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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5/11/13 04:17:47 |
Name |
雜龍登天 |
Subject |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자, 그리고 노비 |
노비는 툭하면 남에게 신세타령을 하곤 했다. 그리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달리 뾰족한 방도가 없기도 했다. 한번은 어진 사람을 만났다.
"선생님!"
그는 울먹이며 말했다. 두 줄기 눈물이 볼을 탔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사는 꼴이 말이 아닙니다. 밥은 하루 한끼 먹을까 말까인데, 그것도 강냉이죽으로, 개 돼지도 거들떠 보지 않을 정도예요. 게다가 손바닥만한 그릇으로 한 그릇뿐이죠..."
"참으로 불쌍하군."
어진 사람은 애처로운 듯이 말하였다.
"그렇지요!"
그는 마음이 밝아졌다.
"밤낮으로 쉴 새가 없어요. 아침에는 물을 길어야 하고, 저녁에는 밥을 지어야 하고, 낮에는 심부름에 헐떡이고, 맑은 날에는 빨래하고 궂은 날에는 우산잡이가 되고, 겨울에는 탄불 피우랴 여름이면 부채 부쳐 주랴, 밤에는 밤참 만들어 주인님 마작하시는 방에 들여 보내랴...., 그런데도 땡전 한 닢은 고사하고 돌아오는 건 매타작 뿐이니...."
"쯧쯧 저런..."
어진 사람은 한숨을 내 쉬었다. 눈시울이 이내 붉어지며 이슬이 맺히는 듯하였다.
"선생님. 이러니 대관절 어떻게 당해 낼 수 있겠어요. 무슨 다른 방도가 없을까요? 전 어쩌면 좋지요?"
"머잖아 분명히 좋게 될 것임세."
"정말요? 그렇게만 된다면야..... 어쨌든 이렇게 선생님께 제 괴로움을 하소연하고, 선생님이 저를 동정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니 마음이 한결 낫네요."
그러나 이삼일이 지나자 다시금 마음이 언잖아져 또다시 신세타령을 들어 줄 상대를 찾아 나섰다.
"선생님!"
그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제 집은 외양간보다 못하답니다. 주인은 저를 사람취급도 안해요. 저보다 강아지가 몇천 배 더 귀여움을 받지요."
"이런 멍청이!"
듣던 이가 소리를 질러 그는 깜작 놀랐다. 그 사람은 어리석은 자였다.
"선생님. 제 집은 고작 개집 같은 오두막이예요. 춥고 빈대까지 우글거려, 자려고 하면 여기저기 물고 생난리지요. 썩은 냄새로 코가 막힐 지경이구요. 창문 하나 없는 데다...."
"주인한테 창문 내 달라는 말도 못해?"
"안 될 말씀입니요"
"그래! 그럼 어디 한번 가 보자"
어리석은 자는 노비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집에 이르자마자 흙담을 뚫으려 하는 것이었다.
" 선생님. 지금 뭐 하시려는 겁니까?"
"자네한테 창문을 내 주려고 그러는 게야."
"안돼요! 주인님께 혼납니다."
"괜찮아!"
그는 벽을 헐었다.
"누구 없어요! 강도가 집을 부숴요! 빨리요. 집 다 부서져요."
그는 울부짖으며 펄쩍펄쩍 뛰었다.
노비들이 우르르 몰려와 어리석은 자를 쫒아냈다.
소동을 알고서 주인이 천천히 나타났다.
"강도가 집을 부수려 했습지요. 제가 소리를 질러 저희들이 함게 몰아냈사옵니다."
노비는 공손하게 그러면서도 자랑스러워 하면서 아뢰었다.
"그래. 잘 했다."
주인이 그를 칭찬했다.
그날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그를 위로해 주었다. 그 중에는 어진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 이번에 제가 공을 세웠답니다. 주인님께서 칭찬해 주셧지요. 지난번에 선생님께서 그러셨잖아요. 머잖아 잘 될거라구요. 정말 선견지명이셨어요."
꿈에 부푼 듯 그는 유쾌하게 떠들었다.
"암. 그렇고 말고"
어진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덕택에 자신도 유쾌하다는 듯이. (1925년)
노신 선생님의 글을 또 한편 올려보니다.
이번글은 무슨 동화같은 형식이네요.
저번에 올린 글이 페이지내 최소 리플 기록을 달성한 압박이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이 읽어 주시고 댓글도 달아 주셔 다시한번 용기를 내 봅니다.
타자를 치기에 그다지 부담없는 짧은 글들로 몇 차례 더 올려볼까 합니다.
저는 노신 선생님의 사상이나 생애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릅니다.
그런 내용은 정말 노신을 잘 아시는 분이 언제든 올려 주실거라 생각하고...
저는 단지 중국의 문화혁명이니 뭐니 하는 시대적 공간적 배경과 무관하게 노신 선생님의 글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을 얻고자 노신을 읽습니다.
물론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저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지만요.
노신 선생님은 번역에 관해 얘기하면서
'번역이란 남의 불을 빌어와 자신의 고기를 굽는 것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노신을 읽는 이유가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노신의 여러 저작들은 한양대학교 리영희 선생님 같은 분들의 소개로 암울한 시대에 많은 지식인들에게 제대로 번역되지도 않은 불온서적의 형태로 읽혀져 왔습니다.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노신을 처음 접한 15년 전부터 지금까지
읽을때마다 그때그때 각기 다른 느낌으로 오늘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얻곤 합니다.
좋은 휴일, 그리고 밝은 다음 한 주 되십시오.
덧붙임. 글을 올리면서 드는 한가지 생둥맞은 걱정은 너무 짧고 평이한 내용들로 올리다 보니 읽으시는 분들이 오히려 노신의 저작에 대해 너무 과소평가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신의 깊이를 정말 잘 알고 계시는 분들이 이런 점을 불쾌하게 느끼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그렇게 되면 이건 정말 너무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건데요...아..정말 걱정입니다..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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