'우리아빠가 예전에 딱 한번 그랬는데 나보고 '수애'닮았다고 한 적이 있었어. 내가 어디가서 그소리 하면 진짜 화낸다고 했어.'
'하하하 진짜? 수애? 이야 아버지 굉장하시네. 아무리 딸이라고 해도...하하하하하'

'웃지마 나도 어디가서 아빠한테 그런소리 하고 다니지 말라고 진짜 신신당부했단 말이야. 그만 좀 웃어'
'하하하 내가 진심 수애 팬이거든. 진짜 김연아나 명세빈도 그렇지만 수애라니 아버지한테 내가 졌다. 또 다른건 없냐?'

'중학교,고등학교때 이진 닮았다는 소리는 몇번 들은거 같기도 하고...근데 얼마전에 동생이...'
'아 그래 이진이라면 그래도 좀 낫네. 그래 그건 얼추 그렇다 치자 동생은 왜?'

'전에 동생 군대 면회 갔을때 (g)훈이가 그랬거든. 아주 아주 조금 태연 닮은거 같기도 하다고....'

혹시 황토방에 있는 사람들 중 누가 들을까봐 일단 겁이 바짝바짝 납니다.
전국에 계신 소녀시대 남동생,오빠,삼촌부대 여러분 진심으로 이 여인의 망언에 대해서 진심어린 사과를 드립니다.

'아빠는 수애? 남동생은 태연? 세상에 뭐 이런 팔불출 부자가 다있지. 아무리 딸,누나라고 해도
이야 태연이라니 혹시 너 어디가서 그거 말한적 있냐. 와 너 진짜 용기있다. 이렇게 대단할 수가!'

'아니 오빠한테 처음 말하는건데...아 웃지 좀 말라니깐 아 그리고 언젠가 티파니 살짝 닮았다는 소리 듣기도...'

같이사는 룸메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한없이 초라해지고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이 밉다고 토로한지가 불과 몇시간전인데...
신이시여 아까 청계천에 있던 여자사람과 지금 앞에 있는 여자사람이 과연 동일인물이 맞다는 말씀이십니까.

말을하면서 여자사람이 다른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매우 쑥쓰러워하거나
닭살이 돋아 죽겠다는 모습을 하는것은 다행입니다만...

혹시 여자사람이 남자사람에게 편하다 라고 느끼는 감정은 이런 천부당만부당한 망언들을 하더라도 남자사람이 진정 가슴속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에서 모욕감이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말을 건넬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까 남자사림이 꺼냈던 '게이남자'나 '엉덩이' 이야기도 이보다는 덜 부끄러울 거 같습니다만...

정말 여자사람은 남자사람이 편한가 봅니다.
아 물론팔랑귀 립서비스를 은연중에 담아두는 도끼병 초기증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왜 연애를 못하는지 알겠다. 그러니깐 나는 김연아와 명세빈과 이진과 수애와 태연과 티파니를 합쳐놓은 그런 여자를 좋아하고 있었다는거네? 세상에! 이러니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올리가 있나! 이야! 내가 정말 여자 보는 눈이 엄청 높구나. 정말 대단한데!'

'아 그러니깐 내가 한소리 아니라니깐! 진짜 아니라구 동생한테 나중에 다시 물어봤는데 자기가 미쳤다고 했었어 진짜 아니래.
안닮았어 그래 나 이상하게 생겼어!'

남자사람은 잠시 웃음을 그치고 한마디를 끼웁니다.

'전에 어디서 본건데 티파니 보면 눈빛이 되게 슬퍼보인다고 했는데
너도 눈빛이 되게 슬퍼보여. 뭐 그래 티파니는 그럴 수도 있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끼워놓다가 좀 더웠는지 황토방에서 빠져나옵니다.
새벽 세시가 훌쩍 넘은 시간인데 내일 엄마랑 하루종일 남동생 군대 체육대회 구경해야할 여자사람이
이렇게 잠 안자고 버텨도 되나 싶습니다.

'안피곤해?'
'응 하나도 안피곤한데?'


식당코너에 들러서 계란몇개와 식혜두잔을 들고 의자에 앉습니다.

남자사람이 식탁 난간에 계란을 톡톡 치려고 하자 여자사람은 찜질방에서 그렇게 깨면 맛이 없어진다며
머리로 깨는 시늉을 보여줍니다.

'그래 말 잘했다. 게임할까? 아니다. 그냥 이마대라. 자 서로 상대방 머리에 한개씩 깨보자.
내가 너한테 쌓인게 많은데 이걸로 조금이라도 풀게. 자 먼저 때려.'

'아, 뭐야 안해 그런거 안해 풀긴 뭘 풀어.'


여자사람은 자신에 머리에 얼른 계란하나를 깹니다. 남자사람도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계란 하나를 깬뒤
껍질을 까서 입에 넣으려고 합니다.

'아, 뭐야 껍질까서 내가 먹여주려고 했는데 그냥 혼자서 먹으면 어떡해? 자. 먹어'
여자사람은 껍질을 깐 계란을 남자사람 입에다가 들이 댑니다.
남자사람은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계란 한쪽을 살짝 베어물자 여자사람도 웃으며 나머지 계란을 자신의 입속에 가져다 넣습니다.
이런 쓸데없는 짓은 좀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두컴컴한 조명아래에서 여자사람의 얼굴을 보다가 아주 밝은 곳에서 의자에 앉아 서로를 마주 봅니다.
남자사람은 최근 몇년간 이 정도로 누군가와 오래 눈을 마주치면서 이렇게 쉬지 않고 대화를 한 기억이 있나 떠올려 봅니다.
몇몇 사람들과 오랜 시간 대화를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단둘이서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는것은 생소한 경험입니다.


이런저런 가족이야기,
남자사람의 엄마아빠의 결혼 에피소드
여자사람의 2년 8개월 정도의 연애기간중에 2년간 군대간 남자친구를 뒷바라지 한 이야기
군인이라면 지긋지긋한데 부산에서 서울까지 기차타고 와서 남동생 면회나 오는 이야기
수첩에 적어간 몇가지 질문지들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대게 여자사람이 쉼 없이 떠들게 냅두다가 남자사람이 빈 틈을 찌르는 그런식입니다.


'아, 맞다 너 만나면 오늘 너한테 받아갈거 있었는데 이따가 줘야겠다.'
'뭘 받아갈건데?'

'사진 한장만 주고가라. 지갑에 있지? 혼자 찍은사진이나 증명사진같은거 원래 사진기를 가져와서 사진 좀 실컷 찍은 다음에 수첩 질문지 옆면에다가 붙혀놓거나 아님 포토북이라도 만들어서 오래오래 간직해볼까 했는데 사진기를 안가져왔네? 사진 한장만 주고 가.'


'아 뭐야 그런거 가져가서 뭐에다 쓸껀데?. 안돼 못줘 싸이에 가면 내 사진 많잖아 거기서 봐.'

'니 싸이 잘 들어가지도 않는데...그냥 사진 한장 주고가. 생각해보니 십년동안 알고 지내면서 사진 한장 안가지고 있지?
하긴 같이 찍은 사진도 없구나. 혹시 같이 찍자고 해도 내가 거절했을테지만 아무튼 내놔'

'싫어 안줘.'
'진짜 안줄거야?'
'응 진짜 안줘'
'와 진짜 못됐네. 다음달 내 생일 선물 미리 준다고 셈 치고 그냥 한장 줘. 난 오늘 립스틱도 줬잖아? 진짜 치사하네'

여자사람은 고개를 세차게 흔듭니다.


남자사람은 결국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는듯한 시늉을 합니다.
여자사람은 얼른 가지고 있던 수건을 얼굴에 둘러싸더니 눈만 빼꼼히 내밉니다.

'하하 니가 중동사람이냐? 됐다 인마. 구걸안해. 안가져..'

남자사람이 휴대폰을 내려놓자 이번엔 여자사람이 남자사람의 휴대폰을 들고 촬영을 합니다.
'너 진짜 죽는다.'
남자사람은 얼른 핸드폰을 뺏어들며 찍은 사진 삭제 버튼을 누릅니다.


'예전에 같이 부산에 일년정도 학교다니고 있을때 내가 너한테 한번도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한적은 없는거 아냐?
아 물론 학교가 좁으니 오다가다 몇번 보긴 했었고 성년의날이랑 니 생일때 먼저 불러낸적은 있었지만

거기서 일년정도 같이 있으면서 내가 널 밖으로 불러낸건 거의 없거든
뭐 그리 자주는 아니였다만 만날때마다 항상 니가 연락해서 니가 만나자고 했거든 기억나?'


'그런가? 연락은 자주 했던거 같은데 생각해보니 좀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그러게 뭐 그렇게 바쁜일이 있다고 맨날 얼굴을 안비춰? 학교도 건물이 다르니 거의 부딪힐 일도 별로 없고
도대체 왜 그랬대? 있을때 자주 자주 좀 보지.'


'나도 처음엔 그럴까 생각했는데, 안보는게 좋을거 같더라.
이미 그때 너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나도 널 좋아하는 마음이 막 생기고 있을때라서
서로 자꾸 얼굴 부딪히고 잘 놀아봤자 별로 남을게 없을거 같더라.

뭐, 그래도 니가 가끔 연락해서 만나자고 하면 거절한적은 없었던거 같지만
내 딴에는 오빠-동생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이였달까?
그래서 1년동안 같이지내면서 그렇게 아주 자주자주 보진 못한거 같다.

하하 난 성격이 그리 좋지 않아서, 처음보는 사람들이거나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 혹은 필요한 사람들...
그러니깐 물질적인것 보단 정신적인...아 그래 나보다 찌질한 사람들한텐 스스럼없이 아주 가까이 다가서지만
곁에 있던 사람들이 점점 찌질이의 탈을 벗고 더이상 내 도움 필요없이 밝은 세상으로 나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내쪽에서 먼저 멀리하게 되더라. 뭐 그런 이유에서 너에게서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하는걸걸.

정말 너 좋아한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을때 그거 부정할려고 진짜 애 무진장 많이 썼다. 가끔 서로 웃자고 말하잖냐
우리가 그러면 근친상간이라고. 하긴 그 별거아닌 아빠-딸 호칭이 정말 꽤 도움이 된거 같기도 하다.
뭐 그래도 결국 고백해버렸지만..'


'뭐야, 그러면 내가 찌질이라서 잘해줬다는거야?'

'뭐, 그런셈 아니겠냐? 오빠는 너보다 더한 찌질이라서 나보다 힘들어보이는 사람들에게 뭐 내가 줄 수 있는것을 주면서
거기서 나름 힘을 얻어서 기운을 내거든. 아 정말 찌질하다 찌질해.

그런건 있겠다. 니가 빨리 결혼을 했는데 잘 안맞아서 이혼녀로 돌아오는거야.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가 널 밀어내려하지 않고 너 고등학교 시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서 가까이 지내려고 하지 않을까?
아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

'뭐야, 그러면 나보고 빨리 결혼해서 이혼하라는말이야? 완전히 억지네'

'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지. 누가 정말 이혼하래니. 만약이야 만약.
그러니깐 이런식으로 오래비 괴롭히지 말고 얼른 좋은 남자찬구 만들란 이야기지.'


여자사람은 절대 그런일 없다면서 무조건 좋은 남자 만나서 잘 살거라 다짐 또 다짐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남자사람이 여자사람에게 질문합니다.

'너 양다리같은거 해본 적 있냐? 어장관리 같은건 말고 그냥 양다리 초등학교 동창이랑 7년 연애하고
군대간 남자친구 기다리는 2년 고무신 놀이 하는동안 한번도 양다리 한적 없었어?
뭐 중간중간 한두달씩 어영부영 사귄남자들은 빼고'

'그럼 있지 왜 없겠어! 오빠는 나에 대해서 모르는게 많아. 마음대로 생각해 아마 있을걸?'

'장난치지말고 진짜 있어 없어? 혹시 있으면 있다고 말해봐라. 그런거 털어놔야 내가 너한테 실망을 하고
내가 너한테 딴맘 먹지 않는데 도움되지 않겠니? 이런 나쁜년 나쁜년 하면서 말이지. 좀 정 떨어지는 말 좀 해봐.'

'아, 또 진지해질려고 한다. 뭔가 자꾸 대화할때 내 대답을 유도하는거 같다.
진짜 솔직하게 말할게. 정말 없어. 내가 양다리를 어떻게 해. 그런거 없어. '


남자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장난으로라도 꺼내본적 없는 말을 묻습니다.

'그럼 10년동안 너랑 나랑 지내면서 단 한번이라도 나한테 마음 간적 없었냐?'
정말 죽기전까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고 물을 수도 없고 꺼낼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말입니다.

여자사람은 잠시 조용히 남자사람을 바라보더니 말을 꺼냅니다.

'아니 딱 한번..근데 그때는 은이랑 경이가 옆에서 부추겨서 그랬던거란 말이야!
오빠가 나 좋아하는거 맞다고 옆에서 자꾸 그러길래...'




6년전으로 돌아갑니다.


여자사람이 수능이 끝났을 무렵 남자사람에게 놀러간다고 말을 합니다.
이미 서로 두어번 정도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남자사람도 흔쾌히 놀러오라고 말을 합니다.
여자사람은 놀러가기로 한 날짜와 시간을 알려줍니다.


그날입니다.

'야 너 어딨냐? 어디있는지 안보이는데? 맥도날드 앞에 있을테니깐 그리로 와'
'어 여기 맥도날드도 있어? 음 그런건 안보이는데 오빠 어디야?'

'나 맥도날드 앞이라니깐 아오 사람 엄청 많네. 군인들 진짜 많다. 그래도 나 찾을 수 있지?
내가 널 찾는것보다 니가 날 찾는게 빨라. 기다리고 있을게'

'어 여기는 별로 사람 없는데...잠깐만 기다려봐.'

남자사람과 여자사람은 서로를 한참동안 찾아 헤메지만 만날 수가 없습니다.

'야 너 도대체 어디에있냐? 왜 안보여?'
'어 나 부천터미널인데...오빠는 어딘데?'

남자사람은 서울 동서울 강변 터미널 입니다.
여자사람이 놀러온다고 했을때 예전처럼 서울에서 만나서 놀자는 식인줄 알았는데...
세상에나, 여자사람은 충주에서 부천으로 직접 찾아왔습니다.
현 정부에서 자주 써먹는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라는 표현은 이럴때 쓰는게 맞는거겠죠.

'야 난 당연히 놀자고 하길래 서울에서 만나자고 하는 줄 알았지! 거기에 니가 왜 있어.'
'아니 난 놀러오라고 하길래...그럼 어떡해?'

'뭘 어떡해. 거기 가만히 있어야지. 아니다 근처 피시방에라도 들어가 있어.
금방...아 금방 갈 수가 있냐 여기서 부천까지 두시간 걸리는데 아무튼 기다리고 있어'


남자사람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하며 강변에서 부천으로 돌아가는 두시간동안 머리를 쥐어 뜯습니다.
몇년동안 알고 지낸 사이고 몇번 얼굴도 본 적도 있는 사이긴 하다만..


세상무서운 줄 모르고 겁도 없이 뭘 믿고 충주에서 부천까지 몇번 보지도 않은 남자를 만나러 온단 말입니까.
그것도 친구까지 데리고...헛웃음이 나옵니다. 정말 무식이 용감이라더니 딱 그 꼴입니다.

두시간을 걸려서 다시 부천 터미널로로 가서 여자사람과 친구를 만납니다.
택시를 타고 역으로 데려가서 남자사람은 생전 가본적도 없는 스파게티 집에  가서 저녁을 먹습니다.

당황스럽고 뻘쭘하고 어색합니다.


'아니 도대체 뭘믿고 충주에서 부천까지 그것도 친구까지 데리고 올라온거야?
뭐 믿고? 설마 나믿고? 진짜 이게 요즘 세상 무서운줄 모르네.'

'오빠가 예전에 놀라오라면서...나중에 시험끝나면 놀아주기도 하고 재워준다고 했잖아?'

'아니 내가 말은 그렇게 했어도 그렇다고 진짜 이렇게 무작정 찾아올줄은 몰랐지.
그럼 서울이 아니라 부천으로 온다고 말을 똑바로 하던가. 놀러갈게 하고 어디로 오는지 말도 안오고 무작정 찾아오냐'

'놀러간다고 하면 오빠 있는데로 가는거지!'


겁이없다고 해야할지 멍청할정도로 순진하다고 해야할지 앞에있는 두 아가씨들을 보고 속으로 한숨을 짓습니다.
한편으로는 여자사람에게 남자사람이 그렇게나 신용이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당장이라도 버스 태워서 다시 충주로 돌려보낼까도 생각해봤지만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보내는것도 아쉽고
에라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그냥 생각을 접습니다.

'그래 나도 모르겟다. 이왕 이렇게 온거 따져서 뭣하리 시간아깝게, 근데 오빠랑 뭐하고 노냐.
아 이제 수능끝났으니 술집도 뚫리겠네. 내가 혼자서 너희둘을 재미있게 해줄 수 없으니 오빠 친구들 불러올게 괜찮지?'

여자사람과 친구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떡입니다.

남자사람은 다섯명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겁니다. 어찌된게 한놈도 거절하는 법이 없이 무조건 콜입니다.
아 정말 남자사람은 좋은 친구들을 두었습니다.
그보다는 여자랑 술마신다고 하니 10분내로 뛰쳐나오는 슬픈 짐승들입니다..


친구들이 합류해서 남자 여섯 여자 둘 총합 여덟명의 파티가 구성되었습니다.
새해가 지났기 때문에 여자사람들도 이제 성년이 되어 술을 마실 수 있지만 젠장,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았답니다.
정말 가지가지 합니다. 몇번의 빠꾸와 뻰찌 끝에 어느 술집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술판을 벌입니다.


낯가림도 심하고 숫기도 없는 여자사람은 처음보는 남자사람의 친구들 앞에서 그저 눈만 끔뻑끔뻑 미소만 지으며
주는술을 족족 다 받아먹습니다. 아 정말 마음에 안듭니다.

여자사람은 남자사람의 친구들이 권유하는 술을 넙줍넙죽 받아먹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얼굴이 빨개지며 이미 5부 능선을 넘었습니다. 아 마음에 정말 안듭니다. 내 저럴 줄 알았습니다. 진짜 마음에 안듭니다.

도대체가 이 낯선곳에서 처음보는 남자들이 주는 술을 겁도없이 저렇게 족족받아먹는
가정교육은 도대체 어디서 받아 쳐먹었는지 하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왜 그 동안 평소에  좀 더 갈구지 못했을까 후회가 됩니다.

보디가드로 딸려온 은이에게서 여자사람을 이 낯설고 수상한 곳에서 반드시 지켜내야겠다는 의지가 전해집니다.
남자 셋과 동시에 멀티테스킹 대작을 하면서 중간중간 흑장미를 자처하면서까지 와, 정말 끄떡이 없습니다.  
이미 친구들 사이에서 '여장군' 칭호를 얻었습니다..

정말 눈물어린 우정입니다.
은이의 고군분투를 보면서 남자사람은 여자사람에 대한 더더욱 못마땅한 마음이 커져갑니다.
너 때문에 친구가 저렇게 고생합니다.
친구를 위험한곳에 이끄는 철딱서니 없는 녀석 딱지 한장이 더 붙습니다.

친구들이 남자사람과 여자사람을 엮으면서 얼레리꼴레리 식의 짖궂은 농담을 하면서 엮는데도
남자사람은 제대로 웃지도 못하고 말도 잘 않고 뭔가 뚱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있기만 합니다.

남자사람도 그의 친구들중에서도 이 멀리서온 손님들에게 마음속 티끌하나라도 해코지를 할 위인들이 아니라는걸 잘 알지만
멀리서 온 여자사람과 친구에 대한 걱정과 긴장 초조 어떻게든 무사히 아가씨들을 내일 아침 무사히 돌려보내야 한다는것
그리고 돌아가기만 하면 어떤 잔소리를 해야 다시는 이런 위험한 일을 하지 않을지 고민합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할거 없이 맘편하게 재밋게 놀고 그러면 그뿐인데 정말 쓸데없는 걱정으로 분위기를 망쳐놓는 느낌입니다..

아무튼 돌아가기만 하면 여자사람 너는 진짜 죽었습니다.
딸 가진 아빠의 마음이 정말 이런가 싶기도 합니다.

친구들은 남자사람따위는 안중에도없고 여자사람 그리고 여장군이라는 닉네임을 획득한 은이와 열심히 술을 퍼부으면서 놉니다.
친구들에게 작작좀 쳐마시라고 한소리 할까 싶기도 했지만 안그래도 뭔가 어색하고 뻘쭘한 분위기인데 그리고 얼어있는 여자애들이 혹시 불편하게 만들거 싶지 않아 그냥 가만히 냅둡니다. 조용히 혼자 술을 홀짝 홀짝 거리는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이미 반쯤  넋이나간 여자사람이 비틀비틀 하며 화장실로 갑니다.
은이가 여자사람을 부축하며 화장실로 따라갑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여자사람 둘은 테이블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걱정이된 남자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찾아갑니다. 화장실은 남녀공용으로 되어있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은이가 여자사람을 뭐라뭐라 다그치는 말이 들리기도하고
다시한번 귀를 기울여보니 여자사람은 웬일인지 화장실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립니다. 울고 있는 모양입니다.
남자사람은 말 없이 화장실 옆 칸 변기에 앉습니다.

'왜 울어 바보같이. 멍청아 울지마. 그냥 말해'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친구를 위험한곳에 끌고와서 자기가 먼저 술이 떡이된뒤에 친구에게 민폐나 끼치고
화장실에서 울기나 하면서 주사나 부리는 그런 철딱서니 없는 것 꼬리표 한장이 더 붙었습니다.
남자사람은 잔소리할게 하나 더 늘었습니다. 이걸 나중에 어떻게 갈궈야 잘 갈궜다고 소문이 날까요.

그렇게 얼마동안을 더 울고 진정이 됐는지 여자사람은 은이와함께 다시 테이블로 갑니다.
남자사람도 잠시 시간을 두고 일어나 테이블로 갑니다.
여자사람은 언제 울었냐는듯이 다시 자리에 앉아 친구들의 이야기에 말없이 눈만 끔뻑끔뻑 거리며 미소를 짓습니다.


그렇게 얼마정도를 더 마시고 택시를 타고 부천역에서 동네로 돌아왔습니다.
동네에 있는 치킨집으로 2차를 갑니다. 여장군 아니 보기다드로 온 친구는 정말 대단합니다.
이미 남자사람의 친구들 절반이상이 죽어있습니다. 은이는 끄떡 없습니다.

술이 잔뜩 들어간 여고생 두명을 어디 찜질방이나 여관방에 앉혀놓을 수는 없기에...
남자사람은 친구집으로 데려갑니다. 남자사람의 집에는 조부모님과 같이 살고 계셔 데리고 갈 수가 없습니다.

술이 반쯤 된 생전 처음 보는 여자사람 둘을 몰래 데리고 왔는데 부모님이 잠을 주무시지 않고 계십니다.
오히려 밤늦은 시간에 이 수상한 아가씨들을 친절하게 맞아주시며 오렌지쥬스와 과일까지 내주십니다.

어머님 정말 사랑합니다. 그때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요.
정말 개방적인 부모님이십니다. 그것보다는 사실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온게 처음이라 반겨주시는 거 같습니다.
그동안 남자사람과 친구들은 뭐하고 살았나 싶습니다.
얼마 살지도않았지만 아무튼 참 부질없는 청춘들 입니다.



여자사람을 친구 방에 재우고 남자사람은 5분거리에 있는 집으로 가서 뜬눈으로 밤을 새웁니다.
아침해가 밝자 술 깨는 약을 들고 친구 집으로 찾아갑니다.
친구 어머님이 끓여주시는 해장국을 먹습니다. 아 정말 눈물이 납니다. 어머님 다시한번 사랑합니다.

아직도 좀 술이 덜깬듯한 어리둥절한 아가씨들을 데리고 집에 데려다 주기위해 밖으로 나옵니다.
버스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 시간을 떼우기가 애매합니다. 집 근처 체육관으로 갑니다.

체육관 근처를 산책하다가 그냥 아예 체육관에 들어갑니다. 탁구채를 쥐어줍니다.
새벽까지 술 먹고 비리비리한 여자사람들과 탁구를 칩니다.
치는 폼이 영 맘에 안들었는지 남자사람이 뒤에서 팔을 잡아주며 자세를 가르칩니다.


남자사람은 태어나서 저렇게 탁구를 성의없는 폼을 가지고 치는 여자사람은 처음 봅니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거 같은데 이건 뭐 안쓰럽하기보다는 정말 성의없다 느낌이 듭니다
정말 저렇게 맥아리없이 탁구치는거 처음 봅니다.
운동신경 진짜 없습니다.

그렇게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한시간 가량 탁구를 치다가 시외버스를 태워 집으로 내려보냅니다.


그 날 만남에서 남자사람은 여자사람은 단 둘이서 5분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할 기회나 시간이 없었다는게 더 적절하겠네요.




6년전 일입니다.



'넌 나한테 정말 한번도 마음이 없었냐?'
'아니 한번은 있었지...'

6년이 지난뒤에야 남자사람은 왜 그때 여자사람이 화장실에서 그렇게 울고 있었는지 이유를 알수 있었습니다.

사실 어쩌면 알고있을지라도 매번 마음속에서 항상 부정했던 그렇지 않기를 바랬던  절대 물어보지도 않고 답을 구하지도 않으려던 했던
여자사람의 마음을 직접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화장실에서 울고 있었을때 옆에서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직접 여자사람을 부르고
우는것을 달래주러 갔더라면 지금 두사람의 모습은 어땠을까...

단 5분이라도 남자사람과 여자사람이 단둘이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 우리 사이는 달라질 수 있었을까.
사실 이도 저도 아니고 남자람의 환상일지도 모르는 그런 부질없는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남자사람은 여자사람의 '마음이 있었다'라는 말에 그때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굳이 남자사람은 그때의 기억을 들추어내 말을 꺼내진 않습니다.


'오빠 나 이제 졸려...'
'그래 나도 지친다. 이게 우리 뭐하는 짓이냐. 벌써 새벽 다섯시다.'

남자사람과 여자사람은 찜질방에 널부러진 시체들을 넘고 넘어 저 구석에 빈 안마의자에 앉습니다.
여자사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고개를 벽쪽으로 돌리며 금방 잠에 빠져듭니다.
일마치고 부산에서 바로 기차타고와서 제대로 먹은것도 없이 지금까지 버틴게 용합니다.


남자사람은 아침이 올때까지 여자사람의 자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이번건 좀 기네요.
이제 한편만 더 쓰면 될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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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13 10:27
수정 아이콘
아... 너무 슬프잖아요.
10/10/13 11:04
수정 아이콘
싸한 박하젤리를 입안에 넣은 기분입니다.
한번쯤은 느껴봤을법한 그런 이야기가 아릿하니 옛 생각도 나고 묘한 기분이네요.

남자사람은 아침이 올때까지 여자사람의 자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아련하네요...
문정동김씨
10/10/13 11:40
수정 아이콘
마지막 문장 좋네요 [m]
허가윤
10/10/13 11:47
수정 아이콘
3부 읽을려고 들어왔는데 4부!!!!!!
왜자꾸시비네
10/10/13 12:05
수정 아이콘
순순히 역성지를 쏴준다면 추천0은 없을 것입니다
10/10/13 12:18
수정 아이콘
가지말아요 날 두고 떠나면 안되요..
가지말아요 날 두고 떠나면 안되요...

끝내 전하지 못한 말...

-이적 4집 수록곡. 끝내 전하지 못한 말.
10/10/13 15:01
수정 아이콘
아... 읽는 제가 다 안타깝네요..ㅜ..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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