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의상 경어는 생략하였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OSL 8강 1주차 경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 본문의 fishing은 여러분들이 예상하시는 바로 그 단어입니다. 필터링에 걸리는 걸 몰랐네요.
8강 A조. 신희승 vs 진영수 @ 페르소나
신희승은 초반 가스 채취를 늦추며 마린을 소수 생산, SCV 두 기를 동반해 상대 본진으로 향한다. 무난한 투팩 빌드를 선택한 진영수는 상대 찌르기에 별다른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본진 투팩의 의도를 들키고 만다. 상대의 빌드를 파악한 신희승은 진영수보다 한 발 앞서 앞마당 확장을 가져가며 벌쳐 생산에 주력한다. 진영수도 다수 벌쳐를 생산해 신희승의 본진으로 향하지만, 다크스웜에 넣어두었던 벌쳐들이 신희승의 fishing에 크게 낚이며 상당한 병력 손해를 본다. 신희승의 남은 벌쳐는 진영수의 본진으로 달리고, 진영수도 남은 벌쳐를 신희승의 본진으로 밀어넣는다. 하지만 상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진영수의 팩토리에서는 탱크가 생산되고, 벌쳐의 마인에 폭사당한다. 반대로 신희승은 꾸준히 벌쳐를 생산해 상대의 벌쳐 공격을 무난하게 방어, 진영수의 SCV를 모두 잡아내고 상대 앞마당에 커맨드까지 건설하는 여유를 보이며 지지를 받아낸다.
요즘 테란들 중에 이 정도로 치밀하게 밑그림을 짜오는 선수가 또 있을까. 운영형 테란, 맞춰가기 테란들이 대세를 이루는 스타판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략에 비중을 둔 그림으로 승부를 거는 선수가 신희승이다. 전략은 짜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그 전략에 말려들도록, 즉 준비해온 전략이 잘 먹히도록 게임 내에서 연기를 얼마나 잘 해주느냐도 상당히 중요한 요소인데, 신희승은 이제 그런 점에 있어서도 수준급에 올랐다. 오늘의 벌쳐 fishing은 그야말로 청룡영화제 주연상 감.
사실 8강 대진이 편성되기 전까지 8강 탈락 확률이 가장 높은 선수로 신희승을 꼽고 있었다. 물론 8강에 오른 다른 선수들의 면모가 워낙 쟁쟁했던 탓도 있겠지만, 그동안 보여준 중후반 운영이 워낙 불안하기도 했고, 전략가로서의 면모도 임요환이나 강민 같은 선수들에 비하면 확실히 한 수 아래라고 보고 있었으까. 하지만 오늘 경기로 그런 모습을 어느 정도 떨쳐낸 것 같아 보인다. 아직도 남은 2, 3경기를 진영수가 잡고 4강에 갈 거라고 예상하고 있지만, 글쎄, 전략을 메인으로 내세우는 선수의 경기라는 게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신희승이 진영수를 꺾을 확률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진영수는 너무 무난하게 졌다. 오늘 경기는 그야말로 상대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꼴이다. 마인까지 업그레이드 된 벌쳐 다수가 본진으로 밀고 들어오는 순간, 팩토리에서 탱크가 충원되다니. 게다가 비록 완성이 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자기 본진 앞에 상대 커맨드센터가 지어지는 꼴까지 목격을 하고 말았으니, 변형태, 박성균과 더불어 현재 테란의 대표주자랄 수 있는 진영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해도 보통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다음 주, 부천에서, 진영수는 오늘의 설욕을 갚을 수 있을 것인가. 이번 OSL 8강은 대진도 재미있게 나온데다 스토리라인까지 기가 막히게 돌아간다. 허헛.
8강 B조. 이제동 vs 이재호 @ 카트리나
입구를 막고 빠르게 테크를 올리는 이재호를 상대로 이제동은 투 해쳐리 레어 테크를 선택한다. 이재호는 소수 벌쳐와 레이스 한 기를 생산하며 뒷마당에 확장을 가져간다. 확장을 선택했기에 병력에 공백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재호는 터렛 다수를 깔고 발키리를 확충하며 상대 뮤탈을 막아내는 시나리오를 구상한다. 하지만 이제동의 과감한 뮤탈 컨트롤에 처음 생산된 발키리를 허무하게 잃으면서 이재호의 계획은 시작부터 꼬이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뮤탈 공격에 스타포트가 파괴되고 저글링마저 합세하면서 테란 본진은 초토화된다. 이제동의 승리.
사실 이재호의 시나리오는 나쁘지 않았다. 빠른 테크 플레이인 척 하면서 입구 틀어막고 뒷마당 확장 가져가면서 뮤탈은 다수 터렛과 발키리 조합으로 방어. 병력 공백은 레이스 한 기로 저그 오버로드를 최대한 잡아주면서 뮤탈이 모이는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해결. 그야말로 이제동의 뮤탈 테크를 노리고 나온, 저격에 가까운 전략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동의 오버로드 정찰이 너무 적절했다는 것. 뒷마당을 올린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제동의 오버로드가 와서 그걸 훤히 봐 버렸으니, 이재호 입장에서는 그저 운이 없음을 탓할 수 밖에.
그렇지만 역시 승리의 원동력은 이제동의 과감하고 공격적인 뮤탈 운용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발키리가 모이지 않도록, 터렛이 자리를 잡고 있는 적진 한복판으로 뮤탈리스크가 뛰어들어 산개 대형으로 발키리를 잡아내는 무시무시한 결단력. 본인의 컨트롤과 플레이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그런 플레이를, 이제동은 아무렇지도 않게 선보이며 이재호를 완파했다. 결승에서 김택용과 송병구만 피할 수 있다면 우승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을 듯. 이 놈의 토막 증세..
8강 C조. 마재윤 vs 김택용 @ 블루스톰
언제나처럼 더블넥 포지를 가져가는 김택용을 상대로 마재윤은 색다른 수를 준비했다. 저글링 발업을 통해 김택용의 프로브 정찰을 최대한 방어하며 김택용의 앞마당 위쪽에 확장을 가져간 것. 극초반 이후 거의 프로브 정찰이 이루어지지 못한 김택용은 마재윤의 의도를 짐작만 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다크 템플러 테크를 올린다. 하지만 마재윤은 발업 조차 되지 않은 땡히드라로 김택용의 앞마당을 덮쳤다. 캐논 두어기와 질럿, 드라군 한 기 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수 히드라의 공격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김택용이 커세어 다크 조합으로 잠시 상대 공격의 기세를 늦추기는 했지만, 이미 캐논과 기본 게이트웨이 병력이 모두 날아간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충원되는 저그의 병력을 막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마재윤의 히드라는 김택용의 본진까지 밀고 들어왔고, 김택용은 마지막 다크를 잃고 지지를 선언할 수 밖에 없었다.
김택용이 저그전에 강한 이유는 끊임없는 프로브와 커세어 정찰로 상대 저그의 정보를 세밀하게 파악하기 때문이다. 초반 저그 진영을 탐색하는 프로브는 발업 저글링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은 쉽게 잡히지 않으며, 프로브가 잡히고 정보의 흐름이 끊길 때 쯤이면 커세어가 나와 유유히 저그 진영의 상공을 비행한다. 이것이 바로 김택용 저그전의 트레이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처음 정찰을 나갔던 프로브가 저그 진영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것을 제외하면 김택용의 프로브는 다수 발업 저글링들에게 위협을 받으며 본진 근처에 꽁꽁 묶여 있었다. 이제 저그의 플레이를 예측할 수 밖에 없는 김택용을 상대로 마재윤은 색다른 전개를 준비해왔고, 김택용의 커세어가 등장해 끊어진 정보의 흐름을 복원하기 시작할 즈음에는 이미 마재윤이 승리를 위한 준비를 모두 끝마친 뒤였다.
이 경기를 보면 마재윤이 김택용을 잡기 위해 속으로 얼마나 칼을 갈았는지 알 수 있다. 김택용의 플레이를 분석하고, 그 핵심인 정찰을 차단했다. 초반 발업 저글링은 상대방에게 '나 저글링으로 공격할 거야' 라는 식의 페이크 용도로도 사용이 되었겠지만, 그보다 김택용의 정찰을 차단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센터에서 왔다갔다 하는 저글링의 움직임을 보면 김택용의 프로브가 본진에서 나올 수 있는 길목 요소요소를 차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택용의 플레이는 읽혔고, 마재윤은 승리를 차지했다.
이제 상대전적은 8:2(이벤트전 포함). 하지만 이 경기에서의 승리는 상대전적 스코어를 7점차에서 6점차로 줄인 것보다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과연 부천에서 김택용은 어떤 대응책을 들고 나올지. 정말 이번 OSL 8강은 떡밥이 많아도 너무 많다.
8강 D조. 송병구 vs 이영호 @ 몽환 II
더블 넥서스 이후 게이트를 올리는 송병구의 빌드를 파악한 이영호는 자신의 원팩 더블 빌드로는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 다수의 SCV를 동반한 공격을 시도한다. 질럿 한 기와 프로브, 벌쳐 한기, 마린 소수와 SCV 사이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동안 송병구의 드라군 두 기가 추가된다. 우여곡절 끝에 이영호의 벙커가 완성되고 마린 한 기가 벙커에 들어가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송병구의 드라군에 파괴되고, 송병구 앞마당에서 벌어진 소동을 일단락된다. 이영호가 초반 러시에 실패하고 피해를 보긴 했으나 송병구도 다수의 프로브가 파괴된지라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영호는 앞마당을 가져가고 송병구는 셔틀 리버를 준비한다. 리버로 테란 병력의 발을 묶으면서 캐리어를 생산하는 송병구. 그동안 이영호의 앞마당 근처에서 지상병력 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양쪽 모두 대부분의 전진병력을 잃는다. 하지만 송병구는 캐리어 두 기가 생산된 반면에 이영호는 캐리어를 제압할 충분한 수의 골리앗을 확보하지 못했고, 그 와중에서 이영호의 앞마당을 셔틀 리버로 타격하는 송병구의 미칠듯한 멀티태스킹이 빛나며 이영호는 가뜩이나 불리한 상황에서 자원의 압박까지 받게 된다. 점점 캐리어를 방어하기 어려워지고, 송병구의 드라군 지상병력이 남하를 시작하자 이영호는 지지를 선언. 송병구가 먼저 승리를 가져간다.
또 치즈러시. 예전에 이영호가 너무 치즈러시만 하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고 글을 올렸다가 '그것은 적절한 상황 판단에 근거한 치즈러시이다.'는 반론에 소박을 맞은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고, 개인적으로 저런 불만에는 이영호에 대한 비호감이 적잖게 작용을 하고 있었기에 좋은 쪽으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치즈러시가 너무 잦은 게 아닌가 싶다. 조금 심하게 말해서 '토스전 빌드 가위바위보에서 지면 바로 치즈러시 출발'스러운 인상이랄까. 이영호 정도 실력이면 운영으로 초반 불리를 극복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텐데, 굳이 치즈러시에 의존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물론 그거야 게임하는 사람 마음이니 옆에서 배놔라 감놔라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이영호가 시도한 치즈러시는 나쁘지 않았지만 송병구의 대응이 너무 좋았다. 프로브가 많이 잡혔다고는 해도 이영호의 SCV도 적잖게 잡힌데다 앞마당 넥서스도 멀쩡하게 지켜냈으니 초반부터 송병구가 득점을 올리고 시작한 셈이다. 이후로는 시종일관 송병구가 이영호를 압도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리버 득점에, 지상군 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고, 캐리어가 나온 이후로는 그냥 완전히 송병구 페이스였다. 역시 테란 잡는 프로토스의 살아있는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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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경기 전 예상으로는 진영수, 이제동, 김택용, 송병구가 4강에 올라가고, 진영수-김택용 결승전에서 김택용이 우승을 가져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는데.. 첫 경기를 보고나니 이거 정말 어찌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동, 송병구는 확실히 4강 올라갈 것 같긴 한데, 나머지 두 조는 어떻게 될지. 으음. -_-
* 메딕아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29 0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