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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6/21 18:22:19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3906989322
Subject [일반] 영화 두 편, <엘리오>와 <퀴어>
원래라면, 주중에 하나와 주말에 하나를 보고 따로따로 올렸겠지만, 주중에 좀... 일이 생겨서 주말에 두편을 몰아봤습니다.

<엘리오> - 이 거대한 우주에 당신이 혼자가 아니란건.

픽사의 신작 <엘리오>는 개인적으로는 <미지와의 조우>나 <컨택트>가 많이 떠오르는 영화였습니다. 혹은 약한 연결고리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비티>가 떠오르는 영화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가장 깊게 관련된 인물은 아마도, '칼 세이건' 일 겁니다.

<엘리오>의 이야기는 외로운 소년이 다른 존재와 교감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플롯의 변화와 단순화된 선악구조 등의 이야기가 남아있기도 하구요. 작화적인 측면에서는 규모의 강점보다는 세세한 디테일의 강점이 두드러집니다. 다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별로라기보단, 군데군데 편의주의적인 방식의 이야기 전개가 눈에 띈다는 점이 아쉬워요.

이해받지 못하지만, 혹은 섞여들어가지 못하지만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계에 전념하고 또 들어가야함을 역설하는 이야기이다 보니, 그 외의 다른 부분의 이야기에서는 편의주의적으로 갈등을 써먹고 또 그 해결도 쉽게 쉽게 풀려나가는 이야기가 아쉽습니다. 분명 멋진 장면과 멋진 주제의식이 있지만, 그 부분이 영화의 전체 분위기를 살짝 아쉽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고 해야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가 맘에 들었고, 또 좋았습니다. 영화는 앞에 말씀드렸다시피, 칼 세이건의 느낌이 물씬 풍겨나옵니다. 우주, 생명체와의 평화적 교감, 그리고 과학을 앞세운 낙관성과 낭만까지 아마도 칼 세이건의 저작들을 재밌게 보신 분들이라면 이 영화의 낭만과 분위기를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은데, 제가 딱 그런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종합하자면, 이 영화는 일종의 낭만을 품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주와 다른 생명체, 그리고 탐사를 위해 떠난 보이저호라는 소재는 말 그대로의 낭만 덩어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이 영화의 강점은 그 낭만을 가지고, 그 낭만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좋은 이야기를 선보이는 영화라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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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 같이 있지만, 같이 있지 않은.

<퀴어>는 원작 소설이 있더라구요? 읽어보진 않았습니다만, '약간 독특하다'라는 이야기는 들었었는데, 이게 이렇게까지 독특할 줄은 몰랐긴 했습니다.

원작 소설을 쓴 작가, 윌리엄 S. 버로스보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인지하고 있는 이름은 감독인 루카 구아다니노일텐데요,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가 딱 감독스러운 영화기도 하면서, 어떤 측면에서는 감독의 이름에서 나오는 기대를 속이는 영화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굉장히 달라요.

뛰어난 영상미나, '퀴어'라는 소재, 인상적인 음악과 시대극이라는 측면에서는 감독의 성향과 비슷하다 싶으면서도 영화에서 묘하게 가시가 튀어나온 부분을 보면 기대치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 수 있거든요.

저는 그런 점에서, 영화가 애정과 소유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영화의 지향점이 <그녀> 보단 <나를 찾아줘> 혹은, 소설로 따지면 <롤리타> 같은 작품에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이지만, 우리가 결국 섞여들어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는 서로이기에, 우리는 서로를 소유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거든요.

영화의 중심 소재는 '야헤'라는 텔레파시와 관련된 밀림 토착 식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먹으면 텔레파시에 관련된 능력이 활성화 된다는 이 식물의 성분에 대한 이야기가 1부에 짧게 언급되었다가, 2-3부의 중심 이야기로 자리를 잡게 되는데요. 결국 중요한 건, 이 약물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약물로 인해 얻은 경험에 대한 이야기겠죠. 영화에서 이 경험은, 굉장히 기괴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또 동시에, 서사적으로 빈 공간을 많이 남겨놓은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화는 경험이 '남겨놓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소유하려고 했지만, 그리고 소유하고 싶었지만, 끝끝내 손을 빠져나간 한 때의 것들에 대한 영화는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여정은 같이 있었지만, 그 결론은 서로가 서로에게 속할 수 없다는 것이었던 건 아닐까,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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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이
25/06/21 18:52
수정 아이콘
저도 엘리오 봤는데 주 타겟이 어딘지 잘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고전 영화 오마주도 있고 언급하신 칼 세이건 느낌 주는 나레이션도 있고...
낭만 우주 애니메이션이면 그럭저럭 괜찮은데 캐릭터 배경과 스토리 가는 모양새는
제작 과정에서 캐릭터 배경 설정이 변경되면서 생긴 거 같은 요철들이 걸리적 거리고
조금은 특이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거 같은 영화 홍보 문구는 낚시성으로 느껴져서 저는 별로 였습니다.
aDayInTheLife
25/06/21 18:57
수정 아이콘
확실히 타겟층이랄게 애매하긴 하죠. 영화의 톤도 조금 어긋난 지점도 있긴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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