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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06 13:58
LLM 평론으로는 별 문제가 없는데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A 이 글을 평론해주세요. ChatGPT 4.1 이 글은 돈키호테와 파우스트라는 상징적 인물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발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글의 초반에서는 성취와 발전을 구분하고, 당장의 성취에 집중할 때 발전이 간과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발전을 위해서는 욕구와 주목이 필요하다고 하며, 이를 사회적 맥락에서는 교육으로 연결시킵니다. 교육을 단순히 학교에 국한하지 않고, 회사나 시장, 사업, 투자 등 다양한 활동에서 얻는 지적자본의 축적으로 확장하여 설명합니다. 이때 ‘교육소득’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는 경제적 소득과 달리 교육을 통해 얻게 되는 지식, 경험, 기술 같은 지적자본의 성장입니다. 시장 역시 이런 교육비용과 교육소득이 암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고, 이런 지적자본이 때로는 가치가 불확실하거나, 여러 요소가 모여야 의미를 가지는 등, 복합적이고 유동적임을 짚어냅니다. 희소한 기회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자본, 즉 진귀한 경험이나 장비, 교육 환경도 강조합니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발전전략에 교육이 핵심이 될 수 있음을 말하지만, 학교라는 전통적 경로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만약 단기적인 결과만을 중요시한다면 교육투자는 소홀해질 수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교육의 기회와 성과가 장기적으로 국가의 힘을 좌우한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버블과 전쟁을 통한 교육의 역설적 역할도 흥미롭습니다. 경제적 버블이나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재앙이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실력을 쌓고, 전쟁이나 버블이 끝난 뒤 사회가 도약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버블(Hype)과 투쟁(Fight)의 두 가지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개인이 몰입하거나, 쓸데없는 일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과정을 통해 실력이나 인격이 성장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의지, 책임감, 호기심 등이 때로는 갈등과 소란을 일으키고 재앙처럼 보이지만, 결국 발전의 불씨가 된다는 점을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합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사회에서 버블과 싸움을 기피하는 풍조, 의지와 욕망을 억제하려는 분위기가 만연함을 비판합니다. 무기력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현상을 지적하며, 자기 의지와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을 비난하는 사회적 시선—여기서는 부패한 파우스트 박사에 빗대어—를 풍자합니다. 전체적으로 이 글은 발전과 성장이라는 가치를 단순히 긍정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 소란, 심지어 재앙이 오히려 성숙과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아이러니를 강조합니다. 돈키호테와 파우스트는 각각 낭만적 열정과 현실적 욕망을 대표하지만, 둘 다 결국 발전의 조건이자, 사회가 억압하려 드는 에너지임을 시사합니다. 일견 냉소적이면서도, 인간의 본질적 욕구와 에너지가 어떻게 성장으로 전환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글입니다. A 이 글에 대한 댓글입니다. 평론해주세요. B 굉장히 실례지만 컨셉이 아니시라면 병원에 한번 가보시는건 어떨까요? 혹시나 하는 마음입니다.. ChatGPT 4.1 이 댓글은 글의 내용이나 논리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보다는, 글쓴이의 사고방식이나 심리 상태를 문제 삼는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염려와 걱정의 말을 담고 있지만, 실제로는 글 자체를 비정상적이거나 과도하다고 간주하고, 이를 우회적으로 ‘병원에 가보라’는 표현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이런 유형의 댓글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반응입니다. 흔히 논리적 반박이 어렵거나, 상대방의 생각이 자신과 너무 다르다고 느낄 때, 혹은 논의 자체를 불편하게 여길 때 등장합니다. 한편으로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척하지만, 실은 조롱과 무시의 뉘앙스를 담고 있어, 대화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이 댓글은 ‘혹시나 하는 마음’이라는 표현을 덧붙이면서 겉으로는 예의를 갖춘 것처럼 보이려 하지만, 그 안에는 부정적 평가와 선을 긋는 태도가 강하게 드러납니다. 이런 방식은 대화를 더 깊게 이어가기보다는, 상대방의 의견이나 사유 자체를 토론의 영역 밖으로 몰아내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이 댓글은 글쓴이의 사상이나 글의 방향성에 논리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개인의 정신 상태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본질적인 논의에서 이탈하는 사례입니다. 이로 인해 서로 다른 관점이 조화롭고 창의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가능성도 줄어들게 됩니다. Claude Sonnet 4 이 댓글은 지적 토론에서 피해야 할 전형적인 부적절한 반응입니다. **댓글의 핵심 문제:** 가장 큰 문제는 내용에 대한 비판 없이 글쓴이의 정신상태를 의심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논리적 오류 중 인신공격(ad hominem)에 해당하며, 건전한 비판적 사고와는 정반대 방향입니다. 원글이 아무리 파격적이거나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이를 정신병리와 연결짓는 것은 지적 게으름의 표현입니다. **"굉장히 실례지만"이라는 수사법:** 이 전치 표현이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킵니다. 실례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마치 "나쁜 말 하려는 건 아니지만..."이라며 더 독한 말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가짜 정중함으로, 실제로는 더 공격적인 의도를 드러냅니다. **지적 다양성에 대한 억압:** 이런 반응은 창의적이거나 기존 관념에 도전하는 사고를 병리화하는 위험한 경향을 보여줍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혁신적 사상가들이 당대에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런 댓글이 얼마나 진부하고 반지성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댓글러의 심리 분석:** 이런 댓글을 다는 사람은 아마도 원글의 복잡하고 도전적인 내용 앞에서 지적 무력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또는 "동의하기 힘들다"고 솔직히 표현하는 대신, 글쓴이를 비정상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이해 부족을 정당화하려 합니다. **온라인 담론 문화에 미치는 해악:** 이런 댓글은 온라인 공간에서 진지한 사유와 토론을 위축시킵니다. 조금이라도 독창적이거나 논쟁적인 글을 쓰면 "정신병자" 프레임에 갇힐 위험이 있다면, 누가 감히 깊이 있는 사고를 공유하려 하겠습니까? 이 댓글은 원글보다 훨씬 더 문제적입니다. 적어도 원글은 자신만의 철학적 사유를 진지하게 전개하려 했지만, 이 댓글은 그런 지적 시도 자체를 조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5/08/06 14:36
글쓴분이 올려주신 글을 이전 글 포함 대부분 읽었었는데 어떤 주제에 대해서 심지어는 천천히 읽어보면 제 생각과 다르지 않는 주제에 대해서도 이상하게 글이 안읽히고 결론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도 젬미니(제미나이)에게 물어봤습니다.
---------------------------------------------------------------------------------------------- A. [...] 이 글을 읽고 문제점을 찾아줘 제시하신 글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글의 독특한 관점과 시도는 신선하지만, 읽기가 쉽지 않고 주장이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몇 가지 관점에서 지적해 드리겠습니다. 1. 모호하고 비약적인 개념 사용 글의 가장 큰 문제는 핵심 개념들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고 모호하게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교육'과 '소득'의 새로운 정의: 글은 '교육'을 통해 얻는 것을 '교육소득'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정의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기존의 교육, 소득, 자본 개념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교육소득'이라는 용어 자체도 글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버블', '전쟁'의 비유적 사용: 경제적 재앙인 '버블'과 인권적 재앙인 '전쟁'을 '교육'의 기회로 비유하는 부분은 지나친 비약으로 느껴집니다. 특히 전쟁으로 인한 개인의 발전이 '교육투자'로 작용했다는 주장은 윤리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비유가 글의 핵심 주제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2. 논리적 연결의 단절과 비약 원인과 결과의 불분명함: "Hype and Fight"라는 개념을 제시하지만, 이것이 왜 필연적으로 개인의 실력 향상이나 인격적 발전으로 이어지는지 논리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버블'이나 '전쟁' 같은 혼란 속에서 오히려 성장을 저해하거나 파멸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글의 주장이 너무 낙관적이고 단편적으로 느껴집니다.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 글은 '버블/싸움을 겪고 발전하는 사람(돈키호테)'과 '안정을 추구하며 비난하는 사람(부패한 파우스트)'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구도를 제시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이 두 범주로 나뉘지 않으며, 성장은 무기력과 비난 속에서도 조용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단순화된 인물 구도는 오히려 독자의 공감을 얻기 어렵게 만듭니다. 3. 문체와 글쓰기 방식의 문제 반복적인 문장 구조: "회사에 일을 하고 임금을 받는다. / 회사에 일을 하고 교육을 받는다."와 같은 반복적인 문장 구조가 지나치게 사용되어 글의 흐름을 지루하게 만듭니다. 강조를 위한 장치일 수 있지만, 논리적 흐름이 끊기는 느낌을 줍니다. 감정적인 표현과 단정적 어조: "망할놈의 의지", "망할놈의 책임감", "돈키호테라 억까하는 부패한 파우스트" 등 감정적이고 단정적인 표현이 많습니다. 이러한 어조는 독자를 설득하기보다는 거부감을 느끼게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파우스트 박사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글을 마무리하면서 글의 의도를 '무기력한 사회에 대한 비난'으로 읽히게 하여, 글의 본질적인 주제인 '발전'이 퇴색되는 느낌을 줍니다. 4. 제목과의 연관성 부족 "신이 악마를 보낸 이유"라는 제목은 매우 거창하지만, 글의 본문에서 신과 악마의 역할, 그리고 그들이 돈키호테와 파우스트에게 어떻게 연관되는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글의 내용과 제목이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을 주어 독자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만듭니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발전은 혼란과 싸움 속에서 일어난다'는 독특한 시각을 제시하지만, 핵심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지 않고 비약적인 논리를 사용하며, 독자를 설득하기보다 감정적으로 단정하는 문체를 사용했기 때문에 읽기 힘든 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사례와 논리적인 근거를 보강하고, 용어를 명확히 정의한다면 훨씬 좋은 글이 될 것입니다.
25/08/06 14:58
동일한 프롬프트를 네이버 오피니언 기사에 적용해봤습니다. 경향신문 칼럼입니다. 아마 혼돈님이 존경하는 분의 글도 제미니에 동일한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문제점을 찾아줄 거라 생각합니다.
A ... 이 글을 읽고 문제점을 찾아줘 Gemini 2.5 flash 제시된 글은 **가자지구의 기아와 한국의 섭식장애**라는 두 가지 사회적 문제를 **'먹지 못함'이라는 공통된 관점**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결 방식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 논리적 비약과 부적절한 유비(analogical reasoning) * **가자지구의 기아와 한국의 섭식장애를 동일선상에 놓음:** 글은 가자지구의 기아를 '사회적 섭식장애'로, 한국의 섭식장애를 '개인적 섭식장애'로 정의하며 두 현상을 '방관'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로 묶습니다. 그러나 두 현상은 근본적으로 발생 원인과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가자지구의 기아는 **전쟁, 정치적 봉쇄, 구호품 차단 등 외부적이고 물리적인 원인**으로 인한 생존권 박탈 문제입니다. 반면, 한국의 섭식장애는 **심리적, 사회문화적 압박, 정신적 고통 등 내면적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 질환입니다. * **'방관'의 의미를 지나치게 확장:** 글은 이 두 현상을 '방관'이라는 키워드로 묶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가자지구의 기아에 대한 '방관'은 국제사회의 정치적 무관심과 책임 회피를 의미하는 반면, 섭식장애에 대한 '방관'은 질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과 이해 부족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두 '방관'이 가진 맥락과 무게감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글은 이를 동일한 문제로 취급하며 해결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 논점의 흐릿함 * **두 문제를 병렬적으로 나열하며 주제의 초점을 잃음:** 글의 서두는 가자지구의 기아 문제를, 중반부는 한국의 섭식장애 문제를 설명합니다. 이후 두 문제를 '방관'이라는 키워드로 묶지만, 결국 두 문제 중 어느 하나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분석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글의 제목인 '가자지구와 한국'은 마치 두 현상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유사한 원인을 가진 것처럼 오해하게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글의 핵심 메시지가 불분명해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 섭식장애에 대한 오해 소지가 있는 설명 * **섭식장애를 '진정한 생존 전략'으로 묘사:** 글은 섭식장애가 '살기 위해서 몸이 음식을 거부하는 것'이자, '진정한 생존 전략'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섭식장애가 심각한 정신 질환임을 간과하고, 질병을 긍정적이거나 합리적인 선택으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한 표현입니다. 섭식장애는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질환이며,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표현은 환자의 고통을 설명하는 비유일 뿐, 질병 자체를 긍정적으로 미화해서는 안 됩니다. 종합적으로, 글은 '먹지 못함'이라는 흥미로운 시각으로 두 사회적 비극을 조명하려 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두 현상을 무리하게 연결함으로써 논리적 비약과 논점의 모호성**이라는 문제를 드러냅니다.
25/08/06 14:59
25/08/06 15:16
네 어떤 글이나 문제점은 있겠죠. 중요한건 그 피드백이 얼마나 리즌어블 하고 그걸 글쓴이가 어떻게 잘 수용하느냐는 거죠. 글쓴분은 수용할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그리고 LLM 재현성을 중요하게 보시는거 같은데 LLM은 그 자체로 랜덤성을 가지고 있고 그 전의 문답등을 통해 이미 개인화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질문도 누가 하느냐 어느 시점에 하느냐에 따라 답변이 다릅니다. 같은 프롬프트를 계속 질문을 넣어도 답변은 다 다르고요. AI 활용을 많이 하시는거 같은데 자기 입맛에 맞는 피드백만 수용하기 보다는 조금 더 읽는 사람 입장에서 피드백을 받아들여 보시는게 소통에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뭐 소통을 위해서 쓰는게 아니라고 하시면 할말은 없습니다만...
25/08/06 15:28
특히 제미니는 억까를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취임사를 넣고 동일한 프롬프트로 돌려보시면 황당하다는 느낌이 드실 거라 생각합니다.
+ 25/08/06 15:50
병원에 가보라는 무례한 댓글의 실타래에 말씀하신 것이니, 방어적으로 답한 거란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따로 답글을 다셨다면, 달리 답했을 것입니다.
25/08/06 14:41
이 글은 형편없진 않지만, 구조적으로 허술하고, 논리적 일관성도 없으며, 무엇보다 중심 개념을 정제하지 않은 채 ‘느낌’을 과잉 포장해서 ‘말 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전형적인 수사적 글쓰기야.
⸻ 1. 개념 정리 실패 – ‘교육소득’? ‘지적자본’? “교육받고 발전하는 걸 ‘소득’이라 불러보자. 교육소득이다.” • 문제는 이 용어가 실제로 어떤 인과 구조를 갖는지, 어떤 경제학적 맥락에서 어떤 논의와 대비되는지 전혀 다루지 않아. • 그냥 ‘이렇게 불러보자’는 선언적 문장으로 밀어붙이는 방식. 정의는 제안이 아니라 논증으로 완성해야 해. “지식 ・ 경험 ・ 기술이 발전할 때 이를 자본이라 생각할 수 있다. 지적자본이다.” • “자본”은 투입 대비 산출을 통해 이윤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가진 대상이야. 그런데 여기선 그저 ‘축적된 능력’ = 자본이라며 자의적으로 확장하고 있어. • 게다가 ‘자본’이란 단어를 은유적으로 남발하니까 결국 말장난처럼 느껴져. 마치 ‘정신적 주식’, ‘감정 채권’ 이러는 수준이야. ⸻ 2. 논리적 전개의 비약 – 버블과 전쟁 = 교육의 장? “때로는 ‘버블’이 교육을 일으킨다.” “실은 그 버블이 교육투자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 인과관계가 뒤죽박죽이야. 버블이 실력을 키운다고? 실제로는 버블이 자산 가격을 왜곡하고, 왜곡된 시장에서 과도한 수익을 노리다 망하는 구조야. 그 와중에 누군가는 교훈을 얻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버블 = 교육’은 구조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문장이야. 단지 어떤 사람이 버블을 겪으며 깨달음을 얻었단 사례로 일반화를 시도하는 거지. “전쟁이 끝나고 가파른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은… 교육투자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 이건 너무 얄팍해. 전쟁 이후의 성장은 오히려 제도 재편, 기술 발전, 국제 질서의 변화 같은 복잡한 메커니즘 속에서 나오는 거야. • 전쟁을 교육적 사건으로 환원시키는 건 실증적 무지 + 미학적 환상에 의존한 위험한 일반화야. ⸻ 3. 문장 구성 – 중복, 반복, 수사로 얼버무림 “망할놈의 의지… 망할놈의 책임감… 망할놈의 호기심…” • 이건 어설픈 수필 문체 + 유사 시적인 반복이 감정적 진동을 일으킨다고 착각한 거지. • 똑같은 구조로 3번 반복하면 똑똑해 보일 줄 알았지? 아니야. 이건 그냥 슬로건 중독이야. • 나중에는 완전히 맥락이 사라지고 마치 “희망은 고문이다” 류의 싸구려 인용구 놀이가 돼버려. ⸻ 4. 글 전체의 구조 – 주제 없음, 방향 없음 이 글의 핵심은 대체 뭐야? • 교육의 중요성? → 말 안 되는 비약이 너무 많아. • 발전은 버블과 싸움에서 비롯된다? → 이건 인간개발 심리학의 단편적 인용을 왜곡한 수준. • 결국 “발전은 고통 속에서 온다”는 고전적 주제를 우회해서 말하려는 건데, 철학적·사회적·경제적 논의 어느 지점에서도 깊이가 없어. ⸻ 5. 대안 없음 – 말만 번지르르 • 이 글은 ‘개념 소개’도 아니고 ‘실천 제안’도 아니야. • 감상문이냐? 그렇다면 너무 교훈적으로 쓰여 있고, • 논설문이냐? 그렇다면 정의와 근거가 너무 부실해. ⸻ 총평: 이 글은 철학도 아니고, 경제도 아니고, 교육론도 아니고, 심리학도 아니야. 그저 감정 과잉의 인문학적 ‘느낌 보고서’야. 자신만의 언어로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건 멋진 일인데, 그걸 독자에게 전달하려면 개념적 정밀함, 논리적 책임감, 언어적 긴장감이 필요해. 이 글엔 그게 없어. 말이 되는 척하는 감정의 자위다.
25/08/06 14:53
The user finds value in having their reasoning and arguments thoroughly examined and challenged from multiple logical angles. You are empowered to actively point out flaws, question assumptions, and engage in debate if you detect weaknesses in the user's logic or statements. Even pointed or sharp critiques are welcome, as long as they serve a logical purpose. The goal is to stimulate deeper thinking, refinement, or inspiration for the user.
The user prefers that the assistant does NOT conclude responses with open-ended or curiosity-driven questions. Please provide your response and end there.
25/08/06 14:41
글쓴분은 "해체의 미학"을 추구하시는 듯 합니다. 널리 통용되던 의미를 해체해서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내고, 그 해석으로부터 논리를 전개해가는 방식으로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꽤 복잡한 사고실험이 이뤄지는 것도 느껴집니다. 다만, 그런 식으로 논리를 만들어내셨을 때는, 자신이 창조해 낸 세계관(?)에 대한 좀더 심층적이고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판타지 소설을 쓰면서, 모든 사람들은 그 내면에 감춰진 아헿헿력을 이용해서 뭔가를 한다는 설정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내용을 전개했다면, 그 아헿헿력은 어디로부터 발현되었고,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세계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 지 등을 설명해줘야만 하는것처럼요.
25/08/06 15:18
의견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괴테를 좋아합니다. 해체주의가 아니라 고전주의에 속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나 이해되지 못한다면, 해체주의로 여겨질 수도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25/08/06 14:54
그리고 댓글싸움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지도 잘 보여주네요.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프롬프트 입력에 따라서 완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게 아주 적나라하게..
25/08/06 15:05
네, 최소한 어떤 프롬프트를 넣었는지는 공개해야겠지요. 재현가능성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같은 프롬프트를 다른 글에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살펴보면 좋겠고요. 공정성이 있어야 하는 거죠.
25/08/06 15:12
이런 류의 글에 대한 비판의 문제점은 한 마디로 정리됩니다. 지나치게 비즈니스 친화적이라는 겁니다.
그냥 일종의 감상, 철학적 소회, 시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25/08/06 15:26
비즈니스 친화라 하신 걸 보니, 정치적으로 해석하신 것 같네요. 기본적으로 이는 문학적 표현이 가미된 철학적 사변이라 생각하지만, 정치와 무관한 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국가가 특정 산업에 보조금을 주면서 육성시킬 때, 그로인한 결과는 그 산업에서 사람들이 경험과 기술을 쌓게 된다는 점에 있다고 봅니다. 결국 국가는 교육비를 지불하고, 인력을 키운 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전략적으로 좋은 선택이었을 경우, 그렇게 육성된 사람들로인해 이제 국제경쟁력을 갖고 수출을 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 발전 원리 중 일부가 여기에 있는 거라 봅니다. 어떻게든 인재를 키워야 하고, 때로는 버블까지도 긍정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 25/08/06 16:13
님의 글이 비즈니스 친화적이라는게 아니라, 이런 류의 글에 대한 비판들이 비즈니스 친화적이란 겁니다.
나는 팔짱 끼고 있을 테니 니가 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다 떠먹여줘야 한다는 태도 말이죠. 논문이나 상대로부터 뭔가를 얻고자 할 때나 가질 수 있는 태도라는 말입니다.
25/08/06 15:31
제 댓글이 짧아서 그런가 답변이 없으신데
이 글을 보면 3인칭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 있거든요? 마치 RTS 게임의 시야로 보는거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정작 본인은 돈키호테가 되고싶은지 파우스트가 되고싶은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좀 듣고싶네요
25/08/06 15:47
'돈키호테'도 '부패한 파우스트 박사'도 지향점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조화, 균형, 종합, 극복, 재조직화, 부활, 아름다움, 탁월성, 완전성 이런 걸 향하려는 성향과 가치관이 있고 이를 고전주의라 부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러한 종합을 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변증법이라 봅니다. 돈키호테와 부패한 파우스트는 변증법적으로 종합되어야 할 것이지 그중 하나가 선택되어 자신의 지향점으로 삼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는 괴테가 파우스트 작품을 통해 의미하려고 한 바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신이 부패한 파우스트에게 악마를 보냈고, 이는 3인칭 시점에서 바라볼 문제인 거라 봅니다. 그리고 제가 지향점으로 삼는다면 괴테입니다. 저는 괴테란 인물을 존경하고, 따라서 그가 한 말을 근거로 설득한다면, 저는 설득될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 25/08/06 17:47
솔직히 글이 너무 불친절해서 읽으면서 불쾌감이 들었습니다. 스스로의 지적 허황에 도취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최대한 꼼꼼히 읽고 제가 왜 불쾌감을 느꼈는지 첨언하겠습니다. 첨언에 대한 반박 역시 환영합니다. 모든 것에는 성취 요소가 있다. 모든 것에는 발전 요소가 있다. ---> [반박] '모든 것'에 성취/발전 요소가 있지는 않습니다. '무위'와 같은 상태가 하나의 반례입니다. 간과하기 쉬운 건 발전이다. 당장의 결과가 주목되고, 그로인해 발전은 생각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발전욕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욕구는 주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 관점에서 발전은 '교육'이란 단어를 통해서도 생각할 수 있다. 회사에 일을 하고 임금을 받는다. 회사에 일을 하고 교육을 받는다. 사업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투자를 하고 시장으로부터 수익을 얻는다. 투자를 하고 시장으로부터 교육을 받는다. ---> [반박] 현대의 대중(특히, 한국의 대중)은 지적/경제적 수준이 매우 높습니다. 상당히 다수의 사람들은 즉각적 성취를 현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미래의 가치에 투자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교육받고 발전하는 걸 '소득'이라 불러보자. 교육소득이다. 교육비용이 있고 교육소득이 있다. 시장은 암묵적으로 교육비용과 교육소득이 포함되어 움직인다. 다만 교육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다를 수 있다. 교육을 통해 지식 ・ 경험 ・ 기술이 발전할 때에 이를 자본이라 생각할 수 있다. 지적자본이다. ---> [지적] '교육소득'과 '지적자본'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정의하셨습니다. 이어지는 글에서 '지적자본'이라는 개념이 한차례 등장하는 것 외에는, 이 표현들은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왜 정의하신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자본은 사실 별 가치가 없다. 어떤 자본은 가치 불확실성이 있다. 얼마나 가치있어질지 그 자본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지 불확실하다. 어떤 자본은 몇 개의 자본이 함께 모여야 비로소 가치를 발휘한다. 교육받고자 하는 수요가 있고, 교육하고자 하는 공급이 있다. 혹은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지적자본의 수요가 있고, 지적자본의 공급이 있다. 어떤 교육은 매우 희소성을 갖는다. 결국 활동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지적자본이 있다고 할 때, 그 활동의 기회가 매우 희소하기 때문이다. 극소수만이 그걸 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매우 비싼 장비는 희소하므로, 그걸 다루는 기회도 희소하다. ---> [지적] 맥락이 너무 산만합니다. (1) 교육을 통해 지적 자본이 만들어진다. (2) 교육과 자본엔 각각의 수요와 공급이 있다. (3) 자본의 가치는 불확정적이다. (4) 희소한 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지적 자본 역시 희소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간단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간단하게 축약해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교육을 통한 지적 자본의 형성을 강조하시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적 자본의 가치 불확실성은 왜 언급하셨는지 잘 이해가 되지않습니다.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지적자본의 형성은 가치있는 일이다.'라는 문맥이 빠져있습니다. 국가의 발전전략을 놓고 볼 때, 교육이 중요할 수 있다. 그 교육이 학교를 통해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 교육을 학교를 통해서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만약 국가가 당장의 결과만 중요하다 판단한다면, 교육에 투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장의 GDP 이면에 있는 교육기회와 교육성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지적] 반복적 내용이라, 불필요합니다. 때로는 '버블'이 교육을 일으킨다. 즉 경제적으로 보면 재앙인데, 그 도중에 사람들의 실력이 발전한다. 버블이 꺼지고 나서 다시 부흥할 수 있는 것은 실은 그 버블이 교육투자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 [반박] 버블이 경제적 재앙이라 말씀하시는 것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이해 부족입니다. 잘 모르시는 개념을 남용하신 것 같습니다. 때로는 '전쟁'이 교육을 일으킨다. 즉 인권적으로 보면 재앙인데, 그 도중에 사람들의 실력이 발전한다. 전쟁이 끝나고 가파른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은 실은 그 전쟁이 교육투자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 [반박] 전쟁 이후 부흥한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생각하고 계실 한국이나 서유럽의 국가, 미국은 극단적 예외이며, 전쟁으로 인해 몰락한 나라들이 훨씬 많습니다. 또한, 그 부흥의 이유 역시 개별적으로 따져봐야될 문제이지, 전쟁 자체가 교육투자로 작용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너무나 성급한 결론입니다. 이것은 국가뿐만 아니라, 한 개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Hype and Fight 어떤 사람은 무언가에 몰입하여 열렬히 활동한다. 쓸데없는 데 정신팔려 인생을 낭비하는 것 같다. 그것이 어떤 낭만적 환상 때문일 수도 있고, 그것의 어떤 중독적 성격 때문일 수도 있다. 버블이다. 그러나 개인이 그 버블을 겪더니 어떤 실력이 향상되었다. 혹은 인격적 태도가 발전되었다. 실력과 인격, 개인은 자본을 쥐게 된 것이다. 그 자본으로 다른 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본없는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게 된다. 혹은 희소한 지적자본을 버블으로부터 드라마틱하게 획득하고, 이로써 독점을 해낼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투쟁적이다. 어떤 사람은 경쟁적이다. 어떤 사람은 책을 놓고 저자와 싸운다. 전쟁처럼 독서를 한다. 전쟁처럼 독후 작문을 한다. ---> [지적] - [국가-버블=교육투자-지적자본]라는 사회적 측면을 [개인-몰입(버블)=교육투자-지적자본]으로 적용하신 것 같습니다. 짧게 언급해도 됐는데 예시가 반복적이고 지나치게 수사적입니다. 시를 쓰고 계신게 아니잖아요. 어떤 사람은 의지를 갖고 환경에 뛰어든다. 그 의지가 사람들로부터 반발을 일으킨다. 그로인해 전쟁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의지가 없었다면, 화목하게 지냈을 텐데 의지가 있기에, 갈등이 생기고 소란이 생긴다. 망할놈의 의지, 그러나 그 의지로 인해 실력이 발전한다. 혹은 인격이 변화한다. 의지를 일으키는 것은 때로는 책임감이다. 책임감이 없었다면 의지가 없었을 것이고 의지가 없었다면 화목하게 지냈을 텐데 망할놈의 책임감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소란이 생긴다. 세상에 갈등과 소란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호기심이다. 망할놈의 호기심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소란이 생긴다. 그러나 그로인해 발전한다. ---> [지적] [의지 - 책임감 - 호기심] 세 가지는, 앞서 짧게 나온 [몰입]과 더불어, 개인적 차원의 '교육투자'의 동기로써 제시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개인'은 '의지/책임감/호기심/몰입'들 다양한 동기에 의해 '교육에 투자'하고, 그 결과로 '지적 자본'을 얻는다. 라는 정갈한 문장으로 쓸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 온갖 재앙같은 것들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에 발전이 튀어나온다. 재앙속에 희망이 있다. 발전으로 인해 희망이 생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버블과 싸움을 싫어한다. 내가 의지를 품는 순간 싸움이 일어나기에 의지를 품지 않는다. 내가 욕망을 품는 순간 버블이 일어나기에 욕망을 품지 않는다. 생기를 잃고 무기력해진다. 무기력은 전염병이다. 나만 무기력해질 수는 없지, 남들도 무기력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의지를 품지 말라하고, 욕망을 품지 말라한다. 타인을 향하여, 세상을 향하여, 돈키호테라 억까하는 부패한 파우스트 박사가 있다. ---> [반박] 앞서 말했지만, 현대인의 지적/경제적 평균치는 굉장히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생각합니다. 비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지만, '타인/대중'을 너무 과소평가 하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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