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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3/23 12:40:23
Name 王天君
File #1 Phoenix_(2014).jpg (257.0 KB), Download : 61
Subject [일반] [스포] 피닉스 보고 왔습니다.


넬리는 2차세계 대전의 생존자다. 그는 친구 르네의 도움으로 유태인 수용소에서 간신히 구출된다. 얼굴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그는 성형수술을 받아야 한다. 얼굴이 차츰 회복되면서 넬리는 현재 소식이 끊긴 남편 조니를 만나고 싶어한다. 남편을 찾던 넬리는 피닉스란 술집을 발견한다. 피아니스트인 남편이 일 하고 있을 법한 곳이다. 넬리는 조니를 발견한다. 조니는 넬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는 죽은 줄 알고 있는 아내가 사실 눈 앞에 있는 줄도 모르고, 넬리에게 접근해 아내의 대역을 부탁한다.

전쟁은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 살아있던 자들은 죽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린다. 넬리 역시 마찬가지다. 가족은 전부 다 죽었고 아름다웠던 얼굴 역시 붕대로 감싸매지 않으면 안된다. 넬리는 다행히도 수술을 받을여력이 있다. 의사는 넬리에게 자꾸 다른 유명한 얼굴들을 제안한다. 넬리의 얼굴을 이 전처럼 복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넬리는 과거를 잃어버린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흉진 자국은 거의 없다. 그러나 넬리는 자신의 얼굴을 확신하지 못한다. 이 전과 다를 게 없다고 르네는 단호하게 말한다.

넬리의 남편 조니는 그가 잃어버린 가장 큰 과거다. 붕대 밑에서도 넬리는 자신과 함께 있는 사진 속 남편을 계속 찾았다. 수술이 끝나자 넬리는 폐허가 되버린 집과 거리를 둘러본다. 이미 아무 것도 없다. 넬리는 불안하다. 자신의 얼굴을 조니가 몰라볼까봐 걱정에 차있다. 남편은 아직 죽지 않았을테고, 넬리는 남편이 그립다. 다 잃었다 해도 아직 남은 것이 있고, 찾기만 하면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전과는 다르다고 르네는 단호하게 말한다. 남편 조니는 아마 유대인인 너를 나치에 넘겼을 거라고. 그 작자는 너가 입원해있을때도 네 진료 기록을 뒤적이며 너를 죽은 걸로 처리해 유산을 탐내고 있다고. 살아남은 자들의 현재는 살아있는 자들에 의해 규정된다. 달라진 것, 달라지지 않은 것, 가지고 갈 것, 이어갈 것, 끊어버릴 것. 르네는 넬리에게 분노를 가르친다. 넬리는 아직 남편의 배신을 받아들이지도, 미워하지도 못한다. 길거리 어둠 속에서 위협을 느낀 넬리에게 르네는 총을 건넨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제 폭력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 세상이다.

넬리는 밤이 되면 조니가 있을 법한 곳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피닉스란 술집에서 조니를 발견한다. 조니는 아내인 넬리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자신의 이름을 부른 목소리의 주인을 찾는 시선은 넬리를 스쳐지나간다. 아직 수술 후의 멍자욱이 가시지 않은 탓일 수도 있다. 아니면 르네의 말과 달리 수술 후 넬리의 얼굴이 달라져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넬리는 자신을 알아채지 못하는 남편에게 섣불리 자신을 밝히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남편의 근처를 서성인다. 체형도, 목소리도, 과거 함께 했던 많은 기억도 그대로인 자신은 이미 남편에게 잊혀졌다. 넬리는 조니를 조니라 부른다. 조니는 자신을 조니라고 부르지 말라고 한다. 요하네스란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 남자에게, 넬리는 생면부지의 여자고 과거를 공유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고 넬리의 기대는 헛된 꿈이다.

자꾸 술집을 서성이는 넬리에게 조니가 접근한다. 그리고 허드렛일 대신 좋은 제안을 건넨다. 조니의 아내는 전쟁통에 죽었고, 그 아내의 유산을 타기 위해서 대역이 필요하다. 살아있는 넬리를 눈 앞에 두고 조니는 죽은 아내를 이야기한다. 과거의 넬리는 사랑도 뭣도 아닌, 재산 증명서 정도의 흔적으로 남았다. 현재의 넬리는 과거의 자신과 끊어진 채로 서류를 조작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잊혀지고, 부정당한다. 넬리는 목소리를 추스리며 자신이 죽은 아내와 그렇게 닮았냐고 묻는다. 조니는 차갑게 대꾸한다. 당신은 내 아내와 전혀 닮지 않았소. 살아있다는 것은 본인에게나 생생하다. 죽은 자로서 무언가를 남기고 사라져주는 것이 더 편할 때도 있다. 그런 욕망이 절실해지는 시대다. 이런 저런 계획을 설명하던 조니는 갑자기 마음을 바꾼다. 아냐, 당신은 이걸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 같소, 그냥 떠나시오. 넬리는 이상한 오기를 부린다. 잘 할 수 있다는 듯, 아예 짐을 싸와서 조니의 집에 머물기로 한다.

넬리는 조니 앞에서 자신을 지운다. 조니가 요하네스라 자신을 부르라고 한 것처럼, 넬리도 자신을 에스더라고 밝힌다. 에스더가 된 넬리는 조니가 시키는 대로 넬리를 열심히 연습한다. 과거 조니의 아내였던 사람이 남긴 쪽지를 보고 필체를 완벽하게 훔쳐낸다. 잘 할 수 밖에 없다. 에스더는 넬리니까. 조니는 그런 에스더에게 놀란다. 다음에는 조니의 아내였던 사람이 입었던 원피스와 구두를 가지고 온다. 에스더는 넬리로서 자신의 과거를 되찾은 사실을 반긴다. 과거를 조작하기 위해, 과거의 진실과 진실이 만난다. 잊은 줄 알았던 예전의 자신을 잠시나마 되찾으며 에스더는 감회에 젖지만 조니는 불편해한다. 당신에게 그 원피스는 전혀 맞질 않군. 아내가 입었을 때보다 원피스가 훨씬 더 길고 늘어지니 좀 잘라야겠어. 변한 것 없는 넬리의 과거가 다시 규정된다. 살아있는 자가 죽어있어야 할 때, 살아있는 자의 명료한 진실은 흐릿한 과거 앞에서 퇴색된다. 존재한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게 증오와 모멸의 순간을 계속 견디며 에스더는 넬리로서 다시 태어난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 과거를 만들어내지만 사실 과거는 현재와 끊어진 적도, 현재가 아닌 적도 없었다.

작전 당일, 에스더는 넬리처럼 원피스를 입고, 친구들의 마중을 맞는다. 친구들은 아무도 에스더가 에스더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넬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이들은 넬리를 넬리로서만 받아들인다. 에스더였던 넬리는 넬리로서 이들과 조우하고, 만들어진 넬리는 무사히 시험을 통과한다. 조니는 자신의 작전이 성공한 사실에 안도한다. 이제 가짜 아내에게서 유산을 양도받을 수 있다. 점심식사를 하던 이들에게 넬리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며 자리를 옮긴다. 조니는 예정에 없는 이 가짜의 제안에 당황하면서도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노래를 부르는 아내에게 맞춰 피아노를 쳤던 이 전처럼.

피아노 반주를 타지 못하고 에스더는 몇번이고 망설인다. Speak low. 음정도 박자도 무시한 가사에 맞춰 노래가 시작된다. 도대체 어쩔 셈인가. 긴장한 채로 조니는 피아노를 친다. 눈을 감고 힘겹게 이어지던 노래가 매끄러워지기 시작한다. Speak low. 유려해진 노래가 흐르고 에스더는 눈을 뜨더니 조니를 바라본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노래일까. 조니는 기시감을 어쩌지 못하고 자꾸 힐끔거리며 피아노를 친다. 그렇게 흔들리던 조니의 시선이 에스더의 팔뚝에 멈춘다. 가짜라면 있을 리가 없는, 진짜 아내나 가지고 있을 법한 수용소 포로 번호다. 피아노가 멈춘다. 조니는 겁에 질린다. 그러나 노래는 계속된다. 그리고 에스더는, 넬리는 시선을 돌린다. 조니의 반대방향을 향하는 넬리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Darling, it’s late. The curtain descends, everything ends, too soon, too soon. 다시 고개를 돌린 넬리의 노래는 남편을 바라보고, 관객을 바라보며 끝난다. I wait. 살아있는 자의 자기기만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기만하려는 자가 기만당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앙갚음이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못한다. 얼어있을 뿐이다. 과거를 그렇게 되찾은 이는 계속해서 존재한다. 변해버린 것과 변하지 않은 모든 증거를 다 새기고서. 살아있는자의 자기증명이야말로 잊고자 하는 이들을 향한 가장 큰 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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