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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7/20 11:52:14
Name meson
Subject [일반] [역사] 이순신은 정말 무패(無敗)했는가? (1) (수정됨)
한국사의 위인 중 가장 논하기 조마조마한 사람은 아마도 이순신입니다.

여기서 조마조마하다는 것은 후폭풍이 두려워 함부로 논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했다가 실제로 흠결을 발견하게 될까 두렵다는 뜻입니다.
다른 많은 분들에게 그러하듯이 이순신 ‘장군’은 제게도 성웅이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그런 ‘흠결’의 후보들을 찾아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 것을 알고 있어야 그 진위를 감별할 수 있고, 적절한 평가를 내릴 수 있고, 더 안정된 태도를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면, 1차 부산포 해전이 패전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웅포 해전이 패전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장문포 해전이 패전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2차 부산포 해전이 패전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왜교성 전투가 패전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노량 해전이 패전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저 전투들을 살펴보면, 교환비는 조선군이 늘 압도적입니다.
물론 승패는 교환비로 책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목표 달성 여부를 두고 책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런 주장하는 내용들을 들어보면, 부산포나 웅포나 장문포나 왜교성을 점령하지 못했기 때문에 패전이라고 합니다. 또 노량에서 일본군이 결국 탈출했으므로 패전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런 것일까요?
하나씩 세세히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1차 부산포 해전
1차 부산포 해전에서 조선 수군의 임무는 남해로 도망치는 적을 찾아내 섬멸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군이 후퇴하는 것도 아닌데 ‘도망치는 적’이 왜 나오느냐 하면, 이 당시가 바로 조승훈 명나라군의 평양성 공격이 있었던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고무된 선조가 1592년 7월 19일에 전교를 내리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 중국 군사가 이미 평양으로 전진하였으니, 결전의 시기를 미리 하삼도(下三道)에 하서(下書)하여 혹은 요격(徼擊)하고 혹은 후미를 공격하게 하라.
남은 적이 수로(水路)를 경유하여 가거든 영남 수사(嶺南水使)가 주사(舟師, 수군)로 추격할 것을 선전관을 보내어 속히 분명하게 통유(通諭)하라. ]
(선조실록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2507019_005)

물론 선조의 설레발과는 달리 조승훈의 명나라군은 평양성 함락에 실패합니다만, 조선 조정에서는 어째서인지 선전관을 보냈습니다.
그 선전관 안홍국(安弘國)이 이순신 장군에게 도착한 것이 8월 8일인 것으로 미루어 보면 중간에 명령이 수정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명령서는 (전문이 전해지지는 않으나) 수전에 나서라는 내용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https://scholar.kyobobook.co.kr/article/detail/4010027549497)

또 경상우도 순찰사 김수(金睟)도 이 당시 이순신 장군에게 공문을 보냈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위로 침범한 적도들이 낮에는 숨고 밤에 행군하여 양산 및 김해(金海)강 등지로 잇달아 내려오는데, 짐을 가득 실은 것으로 보아 도망가려는 형적이 현저하다. ] (이충무공전서)

그러니까 정말로 일본군이 후퇴하고 있다는 말인데, 실제로 이때 일본군 병력이 경상남도로 이동한 것은 맞습니다. 다만 이 일본군의 남하는 사실 도망이 아니라 진주성 공격을 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진주성 근처에 일본군이 본격적으로 출몰하는 게 8월 중순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정보를 입수한 조선수군은 마침내 양산과 김해강 하구를 목적지로 잡고 출전하게 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해전의 목표는 처음부터 조·명 육군의 공세를 전제로 한 퇴로 차단과 섬멸이었고 상륙전이나 공성전은 계획에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장계는 이를 확증해 줍니다.

[ 각 도에 가득 찬 적들이 날이 갈수록 점점 내려온다 하므로 그들이 도망해 갈 시기를 이용하여 수륙으로 합공하려고 본도(전라도) 좌·우도의 전선 74척과 협선 92척을 모두 갑절이나 엄하게 정비하여 (···) ] (부산파왜병장)

그런데 김수가 준 정보와는 달리 양산과 김해강 일대에는 왜선이 6척밖에 없었고(이 왜선들은 물론 만나자마자 섬멸됩니다), 그 전에 만난 탈출포로 정말석(丁末石)이라는 사람이 왜선들이 다 ‘몰운대 바깥바다’로 도망갔다고 알려줍니다.
그래서 몰운대 바깥바다(=부산 쪽)로 가 보니 왜선들이 조금씩 더 있어서, 조선수군은 계속 동진하면서 24척을 추가로 격파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부산포 바로 앞인 절영도까지 가는데, 거기서 정탐해 보니 부산 앞바다에는 500여 척의 왜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왜선들은 원래 격파하려고 했던 도망치는 왜선이 아니라, 부산포에 주둔하고 있던 왜선들입니다. 물론 양산과 김해강을 따라 내려온 왜선들이 최근에 합류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본래의 작전 목표와는 다른 대상이죠. 이 때문에 수사들은 해상에서 작전회의에 돌입합니다. 목표를 변경할지 말지 논의한 것이겠죠. 그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곧 원균, 이억기 등과 약속하기를, “우리의 군세로써 만일 지금 공격하지 않고 군사를 돌이킨다면 반드시 적이 우리를 멸시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하고, 독전기를 휘두르며 달려갔는데 (···) ] (임진장초)

조선수군은 그렇게 달려들어가서 왜선을 104척 이상 격파하고, 일본군을 셀 수 없이 많이 활로 쏘아 사살하고, 하루 종일 부산포를 휘젓다가 돌아옵니다.
신기하게도 일본군은 500여 척의 함대가 있었음에도 해상백병전을 시도하지 않고 (심지어 사방에서 달려들기 좋은 항구 지형인데도) 대다수가 야산으로 도망가 6개의 무리를 이루고 화살과 철환만 쏘았다고 합니다.

이걸 두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해전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일본 수군이 이순신 장군을 두려워해서라고도 하는데, 사실 전자는 후자의 핑계로 아주 적절해 보입니다.
어쨌든 일본군 주력이 육지만 지키고 있자 조선수군도 굳이 더 들어가지 않고 왜선만 깨고 빠지는데, 장계를 보면 이순신 장군의 당시 생각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 육전에서 크게 물러나오는 날을 기다려 경상 감사 등과 수륙으로 함께 진격하여 남김없이 섬멸하여야 하기 때문에 9월 2일에 진을 파하고 본영으로 돌아왔습니다. ] (부산파왜병장)

이것이 바로 1차 부산포 해전입니다.
여기까지 읽고 생각해 보면, 이 해전은 부산포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부산포에 정박했던 왜군 함대를 공격한 전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마저도 원래 목표는 아니었고, 기왕 부산포까지 온 김에 조선수군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해 한 번 두들기고 나온 것이었죠.

결국, 1차 부산포 해전이 패전이라는 말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같은 전과를 일본 수군이 거두었다면 대대적으로 포상을 받았을 것이고, 실제로 350년 뒤에 진주만을 치고 빠진 일본군들은 대영웅 취급을 받았죠. 그런 점에서 보자면, 오히려 부산포 해전이야말로 이순신 장군의 임진년 최대 전공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니미츠 제독 역시 일본군의 ‘대패’ 사례로 1차 부산포 해전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https://www.nytimes.com/1944/10/10/archives/nimitz-startles-reporters-with-communique-of-victory-off-korea-adds.html)


2. 웅포 해전
1차 부산포 해전과 마찬가지로, 웅포 해전에서도 수군의 임무는 해상에서 적의 퇴로를 끊고 섬멸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군이 후퇴하는 것도 아닌데 왜 또 퇴로부터 끊느냐 하면, 이 당시가 바로 이여송 명나라군의 평양성 탈환이 있었던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방 한양이 탈환되고 일본군은 다 후퇴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고무된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게 연거푸 명령서를 보내서 후퇴하는 일본군을 바다에서 섬멸하라고 주문합니다.(https://sillok.history.go.kr/id/kna_12601009_006)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이후 보고한 내용을 보면 이것이 웅천 해전의 원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명나라 대장 이 제독(李如松)이 수십만의 정예 군사를 거느리고 방금 왜적을 탕평할 계획으로 기성(평양)·해서(황해도) 및 서울을 차례로 수복했는데, 대군사가 진격하면서 마구 무찌르면 남은 왜적들은 도망쳐 돌아갈 것이므로 적의 돌아갈 길을 끊고 섬멸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니, 경은 수군을 거느리고 기회를 잡아서 길목을 누르고 협력하여 적을 무찔러 죽이도록 하라. ] 
(난중일기 http://www.choongmoogongleesoonsin.co.kr/sub_04/sub_04_01_02.asp?boardidx=166&mod_yy=1593&mod_mm=1)
[ “명나라 군대가 평양의 적을 소탕한 그 뒤를 이어 바다 길로 도망치는 적을 차단하여 요격하라”는 일로 선전관 채진과 안세걸 등이 5일 동안에 두 번이나 왔으므로 신은 수군을 독촉하여 거느리고, 지난 2월 6일 배를 띄웠습니다.
(···) 그런데, 웅천의 적들이 부산으로 가는 길목을 차지하고 험한 곳에 웅거하여 배를 감추고 소굴을 많이 만들었는지라, 부득이 먼저 이 적을 제거하고 부산으로 진격해야 하므로 (···) ]
(임진장초)

이를 보면, 이순신 장군의 원래 목표는 부산 앞바다의 봉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선조 말대로 일본군이 곧 퇴각한다면 대다수는 부산을 통해 후퇴할 것이므로, 부산을 미리 막는 것이 사리에 맞긴 합니다.
그런데 그 길목에 웅천(웅포)이 있으니 먼저 웅포부터 공격한 것이 바로 웅포 해전입니다.
뒤에 적을 두고 부산을 봉쇄할 수는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1달 동안이나 웅포 주위에서 기동하며 미처 도망치지 못한 왜선들을 분멸하고, 일본군이 요새에 틀어박혀 있자 유인책을 써서 끌어내 또 왜선을 깨뜨리고, 웅포에도 한번 쳐들어가 섬멸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등 열심히 해전을 시도했습니다.(http://www.choongmoogongleesoonsin.co.kr/sub_04/sub_04_02_02.asp?strpage=3&boardidx=40&boardtype=33)

하지만 일본 수군이 한사코 정박해 있기만 할 뿐 싸워주지 않았기 때문에, 섬멸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 번은 상륙작전으로 시선을 분산해 가며 크게 쳐들어가서 ‘거의 섬멸’할 뻔하기도 했지만, 1달 동안 51척이나 격파했음에도 여전히 일본군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당시 웅천, 웅포 일대에는 일본군이 1만 6천 정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육군을 포함한 숫자입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조선(혹은 명나라) 육군이 이들을 쫓아내지 않는 이상 일본 함대가 계속 안전한 곳에 숨어서 싸움을 회피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육군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 대체로 육군이 아니고서는 결코 적을 몰아내기 어려우므로 적의 기세가 꺾인 기회를 이용하여 육군과 수군이 한꺼번에 공격하려고 경상우도 순찰사 김성일에게 두 번째로 육군의 지원을 요청한 즉, “명나라 군사를 대접하는 일에 경황이 없고 또 남아 있는 군사도 없으므로 첨지 곽재우를 시켜 먼저 창원을 무찌른 다음에 웅천으로 진격하라고 지시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적을 완전히 토멸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 ]
(임진장초)

조선군뿐만 아니라, 명나라군 역시 평양탈환 이후로는 잘 이기지도 못했고 미적거리기에 바빴습니다.
게다가 조선수군은 머지않아 일본군이 후퇴할 기미가 생각보다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 포로되었다가 도망해 돌아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여러 곳의 왜적이 증가는 했어도 감소되지는 않았으며 소굴도 전보다 배나 더하여 바다를 건너갈 계획이 없는 것 같다.”
라고 하므로 그 허실을 알아보고자, 육지 쪽 김해·웅천 등지로 적세를 탐지하려고 순천 군관 김중윤·흥양 군관 이진·우도 각 포구의 군관 등 8명을 정해 보내었던 바 (···) 적들의 정황을 보면 겨울을 지낼 뜻이 현저하오니 더욱 통분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적들이 소굴 속에 있으면서 서로 소리를 지르며 지원하는지라, 수군만으로는 무찌를 방책이 없고 부득이 바다와 육지에서 함께 공격하여야만 쳐서 무찌를 수 있겠으므로 우리나라 육군과는 서로 공문을 돌려 약속하였거니와 명나라의 대군과는 지원을 요청할 길이 없으니 매우 답답한 일입니다. ]
 
(임진장초 http://www.choongmoogongleesoonsin.co.kr/sub_04/sub_04_02_02.asp?boardidx=50&strPage=4&boardtype=33)

결국 소문과 달리 명나라군이 안 오고 일본군도 후퇴하지 않자, 조선수군이 농번기가 임박했음을 고려해 돌아가면서 웅포해전은 종료됩니다.

만일 선조의 생각처럼 일본군의 전면적 퇴각이 있었다면, 당연히 웅포의 일본군도 부산 방면으로 (혹은 남해로) 후퇴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도망나오는 왜선들이 있었다면, 조선수군이 어렵지 않게 섬멸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부산까지 봉쇄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정의 명령서대로 돌아가는 일이 하나도 없었고, 따라서 명나라군의 남하와 일본군의 총퇴각을 전제로 수립된 전술 목표도 수정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산까지 가서 퇴로를 차단하는 것에서, 웅포 일대를 압박하는 것으로 말이죠. 그렇게 본다면 51척 격파는 분명 큰 전공입니다.

물론 비판적으로 본다면, 어쨌든 ‘무리한 명령 때문에 당초의 목표달성에는 실패’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도 이순신 장군에게 책임소재가 있지는 않으므로, 크게 거리낄 것도 사실 없고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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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왠지 모르게 길어졌네요. 이 이상 적으면 볼륨이 너무 커지니 남은 내용은 글을 새로 파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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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0 12:12
수정 아이콘
충무공은 무패가 맞죠
조선군의 전체적 역량이 못 따라 갔을뿐입니다
라이징패스트볼
22/07/20 12:14
수정 아이콘
혹시 군사학, 혹은 전쟁학에 대해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군사작전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전투와 전쟁의 승리와 패배가 어떻게 규정되는지 궁금하네요.
지금 딱 드는 생각은 군사작전의 실패 = 전투에서의 패배라는 등식이 성립하는가?인데 왜냐면 상대 입장에서도 군사작전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가 있을 테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보통은 간단하게 사상자의 교환비로 승리와 패배를 가늠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22/07/20 12:35
수정 아이콘
전술적 승리, 전략적 패배인 경우는 제법 많죠
하지만 저런 말도 안되는 연합작전은 논외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일 전장도 아니고 5G 무선 통신이 되는 상황도 아니죠
22/07/20 13:12
수정 아이콘
저도 교환비로 가늠하는 것이 일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럴 경우 전쟁은 목표달성으로 승패를 따지는데(임진왜란의 경우) 전투는 교환비로 따져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22/07/20 13:16
수정 아이콘
일단 먼저
[군사작전의 실패=전투에서의 패배]
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굳이 따지면 군사작전의 실패>전투에서의 패배(즉, 전자는 후자의 필요조건이라고 할까요)라고 볼 수 있죠.

작전에 실패하였다고 반드시 전투 패배로 규정할 수는 없는게, (특히나 국지적인)작전에는 실패했지만 딱히 승부가 나지 않았던 전술적 전투는 인류 역사상 수도 없이 많습니다. 다만 전투에 패배하는 상황의 거의 대부분이 작전의 실패에서 초래되는 만큼,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는 있다고 볼 수 있죠.

풀어 말하면 작전 실패는 전투의 패배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하지만 반드시 연결되지는 않음), 반대로 전투의 패배는 대부분 작전의 실패에서 기인한다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작전이 성공했는데도 패배하는 경우도 희귀하지만 있기는 합니다. 보통 작전목표 자체가 무리가 있다던가, 혹은 너무나도 큰 희생을 치른 피로스의 승리로 인해 작전 종료와 동시에 동력을 잃고 공세종말점에 빠져 역공당한다던가 뭐 이런 케이스가 많죠)

[군사작전의 상공과 실패]
이 부분은 간단합니다. 작전 수립시 어떤 작전이든 목표를 수립하기 마련이고(xx고지의 점령이라던가, 적 xx부대의 섬멸이라던가, 적성부대를 xx에서 몰아낸다던가 등등), 작전 결과 이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볼 수 있죠.
앙겔루스 노부스
22/07/20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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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핵심은 언제나 작전 목적, 전략적 목표를 달성했느냐 못했느냐죠. 본문의 경우라면 전략목표를 달성 못한건 맞습니다만, 그 전략목표 달성 실패의 책임은 이순신에겐 전혀 없다, 라고 해석하는게 맞습니다. 그리고 작전목표의 달성여부와 무관하게, 적의 전력감소를 - 다른 부담이나 지출없이 이뤄냈다는 것은 언제나 바람직한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군공으로만 보면 이순신은 큰 군공을 세웠죠.
young026
22/07/21 22:13
수정 아이콘
'작전'의 성패는 전략목적이 아니라 작전목적의 달성 여부로 평가해야겠죠. 그리고 어느 단계이든 간에 목적 달성에 실패했을 경우 실패자는 계획을 수행한 사람이 아니라 목적을 입안하고 결정한 사람일 겁니다.
22/07/20 12:35
수정 아이콘
역알못1인으로 보통 이순신 장군관련 글을 보면

Q 무패였는가?
A 응 무패야... 그리고 이런 것도 있어...

느낌인데... 이글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펠릭스
22/07/20 12:37
수정 아이콘
당시 기록을 보면서 단 한번도 패배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데 이런 관점도 있군요.
22/07/20 12:39
수정 아이콘
예전 충무공 드라마 할 때 나왔던 22전 22승 운운하던 건 좀 지적할 여지가 있어보입니다만 무패는 맞다고 봅니다.
22/07/20 13:14
수정 아이콘
저도 '흠결' 자체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열혈둥이
22/07/20 13:05
수정 아이콘
전략적 목표를 (이런저런 상황에 의해) 달성하지 못하였다.
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갈리겠지만.
이걸 패 로 규정짓는건 힘들지 않나. 하는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뒹굴뒹굴
22/07/20 13:11
수정 아이콘
지휘권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로 판정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조 - 패배
이순신 - 승리
사실 영향 범위를 너무 늘리면 예를들면 시간축까지 길게 늘리면 일본은 다 패배, 조선은 다 승리라는 관점도 가능해집니다.
22/07/20 13:16
수정 아이콘
뭐 바다 위에서 이겼냐 졌냐로 따지면 무패가 맞긴 합니다. 공성전이 임무였다고 보기는 어렵기도 하고...
22/07/20 13:25
수정 아이콘
엄밀하게 따지면 웅포해전(사실 전 이 명칭은 잘못되었다고 보는게 웅포해전은 단순히 전술적인 상황에서 발생한 국지전에 불과하다고 보고, 전략적으로 보면 부산 탈환&봉쇄작전이라고 봐야한다고 봅니다)은 전략적으로는 조선&명 연합군의 패배는 맞다고 봅니다.

결국 전술적으로 일본의 수군에 어느정도의 타격은 입혔지만 결정적인 타격은 입히지 못했고, (육군의 태만이 원인이기는 합니다만)부산 진군도 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일본군의 퇴각도 일어나지 않는 등 전략적인 목표는 뭐 하나 달성한 게 없거든요.

다만 본문 말씀대로 이걸 이순신의 패배로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만, 전 약간 시각이 다른게 애당초 이 전역을 단순 “웅포 해전”으로 한정짓는게 아니라 “부산지역 탈환 및 퇴각하는 일본군 섬멸”이라고 넓게 해석하면 이순신은 단순히 해군 사령관에 불과하고 총책임자의 위치라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해석한다 한들 육해군 공동작전의 해군측 지휘관 정도라고 봐야하죠. 따라서, “애당초 총책임자의 위치에 있지 않던 이순신을 이 전역에서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그의 책임으로 봐야 하는가”에 부정적이다, 뭐 이런 시각으로 해석하는 편입니다.
22/07/20 14:20
수정 아이콘
저 주장들중 노량해전은 탈출하려는 상대를 공격해 교환비좋게 피해입혔으면 승리한거지 피해입고 탈출한쪽이 승리라는건가요?
22/07/20 14:23
수정 아이콘
다이묘는 탈출했으니 작전성공 아니냐는 말이 있긴 합니다. 노량 해전에 대해서도 곧 글을 쓰게 될 것 같습니다.
12년째도피중
22/07/20 14:47
수정 아이콘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말을 고르고 또 고르시는게 느껴져서, 이순신 관련은 언제나 어렵구나 생각합니다. 역사계 2대 성역이기도 하고요.
저 역시 22전 22승 식의 프레임은 억지라고 보고 혹여 패전이 있더라도 거기에 이순신의 책임이 막중하다거나 그러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 전선에서 소환된 후의 롬멜이나 자마회전 당시의 한니발마저 동정적 시각이 가득한데 하물며 이순신이야...
모든 전투가 항상 승패가 뚜렷하게 결정되는 것이 아닌 이상 애매한 영역은 있게 마련이지 않습니까. 그걸 극단적으로 승패로 못가르면 안달내는 사람들의 태도가 문제죠. 뭔가 극단적으로 만들어야 컨텐츠가 되니까 그런 거겠지만요.
22/07/20 15:59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것처럼 이순신에 대한 시각은 어째 극과 극으로 나뉘는 듯합니다. 저는 뭐 한없이 올려치는 건 바람직하지는 않아도 이해는 할 수 있는데, 한없이 내려치는 사람들도 있어서 좀 놀랐습니다.
kartagra
22/07/20 14:59
수정 아이콘
전술적(Tatical) 단위에서의 승리.
작전(Operational) 단위에서의 승리(전구나 전역).
전략(Strategic) 단위에서의 승리.

각각 구분해서 볼 필요는 있습니다.
이순신의 승리를 얘기할 때는 보통 전술적 단위에 한정지어서 얘기하는 경우가 많죠.
왜냐면 전역 단위부터는 이순신보다 윗선 라인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전략'단위는 군사적으로 보면 애초에 훨씬 큰 개념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전략이라고 말할 때는, 작전(Operational) 수준인 경우가 많아요.

이라크전 미국을 예로 들면 간단합니다.
이라크전 미국은 전술, 작전 단위에서 전부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라크에 본인들이 원하는 정권을 제대로 구성한다는 전략 단위에서는 패배했죠.

임진왜란을 예로 들면.
웅포 해전의 전술 단위에서 이순신은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조명 연합군은 육군의 태만으로 웅포 전역에서 목표를 달성하는데는 실패한 거죠.
작전 단위에서는 패전이라 해도 무방합니다만, 패배도 또 다 같은 패배는 아닌지라 저 전술 단위에서라도 승리해서 조선도 전략 단위에서 얻어가는 건 있었다 정도.
-안군-
22/07/2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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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때의 기록들을 봐도, 중공군 참전 이후의 대부분의 전투들은 UN군과 중공군의 교환비로만 따지면 언제나 UN군의 압승으로 봐야 하지만, 고지점령에 실패했다거나 전선에서 물러나는 등의 패배는 여러번 있었죠. 단순 교환비로만 전투의 승패를 따지는 건 전쟁을 너무 단순화 시키는 거라 봅니다만...
이순신 장군은 진 적이 없다고 봅니다. 적어도 이순신 장군이 지휘했던 조선수군만 놓고 본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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