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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10/09 11:51:57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한글날 맞이 잡상
한글날이네요. 일단 왜 이 날이 왜 휴일이 아닌지에 대해 불만 한 번 터뜨려 주고 -_- 시작하죠. 뭐 어차피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상관 없겠지만요.
음... 그냥 떠오르는 거 막 쓸 건데 역사에 대한 잡상 외전편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1. 기록의 부재 덕분에 우리 나라의 고대 언어는 알아내기 참 힘듭니다. 알타이어계라는 것도 아직도 정설이 못 됐고, 그나마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일 뿐이죠. -_-; 알타이어계 쪽에서 나오는 공통점이 몇 가지 발견은 되지만 차이점도 마찬가지로 있다고 하는군요. 고구려어만 해도 제일 인기 있어서 그런지 별의별 학설 - 일본어와도 공통점 있다 같은 것 - 이 다 나오죠. 백제의 경우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달랐다는데 이것도 그걸 확실히 보여 줄 만큼의 자료가 부족하고... 그나마 신라 쪽이 향가도 있고 할 만 하지만... 신라를 까는 환빠 입장은 싫지만 경덕왕 때 지명을 모두 한자식으로 바꿔버린 건 정말 아쉽긴 합니다. 뭐 이걸로 석독과(훈독) 음독을 비교해서 고대의 원음 및 뜻을 추리하기도 하지만요.

2. 훈민정음 생긴 이후에도 이렇게 한자나 다른 나라 말로 된 것과 비교하는 연구가 참 중요합니다. 고려어를 분석할 수 있는 최고의 자료 계림유사가 한자 뜻 - 음차한 발음 이런 식으로 돼 있고, (중국 학자가 고려어 번역 목적으로 쓴 거죠) 조선에서도 훈민정음으로 된 것 중에 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는 건 한문으로 쓴 거랑 비교하면 되니까요. 오히려 =_=;; 순수 훈민정음으로만 된 게 해석이 어려울 때가 많죠. 아니 당최 이게 무슨 말인지... 마찬가지 이유로 조선관역어 같은 역관들을 위한 책들은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의 옛 언어를 밝히는데도 중요한 사료죠. 덤으로 지금은 소멸돼 가는 만주어 연구에도 도움이 될 거구요.
한국어랑 일본어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거 보면 재밌는 거 많더라구요. 이순신 장군으로 유명한 녹둔도, 그 이순신 장군을 전사하게 했던 시마즈 요시히로의 영지 가고시마, 둘 다 사슴 록 자와 섬 도 자가 들어갑니다. 근데 가고시마는 대대로 사쓰마로 불렸고 녹둔도에 대한 기록 중 이 섬을 '사차마'로 불렀다는 게 있습니다. 뭔가 재미있는 접점을 하나 찾은 기분이죠. :) 우리 장군님 -_-; 전생에 사슴이랑 원수지셨나 봅니다.

3. 좀 위험한 얘기 하자면, 현대 한국어 성립에 일본어가 크게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제시대 일본어 잔재 이런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갑오개혁 할 때 쯤에요. 문학에서 이전의 종결형은 '~더라' 이런 식이었는데 어떤 시점을 중심으로 현대처럼 '~다'로 바뀌기 시작하고, 이후 완전히 정립돼 버리죠. 근데 이 시점이 딱 개혁 시작한 후 현대문학이 시작될 무렵, 특히 '혈의 누' 같은 친일 성향이 짙은 문학들이 나올 때 부터죠.
뭐 일제 때 강제로 일본어 유입한 거랑 그래도 갑오개혁 이후에 신식 문물 받아들이기 위해 일본어 받아들일 때랑은 확실히 다르겠습니다만, 생각해보면 무서운 가정입니다.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이죠. 토론 한두번으로 신경 안 썼었지만 한 번 이 쪽 파 보고 싶긴 하네요. 이에 대해 질문했을 때 교수님이 거의 질문 회피하다시피 한 걸 보면 -_-; 한국어 연구 내지 한국문학 연구의 금지어 내지 뜨거운 감자이긴 한 것 같구요. 국문과는 민족주의랑 떼려야 떼기 힘드니까요.

4. 그럼 예찬 좀 해 볼까요. 훈민정음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입니다. 정말 엄청나게 연구한 흔적이 보이죠. 만주에 중국의 음운학자가 유배돼 있다고 해서 직접 신하 보내고, 자음을 발성할 때 목과 혀의 움직임을 본따 만들지를 않나 (대체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요?)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게 해서 읽기도 편하게 했죠.  훈민정음 만든 이후에도 한자 표기를 중국식 그대로 해야 된다, 우리식대로 해야 된다 싸우고, 순경음(비읍 밑에 이응이 붙어 있는 글자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이나 아래아 같은 글자들이 도태되기도 하고 직역, 의역 간에 어디가 더 좋은지 싸우기도 하고... 현대 문법에서도 얘기 되는 많은 문법들로 학자들이 서로 싸웠고, 서로 다른 책을 내 놓았습니다.
물론 그만큼 조선시대 동안 문법이 확실히 정립 안 됐고 중구난방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만, 그만큼 역동적이었다는 느낌도 강하죠. 언문이라고 낮춰지고 죽어 있던 문자가 아닌 겁니다. 마침내 19세기 들어 현대에서도 알아볼만한 게 보이면 눈물까지 나더군요. 알아보기 쉬워서요 -_-; 100년 단위로 차이점이 확실하게 보일 정도로 많은 변화를 겪어 왔던 문자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우리가 말 한 그대로를 글자로 적고 있습니다. 훈민정음을 만드신 세종대왕님부터 지금의 간단한 모습을 만들기 위해 많이 고민했을 조선시대의 학자들, 갑오개혁 이후 한글을 정착시키기 위해 연구하신 분들(주시경 선생님이라든가), 일제 치하에서도 한글을 어떻게든 지켜오신 분들 덕분에요. 우리는 우리가 직접 만든 문자를 지금까지 쓰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그것도 외국인들이 배운 지 얼마 안 돼서 자기 이름을 한글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문자를 쓰는 나라죠. (한국어는... 패스하겠습니다)

5.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게 되네요. 한글의 소중함을. 내년에는 이런 식의 이도저도 아닌 잡상 대신 아예 한글날 특집으로 글 하나 쓰고 싶은 마음입니다. ^^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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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09 11:59
수정 아이콘
한글날이니만큼 지적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뗄레야 떼기 -> 떼려야 떼기

흠... 그냥 눈에 밟혀서...^^;;

이런 표현할 때 ~할래야 하기로 많이들 쓰시는데 ~하려야 하기로 써야 합니다.^^;;

3번은 어느 정도 동의하는 면이 있습니다.
게다가 중고등학교 때 추천도서들 보면 한국 고전선이라고 해서 추천하는 도서들 보면 일본어 스타일(?)이 꽤나 있죠.
알게 모르게 언어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면도 있고...

그러고 보니 생각 나는 게 모 출판사에서 꽤 많이 팔아 치운 모 도서, 추천의 말에 "저자가 글을 참 잘 쓰는 사람이다"라고 했는데, 정작 읽어보니 번역식 어투가 많아서 실망했던 기억이 있네요.
10/10/09 12:22
수정 아이콘
저희 집이 외할머니랑 같이 사는데, 외할머니가 깨를 글 '꿰'로 발음하셔서 왜 그렇게 하시냐고 여쭤봤더니 제주도 사투리더군요..

어머니 말씀으로 아래아 발음이 남아있는거라고 하시더군요. 그 때 생각해보니 '혼저옵서예'에도 아래아가 있었더랬습니다..

제주도 사투리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투리 들에 옛 한글의 잔재들이 남아있는걸 보면 신기합니다.
10/10/09 12:25
수정 아이콘
어제 한 기사(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442898.html) 에서 왠지 더 기분이 으쓱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꼭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배우기 쉽고, 읽기 편하고, 단어의 예측성이 높은 글자가 어디있을까 싶었어요. 하하..

고로 세종대왕 님 만만세!
벤카슬러
10/10/09 12:3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럼 저도 국어교육과 졸업생으로서... 한글날을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주 하는 실수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자 합니다.
바로 글자 체계로서의 '한글'과 한국인들이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언어로서의 '한국어'를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한다는 점이죠.

'한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문자'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정작 '한국어'는 문법이나 용법 측면을 잘 뜯어보면 정말 배우기 어려운 '언어'라는 점이죠.
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맞춤법, 높임법, 엄청나게 발달한 형용사... 배우기 어려운 조건들을 많이 갖추고 있는 셈이죠.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인데... 심지어는 신문 사설 쓰시는 분들도 자주 헷갈려 하시더라구요 ^^;;;
한글의 위대함, 우수성을 강조하다 보면 자주 하게되는 실수라고 생각됩니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올라온 신문 사설 중 이런 부분에서 실수하신 분이 있는지 찾아봐서 지적해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됩니다.

ps) 혹시 눈시님 역사를 전공하신 분이신가요? 역사 관련해서 좋은 글을 자주 보게 되네요 ^^
말없이응원
10/10/09 15:38
수정 아이콘
한글(문자)과 한국어(언어)를 연관짓다 보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한글 같은 위대한 문자가 창제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나라가 한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어는 "blue"의 뜻으로 "푸르다", "퍼렇다" "파랗다" "푸르스름하다" 등등... 파생어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다양한 표현들이 있는데
이걸 표기하려면 모든 음소를 각각의 고유의 문자로 표기할 수 있는 표음문자가 아니면 안됩니다. 우리말이 중국과 다르다는 세종대왕의 말씀은 한국어를 제대로 분석하고 이해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아무튼 비전형적으로 표현되는 저 형용사들을 나오는 발음대로 일일이 표기하려면 하나의 음소가 하나의 표기로 표현될 필요가 있었고 이에 음성학과 음운학을 연구해야 했을 것이고 그 결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문자가 탄생하지 않았나 합니다.

어릴 때 영어를 배우면서 이해가 안 갔던 점 중 하나는 왜 a가 여러 가지로 발음이 되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는데 그건 제가 한글에 길들여진 탓이었던 것입니다. ㅠㅜ 그래서 영어가 안늘어요. 흑
말없이응원
10/10/09 15:45
수정 아이콘
그리고 한국어가 가장 위대한 언어는 아닐지는 모르지만 웬만한 발음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도 한글의 위대함에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지금은 사라진 자음과 모음으로 /z/, /f/, /v/ 같은 발음의 표기도 가능했다고 추측되고요.
10/10/10 01:28
수정 아이콘
말없이응원 님// 망상이 아닙니다^^ 실제로 근대국어로 넘어오는 어느 시점까지는 '리을'이 선행하는 겹받침의 경우 두 받침이 모두 발음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확한 발음 추정은 /sarm/이긴 하지만요.. 그리고 현대국어에서도 두 받침을 모두 발음하는 화자들이 있다고 보고 되고 있습니다. 다만 표준어에서 받침 두개의 발음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어의 맞춤법 표기의 원칙 중 하나는 "어원을 살려 표기"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발음과 상관 없이 맞춤법이 정해져 있다면 과거의 어느 시점에는 그 글자가 표현하는 그대로 발음이 되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 바른 방향이 될 수 있습니다.
밀크나 필름의 경우는 일본어의 영향으로 볼 수 없습니다. 밀크의 경우 일본어의 영향이었다면, '미르크' 정도가 되었어야 했을테고, 저렇게 표기된 데에는 아마도 영어의 음절말 k의 내파와 외파 등의 차이로 인한 문제가 개입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필름의 경우는 제대로 들은 것이라고 봅니다. film을 '핆'으로 기록하겠다고 하면 그건 그냥 영어의 표기를 하나하나 옮겨 적겠다는, 이른바 (갑자기 용어가 생각이 안 나는데) '철자 대응 표기법'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단어에 따라서 그런 표기법을 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필름의 경우 이 'm'은 자음이 아니라 성절의 m, 즉 음절의 핵, 모음으로써 기능할 수 있는 m입니다. 한국어의 경우 '미음'이 음절의 모음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모음 '으'가 추가된, 귀로 듣고 옮겨적은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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