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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11/30 23:34:44
Name 만렙법사
Subject [일반] 친구의 계급, 친구의 거리
30대 중반의 끝자락인 어느 늦은 겨울 밤,
해창 막걸리와 금전산성 막걸리, 복순도가 그 중 어느 것이 더 맛있는지 셀프 테이스팅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부터 혼자 술을 마셨지?’

난 alcoholic이자 heavy smoker다
술은 버번과 막걸리를 좋아하고 나름 건강을 위한다고 바꾼
전자 담배를 하루 한 갑 씩, 일할 때는 두 갑 씩 피워대며 가끔은 혼자 시가를 태우는
어느새 슬쩍 나온 배와 나빠진 건강을 걱정하는
어디에나 흔하게 볼법한 흔한 30대 남성이다

그런데 시간을 십몇년만 돌려보면,
난 소주는 2잔 억지로, 술 맛도 모르고 좋아하지도 않았으며 담배는 에세 순 하루 3까치를 피우던 패션 스모커였다

뭐가 달라졌을까? 문득 떠올려보니 그건 친구라는 존재를 만나는 횟수가 달라져서인 듯하다. 내 마음의 외로움을 이제는 술과 담배로 채우는 것 같기도…

학창 시절의 친구와 지금의 친구는 분명 다르다
돈도 집도 직장도 신경쓸 거 없이, 이야기 만으로 하루 밤을 지새우던 그 시절의 친구는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였었다

알바비로 삼겹살 사먹으며 사치를 부리고, 없는 돈에
땅콩과 막걸리 한 병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던 그 시절의 친구들은 이제 몇 남지 않았다

두어 달에 한번 만나 안부를 묻고, 직장 이야기, 옛날 이야기 좀 하고,  그런 친구라고 부르는 관계만이 실처럼 남아있다

대학 시절 절친이라 생각했던 친구들이 어느새 이전에는 신경 안쓰던 돈과 직장, 집 문제로 멀어져가고
어느새 친구에는 계급이 생겨간다

어떤 친구는 연 1억을 벌고 어떤 친구는 연 4천도 못 번다
난 대구탕과 바를 사랑하지만 어떤 친구는 그 자리가 부담스러워진다
어떤 친구는 프라이빗 오마카세를 사랑하는데 어떤 친구는 그런 자리를 난생 처음 가본다

있는 친구가 사는 것도 한두번, 결국 버는 돈이 계급을 만들고 또 한 명의 친구가 연락이 잘 안되게 된다

어떤 친구는 멀리 살아 서울에서 보는게 힘들고, 그 친구 동네에서 보는 것도 한 두 번이다. 지방에서 일하는 친구는 초반에 몇 번 올라오다 친구 집에서 몇 번, 모텔에서 몇 번 자더니 어느새 멀어진다

서울 공화국에서는 사는 곳이 계급을 만들고 결국 또다른 친구가 연락이 잘 안되게 된다

어떤 친구는 대기업에, 어떤 친구는 중소에 다닌다
회사 생활하는 건 다 대동소이함에도 사람 관의 관계는 달라져간다
어느 순간 중소에 다니는 친구는 이야기에 안끼기 시작하더니 스리슬쩍 멀어진다

한국에서는 직장이 계급을 만든다

함께라면 무엇도 두려울 것 없던, ‘친구‘라는 단어에 돈과 집과 직장이 계급을 스며들게 한다

절친이라 생각했던 친구들 중 반절 이상은 자연스레 연락이 끊겨버린다. 남은 반 중 반은 얼굴 보기가 힘들고 나머지 반, 소위 비슷한 급의 친구들만이 어느새 친구라는 이름으로 헛소리를 주고 받는다

어느새 멀어진 거리에 혼자만의 취미가 그 자리를 메꾼다
게임도 하고 혼술과 요리도 하고, 책도 읽고 조용히 웹소설을 썼다가 폭망하고 접기도 한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려보고, 전기 자전거를 사서 더 멀리도 나가본다

마음을 채우는 게 친구가 아니게 되는 건, 나이를 들어간단 뜻인 듯하다

p.s : 막걸리 중에는 금정산성이 제일 나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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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관
24/11/30 23:50
수정 아이콘
공감이 가네요.. 친구라는 관계의 빈자리를 채울 취미와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
만렙법사
24/12/01 08:32
수정 아이콘
그대신 술맛보는 능력은 늘었습니다?
24/11/30 23:51
수정 아이콘
음...근데 나이들수록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가 않은것같아요
일년에 한두번보면 충분한듯
내시간이나 가족과의시간이 훨씬 중요한듯
만렙법사
24/12/01 08:33
수정 아이콘
그래도 안보면 서운하더라고요 왠지 문득 궁금해지는게 친구인 듯합니다
꿀행성
24/11/30 23:56
수정 아이콘
금정산성 메모..
저도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지만, 극소수의 친구들은 끝까지 남아있습니다.
한달에 몇천 버는 놈은 오마카세 쏘고, 저같이 고만고만 한놈은 어쩌다 한번 소고기 사고, 좀 형편 어려운 친구는 삼겹살 삽니다.
그래도 계속 20년 넘게 셋이서 만납니다. 카톡방도 제일 활발하고요 크크.
만렙님께도 적게나마 그런 친구들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서로가 그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만렙법사
24/12/01 08:39
수정 아이콘
네 저도 결국 몇 친구들과 함께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놈들과 함께 여행도 1년에 한번은 가고 같이 이야기도 자주 나누고
저도 꿀행성님처럼 수입은 중간인 수준이고 대신 직업 특성 상 비싼 맛집을 미팅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 친구들에게 알려주는 정보원 노릇을 합니다 흐흐
그러면 잘 버는 놈에게 얻어먹고 저는 대구탕이나 바로 2차 사고 덜버는 친구는 가끔 훠궈나 삼겹살 사고

그래도 계속 연락하고 만나는게 이놈들하고는 평생 갈 거 같습니다
24/12/01 00:21
수정 아이콘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친구들이랑 만나기 어려워지는 만큼
와이프랑 절친처럼 지내는 분들이 참 부러워요.
취미도 같이하고 자주 놀러다니고..
저는 그냥 친구인듯.. 전우에 가깝나..
만렙법사
24/12/01 08:40
수정 아이콘
흑 아직도 솔로라 공감할 능력이 안됩니다…
24/12/01 02:07
수정 아이콘
저는 학창시절, 대학 친구들은 거의 몇 안남았고
대부분은 직장동료이자, 였던 사람들 중에
결이 맞는 사람들과 오래가네요.

물론 여성동료들은 결혼하면 사실 상 끝나는 관계라
이젠 20대 때처럼 여성동료와는 친하게 안지내게 됩니다
(찐친은 여자가 더 많긴 한데 다 10년 이상 된 관계라)
만렙법사
24/12/01 08:41
수정 아이콘
아 그렇게 되더라고요 저도 직장 동료들과 더 자주 보는 듯합니다 그리고 여성분들과는 일하며 본 분들은 친구라기보다는 동료인 거 같아요
그렇군요
24/12/01 02:51
수정 아이콘
(수정됨) 계급사회지요.ㅠ
24/12/01 07:25
수정 아이콘
나이도 비슷하고 주종 가리지 않는 헤비 알콜러로서 막걸리는 복순도가 손막걸리 개봉할 때와 첫모금이 가장 충격적이였네요
만렙법사
24/12/01 08:42
수정 아이콘
복순도가도 좋고 그런데 희한하게 개인적으로 금정산성이 좋더라고요 흐흐
24/12/01 12:11
수정 아이콘
두툼한 동래파전에 금정산성 막걸리 땡기지만 담낭염 때문에 강제금주 한달째라 그림의 떡이네요
몸 회복 이후에 담은 막거리, 로즈아일/시그나토리 글렌알라키 위스키 도전 예정 입니다
슬래쉬
24/12/01 08:25
수정 아이콘
아직 그 나이가 되지 않아 모르겠지만, 50대 후반이 가까워지면 다시 친구들과 가까워진다 하더군요
30-50초 까지는 일하고 가정에 시간 보내고나면 다르데 쓸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한듯..
막걸리마다 개성이 있는데 최악은 송명섭인듯....
만렙법사
24/12/01 08:43
수정 아이콘
그땨 가봐야겠네요
송명섭 인정합니다 네임밸류에 비해 맛이 참…
이민들레
24/12/01 08:28
수정 아이콘
뭔가 저를 떠받쳐주는 타인이
~10대 부모
10~20 친구
20~30 연인
30~40 부인
40~현재 자식
인거 같습니다. 50대 이후엔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네요.
시나브로
24/12/01 11:47
수정 아이콘
글 보면서 '내가 의식수준, 지각수준 높고 성숙했으면 대학 졸업 때부터 주위 사람들이랑 잦은 만남, 연락 자제했을 거'라는 생각 했고(그들을 여전히 소중하게 생각해도),

두 번째 댓글의 친구 별로 안 중요하고 자기 정진이랑 가족과의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했는데 써 주신 댓글의 '나를 떠받쳐 주는 타인', '친구' 보니까 울컥하고 찡하네요 크크 저는 30대 초까지도 친구들이 떠받쳐 주는 덕 봐서...

친구들 없는 10대~30대 초 상상하면 끔찍하고, '친구들 때문에 내 삶 풍성했다'는 생각 전에도 했었습니다.

전처럼 잡담 많이 하고 종종 보고 그러지 않는 건 성장, 필연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10월 말에 PGR에 '정작 친구랑은 지금도 친한데 핸드폰이건 SNS건 메신저건 나이 먹어서 둘 다 잡담에 대해서는 묵묵해져서 2년 넘게 연락 안 하고 있는 게 함정'이라는 글을 썼었습니다.
시나브로
24/12/01 16:07
수정 아이콘
떠받치다
1. 주저앉거나 쓰러지지 않도록 밑에서 위로 받쳐 버티다.
2. 나라나 조직 따위를 튼튼하게 지탱하다.

진짜 짠하고 느낌 좋고 유익한 댓글 봤습니다..
이민들레
24/12/01 17:33
수정 아이콘
앗.. 그정도라니.. 감사합니다..흐흐
시나브로
24/12/01 17:44
수정 아이콘
친구 소중한 거나 도움들이야 알아도 나를 떠받쳐 줬다는 생각은 너무 거대한 말 같아서 안 들었는데 위에 쓴 대로 친구들 없었다고 상상하니 끔찍하고 친구 별로 안 중요하다는 말 공감한 것도 사실인데 친구들에게 미안하네요..

짠하다
안타깝게 뉘우쳐져 마음이 조금 언짢고 아프다. -_- ;
지구 최후의 밤
24/12/01 08:29
수정 아이콘
친구 사이에도 배려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오마카세와 발렌 30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그럴 여력이 안 되는 친구가 있는 경우 삼겹살로 만족하는 그런 거요
더 중요한 건 내가 삼겹살을 정말 좋아해서 먹는거지 오늘 일부러 먹는다는 티를 내지 않는 거요.
그런걸 자연스럽게 챙기는 마음이 유지되면 관계도 지속되는 거고 그게 피곤해지는 마음이 더 커지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겠죠.
만렙법사
24/12/01 08:44
수정 아이콘
네 그래서 그게 서로 자연스럽게 되고 눈치 안보는 사람들 끼리만 남게 되는 거 같더라고요
일각여삼추
24/12/01 08:50
수정 아이콘
결국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는 슬픈 존재인 거 같습니다. 20대 때는 나는 나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아니더라고요.
안군시대
24/12/01 10:50
수정 아이콘
그러다가도 40 넘어가면 그땐 또 사람냄새가 그리워서 다시 연락하고, 만나고 할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러고 있거든요. 다만 여기서 조건은, 안면에 철판깔고 연락돌려서 나오라고 닥달하는 역할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가능한듯 합니다. 그런 친구 없으면 다들 삶의 고단한 때문에라도 안만나게 되고요.
이지금
24/12/01 11:18
수정 아이콘
금정산성 막걸리가 취향에 맞으신다면 올해 탁주부분 대상 받은 독수리 막걸리도 한번 드셔보세요. 한화 이글스 콜라보 제품이라 별 기대없이 마셔봤는데 괜찮더군요.
24/12/01 15:11
수정 아이콘
좀 더 어릴적에는 진짜 스스럼 없이 했을만한 개념없는 말들을 이제는 생각하고 하거나 안하게 되는 저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최대한 그 시절처럼 하려고 연기 할때도 때로는 있구요.
그럼에도 여전히 소중한 제 친구들입니다.
20060828
24/12/01 15:39
수정 아이콘
시간 지나면 또 건강이 계급이 될거 같습니다...
24/12/01 21:27
수정 아이콘
제가 쓰고 싶었던 글이네요.
이런저런 사정으로 친구에게 연락하는게 부담스럽게 되네요.
스스럼 없이 만날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게 엄청난 행복입니다.
장수의 비결 중에 '친구가 많다'는 항목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별루 공감이 안되었는데 요즘에는 정말 공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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