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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2/15 17:54:02
Name Neandertal
Subject [일반] [으스스한 이야기] 너는 철저히 혼자다!!!
1996년 5월 10일 오전 5시 45분, 인도-티베트 국경 경비대가 조직한 39명의 에베레스트 등반 원정대 가운데 정상 정복조인 체왕 스만라, 체왕 팔조르, 도르체 모룹과 다른 3명의 대원들은 에베레스트 해발 8,300미터에 설치된 마지막 캠프를 출발하여 정상을 향해 등반을 시작합니다.

오후 중반 무렵 정상에서 수직으로 약 350미터 정도 아래 지점까지 도달했을 때 폭풍설 구름대가 그들을 덮쳤습니다. 여섯 명의 정상 정복조 가운데 3명은 등반을 포기하고 마지막 캠프로 발길을 돌립니다. 그러나 스만라, 팔조르, 모룹은 악화되는 기상을 무릅쓰고 계속 정상을 향해 올라갑니다.

오후 4시경 가시거리가 채 30미터도 되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그들은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봉우리에 도착합니다. 무전으로 베이스 캠프에 정상 도착을 알리고 베이스 캠프에 있던 원정대장 모힌도르 싱은 위성전화로 뉴델리의 나라시마 라오 수상에게 정상 정복의 낭보를 알립니다. 스만라, 팔조르, 모룹은 정상에서의 승리를 자축하고 가지고 간 깃발 등 몇 가지 물건을 정상 정복의 징표로 남겨두고 하산하기 시작합니다.

어둠이 내리고 기상은 극도로 악화되어 한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강풍과 눈보라가 산 정상을 휘몰아칩니다. 해발 8,626미터 근방 제 2스텝이라고 알려진 지역에서 헤드램프의 불빛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지만 이 세 명의 대원들은 끝내 캠프로 귀환하지 않았습니다.

이튿날인 5월 11일 엄청난 강풍이 여전히 불고 있음에도 두 명의 일본 산악인들이 세 명의 셰르파들을 대동하고 정상 정복의 길에 나섭니다. 오전 6시, 시게카와 에이스케와 하나다 히로시는 제 1스텝이라고 알려진 험준한 바위 벼랑을 돌아 올라가다 눈밭에 쓰러진 팔조르를 발견합니다. 그는 심하게 동상이 걸렸지만 아직 살아있었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일본인 팀들은 그를 돕다가 정상 정복을 하지 못할까 봐 그를 놔두고 내처 올라갑니다. 그들이 제 2스텝 지역에 올라갔을 때 거기서 나머지 두 명의 원정대원, 스만라와 모룹을 만납니다. 그 둘 역시 죽기 직전이었고 한 명은 눈밭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일본 원정대들은 그들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고 물 한 모금, 산소통 하나도 건네지 않습니다. 사세카와는 나중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피로해서 도와줄 수가 없었어요. 8000미터 이상 되는 곳에서는 도덕적인 원칙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계속 등반을 계속하던 일본 원정대들은 해발 8,720미터 지점에서 스만라, 팔조르, 모룹이 남기고 온 물건들을 발견합니다. 즉, 그 3인은 너무나 악화된 기상 속에서 8,720미터 지점을 정상이라고 착각한 것이었습니다. 일본 원정대는 오전 11시 45분경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고 본인들이 올라온 루트를 따라 다시 하산을 합니다.

하산 길에 그들은 다시 스만라와 모룹을 만나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냥 그들을 지나쳐 내려옵니다. 모룹은 이미 죽어 있는 것 같았고 스만라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생존해 있었습니다. 더 내려와서 제 1스텝 지역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팔조르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인도-티베트 국경 경비대의 또 다른 팀이 정상 등반을 시도합니다. 5월 17일 오전 1시 15분에 마지막 캠프를 출발한 두 명의 원정대원과 세 명의 셰르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동료들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쓰러진 자신들의 동료들이 자연의 힘에 굴복하기 전에 죽음의 고통 속에서 자신의 옷을 대부분 갈갈이 찢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 다섯 명의 대원들은 스만라와 모룹, 팔조르를 현장에 그대로 눕혀둔 채 계속 전진해 오전 7시 40분 정상에 이르렀습니다.



에베레스트 동북능선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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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15 18:01
수정 아이콘
으스스하다기보다는 안타까운 얘기네요. 하지만 저 집단에는 저 집단만의 룰이 있는 거니 그런가보다 해야겠지요
DragonAttack
13/02/15 18:15
수정 아이콘
얼핏 안타깝긴 하지만 애초에 그걸 각오하고 올라갔을거라고 생각하니 저 역시 걍 그런가 보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Neandertal
13/02/15 18:19
수정 아이콘
사실 에베레스트에 발을 디디는 순간 다른 사람들은 없고 오직 자기 자신만이 있을 뿐이지요...
철저히 혼자고 모든 행위의 결과도 철저히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그래서 역시 히말랴야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인터넷을 통해서 사진으로 보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13/02/15 19:15
수정 아이콘
어쩔수 없다고 봅니다.
자기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곳에서 누군가가 도와주길 바라는건 만용이겠죠..
켈로그김
13/02/15 19:25
수정 아이콘
한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건질만큼의 능력 외에 여력이 없는 극한상황이라고 이해하면 되는거겠죠.

그런데 이게 사람 사는 세상 전체의 이야기로 치환해보면 약간은 서글프긴 합니다.
13/02/15 19:25
수정 아이콘
어쩔 수 없죠.
그 정도 각오 없인 에베레스트 정상을 도전하면 안 되죠.
Earth-200
13/02/15 19:49
수정 아이콘
겨울에 4600미터 정상을 해가 떨어지는 때에 혼자 넘어본 경험상 정말로 저 고독감은 두렵네요.
13/02/15 22:32
수정 아이콘
남을 돌볼 여유는 커녕 자기몸하나 챙기기도 힘든곳이죠.
실제로 그것조차 힘들어서 수없이 죽어나가는 거구요.

본문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고 물 한 모금, 산소통 하나도 건네지 않습니다.' 이런 표현은
아무리봐도 비난조도 보여서 .. 좀 불편합니다.
서린언니
13/02/15 23:01
수정 아이콘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아마추어 등반가들 모여서 유명한 프로 등산가를 리더로 하는
에베레스트 등반 다큐멘터리를 한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하산중 1명이 조난자를 발견하고 산소통을 건네지만 대장이 쓸데없는짓 하지말고
빨리 돌아오라고 하죠. 구하려고 하다가 당신도 조난당할거라고...

결국 그사람도 지칠대로 지친 상태라 조난자를 놔두고 돌아왔습니다.
Baby Whisperer
13/02/15 23:45
수정 아이콘
심지어 저기서는 시체가 썩지도 않고 풍화될 뿐이죠.. 정말 "산이 거기 있기에"만으로 저런 것들을 모두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이 저로서는 대단해 보입니다.

간만에 엄홍길 대장이 박무택 씨의 시신을 수습하러 갔던 다큐나 다시 틀어봐야겠네요.
Neandertal
13/02/16 00:25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다큐를 유튜브에서 보고 있는데 저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그냥 같이 죽겠다는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산악인들이 특별하게 냉혈한들이 아니라 정말 어쩔 수 없겠다는 게 절절히 느껴집니다...
바람 소리부터가 지상에서 부는 바람 소리가 아니네요...
Baby Whisperer
13/02/16 00:44
수정 아이콘
네. 저도 그 심정들이 절실히 이해가더군요. 마지막에 해 드는 사면에 돌로 묻어주고 내려올 때, 그리고 베이스캠프와 통화할 때는 지금도 정말 눈물이 찔끔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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