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숭숭한 마음에 글을 적기에 앞서 정책이나 시스템에 대한 비판, 논의를 바라고 쓰는 글은 아니라는 것을 밝힙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에 대한 소고입니다.
저는 전남대학교병원 소아과에서 응급실전담전문의로 일하고 있습니다. 벌써 햇수로 6년째 이 일을 하고 있네요. 전공의때도 교수님이 응급쪽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셨었는데 특별히 그럴 목적은 아니었으나 군복무 해결 후 코로나로 봉직의 자리도 많지 않고 전임의보다는 대학에서 촉탁의로 일하는 것이 수입이 나은것 같아 시작한 일이 나름 적성에 맞아 로컬로 떠나지 않고 지속하고 있습니다. 직업인으로서 활동하면서 중요도를 따지자면 1번이 수입이겠으나 그 외의 만족도라는 것도 어떤일을 하는지에 영향을 미치지요.
광주를 포함해 전라남도에서 경환은 달빛병원이 있어 자정까지는 진료가 가능하나 저녁시간이후 중증환자를 받아주는 곳은 저희병원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2주 단위로 5일을 저녁7시부터 아침7시까지, 총 60시간을 순수하게 야간에만 근무합니다. 전공의때에 당직을 서고 있을때에 지금 이시간에 지역내 소아과 의사는 나뿐이라고 스스로 농담을 하며 도파민을 충전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전라남도에 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나름의 자부심이 생깁니다.
근무를 하다보면 신생아패혈증, 경련, 장중첩, 부정맥, 당뇨병성케톤산증 등등 내과적 질환을 진료하는게 보통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는데 몇주전에는 로컬에서 복부팽만이있어 관장을 하고도 좋아지질 않고 호흡도 점차 빨라진다고 해서 보낸 6세 환아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복부팽만이 심하고 빈호흡도 있는데 가슴 및 복부 xray에서 특이소견이 없었고 호흡음도 깨끗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복부 ct를 찍었고 십이지장 천공이 있어 몇시간 후 소아외과에서 수술해 주셨습니다. 또 몇일 전에는 구토하며 발열이 동반된 6개월 아이가 대천문 팽대가 있어 뇌수막염 의심하에 전원왔습니다. 실제로 대천문 팽대가 저명하여 ct촬영 하였는데 종양이 발견되어 오전 중 신경외과에서 수술해주셨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성인과 다르게 외과나 신경외과를 컨택하여 전원오는것이 아닌경우들이 있어서 병원에서 소아응급을 받지 않으면 진단자체가 지연되고 수시간내에 악화될 수 있는 말그대로 응급상황에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병원은 배후진료가 잘 되어서 아이들이 빠르게 적절한 차치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을 생각하면 제가 직접 처치하진 않았지만 어쨎든 내가 이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면 위험할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의정갈등후에 병원은 적자를 지속하고 있고 저의 급여도 인상되지 못했습니다. 교대근무자의 특성일수도있으나 저는 5년간 연차를 하루도 써보지 않아서 3월 계약시즌에 병원에 연차수당을 요구했습니다. 검토 후 연봉에 반영해주기로 한 뒤 4월에 계약서를 쓰게되었는데 4월급여부터 반영하도록 계약서를 작성하시더라구요. 그 한달에 해당하는 연차수당을 아끼려고하는 모습을 보니 현타가 와서 이게 뭐하는건가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사실 병원 입장에서는 아마도 제가 일으키는 매출보다 인건비가 클 수도 있고 안그래도 적자가 심하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만 당시에는 마음이 많이 상했습니다. 실제로 소아응급진료에 공급이 적어 최근 소위 시세는 상승이 있었고 그에 비하면 저는 그 시세범위의 하한선 이하로 계약하였습니다. 모든 병원의 근무형태와 급여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틀리지 않을겁니다. 물론 그 급여의 차이는 병원에서 지급하는데서의 차이라기보다는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되어 있으면 국가의보조를, 그 외에도 시도 단위의 보조가 있기에 광주에서 보조를 소액 받고 있는 저와 차이가 나는 것일 것입니다. 보조에 대해서는 과에서 광주시에 요청을 하였으나 그정도로 그쳤다고 알고있습니다.
지난주 어린이병원장님께 내년도 임금 상승에 대해 요구하였고 5년간 근무하면서 어떤 불만이나 요구사항이 없던터라 병원장님이 얼굴을 좀 보자고 하시더군요.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씀과 함께 집행부가 과에도 수입이 적은것에대해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하셨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로컬에서 진료보다는 소아응급실 진료가 나름 적성에 맞기에 이 일은 지속하려고 하지만 이제는 적정수준의 보상이 없다면 이직을 할 생각입니다.
소아 응급실에는 반나절쯤 지나고 로컬진료를 받아도 되는 단순발열이나 장염환자등도 많이 옵니다. 하지만 종종 진짜 응급환자들이 오고 개중에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외과파트의 진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전남에 유일하게 열려있는 소아응급실을 지금은 저를 포함 2명의 촉탁의와 교수님들이 나누어서 당직을 서고 있습니다. 제가 사직하면 아마도 그 시간까지 교수님들이 당직을 나누어 서기는 불가능할 것 같고 새로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면 폐쇄하거나 어쩌면 훌륭하신 응급의학과 선생님들이 조금 더 고생해서 소아진료까지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공적자금이 투입없이 병원 입장에서 현재수준이상의 급여로 저를 고용할 이유는 없어보입니다. 저도 같은 일을 하면서 확연이 차이나는 대우를 받는것을 견딜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학창시절을 모두 자란 이곳에 제 개인의 이기심의 영향이 너무 크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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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이나 바이탈과는 환자를 보면 볼수록 병원에 손해다“ 라고 수없이 많이 외쳤었지요. 현장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분들에게 충분하지 않은 급여 문제가 발생하는 것에는 이런 구조적 문제가 시작점이다…. 라고 다른 선생님들께서도 많이 알렸습니다만… 이에 대한 해결은 요원해보입니다. 의사직군이 아무리 소리쳐도 정부나, 복지부나, 심평원이나 다 들어줄 생각이 없어보여서.
노고에 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먼저 챙기셔도 됩니다. 사명감이나 책임감이라고 생각하고 으쌰으샤 하기엔 우리네 삶도 너무나 중요합니다. 어떤 결정이든 응원합니다.
고생많으십니다. 그리고 사명감에 감사와 존경심마저 느껴집니다.
단체에서는 늘 단체가 스스로 피해보기전까지는 개인을 먼저 착취시키고 그마저도 못 버텨야지만 문제가 불거지는것 같습니다. 급여와 처우에 대한 의견은 꾸준히 개진하시되, 선생님의 삶마저 희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체는 그걸 이용할테니까요. 모쪼록 모두가 윈윈하는 방향으로 개선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