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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10/16 19:23:07
Name 귀여운호랑이
Subject [일반] 가정법 사회
-제 블로그에 쓴 수필인데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그냥 같이 한 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네요^^

<가정법 사회>
"오늘 기분이 참 좋은 것 같아요"
"먹어 보니까 맛이 정말 좋은 것 같네요. 보기도 좋은 것 같고요. 그래서 지금 즐거운 것 같아요"

요즘 TV를 보다 보면 온통 '같아요" 투성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모든 문장의 종결은 '같아요'로 끝내는 게 표준어법이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즐거워도 즐거운게 아니라 '즐거운 거 같고 슬퍼도 슬픈게 아니라 슬픈 거 같다고 한다. 심지어 방금 맛 있는 음식을 먹고도 '정말 맛 있는 것 같다'고 하니 그 말을 하는 사람은 미각을 잃어버린 건가? 자기가 기쁜지, 슬픈지를 추측해야 하고 심지어 맛도 있는 지 없는 지 확신할 수 없는 사람들만 TV에 나오고 있다. TV에서 연예인들이 줄기차게 '같아요, 같아요'하다보니 일반 사람들도 이젠 말할 때 당연히 '같아요, 같아요'로 말을 끝낸다. 모두 자신의 기분이 어떤지를 도저히 알지 못 해서 '혹시 내가 지금 기쁜 건 아닐까' 하고 가정해서 말해야 하는 바보들이 되어버렸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이것을 생각하면서 하루 정도만 TV를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 해보면 수 많은 가정법 종결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이런 '같아요' 홍수는 언제부터, 그리고 왜 시작되었을까? 10년 전쯤의 TV 자료를 구할 능력도 없고 사회심리학을 다룰 만한 능력도 없으니 그저 나름대로 추측해 보면 그 시작은 인터넷이 퍼지고 인터넷 기사에 댓글들이 활발하게 달리면서 부터가 아닐까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부터 신문 기사에 나오는 사람들, 특히 연예인 기사에 달리는 글은 반 정도는 악플이다. 연예인 기사의 경우는 '선리플 후감상'이 아니라 '선악플 후감상'이니 그 기사를 보는 연예인 본인의 마음은 오죽할까. 그러다 보니 그들은 댓글을 무서워 하게 되고 최대한 덜 욕을 먹을 수 있는 말을 찾아야 하고 그런 마음이 결국 자신도 모르게 '같아요'를 통해서 무언가 피할 구석을 만드는 식으로 나온 것 같다. 어떤 말을 확실하게 끝맺으면 기상천외한 이유로 욕을 해댈게 분명하니 '같아요'라고 말을 맺음으로써 '사실 내 생각은 정말 그렇다는게 아니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한 번 생각해 본 거였다. 오해다!'라는 정치인식 어법말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정치인들과 비슷한 어법을 써야 하는 연예인들을 생각하니 참 안스럽기까지 하다.

우리 사회는 이런 '같아요'의 홍수로 인해 이미 가정법 사회로 변해버렸다. 자신의 감정조차 믿지 못해 추측으로 이야기 해야 하는 사회는 결국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믿지 못 하는 사회가 될 수 밖에 없다. 말 그대로 '믿음 없는 사회'가 되버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믿는 사회가 인류 역사에서 언제 있었겠느냐만은 그래도 이런 '같아요'는 그나마 부족한 믿음조차도 지워버리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사람들이 사랑 고백을 할 때도 '내가 만약 어쩌면 혹시라도 너를 사랑하는 지도 모르는 것 같아'라고 하는 날이 올까봐 살짝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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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플토
08/10/16 19:32
수정 아이콘
'같아요' 라는 표현에 대한 얘기는 제가 10대때부터 있었습니다. 지금은 30대구요. 인터넷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abrasax_:Respect
08/10/16 19:36
수정 아이콘
'같아요'에 관해서는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나오는데, 잘못 쓰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게 사실이네요.

"안스럽기까지→안쓰럽기까지"로 써야 맞습니다.
귀여운호랑이
08/10/16 19:42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전 TV에서 그런 표현이 요즘들어서 유독 심해졌다고 느꼈습니다. 몇 년 전만해도 거의 의식을 못 했었거든요. 게다가 일상생활에서도 전 보다 그런 말이 많이 들렸고요. 그래서 요즘 들어 예전 보다 좀더 심해지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abrasax_:Respect님// 헉, 모르고 있었습니다. 국문과 출신인게 부끄럽네요ㅠ.ㅠ
slowtime
08/10/16 19:58
수정 아이콘
저는 It seems ~, I guess ~ 등이 떠오르네요. 인터넷 탓은 아닐 거예요.
그리고 '가정법'이란 표현은 글에서 얘기하는 주제와 별로 상관이 없지요. 우리말에는 가정법이란 것이 없고 영어의 가정법은 추측이나 짐작과는 무관하니까요.
08/10/16 20:01
수정 아이콘
저도 연예인들이 '같아요'라는 단어를 적절하지 아니하게 쓰는 상황에 대한 지적을 TV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80년대인지 90년대 초인지는 정확하게 기억 안 납니다만, 제가 그것을 본 시기도 구경플토님이 말씀하신 시기와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ComeAgain
08/10/16 20:03
수정 아이콘
감히 자신의 의견을 대놓고 표현 못 하는 사회이기도 하죠.

무슨 문제가 생기면,
순도 100% 내 생각이 아니라, 그냥 그런 거 같다는 거라니까.. 왜 그래~
이러면 되거든요.
삽마스터
08/10/16 20:49
수정 아이콘
저도 "~같아요"가 입에 붙었습니다. 단정적으로 말하는게 쉽지 않더군요.
"~같아요"가 "~네요" 보다 좀 부드러운 느낌이기 때문에 쉽게 쓰이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08/10/16 20:50
수정 아이콘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말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항즐이
08/10/16 20:51
수정 아이콘
우물쭈물하는 사람, 보기 싫죠 확실히.
차라리 주장을 지르고 부딪혀 깨질 수 있는 사람이 매력적입니다. 그런데 쉽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사는 인생이.

"눈치껏"이라는 말이 함축하는 한국 사회의 일상적인 정치성은 정말 많은 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08/10/16 21:01
수정 아이콘
하도 '같아요'라는 표현이 일상화 되어 쓰이는 까닭에, 추측성 표현을 최대한 지양하는 제 레포트와 발표는 내용상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어조상 스스로도 공격적으로 느껴지더군요. 사실 자기 주장이나 생각을 쓰면서 그런 추측성 표현을 쓰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인데 말이죠. 그래서 발표할 때는 이 부분을 미리 언급을 하고 시작합니다.
CoolLuck
08/10/16 21:21
수정 아이콘
'가정'이라는 단어를 잘못 이해하신 것 같아요.
Minkypapa
08/10/16 22:38
수정 아이콘
상사, 선배, 집안어른, 동네형, 인터넷 등등...
함부로 확언했다가 돌아오는 부메랑을 맞아본 사람들의 만병통치약이 되어버린 '~ 같아요'.
'같아요'를 많이 쓰는 사람과의 대화는 재미가 휠씬 덜합니다. 다 어디서 누가 했던 소리를 반복하는것 '같습니다!'
은유법보다는 더 확실한 직유법이지만, 말끝마다 하는분들은 귀가 좀 거슬리기는 합니다.
근데 가정법사회보다는 직유법사회/애매한사회 에 더 가깝지 않나요?

'오늘 오후엔 비가 올것 같습니다~ 혹시 모르니 우산을...' 하는 기상청멘트를 듣고 어이없었던 1인이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
08/10/17 08:59
수정 아이콘
Minkypapa님// 근데 비오는건 언제나 확률이 있으니 '비가 올것 같다'는 표현은 제대로 쓴거 아닙니까? .. 흠.
Minkypapa
08/10/18 06:09
수정 아이콘
율리우스 카이사르님// 아, 그때 분위기가 기상청이 며칠연속으로 못마추던 때라 그렇습니다.
전에는 '오늘은 비가 오겠습니다.'로 말하다가 며칠 틀리더니 '요즘 변덕스런 날씨로 힘드시죠. 오늘 오후엔 비가 올것 같습니다.....(생략)
이렇게 나가던거라 웃고말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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