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는 글 (편의상 존칭을 생략합니다)
2004년 4월부터 2006년4월까지, 본인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산좋고 물좋은
태안반도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놓친것들도
많았고, 특히나 격오지기지의 특성상, 본인의 취미인 스타크래프트-_-나
농구, 축구경기 시청등이 매우 어려웠다. 그 와중에서도, 그 정보가 빈약한 그곳에서도
알게된 두 선수에대해 갑자기 쓰고 싶어졌다.
바로 어제,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기 때문에.
O. 인지.
★ 오승환
본인과 군대 동기였던 모군은 고등학교때까지 야구선수였다. 당연히 고참들과
사람들은 그에게 야구와 야구선수들에 대한 많은 것들을 물어보았다.
나역시 그러했고, 동기라는 이점과 야구를 좋아하는 취향을 십분살려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우습게나마 커브와 슬라이더를 던지게 됐을 무렵, 나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조돌, 너희 학교 출신중에 조낸 유명한 선수 없어?"
"야야야~ 삼성의 걸사마가 우리학교 출신이야"
"이야....끝내주는데? 그리고 또?"
녀석은 한참을 침묵했다.
"음.......단국대에 오승환이라는 선배가 있는데, 그 선배가 프로가면 아마
조낸 잘할거야"
"그러시겠지"
마땅한 선배가 없어 둘러댄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귓등으로 그 이름을 흘려버리고
짬통을 버리러(ㅠㅅㅠ) 취사장으로 향했다.
☆ 오영종
시간은 흐르고 짬은 차고, 나름대로 성실한 군생활로 어느정도의 입지를 넓힌
본인은 격오지에 보급된 위성TV 기본 채널에 사비를 더해 게임방송을 신청할 수
있었고, 기대를 가지고 보게 된 첫번째 결승은 놀랍게도 황제 임요환과
한번도 듣지 못한 오영종이라는 프로토스였다.
"쟨 또 뭐야? 가을이니까 별 프로토스들이 나 결승에 올라가는구만?"
그는 '별 프로토스'가 아니었다. 다전제에서 황제를 꺾은 프로토스였다.
1. 시작
☆오영종
솔직하게 말하면, 전역 전까지 나는 이 선수의 게임을 많이 보지 못했다.
내가 군에 있을 때 포스를 뿜어냈고, 스타리그를 볼 만한 짬이 되었을 때는 부진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의 경기를 잠시나마 봤던 것은, 저그의 진영에 다크템플러를 난입시켜
드론을 학살하고, 오버로드가 훤히 보고 있는 상황에서 질드라와 다크템플러를
섞어서 저그의 본진을 쓸어버리는 인상적인 경기뿐이었다.
늘 쓰던 틀에 맞추어서 시작이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그의 시작을 보지 못한
나는 사실 크게 쓸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전역 후 여유가 생겨 그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참 훌륭하다는 생각이 누차 든다.
그리고 안타깝다. 그의 시작을 라이브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 오승환
하지만, 나는 오승환에 대해서라면 일반인 중에는 꽤 자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중에 한 명이다. 동기녀석의 말에 거짓이 없다면 말이다.
오승환은 원래 테니스 선수였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때 테니스부가 없는
도신초등학교에 전학을 오면서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테니스를 해서 그런지, 스윙이 엄청나게 좋았던 오승환은 외야수로 야구를
시작하게 되고, 통통 튀는 성격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또,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입관이 없어서 창의적인 플레이를 했다고도 한다.
예를 들면, 어떤 경기에서 상대 타자가 내야 땅볼을 치게 되었다, 공은 1,2루간으로
빠졌고 우익수인 오승환이 굴러오는 공을 잡았다. 일반적으로, 여기서 송구를 해봐야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모든 선수들은 1루에 송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개념'
이 없던 오승환은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강하게 1루로 송구를 했고, '당연히'
룰루랄라 걸어가던 타자는 어이없게 1루에서 아웃되었던 경기도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때 '투신'박성준 선수도 도신초등학교 야구부에 몸을 담고 있었다.
내 동기는 항상 투신이 자신의 '따까리'였다며 자랑하고는 했다. 물론 확인할
길은 없다)
우신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오승환은 초등학교 감독의 조언대로 초등학교 때 투수였다고
우기며 포지션을 바꾸게 되었고, 공은 빠르지만 컨트롤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무렵, 우신중학교의 감독은 항상 오승환에게 포커페이스를 주문했다고 한다.
아마 오승환의 포커페이스는 이 때부터 시작되었지 않나 싶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점점 팀의 에이스로 성장한 그는, 한서고등학교에 입학해
야구를 계속하게 된다. 140 중반대의 강속구와 흔들림없는 태도는 메이저리그의
공개 테스트를 받을 정도로 훌륭했지만 그는 곧 치명적인 오른팔 팔꿈치
부상을 입게 된다. 이 때 자유분방한 그가 감독과 마찰이 있었다고도 하지만
알 수 없고, 아무튼 그는 한서를 떠나 경기 고등학교에 전학을 가게 된다.
(한편, 내 동기녀석은 이 무렵 고교야구가 나무배트로 바뀐 이후 첫 홈런을 자신이
기록했다고 자랑하곤 했다.)
다친 팔 때문에 야수로 전향한 그를 프로와 대학 모두 외면했고, 야구인생이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단국대에 기적적으로 입학하게 된다. 강문길 감독의 배려하에
끊임없이 재활에 몰두한 그는 재기에 성공하며 대학리그를 평정하기에 이른다.
2. 승부사
☆ 오영종
처음 so1배 결승에서 모니터 앞에 앉은 그의 눈을 보았을 때, 나는 어딘가 모르게
낯익은 느낌을 받았다.
'누구였더라.... 꼭 저런 눈을 가진 사람을 본 것 같은데....'
결승이 끝나고, 다음 날 스포츠 뉴스에서 나는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승부구를 던지기 직전의 오승환의 눈빛이었다.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오영종은 승부사기질을 다분히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승부사란,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시점에 모든 것을 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부족한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움츠려들거나 잘못된 판단을
하면서 성공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아빠곰...ㅠㅅㅠ) 특히, 평소 소심한 사람이나,
신인들에게서 자주 발견하게 되는데, 오영종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지킬것은 반드시 지키고, 반드시 썰어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썰어버리려는 모습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그의 모습과 오러랩되어, '사신토스'라는 멋진 명칭을 얻게 해준다.
★ 오승환
오승환은, 몸이 금방 풀리는 체질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세팅시간이 짧다는
이야기다.( 셋힝마왕...이젠 좀 줄여보아요;;) 마운드에 올라가서는 몸쪽 직구 1개
구질이 다른 슬라이더 2개, 바깥쪽 직구1개만 던지면 바로 OK다.
그리고, 이 몇개 되지 않는 구질로 승부를 볼 줄 아는 남자다.
특히나 오승환의 인기를 폭발적으로 높였던 WBC에서 보여준 그의 배짱과
승부근성은, 최근 프로야구 선수들에게서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항상 자신의 공에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에 결정구로 어떤 것을 던지던간에
흔들림이 없다. 자신에 대한 믿음은, 승부사가 승부를 걸기에 앞서 가장 필요시되는
항목중에 하나다.
3. 플레이 스타일
☆ 오영종
내가 이 오영종이란 선수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중에 한 가지는 구3대니 신3대니
하는 프로토스들 중에 테크닉과 힘의 균형이 가장 잘 맞는 선수중의 한 명이기
때문이다. 송병구 선수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운영을 통해 이득을 보면서
게임을 주로 풀어나가고, 박지호 선수가 미칠듯한 스피릿으로 상대를 찍어누른다면
오영종의 플레이 스타일은 이 두 선수의 교집합쯤에 위치한다. 적당히 전략적이고
적당히 공격적이며, 적당한 물량을 뽑아내고, 적당한 운영을 한다는 것.
프로토스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드코어를 하던, 수비형을 하던, 옵드라를 하던,
패스트 닥템을 하던 항상 적절한 선을 유지한다. 이 힘과 전략성을 고루 갖춘
프로토스를 만났을 때, 상대는 상당한 시간을 고민해야만 한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도박을 걸 줄 아는 승부사다.
이래저래, 상대는 생각할 것이 많다.
한편, 보란듯이 디텍터 아래에서 병력과 닥템을 섞어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
첫 공을 몸쪽 직구로 찔러넣는 오승환의 "알아도 못 막을껄?"이라고 외치는 듯한
투구와 너무나 흡사해 보인다. (눈빛과, 그 경기가 오늘의 글을 쓰게 만들었다)
★ 오승환
동기놈의 말에 의하면, 오승환의 구질은 3가지라고 한다.
직구와 슬라이더, 체인지 업이 그것인데, 체인지 업은 직구나 슬라이더에 비해
좋지 않다고 하고, 커브도 던질줄은 알지만 체인지업보다도 좋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슬라이더가 2종류인데, 빠르고 낙차가 작은 슬라이더와 타자 앞에서
크게 떨어지는 슬라이더가 그것이다. 이 둘을 섞어서 쓰면, 정말 타자가 골치아프다고
한다. 두 공 모두 최종적으로 변화하기 전까지 코스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좋은 것은 직구인데, 오승환의 구속은 140대 중반이고, 최고구속은
150대 극초반까지 본 것 같다. 하지만 WBC때 방송국에서 분석한대로 그의 공은
중,종속이 매우 좋아서 볼끝에 힘이 있기 때문에 치기가 어렵다고한다.
거기에 배짱와 제구력까지 갖추었기 때문에, 몸쪽 꽉차는 직구 - 빠른 슬라이더-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이어지는 볼 배합은 알고도 참 막기가 거북스럽다.
4. 아킬래스 건
☆ 오영종
오영종은 so1배 이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거품토스'라는
치욕스런 별명까지 듣게 된다. 갑자기 경기력이 저하된 모습도 없지 않아 있지만
당시 플러스 팀에 믿고 맡길 선수가 그밖에 없었고, 프로리그와 개인리그 모두를
짊어지기엔 오영종은 아직 어렸다. 게다가, 스타 역사 전체를 살펴봐도
프로토스가 장기집권한 경우는 없었다. 그게 프로토스가 갖는 본질적인 문제인지,
게이머들의 성향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박정석도, 강민도, 박용욱도
절정의 포스를 보여주며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그 누구도 장기집권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오영종의 하락은 크게 탓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슬럼프를 벗어났다고 생각되는 요즘의 경기에도 뭔가 들쭉날쭉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플레이 스타일에서의 기교와 힘의 균형은
훌륭하지만, 아직 자신이 가진 최고의 능력과 최악의 능력사이에서의 균형은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또, 르까프 오즈의 에이스로서 갖게 되는 정신적 부담감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팀이든, 프로토스가 에이스인 경우에는 항상 5:5 이상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프로리그에서 상대와 맵을 모두 맞추기에는 프로토스라는 종족이 워낙
딱딱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담감까지 안고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가 에이스이기 때문이다.
★ 오승환
그에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왜 저렇게 공이 좋은 선수를 마무리로 쓰느냐'
며 말하지만, 사실 그는 오랜 이닝을 던질 수없다. 부상으로 다쳤던 팔꿈치 때문이다.
오승환의 투구를 자세히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투구폼이 좀 희한하다.
와인드 업 후 팔꿈치가 한 번 정지했다가 스로우하는 그 폼은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웃긴 폼' 이다. (그는 상상속에서의 자신의 투구 폼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가,
사람들이 하도 놀려서 거울을 보고 투구를 해 본 후에, 자신도 웃었다고 한다.)
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팔꿈치에 최대한 무리를 주지 않고 던지려고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향후 최고의 마무리로 기록되는 것은 본인노력여부에 따라
가능하다고 보지만, 선발전환이 불가능하다는 약점 때문에, 최고의 투수로 기억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선감독의 '스몰볼 전략' (적은 점수를 지키는 야구)에
따라 7회고 8회고 나와서 던지는 모습은 장기적으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5. 미래
☆ 오영종
오영종은 이번 듀얼에서 완전히 제 기량을 찾은 듯한 모습으로 차기 시즌 합류를
결정 지었다. 다시 가을이 되니까 그런걸지도 모르고, 일반적으로 선수들이
겪는 슬럼프의 주기가 끝난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번 스타리그는 오영종에게 있어서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잘 갈아놓은 '사신의 낫'이 춤을 추며 그를 거품이라고 몰아붙였던
이들의 성급한 생각을 썰어버릴지, 아니면 '운좋게 한 번 우승을 맛봤던
프로토스'로 기억될지, 선택은 자신의 몫이며, 우리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 오승환
오승환은 국내는 물론 일본에도 없는 '50세이브 달성'이라는 대기록에 도전중이다.
현재의 페이스만 보면 아슬아슬하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안타깝게
실패할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50이라는 숫자에 연연해 할 것이 아니라
팀당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도 10번 밖에 없는 기록, 7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팀당 146경기를 치르는 일본야구사에도 한 번도 써지지 않은
기록을 팀당 126경기밖에 치르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도전중'이라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팀의 성적과 자신의 기량, 또 운도 잘 맞아야 한다.
42경기에서 30세이브 포인트를 기록한 이 젊은 사자에게 WBC에서 보여준
관심을 절반만이라도 가져준다면, 시즌이 끝나고 대기록을 달성한 후에 마운드에서는
볼 수없었던 함박웃음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 마치며
부인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본인은 처음 두 선수를 보았을 때, 너무나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같은 성씨인데다 날카로운 눈빛,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는 표정
탁월한 실력, 승부사적 기질까지. 어제까지 생각했던 글은 강도경과 요한크루이프에
관한 글이었지만, 어제 동기놈에게서 전화를 받은 후 군대에서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급조된 글이다. 오승환에 관한 이야기는 주관적인 시선이고, 한 두해 전 들은 이야기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영종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깊이까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부족한 글을 쓴 이유는, 나에게는 닮아보이는 이 두 젊은 승부사가
스포츠와 E스포츠의 기록을 갈아치울만한 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낮은 식견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년 연속 가을의 전설과 최초의
50세이브에 도전하는 이들의 모습은, 박수를 칠만큼 아름답지 않은가.
※ 덧붙임
이렇게 씌여지는 글이 다소 억지성이 강하고 끼워맞추기 식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원래 그런 목적을 가지고 쓴 글이니까. 하지만 본인은 나의 관심사인
스포츠와 E스포츠의 스타들에게서, 조금이나마 공통점을 발견하고 싶었고
그것을 쓰고 싶었다. 스포츠도 좋아하며, E스포츠도 좋아하고, 글쓰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스포츠와 E스포츠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 이 아니겠는가. 억지라고 생각되는 분은 읽지 않으셔도 좋고
억지라고 댓글을 다셔도 좋다. 내가 가당찮은 이런 글을 쓸 권리가 있는 만큼
그 분들에게도 그 만큼의 권리가 있으니까. 다만 나는 내 글에 공감하는 몇분이
계시다면, 내 글이 피지알의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면, 생각이 나는대로
계속 끼워맞출 계획이다. 생각 나는 대로 말이다.
* 안녕하세요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8-11 0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