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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9/05 20:53:06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원말명초 이야기 (16) 칼날 위의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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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간 주원장이 외지에서 승승장구를 하며 세력을 키워가는 동안, 호주에 남아있던 곽자흥은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었을까.



 시간을 다시 한번 과거로 되돌려보자. 가로가 호주를 공격하기 직전, 호주를 공동지배하고 있었던 5원수 중 손덕애를 필두로 한 4원수는 곽자흥을 심하게 견제했었고, 곽자흥은 이들의 정치적 공격에 시달려 성 내의 일상적인 군무(軍務) 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집에서 두문불출하게 됐다. 이후에는 조균용에게 납치까지 당해 죽을 뻔하기까지 했을 정도다. 



 그 이후의 극적인 변화라고 해봐야 주원장이 호주를 떠난 일 정도다. 현상의 유일한 변화가 자기 측근이 사라진 일이니, 결국 곽자흥의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악화일로만 걷고 있던 셈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주원장이 곽자흥의 곁을 떠난 몇 개월 뒤, 곽자흥의 신세는 비참한 수준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시점에서 호주는 외지에서 온 조균용, 팽대의 세력에 넘어간 것처럼 보인다. 부족한 정보와 기록 탓에 자세한 정치적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곽자흥은 물론이거니와 그와 한참 대립하던 손덕애 및 다른 원수들의 존재감은 이때에 접어들어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당시를 다룬 짤막한 기록 중 하나를 살펴보면,



 “곽자흥이 팽, 조에게 자신을 낮춰 굴복하다가, 마침내 그들의 지시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時子興屈己下彭、趙,遂為所制) (1)



 라는 구절이 있다. 이래서야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지도 알 수 없다. 직접적으로 ‘굴복 당했다’ 고 언급된 곽자흥 외에, 초창기만 하더라도 제법 영향력이 있었던 손덕애 역시 앞서 말했듯 이 무렵 아예 언급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그 역시 외부 세력에 밀려 명령을 듣는 위치로 떨어진 듯하다. 남의 손을 빌려서라도 서로를 제거하려고 했던 두 명의 원수가 결국 사이좋게 남의 부하 신세가 되었으니, 실로 얄궂은 운명의 장난 아닐까.



 두 실력자, 팽대와 조균용은 너 나 할 것 없이 스스로 왕을 자칭했다. 서수휘도 왕을 칭하고, 한림아도 왕을 칭하고, 장사성도 왕을 칭하며 누구라도 목소리만 낼 수 있으면 제 기분껏 왕위를 주장하던 시대니 그것 자체는 특별할 일이 아니다. 다만 이제 막 전쟁이 끝나고 피폐해진 호주의 세력을 서수휘, 한림아, 장사성의 그것과 비길 수는 없는 일이다. 하물며 같은 지역에 두 명이나 되는 왕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이때의 참칭(僭稱)은 제대로 된 무장 군벌 집단이 내세우는 강고한 권위라기보단, 일개 산적 때가 ‘나는 앞산의 왕. 너는 뒷산의 왕’ 이라고 하는 것과 진배없는 모습들에 불과했다.



 이 당시의 호주는 한마디로 말해서 디스토피아(dystopia) 그 자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치안은 혼란하고, 먹을 것은 없고, 전쟁의 여파로 모든 것이 부서져 나뒹굴고 있었으며 이를 수습해야 할 지도부는 숫제 마적 떼나 다를 바 없었다. 약간의 부하가 모이면 대장으로 행세하고, 무슨 무슨 왕이라며 번드르르한 호칭를 단 채, 여기저기로 약탈을 떠나 그날 하루 주린 배를 채우면 그뿐이었다. 미래에 대한 원대한 계획 따윈 애당초 기대할 수 없었다. 주원장이 이런 마경(魔境)에서 일찌감치 몸을 빼낸 건 실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런 호주 이두정치(二頭政治)의 행사자인 팽, 조 중에서 좀 더 힘이 실리는 쪽은 조균용이었다. 그 무렵 팽대가 갑자기 죽어버렸던 탓이었다. 팽대의 남은 세력은 아들인 팽조주(彭早住)가 이어받긴 했지만, 아무래도 애송이인 팽조주로서는 조균용의 그것에 비하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숫제 마도(魔都)가 된 호주라는 도시의 최고 실력자, 조균용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일전에 언급했다시피, 조균용은 지마이가 일으킨 서주 홍건군 봉기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던 사람이었다. 지마이와 조균용 등이 주축이 된 서주 홍건군은 단 8명으로 서주를 장악하는 놀라운 위업을 달성한 적 있다. 다만 그런 위업과는 별개로 조균용의 성격은 영웅적인 면모와는 거리가 아주 멀었던 것 같다.



 조균용의 성격에 대해 명사에서는 ‘狠’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狠에는 흉악, 잔인, 악독, 모짐 같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앞서 이 무렵 호주의 군벌은 사실상 마적 떼나 다를 바 없었다고 했는데, ‘흉악, 잔인, 악독, 모짐’ 이라고 하니 정말로 마적단의 괴수 같은 느낌이 든다. 이 흉악한 狠으로 가득 찬 조균용을 바로 옆에서 상대하는 수난을 겪어야 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곽자흥이었느 것은 그(곽자흥)에게 있어 정말로 불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조균용은 수차례 군사를 동원해 주변 지역을 공격했다. 하루는 우이(盱眙)를 공격했고, 다음날은 사주(泗州)를 공격하는 식이었다. 큰 전략적 계획도 없고, 어떤 확고한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이곳 저곳을 찔러보는 하이에나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승냥이 같은 전투, 제 혼자서만 한다면야 무슨 불만이 있었겠느냐만은 그는 전투에 나설 때마다 곽자흥을 동행시켰다. 모든 권한을 빼앗긴 곽자흥은 조군이 움직일 때마다 여기저기 짐짝처럼 끌려다니며 조균용의 지독한 성격을 다 받아주어야만 했다. 가히 죽을 맛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죽을 맛 정도로 끝나면 다행인 셈이다. 조균용은 아예 실제로 곽자흥을 죽여버리려는 생각을 품기에 이르렀다. 그 마수가 곽자흥에게 미치기 직전, 저주의 주원장이 보낸 사람이 호주에 도착했다.



 주원장이 보낸 사람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번 들어나 보자 하고 조균용은 사신을 맞이했다. 사신은 주원장을 대신해 말을 전했다. 



 “대왕이 예전 궁핍하던 차에 문을 열고 받아들여 주신 것이 곽자흥 원수 아닙니까. 그 덕이 실로 두텁습니다. 만일 대왕이 이를 보은하지 않는다면 소인들은 '결국 손을 써버렸구나' 하고 떠들어 댈 것이니 그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호주 호걸들의 마음도 대왕을 떠날 것이고, 여기에 더해 호주에는 원수가 거느린 부곡들이 많지 않습니까? 만일 원수를 죽인다면 이런 문제가 있으니, 후회한들 달리 무엇을 얻는단 말입니까?” (大王窮迫時,郭公開門延納,德至厚也。大王不能報,反聽細人言圖之,自剪羽翼,失豪傑心,竊為大王不取。且其部曲猶眾,殺之得無悔乎) (2)



 주원장은 조균용이 조만간 손을 쓸 것 같다는 정보를 듣고 이를 만류하려고 했던 것이다. 흉악하고 난폭하기 짝이 없던 조균용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 나자 어쩐 일인지 머뭇머뭇하며 알았으니 생각해보마 하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물론 그가 새삼스레 주원장의 말에 큰 깨달음을 얻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균용은 주원장을 내심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저주의 병세(兵勢)가 수만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호주에서야 마음대로 왕 놀이를 할 수 있지만, 이따위 도적 집단으로는 진짜배기 실력자 앞에선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그 눈이 멀진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 주원장이 보낸 사절은 조균용의 최측근들에게 듬뿍 뇌물을 뿌린 것도 주효했다. 조균용의 성격을 고려하면, 수하들이 대책 없이 외치는 강경책에 충동적으로 마음이 동해 일을 저지를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 자체가 주원장에게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뇌물을 받은 부하들 역시 곽자흥 처형에 모두 미온적이다 보니 누구 하나 앞장서서 ‘해버립시다’ 하고 소리치는 사람이 없었고, 이 일은 자연히 곧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짐승 같은 조균용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곽자흥은 호주를 떠나 주원장이 기다리고 있는 저주로 향했다. 호주의 부곡 중 무려 1만 명이나 그 뒤를 따랐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들은 곽자흥을 따른다 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호주에서 피난한다는 성격도 있었던 것 같다. 



 추방자와 피난민으로 이루어진 초췌한 일행은 저주에 도착하자 깜짝 놀랐다. 저주에는 무려 정예병 3만이 호랑이처럼 버티고 있었고, 각 병마의 깃발이 당당하게 나부꼈으며, 병사들의 군율 역시 질서 정연했다.



 곽자흥을 반갑게 맞이한 주원장은 조금의 미련도 없이 가지고 있는 모든 병권을 고스란히 내놓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좋게 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곽자흥이었다. 호주에서는 조균용의 노리갯감 신세까지 되었던 그였지만, 이제 와 다시 3만 군대와 저주의 지배자가 되었다. 하물며 이 모든 게 손에 물 한번 묻히지 않고 하늘에서 굴러떨어졌다. 좋아하지 않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확실히 이때 곽자흥은 기분이 크게 좋아졌던 것 같다. 저주에 도착한 그는 갑자기 “왕이 되고 싶다.” 는 말을 꺼냈다. 호주에서는 팽대와 조균용 같은 사람들이 좁쌀만 한 군대와 넝마가 된 관사(官舍)만 있어도 스스로 왕이라고 칭했다. 그런 꼴을 보며 수난을 당하다 이제 대군의 주인이 되었는데, 나라고 왕이 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원장은 시기 상조라며 이를 만류했다.



 "저주는 사방이 산이고, 배와 상인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온종일 편안하게 있을 곳은 못 됩니다.(滁四面皆山,舟楫商旅不通,非可旦夕安者也)" (3)



 왕을 칭하기에는 아직 기반이 견고하지 못하다. 이 무렵 주원장이 생각하고 있던 이상적인 수도 상은 말할 것도 없이 남경이었다. 왕이 되고자 한다면 저주 같은 곳보다는 남경에서라는 이미지가 그에게는 확고하게 그려져 있었다.



 주원장의 의견을 경청한 곽자흥은 크게 미련을 가지지 않고 왕이 되고자 하는 생각을 접었다. 지금 왕이 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이후에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실제로 곽자흥이 왕이 된 것은, 그 자신이 죽고도 15년은 지난 후였지만 말이다.



 그동안 주원장은 일군의 중심으로서 움직였지만, 이제 군단의 중심은 곽자흥이었다. 주원장은 곽자흥의 많은 부하들 중에서 ‘가장 유력한’ 부하였을 뿐이다.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었던 주원장은 다시금 명령을 받드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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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자흥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나치게 유능하고 강력한 신하는 언제나 그 주군에게 위협적이었다. 곽자흥의 입장에서는 주원장이 그런 사람이었다. 저주도 결국은 주원장의 것, 정병 3만도 결국은 주원장의 것이었다. 단지 그가 이를 독점하고 않고 자신에게 주었기에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지만, 과연 그 진심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곽자흥 주변의 다른 측근들도 있다. 이들은 곽자흥의 옆에서 끊임없이 주원장에 대한 험담을 했다. 주원장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무언가 다른 속셈이 있다, 언젠가 뒤통수를 칠 게 틀림없다.



 매일처럼 그런 말을 옆에서 듣게 되자 완고한 곽자흥의 마음속에서도 의심이 무럭무럭 커져만 갔다. 그는 자신의 사위이기도 한 주원장을 정치적으로 견제하는 작업에 곧 착수했다. 주원장 주변의 측근을 불러오고, 병권을 조금씩 빼앗았다. 매사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고 주원장에 대해 수군거리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렇게 견제 작업에 착수하는 곽자흥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바로 이선장이다. 무뢰한과 건달, 왈패와 졸부로 가득한 홍군 내에서 행동이 단아하고 최소한 겉으로는 도량이 넘쳐 보이며, 풍부한 학식을 갖춘 이선장은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곽자흥 역시 한 세력의 우두머리인 바, 주변에서 보기 드문 이런 인재는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곽자흥은 이선장을 요구하며 자신의 부하로 만들려고 했지만, 당사자인 이선장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완곡하게 거부한 탓에 이는 성사되지 않았다. 주원장으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하나의 파벌로서 힘을 유지하는데 가장 큰 요소인 ‘병권’, 그리고 또 다른 요소인 ‘사람’ 까지 모두 뺏어가려는 곽자흥이었으니, 이런 행동이 주원장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다. 헌데 일이 그렇게 될수록 주원장은 오히려 곽자흥에 대해 분노나 증오의 감정을 보이는 대신, 오히려 바짝 숙이며 공경하게 그를 모셨다. 



 생각해보면 주원장이 곽자흥에게 모든 권력을 이양한 것부터 기묘한 일이다. 주원장의 세력 기반에 곽자흥의 영향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그 자신과 사적인 관계로 뭉친 24명의 모험에서 시작해 맨땅에서 병력과 근거지를 얻어낸 세력에 곽자흥이 개입될 요소는 아무것도 없었다. 땅도, 군사도 심지어 사람들조차도 전부 주원장이 스스로 쟁취했던 것들이다. 



 곽자흥이 이선장을 탐내 데려가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그렇다. 이 말은 역으로 주원장과 곽자흥의 기반이 철저하게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모든 요소를 종합해서 볼 때, 주원장이 굳이 정치적 계산 요소 때문에 곽자흥을 억지로 모셔야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가 마음먹고 곽자흥을 처단하거나, 최소한 추방시켜버린다 해도 그 지지기반이 무너질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원장은 곽자흥을 모셨다. 그에게 모든 권한을 주고, 비위를 맞추며 명령에 복종했다.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나는 이것이 주원장의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요소와 득실을 떠나 주원장은 그저 진심으로 곽자흥을 모셨다. 과거 조균용, 손덕애에게 사로잡혀 죽을 뻔했던 곽자흥을 구해냈던 때처럼, 의리를 위해 주원장은 자신의 손해와 위협을 감수했다. 그가 훗날 보여주는 무시무시하고 광인에 가까운 태도를 생각하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편집증적이고 뒤틀린 인물이기에, 오히려 그럴 법도 있지 않을까.



 주원장은 확고한 의지와 신념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일도 태연하게 저질렀고, 그 갭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의 선행도 태연하게 저질렀다. 단순히 간교하고 위선적이라고 할 이야기는 아니다. 그는 가면을 쓰고 위선자를 연기하진 않았다. 미친 짓도 선행도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행했다. 주원장이 이런 이중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이미 조익이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그는 성현의 면모, 호걸의 기풍, 도적의 성품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었다.” (4)



 주원장은 때때로 성자 그 자체였고, 둘도 없는 영웅이었으며,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비열한 악당이기도 했다. 그는 굉장히 복잡하고 뒤틀린 사람이었다. 이때의 주원장은 그 자신의 어긋난 신념과 정의로, 자신이 힘들게 이룩한 기반을 곽자흥에게 주었다. 만고의 충신도 하기 어려운 감정적인 행동을 그토록 계산적이고 치밀한 사람이 해버렸던 것이다. 정말로 흥미로운 일 아닌가.



 흥미롭다고 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주원장에 대한 곽자흥의 심리 역시 마찬가지다. 곽자흥의 성격에 대해 기록에서는,



 "사람됨이 굳세고 사나웠다. 싸움을 좋아했고, 성품이 고집스러울만치 강직하여 포용력이 적었다. (子興為人梟悍善鬥,而性悻直少容)" (5)



 라고 표현하고 있다. 곽자흥은 기본적으로 강직한 사람이었다. 주원장이 자신의 사위이며, 또한 자기에게 철저하게 충성을 바친다고 해도 완전히 신뢰하진 않았다. 그런데 동시에 매일같이 자신의 곁에서 주원장에 대한 험담을 퍼붓는 측근들의 말조차도 완전히 믿진 않았다.



 평소에는 주원장에게 쌀쌀맞기 그지없던 곽자흥이었지만, 뭔가 위기 상황이 닥쳤다 싶으면 곽자흥은 자신 옆의 다른 측근을 전부 무시하고 주원장에게 무한에 가까운 신뢰를 보였다. 주원장이 난국을 타개할 제안을 하면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 바로 그 말을 따랐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신기할 정도로 마치 한 몸처럼 움직여 기어코 일을 해내기에 이르렀다. 



 그럴 때의 두 사람은 이보다 더 좋은 군신의 궁합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한 쌍이었다. 하지만 일이 끝나면 또다시 관계는 멀어져 냉랭함이 감돌았다.



 곽자흥은 주원장을 의심하면서도 믿었다. 믿었으면서도 의심했다. 애증으로 가득 찬 이 관계가 그나마 파국을 맞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외부의 위협이 계속되었기 때문도 있었다. 이 무렵에 전중국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장사성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탈탈이 천하의 모든 병마를 소집했던 일이 그것이다. 



 대원제국 승상 탈탈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나라의 수로를 틀어막고 있는 장사성이었지 저주의 반란군 따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고려 사람 인안이 800만을 일컬었던 대군단은 그 일각의 파편만으로도 충분히 무시무시했다. 탈탈의 군단 중 일부가 육합(六合)으로 향하자, 주원장은 이를 걱정스러워하며 곽자흥과 이야기를 나눴다.



 “육합이 무너지면, 저주 또한 적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六合破,滁且不免) (6)



 저주의 동쪽에 있는 육합은 전략적인 관점에서 볼 때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지역이었다. 곽자흥의 허락을 받은 주원장은 일군을 이끌고 육합을 구원하기 위해 나섰다.



 육합을 공격하는 원나라군은 흡사 산을 밀고 바다를 뒤집어엎듯이 맹렬했다. 그 엄청난 대군의 물결에 육합의 방어선은 모조리 파괴되고, 수비병은 죽을힘을 다해 부서진 성채를 보수하려 했으나 전부 허사였다. 정면 대결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곽자흥을 상대로 기사도 문학에나 나올 듯한 충성을 바친 주원장은, 반대로 이 순간에는 철저할 정도로 현실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바다처럼 몰려오는 원나라 군을 본 주원장은 이 싸움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가장 먼저 육합의 노약자와 여자를 보호하며 저주로 이동케 했다. 그리고 자신은 요충지에 매복하고, ‘24명의 호걸’ 중 한 사람인 경재성을 시켜 거짓으로 패하는 채 하게 했다. 이윽고 원나라군이 매복지까지 이르자, 기습 공격을 가해 적을 패퇴시키는 데 성공했다.



 대적을 상대로 거둔 기분 좋은 승리였지만 주원장은 결코 들뜨지 않았다. 이런 승리 따위, 적의 규모를 생각하면 어린애 장난 같은 짓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승리를 거둔 그는 오히려 바짝 엎드렸다. 노획한 말과 포로를 전부 돌려보내고, 마을 사람들에게 소와 술을 나눠주고 원나라 장수에게 전하게 하면서 거듭 사죄했다.



 "저희가 군사를 모아 성을 지킨 것은 오직 다른 도적들이 올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혹여나 도적이 근처에 온다면 어찌 양민을 죽게 내버려 두겠습니까." (守城備他盜耳,奈何舍巨寇戮良民) (7)



 지금 군사를 모으고 근거지를 장악해 세력화를 한 것은 오직 양민을 지키기 위함이지 반란 따위를 하려는 게 아니라고 비는 것이다. 자존심도 뭣도 없는, 하물며 승리를 거둔 직후에 할만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원장은 그런 알량한 긍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일단은 무조건 살아남아야만 한다. 



 원나라군의 목표는 본래 육합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의 최우선 목표는 고우의 장사성이었다. 육합 같은 곳에서 시간 낭비를 할 틈도 없고, 하물며 싸움에 필요한 말을 잃어버려 책임 추궁을 당할 게 걱정스러웠다. 이런 상황에서 적이 말을 돌려주고 오히려 거듭 용서를 구하자 굳이 싸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됐다.



 육합의 원나라 군사들은 이쯤에서 일을 마무리 짓자는 주원장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군사를 철수해 다른 곳으로 떠났다. 다시 한번, 주원장과 그 일행은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원나라는 그들의 나라를 멸망케 하는 적수를 또다시 놓치고 말았다.

 








(1) 명사기사본말
(2) 명사 권 122 곽자흥 열전
(3) 위와 같다
(4) 조익, 이십이사차기
(5) 명사 권 122 곽자흥 열전
(6) 명사 태조본기
(7) 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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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블빠
17/09/05 21:05
수정 아이콘
주원장은 정말로 곽자흥을 은인으로 생각했나 보네요... 사후에 왕으로 추대할 정도면...
멋진인기
17/09/05 21:12
수정 아이콘
아... 너무나 멋진 글입니다.
중국의 다른 시기에 비해 별거 없었다고 생각하던 원말명초에 이런 일들이 있었다니
다시 한번 신불해님께 감사드립니다
꽃보다할배
17/09/05 21:29
수정 아이콘
명이 참 드라마틱하죠 주원장 부터 주체까지 이성계 이방원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합니다
자유감성
17/09/05 21:16
수정 아이콘
오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도도갓
17/09/05 21:36
수정 아이콘
진짜 굳이 왜 곽자흥을 다시 옹립했을까요.. 그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참 신기하네요 흐흐
임나영
17/09/05 21:38
수정 아이콘
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17/09/05 21:42
수정 아이콘
너무 재밌어요 ㅠ 감사합니다!!!
17/09/05 22:34
수정 아이콘
주원장은 보면 볼수록 신기한 사람입니다
루크레티아
17/09/05 23:22
수정 아이콘
진짜 유방보다 더 흥미진진한 사람은 처음이에요.
펠릭스
17/09/06 01:32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꽃보다할배
17/09/06 08:53
수정 아이콘
주원장은 천부적 정무감각이 있는듯 합니다 나중에 곽자홍이 죽고 대의명분을 앞세우죠 그런 천부적 감각이 있으니 수만의 공신을 숙청해도 나라가 잘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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