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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10/06 19:31:29
Name 해원
Subject 라디오 스타 이윤열 (군데군데 살짝스포일러인가요;)
영화를 보았습니다.
라디오스타.

이준익 감독 영화를 볼 때는 언제나 3% 부족한 연출력이 아쉽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잔잔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보고싶은 마음을 채워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 처지가 그러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네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왕년에 내가 말이야,
라는 말을 꺼내기 민망한 지금.
거품이 한창일 때 97년 금융위기가 오기 전 우리는 잘 살았던 것 같습니다.
완전치 않았지만 자부심도 있고 긍지도 있었고 더 잘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금모으기란 전국적인 이벤트도 있었다지만 결국 경제 위기를 이겨낸 것은
예전 우리의 비효율성을 자르고 없애고 손질하는 것이었죠.
그 와중에서 우리는 참 많이 상처받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에겐 재생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남은 상처의 흔적을 쓰다듬을 수 있는 따스한 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손을 찾아, 마음의 재생을 찾아 영월로 갑니다.
동쪽에서 흘러나와선지 동쪽으로 흘러선지 모르겠지만
동강이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는 영월에서
사거리 신호등이 정겹게 깜박거리고
철물점도 있고 세탁소도 있고
또 소똥냄새가 진득하게 나는 마당에서
라디오를 틀어놓은 총각도 있는 영월에서
상처받은 마음이 아물어갑니다.

그에 비해 대도시는 소비의 공간입니다.
모두는 각자의 절정의 순간들을 대도시에서 뿜어냅니다.
여기저기 높이 선 빌딩들, 수많은 사람들, 눈부신 네온 사인.
그 화려한 도시에서 화려하게 불사릅니다.
그 도시에서는 사람들의 영광이 존재하죠.
마치 결승전 무대 같기도 합니다.

결승전 무대 위,
내가 응원하던 선수들은 참 멋졌습니다.
그네들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고 눈빛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꿈꾸던 곳에서 당당히 트로피를 움켜쥔 모습은 멋있었죠.

언젠가 내가 응원하던 선수들을 그 무대에서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그 무대는 커녕 리그에서 보기도 힘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피시방리그, 갈수록 네임밸류는 화려해지는데
일반인들에게 공개는 안되는 미지의 공간.
그곳은 아마 내가 응원하던 그 스타들에게 암흑의 공간이었을까요?

이윤열선수 생각이 났습니다.
와신상담도 좋고 다시 탈환할 제왕의 자리에 대한 욕망(?)도 좋지만
한번 떠올려보자고,
구미에서 서울로 오는 기찻간에서
아버지가 쥐어주신 용돈에 감격해하던
그 풋풋한 시절을 한번 돌아보면
잡념들은 날아가지 않을까...
그리고 구겨진 자존심에 또 이런 저런 마음 고생에
상처받은 마음은 잊고...
예전 코카콜라 온게임넷 스타리그 예선전에서
안녕하세요 이윤열입니다
라고 인사하던 그곳도 피시방이었는데.....
  
물론 라디오스타와 이윤열선수는 별다른 관련이 없습니다.
노래하고 싶어질까봐 노래를 사양하는 최곤과
한창 현역으로 열심히 활동 중인 이윤열은 분명 다르지요.
그리고 재생의 공간인 영월과 피시방리그의 피시방도 다릅니다.
같다고 동일선상에 놓는다면 그건 저의 오만일 것입니다.
김정민선수가 스타뒷담화에 나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개월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갔는데 떨어졌을 때의 막막함, 절망.
결코 영월과 피시방은 같은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냥 이윤열선수가 생각났습니다.
이제는 이윤열선수 전 경기를 생방으로 챙겨보는 열혈팬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래도 이겼는지 졌는지가 궁금한 것보다 걱정이 되고
가수왕 최곤이란 말에 스타왕 이윤열이 떠올라서
자조어린 웃음을 짓는 팬으로 사는 사람이
한번 생각이 나서 주절주절 적어봤습니다.

박민수는 매니저 뿐 아니라 최곤의 팬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최곤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팬.

요즘도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에게 질타가 많이 쏟아지나요? (잘 몰라서요;;)
예전에 전 좋아하는 선수들이 기대만큼 못해줄 때
게시판에 적진 않았지만 참 미운 소리 못난 소리 속으로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지나고보니 참 미안하네요...

피시방은 추락한 자들의 공간이 아닌
다시 올라갈 사람, 또 처음 날아오를 사람들의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_-; 그래도 바람이라고...)
팬들의 따스한 응원이 아마 막막한 선수들에게 그래도 힘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윤열선수가 피시방에 있던 시절
소식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면서 수없이 새로고침을 눌러대던 그 때
내 생각에 화내고 좋아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한번 더 이윤열선수를 응원을 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라디오 스타의 박민수를 보니...


아직도 넌 최고야.
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 진심인 팬이라고...
아직도가 아니라 넌 영원히 최고야 라는
낯간지러운 말 해줄 수 있는 팬이니까
다음 경기 꼭 이기란 부탁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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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0/06 19:57
수정 아이콘
저 골수 프로토스 팬인데도 이상하게 이윤열 선수는 좋더군요.
프로토스 박성훈 선수가 이윤열 선수를 전략으로 멋지게 이겼을때도 왜이리 가슴이 계속 무겁던지...가을의 전설은 이윤열 선수의 골든 마우스 획득으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나다 화이팅!!
06/10/06 20:00
수정 아이콘
글을 다 읽고 나서
도대체 이런 글을 쓰신 분이 누구신가 했더니
해원님이셨군요 ^^
꽤나 오래됐다고 자부하는 눈팅경력중에
유난히도 나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던 해원님의 정성스런 글덕분에 아직 아이디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나다의 팬 중에 한 명으로서 이런 글은 무척 반갑네요

아, 참 인사를 깜박했군요
반갑습니다 해원님 ^^
오현철
06/10/06 20:01
수정 아이콘
라디오 스타 저도 오늘 봤는데 그냥 감동적이었습니다.(딱히 표현할 방도가 -_-;) 퇴물이라 볼 수 있는 최곤을 20년동안 최고라며 따라준 박민수 를 보며 스타 한명을 위한 매니저의 희생이 대단하구나 이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 끝에 출연 명단 나올 때 안성기의 매니저 xxx, 박중훈의 매니저 xxx 이렇게 나왔는데요.(이 또한 영화사의 배려인가요 -_-a) 이 영화를 찍으며 고생한 매니저들에 대해 생각을 좀 더 하게 되더군요. 제목은 '라디오 스타' 인데 '라디오 스타 매니저' 쪽으로 보게 되더군요 -_-;
아 그리고 저는 이 영화 보면서 윤열 선수보다 정석 선수가 생각났습니다. 정석 선수 어서 메이져로 올라와주세요...
체념토스
06/10/06 20:16
수정 아이콘
박정석 선수 메이져로 올라와주세요....

아 그나저나 영화 정말 잘봤어요~ 너무 재밌고 좋은 영화..

물론.. 이글도 잘봤습니다!
KoReaNaDa
06/10/06 20:34
수정 아이콘
피시방은 추락한 자들의 공간이 아닌
다시 올라갈 사람, 또 처음 날아오를 사람들의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이 말 정말 좋네요 ㅋ^ ^
jjangbono
06/10/06 22:14
수정 아이콘
정말 해원님의 글은 오랜만에 보는거 같네요^^
어제 라디오 스타 친구들이랑 봤는데
확 끌어당기는 건 없어도 그래도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중간에 이준익 감독이 직접 나오는..-_-;;;
elegance
06/10/07 09:54
수정 아이콘
그때 예선장에서 똘망똘망한 눈으로 인사하던 모습이 눈에 선 하네요.
가을의 전설은 토스라지만 저는 이윤열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완전소중류크
06/10/07 21:33
수정 아이콘
나다 당신은 영원히 최고입니다
06/10/09 01:53
수정 아이콘
라디오 스타를 보면서 느꼈던 점과 많이 비슷하네요- 물론 전 나다를 생각하진 못했지만...^^;
"이제는 이윤열선수 전 경기를 생방으로 챙겨보는 열혈팬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래도 이겼는지 졌는지가 궁금한 것보다 걱정이 되고"
하지만 이 부분에 너무 공감해서 코멘트 달아 봅니다!!!
오랜만의 좋은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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