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3/23 12:36:51
Name 王天君
File #1 mdp0066.jpg (142.4 KB), Download : 56
Subject [일반] [스포] 산하고인 보고 왔습니다.


1990년대, 펀양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세 젊은이가 있습니다. 타오와 진솅, 리앙즈는 서로가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친한 친구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우정이 차츰 연애감정으로 변해갑니다. 진솅이 타오를 향해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면서 이들의 관계가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없는 타오, 돈으로 진심을 어필하려는 진솅, 가진 게 없이도 묵묵히 옆을 맴도는 리앙즈. 이 셋은 서로 엇갈리고 깨진 우정과 한 쌍의 연인이 만들어집니다. 시간은 흐르고 이 셋은 친구도, 부부도 아닌 각자의 삶을 이어갑니다.

영화는 중국의 근현대를 이 세명의 인물로 은유하고 있습니다. 늘 빨간 옷을 입고 다니는 타오가 중국 그 자체라면 그를 돈으로 유혹하려는 진솅은 20세기 말부터 시작된 자본주의의 유입을, 리앙즈는 중국의 전통과 인본주의 사상을  가리키는 것이겠죠. 자본의 유혹은 달콤하지만 속 빈 강정처럼 묘사됩니다. 진솅의 유혹에 들뜬 타오의 모습이나, 폭죽이 폭약으로 연결되는 폭발이 전혀 다른 파괴력을 보이는 것은 자본에 대한 중국의 위태로운 상상처럼도 보이죠. 거기에는 헛된 자부심도 있습니다. 진솅의 독일제 차가 강의 주석을 들이받고 차만 찌그러지죠. 과거의 중국은 어쩐지 찜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발전에 대한 기대에 취해있습니다.

진솅과 리앙즈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타오는 리앙즈에게 결별을 듣습니다. 중국은 자본주의를 선택하게 되죠. 거기에 이 전의 인간다움은 없습니다. 리앙즈는 탄광촌에서 쫓겨나고, 다른 지역의 탄광촌에서 끝내 폐병에 걸려 죽습니다. 자본의 착취 아래서 과거의 인간미는 말살됩니다. 현재로 넘어와 리앙즈와 타오가 만나면 뭔가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리앙즈의 아내가 애원한 끝에 타오와 리앙즈가 다시 만나는 계기부터가 팍팍해요. 이 둘 사이에 별로 남은 게 없습니다. 이 둘 사이에서는 약간의 인삿말과 돈이 오갈 뿐입니다. 타오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지만 그조차도 진솅과의 이혼 끝에 얻어낸 결과물입니다. 타오는 진솅과 이혼했고 둘 사이의 아들 “달러”는 진솅이 양육권을 얻어 데려가버렸습니다. 중국의 현재는 가족이 있지만 돈에 쪼들려 죽는 사람과, 돈은 있지만 가족을 잃은 사람의 재회입니다. 말랑말랑한 감정은 거의 들어갈 틈이 없죠. 영화는 리앙즈의 죽음도 제대로 그리지 않습니다. 이 둘이 만나고 나서 리앙즈는 그대로 퇴장해버립니다.

중국의 전통은 단절됩니다. 리앙즈의 죽음에 뒤이어 타오의 아버지도 노환으로 죽습니다. 타오는 오랜만에 아들 달러를 만나지만 달러는 장례식 예절을 하나도 모릅니다. 타오는 달러의 옷차림이며 자기 앞에서 양어머니를 찾는 게 못마땅합니다. 타오는 더 이상 빨간 색 옷을 입지 않습니다. 장례식 때부터 타오는 녹색 옷을 입고 있죠. 이전 같지 않은 중국과, 불만을 품으면서도 변화에 따라가는 중국이 있습니다. 그리고 타오는 달러가 호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중국 안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아들이 호주로 가면 영영 이별이겠지요. 달러는 타오에게 어머니로서의 애착이 별로 없습니다. 타오는 달러에게 집의 열쇠를 주지만, 호주에서 잘 먹고 잘 살 것 같은 달러가 굳이 타오를 찾아올 일도 없을 겁니다.

현재 시점에서 영화는 끊어진 것만을 이야기하진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과거와 이어지는 여러 키워드들이 등장합니다. 타오가 리앙즈에게 전해준 청첩장, 리앙즈가 버렸던 열쇠, 언월도를 지고 가는 체육복 청년 등의 상징들이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하죠. 타오와 달러 사이에서는 이 유대와 전통의 의미가 더 강하게 드러납니다. 타오 앞에서 심심하게 있던 달러는 타오가 만든 밀만두를 맛있게 먹습니다. 일부러 먼 길로 달러를 데려다주면서 타오는 과거에 좋아햇던 엽천문의 “진중”을 들려줍니다. 여기서부터 영화가 감상주의에 빠집니다. 만두와 옛날의 히트곡으로 중국의 현재가 과거로 전해진다는 설정이 설득력이 있는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2010년대 중국의 현재를 관찰자의 시점에서 따라가면서도 이런 식의 소망이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을까요.

영화는 2025년으로 넘어갑니다. 주인공은 달러가 되고 영화 속에서 중국어를 제대로 쓸 줄 아는 중국인은 거의 없습니다. 중국인들은 영어를 모국어로 두고 중국어 수업을 따로 듣습니다. 아버지인 진솅은 호주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달러는 중국어를 거의 하지 못해 구글 번역을 통해 아버지와 대화하죠. 달러는 대학을 가는 대신 독립하고 싶어합니다. 진솅은 그런 아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달러의 학원 선생님인 미아는 이들 사이를 중재합니다. 미아 역시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달러처럼 남편과 헤어지고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그는 홍콩 반환기 시점에 호주로 건너온 홍콩 사람입니다) 이 둘은 연인 관계가 됩니다. 미래의 중국인들은 세계로 흩어지고, 거기에서 중국인의 정체성이란 옅어지며, 자본에 속박되는 대신 자유를 추구할 것이라는 이야기겠지요.

이 부분이 당혹스러웠던 것은 단지 미래에 대한 묘사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현실에 대한 관측을 바탕으로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온 지아 장 커가, 이 부분에서는 오로지 감정만으로 중국인의 정체성과 유대를 그렸기 때문이죠. 어머니에 대한 달러의 그리움은 나라 밖에서도 중국을 그리워하는 국가적 정체성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감정의 계승을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그 자체를 어떻게 긍정할 수 있냐는 의문이 남습니다. (나이 차를 극복한 미아와 달러의 사랑도 세대 갈등에 대한 낙관적 예측으로 보입니다) 외국에서도 중국인들끼리 뭉치고, 중국인으로서의 뭔가를 고집하는 것에 어떤 이성적 답이 있을 수 있을까요. 감독은 이를 모성에 대한 그리움으로 치환하고 있지만 과연 한 나라가, 그것도 자본과 결탁해 인간성을 말살했던 제도가 이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전작의 서늘했던 분노에 비해 이번 작품은 너무 따스해서 도무지 믿기지가 않습니다. 만두를 빚던 타오가 영화 초반에 나왔던 Go West를 들으며 혼자 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은 20세기의 올림픽 선전처럼 촌스럽습니다.

거대한 강을 끼고 흐르던 중국이 바다를 건너고, 그 파도 앞에서 닿을 수 없는 목소리를 서로 주고 받는 판타지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절망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에서 10년의 세월과 공간을 초월해 무언가가 이어지리라는 믿음은 맹랑하게만 들리네요. 이런 식의 내용이 과연 개인의 믿음으로만 그칠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 자체가 중국이라는 나라의 거대한 환상이며 자아도취가 아닐까요.

@ 나이트 클럽씬은 아무리 과거를 묘사했다고 해도 정말 구닥다리 느낌이더군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연필깎이
16/03/24 01:11
수정 아이콘
전개만큼은 괜찮네요.
킹이바
16/03/25 16:43
수정 아이콘
지아장커 감독의 유명세만 믿고 본 첫 작품이었는데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너무 노골적이고 작위적입니다. 이쯤되면 비유가 비유처럼 보이지 않죠.

폭약씬, 다 잃고 결국 가질 수 없었던 총에 집착하게 된 진솅이나 아들 달러 이야기, Go West를 배경으로 한 엔딩의 독무까지.. 너무 과해요. (물론 엔딩씬 하나만 떼놓고 보면 아름답습니다만 너무 노골적이어서 감동을 죽입니다. 이때 쓸려고 그렇게 탑을 계속 보여줬다니...)

그리고 이건 농담반 진담반인데.. 시작부터(1994년) 몰입이 안되더군요. 타오와 장센, 리앙즈가 설정상 20대였음에도 너무 나이든 티가 납니다. 적게 잡아도 30대 후반은 되보였는데 20대의 연기를 하고 있으니. 외모야 뭐 리얼리티를 추구한다고 넘어가더라도 연령대는 맞춰야하지 않았을까. 물론 여러 인물들의 일대기를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 여러 배우를 캐스팅하는 건 또 그것대로 문제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4230 [일반] [스포] 무스탕: 랄리의 여름 보고 왔습니다. [47] 王天君7727 16/03/23 7727 5
64229 [일반] [스포] 피닉스 보고 왔습니다. 王天君2596 16/03/23 2596 1
64228 [일반] [스포]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보고 왔습니다. 王天君5390 16/03/23 5390 1
64227 [일반] [스포] 산하고인 보고 왔습니다. [2] 王天君3411 16/03/23 3411 1
64226 [일반] [스포] 45년 후 보고 왔습니다. [3] 王天君5028 16/03/23 5028 1
64225 [일반] 지하철에 나타나시는 여러 유형의 승객들 [27] 삭제됨6574 16/03/23 6574 4
64224 [일반] [진상] 식품회사 진상 타입 3 [19] 블루투스6172 16/03/23 6172 3
64223 [일반] 2016 ESPN 선정 NBA 역대 스몰 포워드 TOP 10 [19] 김치찌개10463 16/03/23 10463 0
64222 [일반] 헌터x헌터-원리원칙과 융통성의 관점에서 [22] 전회장6295 16/03/23 6295 2
64221 [일반] 출사 :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 27 (5. 문득 바람의 방향이 바뀌니) [31] 글곰4263 16/03/23 4263 47
64220 [일반] 드디어 오셨네요...그분들... [78] Neanderthal12842 16/03/23 12842 1
64219 [일반] [진상] 항공사/공항 TOP4 [13] pritana6293 16/03/23 6293 3
64218 [일반] 이 시각 마린 르펜은... [7] 삭제됨4446 16/03/23 4446 0
64217 [일반] 철광석의 난 - 나르비크와 룰레오 이야기 [5] 이치죠 호타루7222 16/03/23 7222 7
64216 [일반] 일본, 섭정의 역사 (끝) [12] 눈시7263 16/03/23 7263 11
64215 [일반] 일본, 섭정의 역사 - 3. 이렇게 된 김에 전국시대 얘기나 실컷~ [17] 눈시8975 16/03/23 8975 12
64214 [일반] [역사?] 생각했던것과 전혀 달랐던 혹은 몰랐던 부분이 확 눈에 띈 왕이 있습니까? [29] 피아니시모5149 16/03/22 5149 0
64213 [일반] <단편?> 카페, 그녀 -40 (부제 : 연애하고 싶으시죠?) [13] aura4486 16/03/22 4486 3
64212 [일반] 아이폰 SE, 애뿔 중저가 시장 공략의 선봉장. [114] 파란만장12374 16/03/22 12374 7
64211 [일반] [고마우신 손님] 카페입다; 흐 [21] 만우4612 16/03/22 4612 4
64210 [일반] 나는 웹툰을 그릴 수 있을까? [46] Typhoon9927 16/03/22 9927 19
64209 [일반] [진상] 여행사 진상 TOP 7 [43] 으르르컹컹13331 16/03/22 13331 8
64208 [일반] 벨기에 브뤼셀 공항 출국장서 2차 폭발..사상자 발생 [34] my immortal9691 16/03/22 9691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