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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3/20 06:42:34
Name typhoon
Subject [일반] 생과 사.. 그 갈림길.
어제 오후 5시경에 갑자기 할머니가 쓰러지셨습니다.

저희 할머니는 올해로 95세이신데, 연세에 비해서 기력이 너무 좋으셔서 일주일에 두세번은 집에서 2키로 정도 떨어진 시장에
혼자 다녀오실 정도로 정정하신 분이시지요.

그런데 오늘 갑자기 작은 '아...' 하는 3마디 신음이 들려서 걱정되어 나가보니 집을 나서시다가 쓰러지셨는지
앞으로 고꾸라져 계시더군요. 의식도 전혀 없으시고 해서, 놀라서 엠뷸런스를 불러서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이송하기 조금 전 부터 의식이 돌아오셔서 아프다고 앓는 소리를 내시고, 병원에 가셔서도 토할것 같으니 봉지를 가져다 달라는둥
소리를 지르시길래 걱정은 되면서도 내심 안심을 했습니다. 제가 혼자 모시고 갔었기에 부랴부랴 연락을 드리고,
곧 다른 가족분들이 오셨습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으로 추정이 되기에 검사를 하려는데, 할머니가 자꾸 답답하다며 바늘이랑 검사기기를 떼어내려 하시고,
CT 찍으러 가셔서도 뒤척거리며 바늘을 뽑아내려 하셔서 결국 1차 CT는 실패..
조영제가 다 새어버려서 다시 CT를 찍기위해 조영제를 넣고 하려면 2시간 후에 다시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2시간 이후 수면제인지 수면유도제인지를 맞으시고 잠드신 상태로 가서 CT는 잘 받고 나오셨습니다.

얼마인가 지나고 결과가 나왔는데, 병명은 대동맥 박리.. 주변에 대동맥 관련 질환이 가끔 있어서 대충 들은 풍월로 알지만
꽤 심각한 상태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곧 어떤 의사분이 오셔서는
'연세가 많아서 수술을 해도 수술장에서 사망하실 확률이 높고, 수술을 안하면 조치해줄 수 있는게 없다' 라고 하면서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가족들 모두 슬픔과 혼란에 빠졌고..
그래도 손놓고 보내드리고 싶지는 않아서, 결국 수술해드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병원에선 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하며 다른 병원을 알아봐준다고 해서,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옮기기로 결정.
어제 저녁 10시 30분경에 엠뷸런스에 다시 할머니를 모시고 강남세브란스로 옮겼습니다.

엠뷸런스 기사분 옆자리에 바로 앉아서 갔는데.. 늦은 저녁이라 분당에서 약 40여분만에 가긴 했지만.. 가는 길에 차들은
왜이리 비켜주지 않는걸까요. 대충 헤아려 보니 적극적으로 비켜주는 차는 10대중 1대정도. 그래도 차가 많지 않은 시간이라
꽤 빨리 도착했습니다. (그 와중에 엠뷸런스 차를 보고도 무단횡단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도착한 시간이 어제 오후 11시 10분 정도.

도착해서 바로 수술 준비하시고, 마취에만 약 1시간여.. 수술은 그 이후에 하신다고 하셨고,
수술을 집도하기로 한 이 의사분은 수술 성공을 50%정도 보신다고 하시네요.
물론 수술후의 합병증이나 기타 예후에 대해서도 우려를 말씀하셨고요.

그리고 수술에 들어가시고, 예상 수술시간 5시간이였는데 3시간만에 수술이 끝나고 나오셨습니다.
나와서 집도하신 의사님이 하시는 말씀은

'수술에 들어가서 가슴을 열고 수술을 시작하려는 순간 대동맥이 막 터져서 피가 솟구쳤다.
만약 수술들어가기 전에 터졌다면 수술을 해드릴 수 없는데, 다행히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터져서
그 부위를 손으로 잡으면서 수술을 시작했다' 고 말씀하시네요.

그리고 수술은 매우 잘 끝났지만 지혈문제로 인해서 8시간안에 재수술할 확률이 있고,
잠시 심장을 멈추고 수술했기 때문에 그로인한 다양한 부작용등에 대해서도 주시해야 한다고 얘기하십니다.

수술 끝난시간은 3:30

쓰러지신걸 제가 빨리 발견해서 병원으로 옮겼고
수술해도 사망, 수술하지 않아도 사망이란 얘기를 듣고도 수술을 결정해서 수술 받으셨고
마침 30~40분 거리안에 수술실이 잡혔고,
차들은 잘 비켜주지 않았지만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는 시간이라 금방 이동하실 수 있었고,
수술장에 들어가서 개흉하자마자 대동맥이 터져서 다행히 수술을 속행할 수 있었고,
그리고 수술 집도하신 의사분을 홈페이지에서 검색해보니 세브란스 병원에서 대동맥류 관련 가장 권위자이신 분인거 같고...

등등 뒤돌아 생각해 보니 얼마나 많은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손놓고 돌아가시는걸 지켜볼 상황에서 그래도 조금이나마
희망의 끈을 갖고 가족들이 회복을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우연들중에 하나라도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오늘 새벽 1시경 할머니는 임종하셨을것 같습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할머니를 지켜본 오늘 하루..
그 급박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한시름 놓으면서 그냥 덤덤히 써보았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이라서 가족분들도 어느정도는 할머니를 보내드릴 준비가 되어 있을줄 알았는데,
그렇게 갑자기 쓰러지시니 어느 한분도 할머니를 그냥 보내드리고 싶어하지 않더군요.
우리 가족 중 누구도 아직은 이별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안심하긴 이르지만 한고비 넘기신 이 상황에 감사하며 오늘 있었던 그 급박했던 순간들을 담담히 써보았습니다.
부디 잘 회복하시길 빌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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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20 06:52
수정 아이콘
외할머니가 연세가 많아서 남일 같지 않네요. 쾌차하시길 빕니다.
14/03/20 14:0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눈부신날
14/03/20 08:48
수정 아이콘
괜시리 가슴이 뭉클하네요.
진심으로 쾌차하시길 빌겠습니다.
14/03/20 14:08
수정 아이콘
다행히 산소호흡기 없이 수술후 회복중이신데,
아직 수술 끝나고 10시간째 의식회복이 안되신다고 하네요
감사합니다.
종이사진
14/03/20 09:00
수정 아이콘
'아...'소리를 내면서 제 일처럼 읽어내려갔습니다.

늦기 전에 손을 쓸 수 있어 다행이네요, 쾌차하실 겁니다.
14/03/20 14:0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최악은 다행히 피해간것 같습니다.
절름발이이리
14/03/20 09:14
수정 아이콘
쾌유하시길 빕니다..
14/03/20 14:0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수타군
14/03/20 09:16
수정 아이콘
힘내십시요. 기도 하겠습니다.
14/03/20 14:08
수정 아이콘
모르는 분들까지도 기도해주시니 잘 회복되시리라 믿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해울림
14/03/20 09:49
수정 아이콘
담담히 쓰셨지만, 당시 얼마나 긴박하고 걱정이 많으셨겠습니까.
어르신께서 꼭 쾌차하셨으면 합니다.
14/03/20 14:09
수정 아이콘
24시간이 마치 한 3~4시간처럼 지나가더군요..
감사합니다.
서늘한바다
14/03/20 10:24
수정 아이콘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14/03/20 14:0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14/03/20 10:30
수정 아이콘
나아지실거에요.
14/03/20 14:09
수정 아이콘
저도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PoeticWolf
14/03/20 10:31
수정 아이콘
으.. 차가 안 막혀서 정말정말 다행입니다. 얼른 건강해지시길 바랍니다.
14/03/20 14:10
수정 아이콘
여러가지 천운으로 다행히도 손놓고 임종을 맞이하지는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Neandertal
14/03/20 12:04
수정 아이콘
할머니께서 쾌차하시길 빌겠습니다...
14/03/20 14:1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켈로그김
14/03/20 12:17
수정 아이콘
다행이네요..
14/03/20 14:10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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