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11/27 09:55:10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문화]1825년 12월 혁명을 다룬 러시아 영화 (수정됨)
Union of Salvation (2019) — The Movie Database (TMDb)

구원의 동맹(Union of Salvation)은 젊은 러시아 장교단이 주축이 되어 혁명 혹은 쿠데타를 일으켜 러시아에 입헌군주정 또는 공화국을 세우고자 했던 조직입니다. 이들 중 다수는 1814년 나폴레옹을 무찌르고 파리를 점령한 영웅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받은 장교단들이었습니다. 

지난 2019년에 러시아에서 이들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를 제작했더군요. 

유튜브에 본 영화 전체가 올라와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영어자막이 되어 있는데 누가 번역했는지 자막이 완전 엉망진창이어서 대사는 사실 한 50%밖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 그런데 대강 흐름은 파악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지. 

일단 소감은 "와 역시 러시아는 문화강국이구나" 

영상미가 나름 훌륭하고, 음악도 적절합니다. 특히 19세기 초 상크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습을 아주 훌륭히 재현했는데, 정말 아름답습니다. 사실 과거 상크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한 적이 있는지라, 곳곳에 나오는 장소들이 어디인지 알아볼 수 있어서 나름 반갑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상당한 수준입니다. 러시아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함에도 주인공들의 감정이 잘 전달되는 걸 보면 말이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순수한 이상주의자 세르게이 이바노비치 무라요프입니다. 
주프랑스 러시아 대사의 아들로, 어려서 나폴레옹이 지배하던 프랑스에서 교육받은 젊은 엘리트. 
1814년 파리 점령군으로 프랑스에 돌아오는데, 그는 샴페인 상자를 들고 알렉산드르 황제의 사열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젊은 장교단은 황제와 함께 건배를 할 마음에 들떠있었는데...
황제는 그를 보고 그저 무심하게 지나갑니다. 

그 이후부터 젊은 장교단은 비밀조직을 결성하여 황제를 암살할 음모를 꾸미게 되는데,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고...

그런데 1825년 기회가 찾아오게 됩니다.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갑자기 서거하고 누가 차기 황제가 될 수 있는지 불분명한 상황. 
서열상 콘스탄틴 로마노프가 황제가되어야 하나, 한참 동생인 니콜라이 로마노프도 황제 계승권자입니다. 
사실 콘스탄틴 로마노프는 제위를 거부하고 동생인 니콜라이에게 양위를 했는데 니콜라이는 병사들에게 인기가 없는 인물입니다. 

이에 혁명 주모자들은 이를 모른 척하고 1814년 파리 점령 당시 활약한 콘스탄틴이 정당한 황제라는 명분으로 봉기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상크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서 전형적인 19세기 초 보병진열을 갖추어 도심에서 야전진형을 전개합니다.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인데, 18~19세기식 전투를 훌륭히 고증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열 유지가 왜 중요한지, 진형이 어그러지면 왜 삽시간에 부대가 엉망진창이 되는지 꼼꼼하게 보여줍니다. 
한편 사격형 보병 부대에 가해지는 대포의 위력과 살상력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도 보여줍니다. 

혁명의 주모자들은 어제의 동료들이 심지어 도심에서 대포까지 동원해서 자기들을 공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니콜라이 황제는 대포 발사 명령을 내리고, 일선 병사들이 머뭇거리자 황제파 장교가 직접 대포에 불을 붙입니다. 

아래 영화 포스터가 대포의 위력 앞에 무너지는 보병대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Union of Salvation (2019) - Filmaffinity 

결국 봉기는 실패하고 주모자 5명은 교수형에 처해지는데 

주인공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마지막 순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1814년 파리 입성을 회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환상 속에서 알렉산드르 황제는 장교들이 건내는 샴페인 잔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건배를 외치고
항상 차가운 표정을 지었던 왕자 니콜라이 또한 미소를 지으며 병사들과 어울립니다

사실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정치적 메시지가 들어 있는 영화입니다. 혹평하는 자는 푸틴 정부의 프로파간다라고까지 얘기하는데, 왜냐하면 결국 자유를 울부짖으며 무턱대고 일으킨 봉기가 수많은 병사들의 희생을 초래하고, 전우들을 갈라놓고 또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좋은 의도였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났다가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인데, 이러한 메시지는 1989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프랑스 혁명에 대한 영화도 마찬가지로 담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 러시아에서 혁명을 다루는 사극들이 대체적으로 이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푸틴 정부의 의중이 물론 어느 정도 담겨있습니다만, 재미있는 건 노골적이며 유치한 이분법적 선악이 아니라 모두 각자의 명분과 대의를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게 흥미롭습니다. 트로츠키를 다룬 사극이나, 또는 적백내전을 다룬 사극에서 모두 공통으로 나타나는 주제의식입니다. 물론 뉘앙스는 결국 혁명을 일으키는 자들이 더 잘못했다는 쪽으로 흘러갑니다. 

한편 이는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스탈린을 격상시키면서 동시에 러시아 혁명을 부정하는 푸틴의 양가적인 감정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도 현대 러시아의 특이하고 재미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원더보이
20/11/27 13:33
수정 아이콘
재미있겠네요.

완벽한 영어자막은 어디서 구할 수 있죠?
aurelius
20/11/27 14:05
수정 아이콘
그나마 자막을 제대로 보려면 데스크탑에서 러시아어 자동 자막 -> 영어 자동번역 이렇게 설정하면 좀 낫더라구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원더보이
20/11/27 14:19
수정 아이콘
예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평소에도 글 잘 읽고 있습니다.
20/11/27 15:25
수정 아이콘
글 주제와는 틀리지만.. 최근 넷플릭스에서 '안드로이드 그녀'라고 러시아 드라마 첨봤는데 어설픈 점도 많았지만 극을 이끌어 나가는 힘도 대단하더라고요... 재미있게 봤습니다.
훈수둘팔자
20/11/27 15:59
수정 아이콘
글 마지막 푸틴의 심리는 결국 러시아계 나라(소련을 위시로 하는)가 강한건 좋은데 사회주의 이론은 싫다는 심리 같은...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274612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40986 10
공지 [일반] [필독] 성인 정보를 포함하는 글에 대한 공지입니다 [51] OrBef 16/05/03 462930 29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37065 3
102662 [정치] 수능 지문에 나온 링크에 정치적 메세지를 삽입한 건 [22] 설탕물4534 24/11/14 4534 0
102661 [일반] 4만전자가 실화가 됐네요 [157] This-Plus6892 24/11/14 6892 4
102660 [정치] 이준석 : "기억이 나지 않는다" [285] 하이퍼나이프13506 24/11/14 13506 0
102659 [일반] 100년 전 사회과부도 속의 유럽을 알아보자 [24] 식별3901 24/11/14 3901 14
102658 [일반] 올해 수능 필적 확인란 시: "하나뿐인 예쁜 딸아" [26] 해바라기4354 24/11/14 4354 30
102657 [일반] PGR게시판의 역사(2002년~지금까지) [9] 오타니1372 24/11/14 1372 12
102655 [일반] 우리나라는 서비스를 수출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34] 깃털달린뱀3366 24/11/14 3366 4
102654 [정치] 尹 골프 갑작 방문에 10팀 취소시켜…"무례했다" [90] 전기쥐6437 24/11/14 6437 0
102653 [일반] 글래디에이터2 감상평(스포무) [11] 헝그르르1956 24/11/14 1956 1
102652 [일반] 바이든, 임기 종료 전 사퇴해 해리스를 첫 여성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76] 뭉땡쓰9711 24/11/13 9711 12
102651 [일반] 유게 폐지 내지는 명칭 변경을 제안합니다 [216] 날라8696 24/11/13 8696 19
102650 [정치] 조국, 증시 급락에 “금투세 폐지하자던 분들 어디 갔느냐” [160] 갓기태9804 24/11/13 9804 0
102649 [일반]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이유 + 적립식 S&P500 투자의 장단점 [81] SOXL7571 24/11/13 7571 47
102648 [일반] 맥주의 기나긴 역사 [6] 식별2708 24/11/13 2708 19
102647 [정치]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대통령 욕하는 사람의 정체는?? [112] 체크카드10653 24/11/13 10653 0
102646 [일반] [속보] 트럼프, '정부효율부[DOGE]' 수장에 일론 머스크 발탁 [124] 마그데부르크9865 24/11/13 9865 0
102645 [일반] 서울사립초 규정어긴 중복지원 논란 [17] Mamba4612 24/11/13 4612 2
102643 [일반] 위스키와 브랜디의 핏빛 역사 [14] 식별3527 24/11/12 3527 37
102642 [일반] 경고 없는 연속 삭제는 너무 한 거 아닌가요? [210] 지나가던S13518 24/11/12 13518 9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