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촌역 근처의 까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동네 조명 참 묘~_~하데요.
어두운 푸른 빛을 받은 동준선수, 참 반듯하게 생겼습니다.
처음엔 얼굴이 일자로 굳어 있어서 더 빤.뜻.하게 보였을지도.
“….죄송해요;; 좀 짜증 나셨죠?”
“네.”
쳇ㅡ_ㅡ.
보통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렇게 솔직하게 감정표현을 하는 사람은 잘 없습니다.
빈말이라도 아뇨 뭐 괜찮습니다가 대부분이죠.
'솔직하다. 그러나 성격이 좀 모가 난 것 같다'
제가 처음 받은 인상입니다.
기분이 나빴냐구요?
전-_-혀.
전 솔직한 사람 좋아하거든요.
뭔가 잘 풀릴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동준선수를 만나기 전, 이너뷰 준비로 동준동을 들락였습니다.
그리고 동준선수가 쓴 글들을 쭉 읽었죠. 거기서 전 이 선수가 스타를 그만뒀다는 걸 알았습니다.(-_-a)
예전에 피쥐알에 아휘님이 쓴 팬레터?도 읽었지만
전 그게 동준선수인줄도 몰랐답니다-_-V 제가 원래 둔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습니다.(...자랑이다)
사실 그동안 봐왔던 게이머들은 스타를 '안 하고' 있을 뿐이지 그만둔다고 발표하진 않았죠.
그리고 그들은 대개 '기회가 되면 스타도 다시 하고 싶죠....절 프로게이머로 만든 게임인데요' 라고들 합니다.
"스타는 완전히 접었습니다. 오히려 늦었죠. 제게 있어 스타의 재미가 끝난건 벌써 2년 전이거든요."
그의 단호한 한마딥니다.
게임은 재미있어야 하는데...지금은 승리의 쾌감은 있을지언정 게임 자체에서 나오는 재미는 더이상 없다는 것,
그리고
패배가 쌓여가면서 컴퓨터 앞에 앉으면 밀려오는 '질지도 몰라' 라는 강박관념,
그리고
그런 부담감에 눌려 실력 발휘를 못하는 자신에 대해 짜증이 나고
자신을 응원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하지 못한다는 게 슬퍼서...
라는 것이 그가 쏟아낸 이유들입니다.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답니다.
그런데 스타 그만둔다는 글을 쓰고 나서
김동준 프로게이머 그만뒀다!! 라는 소문이 쫘악 퍼지더라는군요.
(여기서 정말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상에서 말옮기는 사람들,
매너없는 것(-_-)들,
남한테 피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동준선수의 온라인이력은 무척 오래됐습니다.
그동안 프로게이머들을 비롯해 여러 게임바닥 사람들의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이라면,
처음 천리안과 하이텔로 PC통신을 시작했고 거기서 오래 머물던 사람들에게선
비슷한 냄새가 난다는 겁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모뎀 키드' 라고나 할까요.
그들은 모두 성격도 제각각이고 개성도 다양하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만나서 얘길 해보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비슷한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씨드나인의 김건 사장이나, 온게임넷의 석정훈 PD님이나,
그라비티의 김학규 전 사장 등등이 그랬죠.
동준선수도 그랬습니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케이블을 따라 유영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아, 모르겠습니다-_- 그냥 전 색깔을 보는 것 뿐이니까요.
"전 예민한 성격이라서요."
얘기를 하다 보니, 동준선수가 상당히 center of attention에 관한 욕구가 강하다는 걸 느꼈죠.
(느끼고 자시고도 없습니다. "전 시선집중 받는걸 즐겨요^^" 라고 했으니까요-_-)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다른이들의 중심에 있고 싶어하는, 주목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건 여러가지 형태로 표현이 되는데,
어렸을 땐 주목받고 싶은 상대가 부모님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누가 자기 안돌봐주면 무조건 울고 사촌들 놀러왔는데 부모님이 걔들만 챙겨줘도 삐지고-_-
커서는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술자리엔 나가기 싫어한다거나
특별히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나는 남들과 달라' 라는 느낌을 늘 갖고 살면서 일상에서 배어나는 그런 사소한 '다름'을 즐기는 형도 있죠.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군요-_-a
어쨌든 동준선수의 경우엔 이런 욕구가 상당히 강한데
동시에 성격도 예민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더이상 최고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야에선 남들보다 더 빨리 자신감을 잃는 경우가 많죠. ←앞뒤 다 짜르고 바로 이 문장만 얘기했더니 동준선수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군요.
그러나.
또다시 자신이 주목받을 다른 자리를 어떻게든 찾아 내는 것도 사람의 본능이고
예민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찾는 것보다 더 빨리 자신의 자리를 찾아냅니다.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죠^_^
동준선수는 자신에 대해 무척 욕심이 많습니다.
운동도 잘 하고 싶고, 노래도 잘 하고 싶고, 멋지다는 말 듣고 싶고, 남들 앞에서 말도 잘 하고 싶고,
공부도 잘 하고 싶고, 지금 본선올라간 워3 리그도 우승하고 싶고, 해설도 잘 하고 싶고, 연예인도 되보고 싶고...
-_-;;;;;;;;;;;;;
전 동준선수가 이제 스물두 살 밖에 안됐다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하고 싶은게 너무너무 많으니까.
그리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
'여전히 할 수는 있지만 하려면 일년 전보다, 혹은 한 덜 전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들도 많잖습니까?
근데 동준선수라면 왠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다 해볼 것 같다는.^_^a
아, 왠지 성격분석 들어간 느낌이군요. ㅎㅎ
오랜만에 보는 독특한 사람이라서요. 무척 즐거웠거든요.
제 느낌을 그냥 두서없이 쓰는 거니까 너무들 뭐라고 하지 마시길.
전 잠시 저녁먹으러~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