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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8/11 22:57:45
Name 王天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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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프로이드가 보지 못해 애석할 영화 - 인셉션


상당히 뒤늦은 글인것 같긴 합니다만 그래도 혼자서 곱씹고 있자니 아쉬워서 글을 남기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결말이라거나 영화 중간중간의 의문점을 이미 토론하신걸로 알고 있으니 전 다른 부분으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http://shougeki.egloos.com/2651159 ㅡ>거의 어지간한 궁금증은 다 풀수 있는 인셉션 관련 블로그입니다.
사실 어지간한 떡밥은 이미 놀란 감독의 치밀한 구성 아래에서 거의 다 해결 가능한 것으로 결론이 나고 있습니다.

판타지의 역사는 인간이 상상력을 어디에 집중하고 어떻게 표현했는가로 나타난다. 처음에는 용과 요정에, 다음에는 신과 악마에, 그리고 과학과 이성이 나타나면서 인간 자체에, 인간의 감정과 욕망에 주시되던 인간의 상상은 프로이드의 심리학이 나타난 후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인간의 내부로 향한다. 그 주제를 볼 때 인셉션은 인간의 상상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발전한 단계의 판타지이자 텍스트이다.

Sf의 역사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모두를 충격에 빠트린 매트릭스도 인간의 무의식을 이렇게 깊이 다루지는 못했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에 대한 무의식적인 맹목적 믿음에 의심을 제기한 것은 꽤나 진보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 깊은 곳의 무의식을 이렇게 정면으로 돌파했던 것은 아니다. 매트릭스의 지배를 깨어난 이 순간부터 영화는 철저히 의식의 영역만을 다룬다. 어떻게 의식하고 무엇을 의식하느냐. 그렇기에 인셉션은 매트릭스보다도 오히려 인간의 상상력의 범주에서는 더욱 더 깊은 곳에 들어가있는 영화이다. 인간을 둘러싼 외부에서 인간의 내부로 차츰 발길을 돌려온 인간의 상상의 지도를 따르면 말이다.

왜 이것이 그토록 대단한 것일까, 누군가가 가짜 멜론을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치자. 이 가짜 멜론은 가짜인 것이 들통나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가짜멜론을 진짜 멜론으로 어떻게 속일 수 있을까. 기존의 텍스트들은 멜론을 주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태도, 혹은 가짜멜론을 꽁꽁 싸매는 두꺼운 포장, 진짜 멜론 속에 숨겨서 주거나 진짜 멜론과 거의 차이가 안날만큼 비슷한 생김새 등을 구현하는데 주목한다. 그리고 매트릭스는 기존의 방법들과는 그 방식이나 궤를 달리한다. 저게 왜 가짜멜론이야? 가짜가 가짜가 아니게 하면되지 하고 세상에서 진짜 멜론을 전부 다 가짜 멜론으로 바꿔치기 해버린다. 현존하는 것은 가짜멜론 뿐이다. 진짜 멜론이 없다. 그럼 이 멜론은 그때도 가짜일까? 가짜는 진짜가 있을 때 가짜다. 진짜가 없는 가짜는 가짜가 되지 않는다.

사실 가짜 멜론을 전달하는 이 방법이 매트릭스가 최초는 아니다. 그럼에도 현란한 카메라 워킹과 기가 막힌 액션을 양념으로 해 이 고전적인 인식론을 잘 버무린 솜씨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이 이상의 영화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자, 다시 보자. 결국 매트릭스에서 모두가 다 속은 건 분명히 아니다. 가짜뿐인 세상에서도 의심할 놈은 의심하고 알아차리는 놈은 알아차린다. 멜론을 어떻게 해본들 멜론에 대한 의심은 멈출 수가 없었다. 인셉션은 그래서 대단하다. 멜론을 가짜멜론이라고 의심할 여지를 직접 뺏어버린다. 현실은 가만히 내버려두고 그 사람의 ‘의심’ 자체를 건드리는 거다. 마치 수술하듯이 사람의 머릿속에서 직접 ‘의심’을 제거해버린다. 모두가 멜론을 고민하고 있을 때 크리스토퍼 놀란은 ‘의심’ 자체를 고민했다. 의심의 가능성을 축소시키지 않고 의심 자체를 인멸해버렸다. 아니 어떻게 의심을 안하냐고 묻는 사람들은 인셉션의 피셔를 보라. 그가 의심하고 고민하는 것은 머릿속에서 진작 끝나버렸다. 그 이유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코브가, 아서가, 임스가 어떻게 의심을 제거해버리고 믿게 했는지. 그것은 의식을 뛰어넘는 단계 '무의식'에서 이루어진다.

왜?? 라는 이유의 답은 어디가 근원이고 본질일까. 우리는 어째서 밥을 먹고 비행기를 타며 아버지가 물려준 회사를 내 식대로 쪼개서 운영하고 싶어지는 것일까. 아무 이유 없이 당연한 것, 좋기에 하고 싶은 것,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는 것, 이성과 논리의 견고한 건축물부터 어쩐지 그냥 – 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비논리와 비이성의 기괴한 조각들까지 모두 ‘무의식’이라는 땅 위에 서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인간의 모든 사고는, 인간의 존재 자체는 그 본질을 거슬러 올라가면 ‘무의식’에 도달한다. 결국, 모든 것의 본질은 무의식으로 회귀한다. 왜?? 라는 답에 더 이상 왜?? 를 덧붙일 수 없는 가장 밑바닥. 그것이 무의식이다. 그리고 인셉션은 이 무의식을 아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어디에선가 갑작스레 튀어나온 기차도, 갑자기 자신을 쳐다보는 저 행인도, 총구를 겨누고 있는 저 보디가드도, 지금 타고 달리는 자동차까지도 그 모든 것이 다 무의식의 세계 안에 포함된다.무의식 속에 숨어있던 죄책감이 미안한 대상으로 실체화해 행위를 방해한다.  꿈, 즉 무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들과 싸우고 무의식의 금고를 열게 하며 그 안의 무의식을 꺼내게 한다. 이 일련의 행동이 거짓말로 작용하기 위해 어찌나 심오하게 무의식을 주무르는지 눈여겨볼만 하다. 아무 의미 없는 여섯 자리 숫자를 말하게 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 숫자를 전화번호라고 보여준다. 들어간 방은 앞서 말한 숫자가 방의 번호를 나타내고 있다. 외우거나 집중시킬 필요도 없이 슬쩍슬쩍 흘릴 뿐이다. 그러나 어느새 의식하고 있다. 무의식에는 그 숫자가 새겨져있기 때문에. 그 여섯 자리 숫자는 진짜 비밀번호도 아니고 외운 적도 없으며 무슨 의미를 띄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금고는 어디선가 본 듯한 그 번호를 입력시키자 원래 그랬던 것인냥 잠겨있던 문이 열린다. 무의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토록 쉽고 그럴싸하게 보자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 어떤 현명한 철학자라도 가히 두려움에 떨만한 작전이다.(데카르트조차도 꿈속의 꿈속의 꿈에서 엉뚱한 숫자를 말하는 순간 현실에 대한 의심, 자아에 대한 인식은 멈추고 말았을 것이다)

Inception, 발단 혹은 개시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가 어째서 영화의 제목인 것일까. 인간이라는 존재의 inception은 무의식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inception은 무의식의 최심층, 림보를 보여주는 씬이다. 보통 한 인간의 행동을 유인할 때 쓰는 것은 도달해야 하는, 피해야 하는 어떤 결과이다. 그러나 코브 일행이 피셔의 행동을 유인하기 위해 조작한 부분은 어디인가? 바로 피셔의 행동이 출발하는 부분, inception이다. 의식하기 전, 의도하기 전, 결심하기 전, 인간 모든 행위의 진짜 ‘시작’을 다루기에 인셉션은 어떤 영화보다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우리의 시작은 어디인가. 당신이 시작이라고 의식하는 그것이 진정한 출발점인가.

인셉션은 끝나고 난 후에도 오히려 수많은 이야기의 inception으로 작용한다. 이는 필시 그 스토리가 퍼즐 구조로 되있는 것도 있겠지만 이이야기가 우리 모두의inception인 무의식을 다루고 있는 부분도 클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헤매고 있는 내가 사유하는 이 공간은 그 어떤 답도, 헤매는 나를 데려갈 이도 없는 림보가 아닐까. 걱정이다. 극장을 나선 순간부터 내 금고에는 이미 팽이가 멈추지 않고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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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루뽀롱
10/08/11 23:02
수정 아이콘
프로이드는 이해 못할겁니다. 리비도에 관한건 전혀 안나오니깐요. 프로이드는 엉큼쟁이~

농담이구요. 글 잘읽었습니다 ^^
아우쿠소
10/08/11 23:09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인셉션을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건 하루끼의 일각수의 꿈입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때 봤던 책들중에서 저에게 가장 충격을 주었던 책이 일각수의 꿈이였습니다.
세계의 끝(주인공의 내면) 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현실세계)란 장이 교차되면서 마지막에 겹쳐짐을 보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줬거든요...

이와는 별개로 영화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 점점 표현할수 있는 한계가 넓어져 가면서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좋은 것 같습니다.

10년전 20년전의 SF 영화들과 요즘 SF 영화들을 보면 표현력의 발전이 정말 상상을 초월해서요...

과연 다음에는 어디까지 관객들을 속여줄까 하는 물음에 영화를 보는 재미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게에 있는 2011년 개봉영화 list 를 보면서 흐믓해 하기도 했구요..

개인적으로 인셉션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일반영화관에서 보고 아쉬움에 용산 CGV IMAX 에서 재관람 했구요..
재관람때가 조금더 재미있었네요..

아직 인셉션 보지않으신분들 가서 보셔도 좋을듯 합니다.

PS 액션을 기대하고 가시면 실망하실수도 있습니다.(액션은 양념일뿐)
10/08/11 23:13
수정 아이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꿈 중심으로 발전시킨것이 드림테라피입니다.
한국 일부와 외국에서는 정신과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지요
인셉션은 드림테라피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인셉션에 나오는 숫자등 무의식의 상징들은 드림테라피의 드림 인터프린터에서 이미 사용하던 기법들이고요^^
프로이트가 인셉션을 본다면 애석하다기보다 감개무량해할 듯 하네요
10/08/11 23:21
수정 아이콘
王天君님// 네 그거 맞습니다
사실 꿈의 상징들은 개인의 내적 체험에 따라서 달라지게 됩니다.
어떤사람한테는 권총이 남성의 상징이고 어떤사람한테는 폭력의 상징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제대로 하면 이걸 분석하는게 드림인터프린터이고요
그런데 또 권총은 남성의 상징! 이렇게 전제를 깔고가면 다음꿈부터는 남성의 상징이 권총으로 나옵니다^^
미국계열로 최신버전을 배우긴 배웠는데 너무 오래걸려서 사용하지 않는다는..(보통 드림테라피는 2년간 진행합니다)
두부종
10/08/11 23:56
수정 아이콘
저 영화 정말 재밌게 봤어요!!! 철학 심리학 얘긴 못할 것 같고 심지어 제 친구는 블레이드 러너나 가타카보다 재밌게 본 싸이파이라더군요(이건 논란이 있으려나). 제가 볼 때는 정말 취향을 넘어선 작품인 줄 알고 봤는데... 인터넷 오니까 별로 재미 없단 사람들도 많고... 그냥 그랬어요!
10/08/12 00:23
수정 아이콘
철학은 제 분야가 아니라서 뭐라 말할 수가 없지만, 멀티 엔딩 중 어느것을 선택하더라도 스토리 전개에 헛점이 없는 그 치밀한 구성은 진짜 대단하더군요. 머리가 얼마나 좋으면 저정도 구성이 가능한 것인지, 메멘토때도 느꼈지만 놀란 감독은 진짜 천재인 듯합니다.
개념less
10/08/12 00:56
수정 아이콘
참고로 528491 은 소수입니다.
개념less
10/08/12 01:30
수정 아이콘
글쎄요; 임의의 6자리 숫자를 골랐다고 했을 때 그 숫자가 소수일 확률은 7.67 % 정도 되는 군요.

제한 조건을 더 가한다면 ( 보통 비밀번호는 서로 다른 숫자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니까 피셔가 내놓을 수 있는 숫자가 제한적이라고 볼 수 있죠.) 확률이 올라갈 수는 있지만 이것도 의도한 게 아닐까 싶네요.
Crescent
10/08/12 01:34
수정 아이콘
전 이제서야 조조로 어제 보고왔습니다. 그동안 인셉션이 많이 거론되서 대충 주제는 알았습니다만 그것과는 무관하게 재미있더군요.
뭔가 이해가 안가는분이 있어서 다시 한번 보고싶은 생각이 있긴합니다만(피셔의 자의식인데 왜 맬이 나오지? 코브의 자의식이 영향을 미친다면 왜 다른 사람의 자의식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거야? 하는 생각말이죠.)

무튼 영화가 끝나고 나서 드는 생각은 저는 프로이드가 아니라 장자였습니다. 장자지몽 혹은 호접지몽말이지요.
뭐가 현실이고? 뭐가 꿈이지? 내가 지금 말하는 게 누구지? 저 사람은 내 꿈인가? 아니면 진짜 다른 의식체인가? 내가 나비 꿈을 꾼것인가?
나비가 인간이 되는 꿈을 꾼것인가?
뭔가 매트릭스보다 논의되는 철학적 수준이 높아진거 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그런데 딱 팽이가 쓰러질까 계속돌까 하는 찰라에 영화를 끝내는 센스란..결말이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을 영화같습니다.
두부종
10/08/12 01:40
수정 아이콘
우와... 계산까지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건 정말 감독 및 제작진들이 뛰어난 거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이런거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멋집니다.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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