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리뷰들이 많이 올라와 있어서 내용에 관련된 글은 좀 진부할 것 같고 대신 이런 고민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 보고 싶다.

"사람은 동물을 잡아먹어도 되는가?"

옥자는 이 질문에 대한 2시간 분량의 대답처럼 느껴졌다. 난 고기를 먹으면서 죄책감을 느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왜 같은 생명체를 해하면서 도덕적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까.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하는 것이 정의라고 볼 때, 인간과 돼지를 차별할만한 도덕적 근거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과 돼지를 다르게 대우해도 될만한 합리적인 이유 말이다.

우선 이런 변명이 가능하다. 인간은 잡식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고기를 먹는 것은 진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그러면 육식동물도 본성대로 사람을 잡아먹는 것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최소한의 생존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육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어떨까?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수많은 스님 때문에 이런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약간 형이상학적으로 접근해보면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다. 돼지는 지능이 낮아서 인간의 의식처럼 복잡하고 고등한 정신세계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뭔가 그럴듯하지만 이런 반박이 가능하다. 다운증후군 환자, 식물인간처럼 지능이 낮거나 정신작용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에는 잡아먹어도 괜찮은가? 음…. 어렵다.

그러면 위 논리를 약간 정교화해 보자. 다운증후군 환자들이 태아로 잉태되었을 때, 우리처럼 영리하고 복잡한 정신세계를 가진 존재가 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떨까? 이런 반박이 가능하다고 한다. 가령 인간이 외계인의 실험에 의해 태어난 존재라고 가정한다. 인간 중에 절반은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나도록 설계되어 있고 나머지 절반은 정상인으로 태어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정상인으로 태어나야 할 태아가 방사능과 같은 후천적 요인에 의해서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나는 경우, 애초부터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날 태아와 차이가 있다고 해야 할까? 생물학적으로 차이가 없는 개체를 지능적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가능성을 기준으로 한쪽은 잡아먹어도 되고 한쪽을 잡아먹을 수 없다고 한다면 이런 논리에는 쉽게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인간은 돼지와는 다르게 영적 존재라고 주장한다면 어떨까? 성경에 나와 있는 말이 다 옳다면 레위기 25장 44절에서 이웃 나라 사람을 노예로 삼는 것이 가능해진다. 당연히 이런 결론은 허용될 수 없다. 이런 논리들을 종합해 봤을 때 '인간은 동물을 잡아먹을 권리가 없다'는 옥자의 메시지는 일견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만약 진짜 인간과 동물들이 같은 생명체로서 동등하다고 믿는다면 집을 짓기 위해 대규모 지반 공사를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거기에는 두더지나 개미 같은 수많은 지하 생물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의 생명침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변명해야 할까. 고기를 먹는 것은 당장 생존 때문이라고 쳐도 가령 부동산을 수십 개나 가진 사람이 땅을 개발하는 행위는 순수하게 인간의 편의를 위해 다른 생명을 해치는 행위 아닌가.

나는 솔직히 인간의 문명을 누리면서 동물을 우리와 동등한 생명체라고 주장하는 것은 거대한 모순처럼 느껴진다. 교과서에서 하늘 아래 인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배운다. 헌법의 토대가 되는 자연법에서는 인권보다 우월한 것은 없다고 가르친다. 타인의 개를 죽이면 재물손괴죄 정도 받을 것이다. 민사적으로도 개의 사망이 아니라 물건의 멸실로 처리되어서 가격에 상응하는 손해배상을 해주는 것으로 무마된다. 이런 시스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돼지를 우리와 동등한 생명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골똘히 생각해보아도 쉽게 답을 얻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