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수학 여행을 제외하면
생전 처음으로 내가 사는 곳을 벗어난
객지 생활 그 자체였다.
그리고 까마득한 미래긴 하지만
분명히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사전적 의미의 여행에 부합하기는 했다.
그러나 전역자라면, 그리고 현역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군대 생활을 여행이라는 단어로 정리하기에는
너무나 기괴하고 적응하기 힘든 시간이었다.
괴로울 고 자를 써서
고행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할 듯 싶다.
잊을 수 없는 낯선 천장,
입소 후 첫날밤 보충대 생활관의
붉은 취침등으로 시작된 나의 여행,
인지 고행인지 모를 시간 중 만난
그 사람.
보충대에서 육군훈련소로 이동하는 날
쩌렁쩌렁하게 고함을 지르며
훈련병들 줄을 맞추던 조교들 사이로
말없이 우리를 보고만 있던 훈련소 소대장님은
적어도 겉보기에 나이가 꽤 많았다.
옆 소대 소대장보다도,
중대장보다도 늙어 보였고
그만큼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이 사람은 첫날부터
다른 간부들이 하지 않는
특이한 행동을 했다.
그 소대장님은 우리들 훈련병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다들
기억하실 그 요상한 의식,
'이 식사는 우리 부모님의
피땀어린 세금으로 마련된 것이므로
남김없이 감사히 먹겠습니다'
도 함께 합창하며,
소대장님은 훈련병들과 같이 밥을 먹었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 말을 걸었다.
111번 훈련병, 어디 아픈 데는 없어?
112번 훈련병, 아까 복귀하다가 넘어지던데 괜찮아?
113번 훈련병, 너 목소리 엄청 크더라, 밖에서 뭐 했냐?
그 시절 훈련소에서
식사 시간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잡담을 하는 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는데
같이 밥 먹던 소대장님은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고
우리는 이야기를 했다.
엄청나게 살가웠거나 특별한 상담이 되거나
소원풀이스러운 내용이 오가는 그런
깊은 이야기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평생 당연하게 누려 왔던
식사 중 대화할 권리, 아니
마음껏 입을 열 권리를
군대 입소와 동시에 박탈당했던 나와 동료들에게
그런 소대장님의 행동은 아주 색다른 경험으로,
그리고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어른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하루 종일 하늘 같은 조교들 지시에 꼼짝 못 하고
구르고 뻗치고 시달리다 보면
아 우리 훈련병들은 인간이 아니구나 싶었는데,
소대장님은 우리를 그렇게 인간으로 대접해 줬다.
소대장님이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다 우리와 함께 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은
외부 교장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여 먹는 저녁 식사 때면
소대장님은 늘 병사들과 함께 있었고
아참, 그분은 하루도 빠짐없이
맨 마지막으로 밥을 먹던 훈련병의
뒤에 줄을 서서 자기 밥을 받았다.
간부가. 병사들 맨 뒤에서. 병사들 다 먹고 남은 밥을.
나는 그 분 이후 단 한 번도
이렇게 행동하는 간부를 본 적이 없다.
나중에 전역하고 갓무위키를 보다 보니
중국의 오기, 독일의 롬멜, 그리고
한국의 채명신 장군 같은 분들이
이렇게 행동했던 덕장(德將)이라 카더라.
사실 지금 이 글 쓰면서 찾아본 거 맞다.
어느 날은 제육볶음 류의
병사들이 환장하는 고기 반찬이 나왔는데
배식 담당하던 훈련병들이 배식에 실패하여
급식이 끝나기도 전에 고기가 다 바닥나 버렸다.
나를 포함하여 뒷줄에 선 훈련병들은 x발x발 했지만
별 수가 없으니 그냥 지나갔고
배식 담당 훈련병들도 미안하긴 했겠지만
군대가 다 그렇듯이 그냥 그러려니 했을 거다.
그러다 맨 뒤에 서 있던 소대장님이
반찬 받을 차례가 되어버렸다.
소대장님이 고기 반찬을 못 먹게 되었다는
황당한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자
배식을 담당하던 훈련병들은 소대장님을 앞에 두고
말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자 소대장님은 가타부타 말이 없이
휘적휘적 식당 안쪽 취사장으로 들어가더니
옆구리에 고기가 가득 담긴
스댕 반찬통을 끼고 나왔다.
그러더니 국자를 높이 들고
'아까 고기 못 받은 애들 손 들어!'를 선언,
뒤에 와서 고기 못 받았던 애들이
앞서서 고기 받은 애들보다 더 양껏 먹을 수 있었던
황홀한 잭팟을 선사해 주셨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행동들이라도
훈련소에서 지내던 5주 내내
한결같이 훈련병들을 앞세우고 배려하던
소대장님의 태도는
그 이후 내게 아랫사람을 대하게 될 때마다 기억나는
하나의 롤 모델로 자리잡았다.
옷입고 밥먹고 잠자는 평범한 일상을
인생 처음으로 제한당하며 지내야 했던 기괴한 여행.
무엇 하나 내 맘대로 되는 일 없이
매일같이 체력과 정신력의 압박을 느끼던
고된 여행길의 시작에
처음 만난 간부가 다행히도 그런 분이었다.
안타깝고 x같게도
자대에 배치받고 나서 만났던 간부들 대부분이
존경할 구석을 찾기 힘든 노답들이었다.
건빵이나 라면 보급 들어오면
당연한 듯이 빼돌리던 보급관,
내가 위병조장 서는 날이면 날마다
퇴근시간 조작하라고 시키던 행정관,
부대에 지가 키우던 진돗개 데려와놓고선
타 부대로 갈 때 버리고 가던 중대장,
하루가 멀다 하고 병사들 패고 갈구다
결국 고발당해서 진급까지 막히던 탄약반장......
다들 참 못난 군인들이었다.
그러나 그 분,
훈련소 식당 앞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훈련병들의 맨 뒤에 슬그머니 와서
앞에 선 병사 어깨를 주물러주며
'야! 다들 앞에 선 애 어깨 주물러 줘!'
라던 그 소대장님 덕에
군생활 동안 내 평생의 등불이 될
소중한 기억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자대에서 풀린 군번으로
6개월 넘게 왕고 노릇을 하면서도,
전역하고 사회에 나와서
동생들이나 후배들을 대할 때도,
그때 그 소대장님의 10%, 1%라도 닮을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며
만나는 인연들을 대하려 나름 애썼다.
아 근데 밥을 맨날 맨 뒷줄에서 먹는 건 정말
소대장님 같은 성인군자들이나 가능하시지
나 같은 식충이는 도저히 못 할 짓이더라 ㅠㅠ
주워듣기로는 소대장님의 저런 모습이
어렵고 유식한 말로
Servant Leadership이라던가
섬기는 리더십이라던가 뭐라던가
그런 멋진 말로 불리우는 듯 하다.
소대장님,
지금 어디에 계시든, 무엇을 하고 계시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소대장님 덕분에 제 군생활이
그저 x같기만 한 고행이 아닌
나름 보람차고 배울 점 있었던
여행이 되었습니다.
(진심을 담아)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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