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에 까다로운 글이지만, 중요하기에 설명해보겠습니다. — 관념적인 얘기는 가급적 간결하게 적는 걸 원칙으로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이번 글에는 여러 예시들을 심느라 글이 길어졌습니다. 이해가 빠른 분들은 과도한 예시라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양해바랍니다. (약 8,300자 분량입니다. 15개로 쪼개 번호를 매겼습니다.)
※ 혹시 틀린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고, 행간에 생략된 의미에 대해 질문해주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관련하여 이 글을 읽는 여러 독자분들에게 유용한 이야기가 있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추상적인 얘기를 할 기회는 거의 없는 듯합니다. 저는 부족한 점도 많고, 발전욕구도 많은 사람입니다. 알려주시면 저도 감사히 잘 배우겠습니다. 비판하실 때에는 어떤 지점이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특정해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정됨) 글을 두번이나 정독해봐도 왜 특정 부분은 잘 이해가 안되는지 잠깐 고민해봤습니다.
저는 보통 글을 읽을 때 하나의 주제가 쭉 이어지면서 화자의 주장이나 생각, 혹은 사실 관계에 대해 알게 되는걸 기대하는데요. (하나의 글이니까요)
여기서는 화자의 생각이 방사형으로 펼쳐지는 옴니버스 형식의 글들이 떡밥회수없이 그냥 마무리되니까 쇼츠 모음집 느낌이라 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도, 그렇다고 반론하기도 애매해지네요.
긴 장검을 기대했는데 까보니 밤송이 같다랄까요.
이런 익숙치 않은 주제는 하나의 주제로 관통될 때 청자에게 의미 전달이 더 잘될 것 같네요.
맞아요. 이 글의 주된 내용인 몸체는 제목에 적은 '공리, 선택직관, 생성직관'으로 ❖1 ~ ❖10까지 적었다고 볼 수 있고, ❖11 ~ ❖15 는 말씀처럼 방사형으로 관련한 이야기를 짧게 나열된 글이라 볼 수 있을 거예요. 팔이나 손이라기에는 어깨까지만 적은 느낌이라 할 수 있겠고요.
감각공리와 생리공리, AI와 연결주의, 양방향연결과 존재론 목적론 역함수, 비언어적 공리와 예술 — 이것들은 짧게만 언급하고 마무리한 거죠. 이 글도 상당히 길어서 올리기 망설여지는데, 그걸 다 적으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까요. 그렇다고 안 적기에는 저 관련 내용들이 중요하기 때문에 언급을 해둘 필요가 있었고요. 이 글도 사실 이전 글인 '논리와 시간'에서 적다가 만 것을 이어서 적은 거라 할 수 있어요.
글의 구성과 별개로, 날것의 거친 생각으로 가득해서 흥미롭게 봤습니다.
14번 양방향 연결은 역함수를 통해 정리에서 공리를 추론하면 더 효율적이라는 내용으로 이해했는데 확률이 높다뿐이지 어차피 양방향이 동일한 관계를 가지진 못하겠지요. 예시의 반례를 들면 팔이 없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15번 비언어적 공리가 따로 있어서 예술을 구성한다기보단 모든 예술은 수학으로 이뤄져있다고 생각합니다. A를 보고 B를 느끼는데 이게 왜 그런지 당장은 모를 수 있죠.
고대에는 저 멜로디가 왜 좋은지 몰랐지만 지금은 화음이 소리 진폭의 정수비로 구성되어야 듣기 좋은걸 알고 있고, 사진의 구도에도 황금비가 있다는 걸 알고, 소설의 기승전결도 적당한 복잡함 속에 익숙한 패턴을 섞어놓는 수학 공식으로 보아도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을 것 같네요.
예술이란 '생각해보니 좋다'가 아닌 '설명은 못하겠지만 좋다'인 직관을 마주하게 하는 도구이고, 많은 사람의 직관을 건드릴 때에 비로소 모두에게 인정받는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대부분 수학적 공식이고요.
이건 좀 딴 얘긴데 AI가 그림을 생성할 때 사람들이 올려놓은 좋은 그림의 패턴들을 미리 학습하여 대부분이 선호하는 패턴으로 그리니까 이걸 역으로 추적하면 실제로 좋은 그림에 대한 수학적 패턴을 추론해볼 수도 있을것 같네요. 그림의 rgb를 hsl(색,채도,밝기)로 바꿔서 분석해보니 특정 패턴이 보인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양방향 연결을 활용하는 예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부족한 글임에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학과 예술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일부 동의하고 공감하는 바입니다. 이에 관하여 상당히 주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적지 않았죠. 설명을 조금 더 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첫째로 저 얘기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과 실러의 <미학 편지>의 영향을 받아서 적은 것입니다. 칸트나 실러는 '모든 예술은 수학으로 이뤄져 있다'라고 주장하면 아마 반대했을 듯합니다. 그러나 저는 수학과 관련있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대 그리스를 높게 보고 있고, 그들은 탁월성과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미의 민족이었다고 생각하며, 그 아름다움이 단지 예술이 아니라, 철학과 수학과도 관련있었던 거라 봅니다. 즉 원래 미적 현상에 의한 것인데, 그중 일부는 철학이나 수학이라 하고, 예술이라 하지 않았던 거라 봅니다.
미적 현상에서 중요한 것은 신경활력이 강렬해지는 거라 봅니다. 강렬해지면 그것은 공리처럼 되기 쉽다고 생각하고요. 그중에 언어로 포착되어 정리될 수 있는게 있고, 그렇지 못한 게 있어서 후자는 주로 예술로 보게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신경활력이 강렬해지는지 문제되고, 그 원인 중 하나가 '동일성'이라 봅니다. 신경활력이 두 번 겹치게 되면, 그 부분만 유독 강렬해질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또다른 원인은 '조화'라 봅니다. 비례는 조화의 일종이라 할 수 있겠고요.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보면 그가 순차적 생각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비례중항 얘기가 있습니다. 비례중항은 순차적인게 아니기 때문인데요.
2 — ? — 18
이때 ?를 찾아냈다고 해봅시다. 감으로 찍어서 맞췄다고 해봅시다. 6이란 걸 알아냈습니다. 이때 비례가 1:3과 1:3이 두 번 겹치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저걸 보던 중에 신경세포에서 비례에 반응하는게 있다면, 그 신경세포는 두 번 자극받을 것입니다. 일단 그걸 포착하면 연속적으로 계속 이어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2 — 6 — 18 — 54 — 142 — ...
이것이 간단하게나마 그리스정신과 서유럽정신을 함축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례중항을 찾아내는게 그리스정신이고, 순차적으로 무한까지 계속 뻗어나가려는게 서유럽정신이었던 거라 이해합니다. 무한까지 뻗어나가려는 것은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숭고'로 분류하는게 적절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예술은 모두 수학으로 이뤄져 있다고 할 수 있는지 문제됩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수학만으로 예술을 이야기하기에는 빠져 있는 게 있다고 봅니다. 그건 윗 글의 생각도구를 가져온다면, '생리공리'를 가지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조화에 의해서 신경활력이 강렬해진다고 할 때, '무엇을 조화시킬 것인지, '무엇과 무엇을 조화시킬 것인지' 문제됩니다. 이때 인간 각자 가지고 있는 생리적인 것들이 관여하게 되는 거라 봅니다. 어떤 부분은 그러한 생리적인 것이 무관할 것입니다. 시각과 청각을 특히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데, 청각에 있어 화음은 비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생리와 무관하거나, 혹은 그에 가까운 것들이 있을 것이고, 그때에 수학을 발견하게 되기 쉬운 거라 봅니다.
그러나 생리가 관련된 경우도 있고, 그것이 대부분의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것인 경우도 있지만, 사람마다 특이성을 가진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 부분을 '생리공리'란 말로 간단히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부득이 부정확해지는 경우가 많지만요. 생리공리와 생리공리를 조화시키는 것, 생리공리와 감각공리를 조화시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생리공리 중 하나는 '성'일 것입니다. 여성과 남성이 대체로 다른 미감을 갖고 있는 부분들이 있죠. 또다른 예를 들면, 입맛이 있을 것입니다. 짠맛에 대한 반응성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그렇다면 조화로운 음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개인차가 있을 수 있겠지요. 어쩌면 그에게 부족한 영양소가 생리적으로 맛 반응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까지 밸런스를 이야기하며 수학이라 주장하는 것도 가능은 하겠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동의하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 거라 생각합니다. 흔히 인격, 취향, 목적론으로 다루어지는 것을 생리로 바꿔서 이야기하고 있고, 목적에 부합하느냐를 목적과 조화되느냐로 바꾼 것으로도 도발적인 주장인데, 그 조화가 모두 수학에 의한 거라 주장한다면, 방어하기가 까다로울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남은 얘기를 하자면, 저는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스스로 흄의 제자라 생각하고요. 만나본 적은 없지만요. 이 글에서 신경활력을 공리에 연관짓는 것도 흄의 영향입니다. 데카르트는 신경활력이 매우 강렬하여 확실성에 이른 것을 가지고 이야기한 것이고, 흄은 신경활력의 생동감을 개연성으로 놓고 이야기한 것이라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건 간단히 '공리'로 환원해서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부정확한 이야기이지만, 유용한 사고방식이라 생각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