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혹시 한 여름 날 낮에 도시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좋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도시의 아스팔트와 같은 바닥들이 뜨겁게 가열돼있기 때문에 화상을 입을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우리는 이런 햇빛을 받은 바닥은 뜨거워지고 특히 도시에 있는 검은 아스팔트는 열을 머금기 때문에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차갑게 식는다는 지식 정보를 학교 과학 시간에서도 배우고, 요즘에는 드뭅니다만 예전에는 뉴스에서 계란을 깨 후라이가 되는 모습을 통해 보기도 합니다만 정작 체감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여름이 덥고 습해서 힘들다 하더라도 온도가 덥하고 습도가 높다는 사실에 불평할 뿐 바닥이 뜨거워 집 밖으로 100m도 못 걸어나가겠다는 주장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우리가 신발이라는 편안함을 통해 발이 원래는 마주해야 했어야하는 각종의 불편함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서 옵니다.
이런 상황은 『편안함의 습격』 작가가 알래스카와 같은 극한 상황에 도달했을 때에는 더이상 적용되지 못합니다. 눈으로 뒤덮여 있어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바닥의 상태에 신경쓰며 단단한지 부드러운지와 같은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하는 불편함을 맞이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지면이란 것이 우리가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 두 가지 형태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하나는 울산의 흔들 다리라는 곳을 걸으면서였고, 하나는 맨발로 집 주변을 걸으면서 입니다. 둘 다 분명 굉장히 안전하다는 사실이 보장돼있는 곳임에도 한 곳은 꾸준히 바닥이 흔들리며 떨어질 가능성이 없는 잘 포장된 공포감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에 바닥과 제 자신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었고, 다른 한 곳은 한 여름의 도시에서 아스팔트 위를 단 2, 30여 분을 걷는 경험만으로도 햇빛이 닿는 뜨거운 바닥은 접촉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단단한 돌과의 마찰을 이기지 못해 상처입은 발바닥의 피부를 통해 제 나약함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J.R.R 톨킨이 반지의 제왕에서 누구보다 나약해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가장 강인한 의지력을 통해 유일하게 절대반지를 운반하고 끝내는 파괴하는 데에 성공하는 원정대의 주인공의 종족으로 맨발로 걸어다니는 호빗을 설정한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호빗이라는 종족은 단순히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훨씬 많은 불편한 경험들을 받아들이는 대신 더 많은 것을 경험하며 살아가야하는 종족일테니까요.
『편안함의 습격』은 이처럼 인간이 수많은 편안함을 얻으면서 동시에 잃어버려온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이폰이 생겨나면서 잃게 된 ‘따분함’, 농경이 발달하면서 잃게 된 ‘배고픔’, 목축과 의료가 발달하면서 잃게 된 ‘죽음’, 교통이 발전하면서 잃게 된 ‘운반 능력’ 등이 그것입니다.
[RIP 따분함 (~ 2007.06.29)]
기억하실 지 모르지만, 인류는 2007년 6월 29일 한 청바지를 입은 백인의 덕으로 이전까지 인간을 괴롭혀오던 커다란 악덕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스티브 잡스, 발표한 물건의 이름은 아이폰입니다.
아이폰의 이전에도 사람이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로 하루 종일 쳐다보더라도 다 소화하기 힘들만큼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물건은 많았습니다. 쉽게는 책부터 시작해서, 수업시간에 하루 종일 돌리고 딸깍거리던 샤프, 걸으면서 들을 수 있는 주변의 소리와 냄새. 하지만 아이폰이 가져다주는 가장 강력한 한가지는 그것은 우리가 어디에 있더라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해 준다는 특징입니다. 그리고 인터넷은 그 자체로 또 다른 하나의 가상 세계라고 부를 정도로 방대하고 현실의 세계보다 훨씬 자극적인 것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우리는 따분하다고 느껴지는 현실보다 인터넷에 들어가 있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으로 가득한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혹시 길을 걸으시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봤을 때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 지 살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최근 제가 경험할 때에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10%도 되지 않으며, 그 중에서도 반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고, 반은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따분함을 치워주고 즐거움으로 가득채워줬지만, 동시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능력과 권리를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따분함을 제거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즐거움을 앗아가고 있다는 것과 동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치 한 겨울에 추운 곳에 있다가 뜨거운 군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먹거나, 하루 종일 행군을 끝내고 복귀 축하로 건네받은 조그마한 컵라면을 먹으며 감동받는 것처럼 우리는 결핍을 통해 그 반대의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게 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극에 노출된 덕분에 도리어 깊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점점 상실하고 있습니다. 음악, 영화의 길이는 짧아지고 플롯은 단순해지며 그 정도는 아예 10초도 되지 않는 영상들인 쇼츠라는 형태에까지 발전했습니다.
[먹지 않아도 되지만, 잠시의 공복도 참을 수 없게 된 사람들]
따분함이 인류에게 정복당한 시점이 명확한 것과 다르게 인류가 굶주림을 정복했다 말할 만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불명확하며, 내가 매일같이 식사 시간 중간에 배고파서 먹는 간식들과 밤 늦게 먹는 야식들은 배고파서 먹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많은 이견들 역시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인류는 ‘진정한 배고픔’을 더이상 느끼지 않으며 ‘가짜 배고픔’으로만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이스터가 주장하고자하는 진정한 배고픔이란 우리의 인체에 실제적으로 손상을 야기할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현대의 문명화된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더이상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해 고통 받는 경우가 없는데도 배고픔을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심함(구치사비시) 또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음식을 섭취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이 값싸고 초가공된 음식에 대한 무제한 접근, 코로나 시대의 격리 기간 등의 다양한 요인들이 합쳐져서 비만율 급증, 심장병, 만성 피로, 우울증 등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극단적으로 그는 초가공식품은 어디서나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값싼 항불안제와 같다고 비판합니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은 최근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다양한 다이어트 방법론 혹은 저속노화 식단 등의 형태로 접할 수도 있습니다.
[마무리]
편안함이 가져다주는 가치에 대해서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최근에 울산으로 휴가를 다녀오며 한 번도 들른 적이 없는 경로들과 표에 대한 예매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녀올 수 있었고, 제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전자책을 통한 것이며, 출퇴근 및 운동을 할 때에는 운동화의 보호를 받고, 에어컨을 통해 쾌적한 환경 속에서 일상 생활을 영유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런 것들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결국 불편함에 대해서 마주하고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에 대한 생각을 책을 읽고 나서 하게 돼, 공유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글을 써봤습니다. 저는 그러기 위해 오늘 23시간 단식, 맨발 산책, 에어컨 끄고 지내기, 스마트폰의 인터넷 연결 끊어놓기 등의 방식을 통해 실천해보고 있는 중이고 이것들이 오히려 저를 자유롭게 해 준다는 인상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통해 내가 당연하게 느껴오고 있었던 편안함은 무엇이고, 그것들이 부재한 상황에 놓이는 경험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경험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데에 들이는 시간은 아깝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