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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9/19 01:01:33
Name 전상돈
Link #1 https://blog.naver.com/kindknight/224012227966
Subject [일반] 한국의 "특별" 인플레이션: 모두가 특별하면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

2022년 수원이 '특례시'가 되었다. 2024년 창원도 뒤따랐다. 강원도와 전북이 '특별자치도'로 승격했다.
그런데 정작 시도민들은 묻는다. "특례시가 뭐가 다른데?" "특별자치도의 특별함이 뭐지?"
답은 간단하다. 별로 특별하지 않다.
한국은 그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특별' 지위를 만들어왔다. 직할시, 광역시, 특별자치도, 특별자치시, 특례시까지.
마치 화폐를 계속 찍어내듯 '특별'을 남발한 결과, 정작 특별한 건 없어졌다.

현재 한국의 '특별' 지위를 가진 지역은 총 16곳이다.
서울특별시,
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 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제주·강원·전북 특별자치도,
수원·창원·용인·고양·화성 특례시까지.

이들 지역의 총 인구는 약 3,300만 명.
전국 인구의 65%가 '특별한' 지위의 지역에 살고 있다.

모두가 특별하면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는 말처럼, 한국의 행정구역은 "특별 인플레이션"에 빠져있다.




1. 세계는 통합하는데, 한국만 '특별' 만들기에 빠졌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헤이세이 대합병'을 통해 시정촌 수를 3,232개에서 1,821개로 거의 절반으로 줄였다.
프랑스는 2016년 22개 레지옹을 13개로 통합했다.
중국도 현(县)을 현급시로, 다시 시 관할구로 통합하며 대도시 중심의 광역화를 추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같은 시기에 더 많은 '특별'을 만들어냈다.
제주특별자치도, 세종특별자치시, 수원특례시, 창원특례시..
행정구역 수는 그대로인데 '특별' 종류만 계속 늘어났다.
다른 나라들이 통합을 추진하고 한국이 세분화를 추진하는 이유를 비교해보면,

​* 다른 나라들의 통합 논리
- 행정비용 절약: 중복 투자와 인력 낭비 제거
- 규모의 경제: 큰 단위가 효율적
- 광역 문제 해결: 교통, 환경 등은 행정 경계를 넘나든다
- 국제경쟁력: 큰 광역권이 글로벌 경쟁에서 유리

​* 한국의 세분화 논리
- 지역 자존심: "우리도 특별해야 한다"
- 정치적 수요: 승격 공약이 쉬운 표심용
- 상대적 박탈감: "저기도 특별한데 왜 우리만?"
- 과거 성공 경험: "승격하면 발전한다"

​​

2. 한국만의 특수성: 압축성장의 성공 DNA

그렇다면 왜 한국만 다른 방향으로 갈까? 답은 우리의 독특한 성장 경험에 있다.
우리는 과거 승격이 곧 발전이었던 시대에 살았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의 고도성장기는 그야말로 승격의 시대였다.
시멘트공장이 들어서면 면이 읍으로, 읍이 시가 되었고,
공단이 조성되면 군이 시로 승격되었고,
인구가 급증하면 구가 신설되고 동이 분할되었고,
부산,대구, 인천,광주,대전까지 직할시로 승격되었다.
이때의 승격은 실질적 필요였다.
인구가 실제로 폭증했고, 산업화로 도시 기능이 절실했으며, 행정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다.
승격은 발전의 상징이자 성공의 증거였다.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이런 변화들의 예시를 본다면,
울산은 특정공업지구 → 시 승격 → 광역시 승격의 과정을 거쳤고,
수원은 농업 중심지 → 경기남부 거점 → 100만 도시로 성장했고,
성남은 광주대단지 → 분당신도시 → 첨단도시가 되었다.

​ 이러한 성공 경험은 우리 안에 집단 향수로 간직되었다.
문제는 이런 성공 경험이 너무 강렬하게 각인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 세대는 직접 경험했다.
우리 동네가 "읍"에서 "시"가 되었던 날의 자부심.
"구청"이 생기면서 느꼈던 도시다운 기분.
우리 지역이 "직할시"가 되었던 순간의 기쁨.

이런 기억들이 "승격하면 발전한다"는 집단 믿음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세대를 거쳐 전수되었다.​
그리고 이 향수는 포퓰리즘과 만나게 된다.​

2000년대 이후 고도성장이 어느정도 마무리 된 이후의 승격들은 이전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본다.
성장 동력이 아니라 향수의 산물이지 않았을까?
정치인들이 이 향수를 정확히 읽어냈다.
"○○ 승격 추진!"은 쉬운 공약이였고 확실한 표가 되었다.
만에 하나 실현 되지 않더라도 중앙정부가 안해줬다는 좋은 핑계거리가 있다.
사람들도 "내가 사는 곳이 더 높은 급으로 인정받았다"는 느낌에 기분이 좋다.
과거에는 "성장을 위한 승격"이었다면, 지금은 "승격을 위한 승격"이 된 것이다.



3. 다른 나라는 왜 승격하지 않을까?

다른 선진국들은 왜 한국처럼 승격을 남발하지 않을까?
예를들어 미국에서 LA가 캘리포니아 주에서 나와서 "LA광역시"가 되는 것을 상상해보자. 불가능하다.
새로운 주를 만들려면 연방의회 승인, 기존 주의 동의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고, 하와이·알래스카 이후 65년간 새 주는 없었다.

일본에서 요코하마(인구 370만)가 "요코하마부"나 "요코하마도"가 되자고 하면? 일본인들은 "무슨 소리냐"고 할 것이다.
150년간 안정된 도도부현 체계를 인구나 경제력만으로 바꾸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 이후 안정된 체계, 산업화 과정에서도 큰 변화를 만들지 않았고,
독일은 전후 재건 과정에서도 연방주 체계를 유지했으며,
프랑스는 나폴레옹 시대 데파르망 체계를(département) 200년째 유지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렇게 안정된 체계 덕분에 오히려 효율적 분권화가 가능했었다.
이들은 산업화 과정에서도 행정구역을 함부로 바꾸지 않았다.
반면 한국은 압축 성장과 함께 행정구역도 압축 변화를 겪었다.
한국은 광복이후 농업국→공업국→서비스업국으로 변하면서, 승격이 곧 성장의 지표가 되었다.



4. 인도네시아의 경고: 무분별한 분할의 결말

 한국과 비슷한 사례가 있다. 바로 인도네시아의 "페메카란 다에라흐(Pemekaran Daerah, 지역 분할)" 이다.
인도네시아는 1999년 지방자치법 시행 후 10년간 "빅뱅" 효과로 지역 수가 거의 두 배로 늘었다.
한국처럼 절차가 쉽고, 지방 정치인들이 이를 정치적으로 남용했다.

* 한국과 똑같은 문제들:
- 지역 정치엘리트들의 숨겨진 동기
- 법적 절차가 너무 쉽고 기회가 많음
- 분할된 지역들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침에도 열기는 계속
- 지방 엘리트들의 정치적·경제적 이익 추구

결과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문제가 더 컸다.
지방정부 차원의 부패가 확산됐고,
새로운 지역 간 긴장과 갈등이 증가했으며,
통합 감소와 장기적 발전 전망이 악화됐고,
행정 비효율과 사회 갈등이 심화 되었다.
​한국은 이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문제의 방향성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5. 사회적 비용의 실체

한국의 승격 열풍도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1) 행정비용 증가
-특별시/광역시 승격 → 독립청사, 공무원, 의회 신설
-중복 투자, 비효율적 자원 배분
-납세자 부담 증가

2) 지역갈등 심화
-"왜 쟤네만 특별해져?" → 다른 지역 박탈감
-승격 경쟁 → 지역 이기주의 조장
-상대적 박탈감으로 사회통합 저해

3) 행정력 낭비
-편입/승격 논의에만 몇 년씩 소모
-불확실성으로 장기 계획 수립 어려움
-투자 지연과 국민 피로감

4) 제도의 일관성 부족
-특례시, 특별자치도 등 애매한 지위 양산
-국민들이 행정체계 이해하기 어려워짐
-법체계 복잡화



6.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1) 제도적 안정성 확보
-광역자치단체 체계를 헌법에 명시해서 함부로 못 건드리게
-단순 인구수가 아닌 재정자립도, 광역 연계성, 장기 발전계획 등 종합 평가
-승격 논의 부결 시 10년간 재신청 금지하는 쿨링오프 제도

2) 통합 중심으로 정책 전환
- 부울경, 대구경북 등 실질적 광역권 통합에 집중
- 특례시, 특별자치도 등 애매한 지위들을 일반 광역시나 도로 단순화
- 일본처럼 통합하는 지자체에 강력한 재정 지원

3) 정치적 남용 차단
- 승격을 중앙정부 단독 결정이 아닌 국회 2/3 찬성 필요하게
- 해당 지역뿐 아니라 인근 지자체 주민투표도 의무화
- 승격 관련 공약을 허위공약으로 규정해 처벌

4) 장기적 비전 제시
- 2050 행정구역 마스터플랜으로 최종 목표 체계 제시
- 지위 승격보다는 기능과 권한의 차별화로 문제 해결
- 승격 대신 지자체 간 연합체를 통한 광역 행정 활성화




7. 성장기 DNA를 넘어서

한국의 행정구역 승격 열풍은 압축성장 시대의 성공 DNA가 민주화 시대의 포퓰리즘과 만난 결과다.
과거에는 분명 필요하고 효과적이었던 방식이, 이제는 시대착오적 향수가 된건 아닐까?
"더 많은 특별"이 아니라 "더 적지만 실용적인 체계"로 가야 한다.
인도네시아처럼 되기 전에 제도적 브레이크를 걸고,
성장기의 성공 공식에 매몰되지 말고 진짜 필요한 광역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할 때다.
모두가 특별해지길 원하는 한국.
하지만 진정한 특별함은 안정되고 효율적인 체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놀라운 성장 경험이 이제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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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ymaster
25/09/19 01:25
수정 아이콘
광역자치단체 체계의 헌법화는 특별 인플레이션 방지화를 위해 생각해볼만한 거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특별' 인플레이션이 지방행정에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헌법만 아니면 '특별'법으로 다 씹을 수 있죠.
Dr.박부장
25/09/19 03:38
수정 아이콘
외형적인 성장에만 집착하는 우리만의 특수함이 있죠. 모든 공공분야에 만연해서 정상화가 가능할까 싶습니다.
허락해주세요
+ 25/09/19 06:07
수정 아이콘
특례시는 행정권한이 늘어납니다.
그냥 이름이 예뻐서 받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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