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4/04/20 23:55:17
Name sylent
Subject OCL 관전일기 - ‘저그 데이’에 보여준 저그스러움
OCL 관전일기 - G-Voice 2004 온게임넷 1st 챌린지리그 1주차 (2004년 4월 20일)


‘저그 데이’에 보여준 저그스러움

모든 경기에 저그 플레이어가 존재하고, 모든 경기를 저그 플레이어가 승리한 날. 그런 날이 있기는 했던가. 설사 있었다고 해도, 너무 오래전 일이라면 기억해낼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G-Voice 2004 온게임넷 1st 챌린지리그 1주차]에서 ‘저그의 역습’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모든 경기를 저그 플레이어들이 접수했다는 것 외에, 오늘을 ‘저그 데이’로 명명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승리 코드가 ‘저그스러움’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1경기 <남자이야기> : 송병석(P5) vs 이주영(Z11)

송병석 선수의 운영은 진부했지만, 나름대로 단단했다. 전통의 힘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빠른 커세어 이후 다크템플러 견제, 적절한 타이밍에 확보한 옵저버, 스파이어 파괴까지. 송병석 선수가 작정하고 달려드는 순간마다, 매번 그대로 들어맞는 전략과 전술은 프로토스의 승리를 확정짓는 듯 보였다.

그렇게 많은 드론을 잃고도, 그렇게 많은 멀티를 견제 당하고도, 그렇게 많은 대규모 공격을 저지당하고도 이주영 선수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소울 저그식 ‘콜로니 신공’ 덕분이다. 조용호 선수를 시작으로, 박상익 선수, 나경보 선수로 이어지는 (과거의) 소울 저그들이 프로토스에게 특별한 강함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한 가지는 아낌없는 성큰 콜로니 건설에 있다.

테란을 상대 하는 저그는 성큰의 수를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성큰의 공격력이 테란의 병력 규모에 비례해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특정 타이밍이 지나면 성큰 라인으로 테란의 바이오닉 병력을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메딕이 모이면 모일수록 마린을 제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진다. 이에 반해, 프로토스를 상대하는 저그는 자원이 허용하는 한, 많은 성큰을 건설해야 한다. 성큰의 공격력이 프로토스의 병력 규모에 비례해 산술급수적으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질럿과 드래군에게 다수의 성큰은 부담스러운 벽이다. 프로토스가 저그의 멀티를 '알고도 못막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성큰 콜로니에 투자한 자원이 많았기 때문에 병력의 규모가 어중간했지만, 어렵게 늘려간 멀티를 잘 지켜냄으로서 ‘엘리트 저그’ 이주영 선수는 끝내 승리할 수 있었다. 특히, 송병석 선수가 특정 지역에 집중적인 방어 라인을 구축하지 못하도록 다방향으로 물량을 쏟아 붇는 마무리 전술은, 경기 초반의 매끄럽지 못한 마이크로 컨트롤을 만회하기에 충분했다.


2경기 <노스텔지어> : 조정현(T7) vs 이재항(Z11)

저그를 상대하는 테란에게 한 번의 실패는 탱크와 사이언스 베슬을 동반한 ‘한방 러시’라는 면죄부가 주어진다. 하지만, 두 번의 실패는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다.

앞마당 공격 실패, 5시 몰래 멀티 공격 실패. 조정현 선수는 병력을 두 번이나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센터를 잡는데 성공했다. ‘대나무’ 특유의 유연함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지만, 두 개의 가스로 울트라를 생산하려 했던 이재항 선수의 무모한 테크 욕심도 한 몫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쨌든 가장 위험한 세 번의 타이밍 중, 두 번을 막아낸 ‘시라소니’ 이재항 선수. 그가 선택한 카드는 ‘바꾸기’이다. 가장 손이 덜 가는 ‘저글링 +울트라’ 조합으로 센터 싸움을 펼치면서, 테란의 세 번째 자원을 견제하는데 컨트롤을 집중한 덕분에 조정현 선수는 6시 멀티를 포기해야 했고, 이재항 선수는 12시와 1시 멀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모이지 않은 테란 병력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조정현 선수는 모든 연습을 중단해서라도,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부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병력을 회군하는 순간 스팀 팩을 걸어줄 집중력마저 상실한 조정현 선수에게, ‘승리’는 멀고도 험한 길이다.


3경기 <노스텔지어> : 김환중(P7) vs 김종성(Z5)

2004년 첫 챌린지리그에서 ‘저글링 + 뮤탈’로 승리하는 저그 플레이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게임 팬은 많지 않다. 질럿은 많은 저글링으로, 아칸은 많은 뮤탈 리스크로 잡아내면 된다는 생각. 동시에 두 개의 멀티를 시도하고, 그 중 한 개를 포기하는 모습. 도대체 어느 시대 저그의 운영인가. 하지만, 김종성 선수는 그렇게 승리하였다.

물론, 김환중 선수에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9시 멀티가 탐났다면 커세어를 모았어야 했다. 혹은, 아칸이 5~6기 모일 때까지 참았어야 했다. 뮤탈리스크를 아칸만으로 상대하는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4경기 <남자이야기> : 변길섭(T7) vs 신정민(Z5)

신정민 선수는 상대가 ‘불꽃 테란’ 변길섭 선수임을 잠시 잊었던게 아닐까? 상대가 가로 방향임을 확인한 후에 앞마당 멀티를 시도하고, 바이오닉 병력이 앞마당의 코앞에서 시위하는데도 불구하고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특히, 일부 병력으로 싸움을 유도하여 변길섭 선수의 병력이 회군할 수 없도록 한 판단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본진간의 거리가 가까울 때, 저그의 기동성은 이렇게 발휘될 수 있는것이다.

어쩌면 변길섭 선수는, 첫 진출한 병력으로 적당히 압박하고, 두 번째 부대를 조금 더 늦게 합류 시켰다면 ‘저글링 + 러커’의 난입을 무난히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자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랬을 것이다. 단지, <남자이야기>의 센터가 생각보다 넓었고, 저그의 병력이 생각보다 빨랐던 것뿐이다.

신정민 선수 덕분에 <레퀴엠>을 바라보는 필자의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다.

- syl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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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4/21 08:09
수정 아이콘
sylent님의 OSL 관전기는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문장이 간결해서 읽기가 좋더군요.
증~재균~ ^^//
04/04/21 08:41
수정 아이콘
Oh~~ 어제 경기를 못봤는데 sylent님의 깔끔한 해설 덕분에 많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
싸이코샤오유
04/04/21 09:32
수정 아이콘
어떻게하면 이렇게 글을 쓸 수 가 있지요 ㅡ ㅡ;;;;
AceTJAce
04/04/21 12:01
수정 아이콘
경기를 짚어내시는 님의 탁월한 안목을 존경합니다.~~~
04/04/21 14:00
수정 아이콘
헉,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
(주)미싱™
04/04/21 16:14
수정 아이콘
제 4경기는 못봤는데.. ;;
저그가 전부다 이겼나 보죠? ^^;
김명보
04/04/21 17:38
수정 아이콘
지난번 NHN 한게임 스타리그 본선에서 첫날 저그가 4경기 다 이긴 걸로 알고 있습니다..
MistyDay
04/04/21 17:44
수정 아이콘
NHN 첫날은.. 4경기가 저그 대 저그였죠..
Roman_Plto
04/04/22 12:43
수정 아이콘
늘 잘보고 있습니다~
소수마영
04/04/22 18:50
수정 아이콘
흠.. 정말 글 잘 쓰시네요. 게임을 보고 글을 보는 중인데,,, 공감이 확~ ^^ 앞으로도 건필 하세요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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