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회원들이 연재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연재를 원하시면 [건의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Date 2010/08/13 00:27:44
Name zeros
Subject Mr.Waiting - last
이 후 그녀의 집까지 별다른 말은 없었다.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왔을 때 그녀가 잡은 손을 풀었다. 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나 잘 몰랐는데, 우리 동네 은근히 보는 눈들이 많더라고. 저번에 어떤 아줌마가 너랑 있는 거 보고 엄마한테 말해서 꾸중 들었거든. 그래서 여기선 손잡으면 안 될 거 같아.”

단지로 들어가기 전에 음료수를 두 개 샀다.

“야 아직 너 통금시간 남았으니까 조금 있다가 들어가.”
“응? 그래 뭐 어차피 이거 마셔야 되니깐.”

주변은 조용했다. 나는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내가 이미 예상했고, 준비했던 그 마지막에 다다르고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가 없었다. 스스로는 이제 그렇게 되도 상관없을 것이라 생각했으면서도 돌려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다 조용해졌다. 난 들고 있던 음료수를 비웠다. 준비를 해서 그런 것일까. 이전에는 그녀를 놓친다는 사실에만 마냥 안타까워 어떻게든 잡으려 했던 나였지만 그 시점에 그녀와 나를 새로 볼 수 있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이것은 설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친구들이 이제 그만두라고 할 때, 과거에 그녀에게도 이성으로 감정을 어찌하면 안 된다고 말했던 나였건만 난 너무나도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그리고 그 언젠가 쯤엔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그 꿈 대신 이렇게도 아닌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붙잡고 싶은 생각도 우리의 결론을 조금 더 유예시키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내 마음에 머물러있던 그녀를 향한 감정이 단 몇 분 만에 바스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나를 설득하는 그녀의 말을 들렸다. 문제는 참으로 간단한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걸 그녀는 해줄 수 없었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나 역시 해줄 수 없었다. 또한 둘은 그 어떤 양보를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더 이상 무슨 말과 고민이 필요할까. 그녀가 옆에서 말하고 있는 그 순간조차 의미 없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지은아.”
“응.”
“들어가라.”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그녀가 작아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혼자 남아 앉아있자니 그 곳에서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녀와 내가 이야기를 나눴던 그 벤치엔 많은 얘기가 남아있었고, 그녀를 기다리며 초조함에 피웠던 담배꽁초가 남아있었고, 아무런 말도 없이 홀로 와서 아무런 기대 없이 앉아있던 나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나쁜 기억은 아니었다. 그렇게 마구 떠오르는 모습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어섰다. 그런 기억들이 이제 나에게 의미가 없다거나 한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마지막이었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들었던, 말했던 그 몇 개의 마지막중의 하나 일 것 같지는 않았다. 안타까움에 요동치던 가슴은 금방 잠잠해졌고, 난 망설임 없이 돌아섰고, 계단을 내려와 걸었다. 그녀와 이렇게 될 때마다 항상 찾던 담배를 샀다. 포장 비닐을 벗겨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예전처럼 그렇게 절망적이지도, 가슴이 깨질 듯 아픈 것도 아니었다. 어느 샌가 이런 행동도 하나의 버릇처럼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었다. 생각을 하며 불을 붙였다. 역시 오랜만에 피는 담배는 맛이 없었다. 몇 번의 기침을 하고는 꺼버렸다. 바람이 시원해 기분이 좋았다. 몇 명의 친구와 전화통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누면서 길을 걸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새벽에 들어오지 않은 아들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0/08/15 04:01
수정 아이콘
뭔가 말로 표현하기는 힘든 감정이네요... 아련하다할까요...
10/08/15 22:04
수정 아이콘
스토리 중반부를 안보다가 결말을 보니까... 후덜덜이네요.
DavidVilla
10/08/25 16:50
수정 아이콘
결말까지 모두 읽었지만 저 역시 뭐라 표현하기는 힘든 그런 감정이네요.
시간이 좀 더 지나야 정리가 되려나 봅니다. 하핫..

그나저나 역시 소설이란 건, 이런 맛에 보는 것 같네요. 과거의 제 행동들이 떠올라서 죽겠습니다. 그런데 싫지는 않은 기분?

끝으로, 정말 수고 많으셨구요! 잘~ 읽었습니다!^^
방화동김군
10/11/07 20:21
수정 아이콘
늦었지만 잘 읽었습니다~
드라마 연애시대를 보면 뒤엉킨 운명의 빨간 실타래가 나오잖아요.
그런 엉킨 실타래를 보는듯한 느낌이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96 [스타2 협의회 칼럼] [The xian의 쓴소리] 리그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닙니다. The xian5309 11/05/10 5309
195 [스타2 협의회 칼럼] 타산지석(他山之石) The xian4919 11/05/10 4919
194 [스타2 협의회 칼럼] 변화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The xian4567 11/05/10 4567
193 [스타2 협의회 칼럼] 지(智), 덕(德), 체(體) The xian5174 11/05/09 5174
192 [스타2 협의회 칼럼] [The xian의 쓴소리] 우선순위 The xian4980 11/05/09 4980
191 [스타2 협의회 칼럼] [The xian의 쓴소리] You are not prepared. The xian5700 11/05/07 5700
190 [스타2 협의회 칼럼] 모두의 스타크래프트 2 리그를 위하여 필요한 것 (3) '이벤트'보다는 '일상'이 되기 The xian5137 11/05/07 5137
189 GSL 후기 만화 - May. 8강 1, 2일차 [6] 코코슈6499 11/05/06 6499
188 [스타2 협의회 칼럼] 모두의 스타크래프트 2 리그를 위하여 필요한 것 (2) THE GAME The xian5194 11/05/06 5194
187 [스타2 협의회 칼럼] 모두의 스타크래프트 2 리그를 위하여 필요한 것 (1) THE LIVE The xian5143 11/05/06 5143
186 [연재 알림] 스타2 협의회 칼럼을 연재하려 합니다. [1] The xian5496 11/05/05 5496
185 GSL 후기 만화 - May. 16강 1일차 [1] 코코슈6551 11/04/29 6551
183 GSL 후기 만화 - May. 32강 3일차 코코슈5955 11/04/25 5955
182 GSL 후기 만화 - May. 32강 1, 2일차 [2] 코코슈5961 11/04/23 5961
181 GSL 후기 만화 - 월드 챔피언쉽 결승전 [2] 코코슈7137 11/04/12 7137
180 GSL 후기 만화 - 월드 챔피언쉽 16강 ~ 8강 [3] 코코슈7353 11/04/04 7353
179 GSL 후기 만화 - GSTL Mar. 8강 ~ 결승전 [5] 코코슈8166 11/03/25 8166
178 GSL 후기 만화 - Mar. 결승전 [9] 코코슈8838 11/03/22 8838
177 Mr.Waiting - last [4] zeros9780 10/08/13 9780
176 Mr.Waiting - 15 [1] zeros8000 10/08/10 8000
172 Mr.Waiting - 14 [1] zeros7206 10/08/06 7206
171 Mr.Waiting - 13 [2] zeros6395 10/08/03 6395
170 Mr.Waiting - 12 zeros6643 10/07/30 664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