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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2/23 16:06:37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대한민국에 과연 국가적 신화가 있는가?


국가적 신화는 거대 규모의 공동체가 계속 '공동체'이게끔 만들어주는 일종의 '접착체'와도 같은 것인데, 현재 대한민국에는 바로 이것이 부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신화를 만들고자 양 진영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것이죠. 


'건국절'과 '근대화'가 보수파가 내세우는 '신화'인 반면


'4.19'와 '5.18'이 진보파가 내세우는 '신화'입니다.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살펴보죠. 


전후 독일은 과거사를 완전히 청산하면서 프로이센 잔재를 모조리 없애버리렸을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를 설치하고1848년 프랑크푸르트 국민회의가 사용했던 독일 삼색기를 차용하면서 '민주주의 독일'로의 변모를 시도했고 그것이 현대 독일의 근간을 이루는 신화가 되었습니다. 


전후 프랑스는 나치부역자를 청산하고 드골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간의 연합으로 출범했었죠. 사실 나치부역자들이 실제 처벌된 이들보다 훨씬 많았지만 프랑스는 어쨌든 드골정권 하에서 강력한 의지와 선전을 통해 국가의 '정당성'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789년 혁명의 이념 아래 우파와 좌파는 모두 '자유', '평등', '우애'를 기치로 한 '위대한 프랑스, La grandeur Francaise'를 수호해야 하는 사명을 띠게 되었습니다. 


반면 영국은 그러한 신화가 필요 없을만큼 몇백년 동안 '입헌군주정' 아래 단일체제가 이어져내려왔기에 '왕실'과 '웨스트민스터 의회'의 그 존재 자체가 신화적 입지를 획득했습니다. 또한 미국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주장했다고 알려진 '보편적 자유'를 신화로 삼고 있고 이것에 기반한 모토 E Pluribus Unum, 그리고 Land of the Free and the Brave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화는 사실 '타협'으로 인해 생겨난 게 아니라 구세력을 무력화시키고 패배시킨 결과이지요(심지어 가장 보수적인 영국에서조차..) 마그나카르타는 왕이 귀족세력에 패하여 가능했던 것이고 명예혁명은 토지귀족이 부르주아에게 패한 결과이며, 보편선거는 자산소유자들이 노동자에게 패배하여 가능했던 것이고 이것이 바로 현대 영국을 만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현대 프랑스는 비시정권의 잿더미 위에서 탄생할 수 있었고, 드골의 카리스마와 그가 이끈 군사력은 부역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대숙청을 가능케하였습니다. 그리고 현대 독일은 나치와 관련된 모든 인사들이 철저히 '죽음으로' 처벌받으면서 제로 베이스에서 국가체계를 처음부터 다시 만든 나라이고요. (물론 前나치 인사중 많은 수가 그대로 유임되었다고는 하지만 핵심 수뇌부는 모두 자살하거나 처형당했습니다. 이건 중요한 사실이죠)


(그리고 미국은 영국과의 전쟁, 그리고 남북전쟁으로 '연방주의자, 자유주의자, 자본주의자 세력'이 패권을 획득한 결과이고요)


따라서 새로 패권을 획득한 집단은 승리의 명분이 되었던 이데올로기를 전 사회에 공고히 뿌리내릴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명분이 그 국가를 지탱하는 근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Legitimacy 또는 "정당성"의 부재가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큰 걸림돌인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양 정치 스팩트럼은 서로를 '정당하지 않은'(illegitimate)한 상대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보수파는 진보파가 북한과 내통하는 세력이라고 인식하고 


진보파는 보수파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무고한 이들을 살해한 악인들로 인식합니다. 


대한민국에는 아직 모두를 아우르며 체제를 안정시키는 '공통된 신화'가 없다는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4.19와 6.10을 새 대한민국의 '국가적 신화'로 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제 우리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다는 게 함정..) 대한민국의 역사를 한반도 역사상 처음으로 일반'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이라는 틀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보수파는 이를 쉽게 수용할 수 없습니다. 1987년 6월항쟁을 국가적 신화로 인정하면 그들이 가해자가 되고 국가의 반역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 우리 역사에서 잘못된 단추는 87년 6월 민주항쟁 때 민주주의를 위한 범국민연합이 패권을 획득하지 못한 것에 있다고 봅니다. 당시의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 군대, 안기부, 법조계, 그리고 수구 정치인을 혁파하는 등- 구시대의 잔재를 완전히 말소하고 '자유' 대한민국의 새역사를 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의 실패로 인해 우리가 지금 현재 목도하고 있는 많은 모순들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기부, 그리고 국정원은 혁신되지 못하였고 군대의 경우 하나회가 숙청됐다고는 하지만 충분히 혁신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구시대의 부역자들은 처벌받지도 아니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정당성을 '반공'으로부터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근대화는 양념)


그런데 우리가 필요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적 정신 하에 좌우를 모두 포용하는 것이죠. 헌법의 우위, 법치, 자유, 개인, 인권 등이 존중되는 가운데 우파가 있고 좌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이제 69년된 대한민국의 새역사를 쓰려면 무엇을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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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23 16:16
수정 아이콘
저런 게 보수라면 보수가 없어져야죠.
16/02/23 16:16
수정 아이콘
제목 보고는 바리데기와 당금애기 등 무속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온 줄 알고 신나서 들어왔다가 시무룩하니 떠납니다.
강동원
16/02/23 16:21
수정 아이콘
그래서 우리 해원♥바리는 언제 나옵니까?
엄격. 진지. 근엄.
세인트
16/02/23 17:51
수정 아이콘
출사 쓰시느라 장기휴가중이신 걸로...흐흐

두 편 다 재밌으니 그저 뭐든 많이 써주시기만 바랄 뿐입죠
16/02/23 18:49
수정 아이콘
음. 걔네들은 지금 잠시 휴가중입니다.....
ㅠㅠ
16/02/23 16:18
수정 아이콘
환글인줄알고 팝콘팔러왔다가 광광울면서 갑니다
Igor.G.Ne
16/02/23 16:23
수정 아이콘
마오쩌둥을 국가적 신화로 여기고 있는 중국의 사례를 보면 딱히 국가적 신화가 있으면 더 바람직한 사회가 될런지는 의문입니다.
단결이야 좀 더 잘 되겠지만서도...
aurelius
16/02/23 16:29
수정 아이콘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하나의 공통된 국가적 신화가 있습니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말이죠. 미국은 자유의 나라와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라는 것이 그 나라의 신화이고, 일본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다스리는 일본인만의 나라라는 게 그 나라의 국가적 신화입니다. 물론 이는 현실을 100% 반영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실 허구에 가깝지만, 그 신화의 성격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그 나라의 행동을 제약하는 또는 방종케하는 것으로 작용합니다. 미국은 스스로 자유와 민주주의의 나라라는 신화를 표방하기 때문에 국제관계에서 그렇지 않은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죠.
Igor.G.Ne
16/02/23 16:36
수정 아이콘
대한민국도 독립정부/독립군을 국가적 신화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16/02/23 16:30
수정 아이콘
관용, 용서, 화합, 존중, 배려...
이런 것들이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미덕이겠죠.
하지만 지난 세월동안 만들어진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서 과연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고작 삼십 몇년을 살아온 저만 하더라도 그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자신이 없는걸요.
-안군-
16/02/23 16:30
수정 아이콘
저 역시, 비슷한 의견인데,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근대 역사가 제일 크게 꼬인 곳이 5.16이고, 두번째가 10.26 사태라고 봅니다.
박정희 시대가 시작된게 그 첫번째고, 그 다음에 끝이 문제가 있었죠.

적어도 무솔리니, 차우쳬스쿠, 카다피같이 끌려나와 군중들한테 맞아죽었어야 했습니다.
시바스리갈 마시다가, 심복의 총을 맞고, 여대생 무릎팍 위에서 죽을게 아니라요.
그게 아니라면, 다른 독재자들처럼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던지요.
그리고 새로운 독재자가 그 자리에 앉는데......

그러면서 다 꼬였어요. 독재자와 싸우던 사람은 독재자와 손을 잡지를 않나(...)
독재자와 싸우던 또 한 사람은, 독재자의 손발 노릇을 하던 사람과 손을 잡지를 않나(...)
이젠 다 시궁창이에요... 아... 모르겠다.
Korea_Republic
16/02/24 08:06
수정 아이콘
제가 김재규의 당시 행동을 용납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 거사를 했다고 하던데 가만히 내비둬도 무너질 정권이었는데 오히려 박정희를 신화적 존재로 만들었으니...... 어쩌면 그걸 의도한건지도 모르겠네요. 육사 동기이자 고향후배로 박정희 정권 하에서 각종 요직을 두루 거쳤으니......
강동원
16/02/23 16:31
수정 아이콘
- 그런데 보수파는 이를 쉽게 수용할 수 없습니다. 1987년 6월항쟁을 국가적 신화로 인정하면 그들이 가해자가 되고 국가의 반역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이 문장으로 모든게 설명되는거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짧은 역사에 이만큼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싶은데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있죠.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의 신화라면 '한강의 기적' 이라고 봅니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현재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세인트
16/02/23 17:53
수정 아이콘
한강의 기적 이야기도 조심스러운게,
반인반신 쿼터갓의 아버지의 업적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농후해서...
16/02/23 16:43
수정 아이콘
양김이 분열하지 않았으면.
Quarterback
16/02/23 16:47
수정 아이콘
완전히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른 국가들은 보수든 진보든 공유하고 있는 가치, 즉 국가가 추구해왔고 앞으로고 추구해야할 가치 명확한데 대한민국은 그게 없습니다. 이 정체성의 부재가 갈등의 가장 근본적 원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답이 없다는거죠.
Judas Pain
16/02/23 16:50
수정 아이콘
4.19혁명은 군사정권계 보수와 민주화 개혁 양대세력이 모두 인정하는데다 실제로 시민 그 자체가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북한과 선명히 대비되는 공화국 정체성을 생성한 운동이라 한국의 국가적 신화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이게 없었으면 우리 정치는 뭐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 수준이었겠죠. 시대가 쏜쌀같이 흘렀고 이승만을 몰아낸 주체들이 정치 지도자가 되어 나라를 재구성하고 정부를 이끌어온게 아니라서(있어도 입법부 야당쪽) 이 신화에 악당은 아주아주 분명하지만 영웅이 잘 구축되지 않은게 흠이죠.

이승만 추종하는 건 주로 보수 내부의 뉴라이트(주사파에서 전향한 분들) 정도인데, 한국보수는 이념에 별 진지한 관심이 없는데다 이 친구들이 보수진영에서 이승만을 국부로 굳히는 게 다음 다다음 세대가 되어서도 가능할진 회의적입니다. 차라리 박정희를 국부로 생각하고 말겠죠.
16/02/23 17:40
수정 아이콘
저도 항상 생각했었고, 결국은 한국을 떠나게 된 이유중 하나입니다. 윗분들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한국이 가지고 있는 신화가 무엇이 남아 현대 한국인들이 행동양식을 규정하나 생각했더니 독립도, 민주화도 아닌 박통때의 고도성장기더라고요. 지금도 한국의 사회적인 논의의 프레임이나 사람들의 관심사는 대단히 물질주의적이고, 그런 배경속에서 사람과 사람간의 존중이 얼마나 싹트기 어려운가, 정말 가치있는 삶은 무엇인가 자꾸 자문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탈조선..
스파이어깨기
16/02/23 17:47
수정 아이콘
그래서 박정희가 역사 국정교과서까지 해가면서 구축한 게 '성웅' 이순신이고(광화문부터 전국 학교에 이르기까지 이순신 동상을 뿌려대면서), 그래서 나온 게 내재적 발전론(영정조 시대(자본주의 맹아)부터 동학농민전쟁부터 4.19(민중혁명)까지 논하는)입니다. 우리는 패배한 민족이 아니라 이렇게 위대한 민족이었다는 거죠. 근데 이걸 주장한 게 현재 지배계급이고, 이들은 국가에 충성하라는 목적으로 이 같은 흐름을 '만든' 거죠. 세대별, 나이별 과업도 마찬가지.
소독용 에탄올
16/02/23 18:54
수정 아이콘
사실 '위대한 민족'이나 내재적 발전론과 박정희 영웅주의나 '국부'관련 서술이 가지는 상호모순을 생각해 보면 참 묘한 일이기도 합니다.

정말 위대한 민족이라면 특정 개인 양반이 '영웅'일 필요가 없고, 특정 개인 양반을 영웅 혹은 신성화 하려면 그 영웅이 가진 역량을 강조하기 위해 집단의 취약성이나 무능력함이 강조되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 둘을 병행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죠.
세인트
16/02/23 17:53
수정 아이콘
진지한 글에 죄송한데, 미국의 건국 신화는 스타워즈 아니었슴꽈?!
16/02/23 20:41
수정 아이콘
성과까지 보면 4.19정도가 최고 성과가 아닐까 하는데...뭐, 이것도 이승만 국부 운운하는 무리들에 의해 조만간 의미가 퇴색될것같고...
개인적으론 '정주영 신화'정도를 손꼽고 싶긴 한데..(과거 일본의 유물로 성장한 것이 아닌 의미에서)
여기에 박정희를 끼워넣으면 이것도 답이 없어지죠.하하
해원맥
16/02/23 21:32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Korea_Republic
16/02/24 08:09
수정 아이콘
현재로서는 4.19 혁명이 이에 가장 근접하죠. 그래서 헌법에도 대한민국은 4.19 정신을 계승한다고 명시한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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