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6/03/06 22:53:43
Name kaka
Subject 청춘을 위한 글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전역한 예비역 병장입니다. 2년이 지났는데 그다지 많이 변한건 없는 것 같아서 좋네요.

2000년 이후에 군대 가신분은 알겠지만 군대에도 인트라넷이 있는데, 거기에 커뮤니티 동아리가 몇 개 있습니다. 음악,책,스포츠 등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활성화된 동아리는 몇 개 없더라구요. 그 중에서 '책마을'이라는 독서동아리가 있습니다. 이 동아리 분위기가 여기 pgr이랑 비슷비슷해서 자주 갔었죠.
그 곳에서 본 글 중에 인상적인글이 하나 있어서 올려봅니다.

[.....]도무지 이상하지 않은가. 딱 한 번의 선택으로, 그것도 스무 살도 안된 나이에 앞날을 책임져야 하다니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지 않은가. 그 당시에는 멋지게 보이던 길도 막상 걸어보면 형편없는 길일 수 있다. 다른 길에 매력을 느끼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는가. 그리고 아직 세상물정도 제대로 모르는 새파란 젊은이가 한정된 조건 안에서 인생에 대하여 결단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당최 경솔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은가. 그런 나이에 인생의 목적을 빈틈없이 터득하고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그러고자 하니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괴롭다. 농담이 아니다.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삶은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얽매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 미루야마 겐지. [소설가의 각오] 중에서

--------------------------------------------------------------------------------

우리시대의 중요한 특징을 꼽으라면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시공간의 제약이 줄어들었다든가, 금기와 차별이 사라져가고 있다든가,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스물 두 살의 내가 우리시대의 가중 중요한 특징으로 꼽고 싶은 것은, 이 시대가  '젊은이들에게 겁을 주는 시대'  라는 것이다. 다른 시대가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시대처럼 겁을 주었는지, 아니면 꿈과 용기를 키워줬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이 살아보지도 않았고 살 수도 없는 시대와 비교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어쨋든 나는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우리시대는 젊은이들에게 겁을 주는 시대다, 라고

겁을 주고 있다니, 누가? 라고 물어본들 나로서는 대답할 수 없다. '우리시대가'라고 말하는 것은 물론 바보같은 짓이다. 시대는 시대일 뿐이다. 시대를 하나의 '절대정신'으로 생각하던 시기도 지났다. 최선의 대답은 여러가지 요인들을 뭉뚱그려 말하는 것일 테다. 세계화라든가, 자본지상주의라든가, 절대적으로 벌어진 빈부격차라든가, 등등. 아무튼 나는 우리시대의 젊은이들을 위협하는 범인의 몽타주를 제대로 그려낼 수 없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놈이 어떤 환경에서 생겨났으며 어떤 형태를 하고 있는가이다.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홀로 두 발로 선 인간에게 공포는 무력하다. 공포는 의존하려는 마음을 타고 기어올라온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시대의 젊은이들이 선사받은 두려움은,
1) '오랜 양육기간'이라는 요람에서 태어난다.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 아니 꼭 냉정하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시대의 양육기간은 길다. 특히 우리사회에서, 한 아이가 경제적으로 자립하려면 최소 24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 뒤로도 부모에게 의존하며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환경이 의존심을 만들어 내고, 그 의존심은 두려움을 길러 낸다.

또한 두려움은 2)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생활방식'에 의해 만들어진다. 소비를 미덕으로 생각하고 소비자를 왕으로 모시는 '이 죽일 놈의 자본지상주의 시대'에, 우리 젊은이들은 소비의 달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일에 '돈이 있으면'이라는 전제를 놓고 시작한다. 이만한 돈이 있으면 이런 일을 하고, 더 큰 돈이 있으면 저런 일을 하고, 그리하여 정말로 무엇 때문에 돈이 필요한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이렇듯 키워진 소비성향에 미치지 못하는 젊은이의 능력이 두려움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두려움은 대체로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시작은 '먹고사는 문제'다. 먹고 살아야 한다. 더욱이 네 두 손으로 벌어 먹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 먹고 살기 힘들다. 취직이 안된다. 일자리가 없다. 세계화 시대다. 하나만 잘해서는 곤란하다. 영어를 잘 해야 한다. 각종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허리가 부러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낙오하고 만다. 여유만만하게 세상을 살다가는 갈 곳 없는 노숙자 신세가 된다. 빈틈없이 준비하고 어릴 적부터 목표를 확실하게 정해라. 갈 길을 미리 정해라. 대학을 졸업한 뒤에? 그건 늦다. 고등학교 때? 그것도 늦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니 아예 미취학 시기에 적성 계발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적어도 중학교 때는 그 길에 뛰어들어야 한다. 골프 천재가 되든가, 발명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사업가가 되든가, 아니면 의사가 되어라. 정해진 길로 가라. 벗어나면 가시밭길이 널 기다리고 있다. 평생 돈도 못 벌고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사고 싶은 것도 못 사고, 무섭지? 에비.
우리시대가 젊은이들에게 겁주는 논리란 대개 이런 것이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여, 두려워 말지니. "도무지 이상하지 않은가."
고작 이십 년 남짓을 살고는 나머지 내 인생이 확정된 양 고개 숙여야 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남들이 결정지은 삶의 양식대로 내 삶을 이끌어가야 한다니, 도무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왜 그래야만 하는가. 왜 우리 스스로 두 손 두 발 꽁꽁 묶고 질질 끌려가야 하는가.
"어리석은 일이다."
세상은 본래 겁을 주게 되어 있다. 특히 다른 시대는 몰라도 이 '자본지상주의 시대'에는 더더욱 겁을 주게 되어 있다. 그래야 이 사회가 무난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자꾸 세상에 필요한 나사와 톱니바퀴를 만들어 내야만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겁먹지 말자. 째째한 세상에게 소리쳐 주자. 우리 하나 둘쯤 나사와 톱니바퀴가 아니라 새로운 엔진이 되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위로해 주자. 괜히 겁을 주어 우리를 사육사가 있는 축사로 돌려보내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자. 나는 두 발로 꿋꿋이 나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말해 주자. 네 발로 걷지 않겠다고 말해 주자. 본래 세상은 겁을 주게 되어 있지만, 또한 세상은 겁먹지 않는 자들의 것이다. 1789년 7월의 파리가 그랬듯이.
만국의 젊은이들이여, 단결 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돼지 목줄이요, 얻을 것은 세계다.

이 글은 국방인트라넷 독서동아리 책마을의 병장(당시 계급) 허원형 님의 글입니다.


세상이 겁을 주는 것일까요? 제가 미리 겁을 먹는 것일까요?
전역하는게 좋기만 한 건 아니더군요. 물론 저 개인의 문제겠지만,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_^
* 메딕아빠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3-08 07:34)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본호라이즌
06/03/07 00:26
수정 아이콘
흠... 삶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시는 분의 글 같네요~ 저도 얼른 삶의 덫에서 벗어나야겠어요~
좋은사람
06/03/07 00:26
수정 아이콘
책마을.반갑군요. 저도 부족하지만 독서후기 몇번 남겼었는데, 허원영씨나 김강록씨등의 좋은 글들 많이 읽었었지요. 말년 군생활에 큰 즐거움이었던 책마을. pgr에서 그 이름을 들으니 다시 생각나는군요.
여.우.야
06/03/07 00:35
수정 아이콘
이제 4학년을 맞이하여 휴학을 결심한 저로서도, 세상이 저에게 주는 겁 때문에 때로는 너무나 두렵습니다.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펴라"고 말해주는 선배도, 그리고 스스로가 그렇게 외칠 수 있는 자신감도 없습니다. 과잉보호받은 어른이자 어린이인 우리에게, 세상은 정말 겁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저처럼 의지박약까지 가지게 된다면, 세상은 두려울 뿐만 아니라 귀찮은 곳으로 되어 버립니다. 무서운 일이죠.

아아 겁내지 말고, 점점 작아지는 내 꿈도 다시 치켜 올리고, 다시 기운내고 싶습니다. 그런 의지는 자격증도, 토익점수도 가져다주진 않을 것 같습니다. 역시나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겠죠. 역시나 '동기부여'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겠죠.

이 젊은 나이에도, 도전하여 실패하는 것은 왜 이리 두렵기만 한지....
처음 수비형 프로토스를 들고 나왔을때는 저글링에 바로 밀리고 계속 패배를 하였지만, 그 꾸준한 노력과 고집으로 결국은 완전한 빌드를 만들어내고 '수비형 프로토스'를 확립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강민선수 처럼, 저도 실패 후 좌절만 하지는 말고 그것을 발전의 도구로 삼아야 겠습니다.

새롭게 결심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테페리안
06/03/07 00:52
수정 아이콘
임성춘 해설 관련 내용인 줄.... -_-;;;
06/03/07 01:37
수정 아이콘
부모잘만난 예외적인 케이스를 제외하면...원래 청춘은 고생하고 열심히 일하는 시절인게 맞고 예전에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워낙 요즘에 매체에서 청소년들이 연애하고 놀고 하는거만 많이 보여주니 착각하는거죠. 물론 예전에는 주로 육체적 노동이 주였던거에 비해 우리나라 산업구조 특성상...또 현대사회의 구조상 정신적 노동과 스트레스가 주가 돼는점은 다르죠. 옛날엔 육체가 강한 사람이 제일 잘 살아남았을지 몰라도 현대사회엔 정신이 강한 사람도 살아남기가 좋아졌죠. 복잡하게 생각할것 없이 인간도 그저 복잡한 본능을 가진 동물일뿐이고 적자생존이 성립하는거죠.
견습마도사
06/03/07 13:38
수정 아이콘
제가 군복무할땐 인트라넷에 anaclan이라는
유명 싸이트가 있었죠..
Army Navy Airforce 라는 뜻의
카오스로 유명한 그 클랜이 맞다고 들었습니다만.
어째든..
그 클랜 보드 덕분에 스타와 워크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죠 ^^

군복무를 앞두신 분들 참고하세요~
06/03/07 19:52
수정 아이콘
이렇게 생각하면 제가 지금 이시기에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하려고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이 그렇게 머리가 아픈지 ㅠ ㅠ 이유 조차 모르겠습니다.
야한마음색구
06/03/08 09:38
수정 아이콘
이런 고민은 기본적으로 먹기위해 사느냐 살기위해 먹느냐의 갈등에 따른거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건축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불태워야할 대상이다' 알베르 카뮈가 말했죠
저는 억지웃음이라는 진통제를 맞고 인생이란 녀석을 열심히 불태워 버릴렵니다^^
마술사얀
06/03/08 22:21
수정 아이콘
혹시 무나나라라는 동호회는 아시는분이 안계신지요?
마술사얀
06/03/08 22:25
수정 아이콘
참.. 2001 년도에 부대에서 틈틈히 개발한 네트웍 바둑 게임을 국방 인트라넷에 소스까지 깡그리 공개하고 전역하던 기억이 나네요. 남은 분들이 더 발전 시켜달라고 했는데... 끄응.. 전역하고 한동안 몇몇 분들이 추가 보완 했다는 소식은 후임병들에게 들었는데... 요즘은 모르겠네요.. 에긍.. 내 컴퓨터에 그 소스 남아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나름대로 말년에 꽤 공들여서 짠 코드인데. -_-;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14 호스피스, 평안한 미소가 함께하는 죽음 [15] Timeless8583 06/03/11 8583
113 스타크래프트 병법 전(前)편 제1장~제5장.게임 전 자세부터 병력운용의 묘까지. [9] legend7785 06/03/11 7785
112 친구야, 고맙다. [7] Neptune7248 06/03/11 7248
110 e스포츠에 관한 몇가지 진실과 부탁 [35] 임태주10017 06/03/10 10017
109 [호미질] 인정받는 언론이 되라 esFORCE [14] homy10040 06/03/10 10040
108 스타리그 24강의 득과실... [39] 칼잡이발도제10598 06/03/10 10598
107 2006 강민선수 월페이퍼.. [22] estrolls9988 06/03/10 9988
106 Kespa..힘을 가져야만 하는 존재. [16] 루크레티아8115 06/03/09 8115
105 신한은행 결승전 신815에서 박성준 선수가 선택한 전략! [21] 체념토스10343 06/03/09 10343
104 [잡담] 버스는 주장한다. [10] Bar Sur7561 06/03/08 7561
103 저그...그 끝없는 변태 [11] 데카르트9386 06/03/08 9386
102 저그의 대테란전 새로운 패러다임, 방업히드라+ [39] Ase_Pain12051 06/03/07 12051
100 청춘을 위한 글 [10] kaka7498 06/03/06 7498
99 [2006 다섯번째 제안] 차륜전방식의 팀플레이 [22] 마술피리8096 06/03/06 8096
97 지극히 개인적인 2006년 스타 희망뉴스 8 [27] 버관위☆들쿠8037 06/03/06 8037
96 그렇다.. 난 그래서 'July'를 좋아한듯하다.. [10] 나무7414 06/03/06 7414
93 캐터배틱 마재윤,,,,토네이도 이윤열.. [8] yellinoe9908 06/03/05 9908
92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다!! - 개척시대 - [7] AttackDDang6555 06/03/05 6555
91 강민의 출사표 [19] legend9574 06/03/04 9574
90 바둑과 스타크래프트... [27] AhnGoon8668 06/03/02 8668
89 [yoRR의 토막수필.#18]Photo Essay [11] 윤여광7018 06/03/01 7018
88 [스타 추리소설] <왜 그는 임요환부터...?> -58편 [36] unipolar8649 06/02/28 8649
87 랜덤맵은 과연 꿈인가? [40] 마술피리9439 06/02/28 943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