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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5 22:37
임용한 교수는 저 왜인 교관들을 임란초기에만 쓰고 결국 없애버렸다는 식으로 얘기하던데 그게 죽여버렸다는 의미인지... 다시 봐야겟네요.
게시물 잘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저 역사다큐 그날과 신병주 교수님에 대해 어떤 편견이 있다보니 저 편도 한 번 뜯어보고 싶어지네요. 과연 어떤 식으로 구성해놨을지.
21/01/06 01:44
전체적으로 항왜들이 큰 문제가 없었다는 이야기는 알고있습니다. 저 초기 교관들이 그러했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렇다면 그냥 검술교관으로서 쓰지 않았다는 뜻으로 봐야겠지요.
그나저나 병자호란 영상을 봐도 해당발언이 없는거 같아서 어디서 그런 말을 했는지 찬찬히 생각해봐야겠네요.
21/01/06 02:16
실록을 살펴보니 선조 때 항왜로 91건의 기사가 있습니다. 쭉 읽어보니 선조와 조정대신들은 항왜들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인데 초기 전반적인 민심은 그다지 좋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항왜가 죽었다는 보고가 올라오면 살해부터 의심하고 보는군요. 실제로 살해하기도 했고.
그럼에도 상당히 좋은 대우를 약속하고 실제로 실행한 것 같습니다. 특히 비변사는 항왜들을 도라에몽으로 보는건가 싶은 수준.... 물론 사관들은 엄청나게 비판적입니다. 사헌부에서 항왜들의 주거를 계속 북방으로 옮길것을 건의하기도 하고요. 따라서 장기적으로 어땠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광해군 조의 기사도 보면 알겠지요. 다만 교관들이 활동했던 아동대에서 항왜들이 교관으로 활동했다는 기록은 한 달 남짓이고 이후로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동대는 1년 후 봉급 미지급을 문제로 해체되니 계속 쓰이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네요. 어쨌든 죽였거나 무언가를 했다는 기록은 없군요.
21/01/05 23:56
명나라가 왜구에 대항하려고 별짓 다해보고 나온게 원앙진이죠
1:1은 절대로 못이기고3~4명이상 붙어도 이기기 힘들었다고 하니 말다한거죠
21/01/06 00:03
일본군의 검술 자체가 좋았다기 보다는, 설명대로
큰전쟁없이 평화시기를 지낸 조선군과 150년간 내전을 통해서 실전 기술을 연마한 프로군인이 있던 일본의 차이인것이죠. 서유럽역사에도 비슷한 시기 동네에서 힘좀 쓰던 기사들 vs 북유럽에서 온 프로 약탈러 바이킹들이 붙었을때에도 서유럽 기사들이 근접전에서 상대가 안되었습니다.
21/01/06 01:51
일본군도 동원된 모두가 직업군인은 아니었죠. 단지 지금으로 치면 하사관급인 하급 무관들이 전쟁에 프로급이었고,
조선은 하급 무관, 지휘관들의 수준이 낮았다는거죠. 임란때 많은 활약을 보인 의병들을 보면, 조선 징집병들도 나름 잘 싸웠습니다. 자기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지형지물들을 잘 활용했고, 치고 빠지기를 잘 했죠. 그런데 딱 게릴라 활동의 정도였고, 의병들이 모여서 일정 규모 이상의 군대가 되어서 맞붙으면 대부분 일본군한테 깨져나갔죠. 신립에 대한 쉴드들도 대부분 이런쪽에 맞춰져 있죠. 신립 본인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했다 하더라도, 원하는대로 군대를 지휘 할 수 없는 군대이기 때문에, 배수의 진을 선택한 것 이라고.. (아니 그러니까 조령에서 막으라고....)
21/01/06 02:06
최근에 관련글도 있지만 임용한 교수님은 신립이 충청도 출신도 아니고 당시 조령은 딱히 방어시설이 확충된 상태가 아니어서 조령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임 교수님 본인이 거기에 찬성한다기보다 소개하는 개념)를 제시하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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