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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0 19:23
탐관오리 느낌은 아닙니다. 조광조가 엄청난 성리학 근본주의자라 본인 품행에 대해선 정말 철저했거든요. 몇가지 예를 들자면 벼슬이 낮을떄도 벼슬이 높은 사람들 중 본인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에겐 절대 인사하지 않고 고개를 뻣뻣이 들었습니다. 또한 성균관에서 공부를 할 적에 무더운 여름엔 아무래도 풀어지기 마련이라 공부하는 사람들도 의복 같은 거 풀어헤치고 막 대충 공부하는 척 했는데 조광조는 의관을 반듯하게 정제하고 허리꼿꼿하게 세우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이런 굉장히 특이한 개성 덕택에 고위관직들 눈에 띄었고 중종 눈에도 단박에 띄게 된거죠. 심각한 근본주의자에 청렴결백하기도 했으니 조광조의 정적이었던 남곤도 중종이 조광조 죽일때 굉장히 슬퍼했죠.
20/10/30 19:36
뭐 진지하게 보면 꼭 돈이나 향응을 받아야 탐관오리인건 아니죠.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객관적 방식이 아닌 자기들 입맛대로 인사권을 휘두른거니까요. 까놓고 이거야말로 진짜 더러운 짓인데 이래놓고 옷매무새 잘 갖추고 송양지인같은 소리 한다고 성리학에 충실하다고 말하면 주자가 놀라 나자빠질겁니다.
20/10/30 19:42
네 그래서 탐관오리 '느낌'이라고 적어뒀습니다 흐흐. 조광조 한창 전성기때 벌인 여진족 상대로의 송양지인이나 자기 사람만 정치하게 만드는 짓거리들 보면 평범한 부패 정치인보다 더 뒷목잡게 만들죠.
20/10/30 19:13
- 그 과격파중에서 가장 그들을 브레이크 걸고 온건하게 했던게 조광조라더군요..(-_-)
- 5번의 경우도 있지만 또 웃긴건 조광조는 나라도 땅콩만한게 서얼애들 관직 못서게 하면 누굴 쓰냐면서 과거시험에 차별이 있어선 안된다고 하기도.. - 최고 피해자는 남곤인듯... 당대에는 조광조와 그 일파들때문에 소인배 취급받으면서 차기 영의정 감으로 불리던 인물인데 중종한테도 까이는 신세가 되고 죽어서는 기묘사화 일으킨 주범으로 낙인 찍힌.. 무오사화 주범으로 찍힌 이극돈하고 쌍으로 연산-중종조에 가장 억울한 인물들중 하나일듯..
20/10/30 19:14
근데 또 이것저것 보다보면 막상 그 조광조 키워준것도 중종이더만요
박시백 화백의 조선왕조실록 보면 아예 조광조 빠돌이짓 한게 중종인데 소격서 철폐 - 위훈삭제 2연타로 중종이 개빡쳐서 죽인듯한 인상이..
20/10/30 19:16
개인적으로 '왕안석=조광조=노무현'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한 모욕이었네요 물론 각색이 있겠지만 윗글만 봤을때 '조광조=문재인' 요런 느낌입니다.
20/10/30 19:18
사실 연산군 - 중종 반정 과정 속에 조정 자체가 개판된 게 조광조가 등판할 수 있던 배경이죠. 진급 속도 보면 중종이 마음 먹고 직접 키운 인물이구요.
아마 중종도 조광조가 이럴 줄은 몰랐지.. 가 아니라 싸움개 성질인 거 알고 키워서 쓰다가, 때가 되서 정리한 거 같습니다.
20/10/30 19:33
근데 저떈 또 저 시대상을 좀 볼 필요가 있는게
당시에 연산군의 무오사화 및 갑자사화를 거치면서 성리학 = 바른말한다고 말하다가 뒤지는 등신들 혹은 공부해봤자 목숨이나 빼앗기는 등신들 이라는 취급을 받을 정도로 상황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당장 성균관에 공부한다는 사람들도 저 마인드였고 대신들 역시 자기 자식들에게 학문보다 더 중요한건 시류를 거스르지 않고 제 목숨 챙기는게 킹왕짱이라고 가르치고 있었다고 하니깐요 (지금이야 성리학 하면 꼰대에 이미지가 상당히 안좋고 당연히 실제 안좋은 것들도 있습니다만) 어찌되었건 나라를 성리학 중심으로 만든 나라에서 성리학의 취급이 이러했으니 오늘날로 따지면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나라를 세웠는데 민주주의 같은거 말하고 다니다간 목숨 아까운줄 모르고 개소리하는 등신취급 받는거랑 같다고 보면 됩니다. 그럼 그 성리학을 대신하고 있냐하면 그것도 아니었죠 위에 말한대로 시류를 거스리지 않는 소위 보신주의가 팽배해있었던데다가 사화를 통해서 대간 및 사림만 죽은게 아니라 실제로는 대신 및 훈구(및 관학파계열)도 싸그리 멸종(?)한 상황이었어요. 단순히 어떤 이념 혹은 사람들의 생각이 성리학 -> 아 성리학만 하면 안되겠고 다른 더 좋은거 받아들이자 하면서 서서히 변화된게 아니라 연산군에 의해 성리학 = 능상 = 바른말이라는 건 왕에게 할게 아님 = 하면 죽는다 이 공식이 성립되면서 다른 생각이니 뭐니 할거 없이 다 개박살이 나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심지어 중종이 즉위하고나서도 그 분위기가 계속되다보니깐 조광조 같은 성리학 근본주의자(겸 성리학 아이돌)이 떠오른거죠
20/10/30 19:45
이런 커뮤발로 (원하는 방향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어진 상식글들은 빠진게 참 많아요.
정난과 반정 이후 공신세력의 전횡에 주권자(조선임금) 스스로, 그리고 시대가 불러들인 조광조였고, 본 글 대로 막나가다 몰락했지만 몰락한 이후에도 자칭 베테랑 훈구들은 왕권다툼에 끼어 지들끼리 계파 싸움하고 나라 말아먹다가 사림에 동화되어 버렸죠. 그 치들이 헤쳐먹은 공신전은 대대손손 조선을 좀먹은건 덤. 뭐 비슷한 건 많긴 합니다. 여러모로요.
20/10/30 19:49
사실 전후 사정 보면 조광조 같은 인물이 왜 튀어나왔는지 대충 보이긴하죠
개작살난 상황에서 공신들은 많고 왕은 고립되어있고 시간지나면서 그나마 나아졌지만 한동안 본인 왕위 지키는 것도 버거워하던 입장에서 조광조는 뭔가 엄청난 존재로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 근데 막상 써보니깐 성능 확실하네? 그래서 더 썻더니만 성능 확실하다고 막나가네? (..) 근데 웃긴건 그 뒤로 또 (좀 많이 다른 유형의 인간이지만) 비슷한 짓을 하는데 김안로를 또 비슷한 방식으로 쓰죠 근데 임마가 이제는 내 서장자를 죽여야한다고 소리높이고 있네?(..) 뭐 여튼 이렇게 시간지나고나니깐 남는건 윤원형과 정난정과 문정왕후 어우야..
20/10/31 10:31
세조는 본인이 왕이 될려고 왕족뿐만 아니라 신하들까지 다 죽여서 조선의 명맥을 다 끊은 놈이라...
세조는 행동 대비 덜까이는 사람 중 한명이라고 봅니다
20/10/30 20:31
꼭 이렇게 과거에 현재를 대입하는 글들은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엉터리더라고요.. 물론 어차피 현실을 비판하는 용도니까 진짜 역사와 부합하는지는 관심도 없을테지만요.
20/10/31 10:33
요즘 유행하는 관종들 화법이지요
자기 주장하기 위해 다른 얘기를 양념으로 이용하는데 양념이 제대로 된 건지는 애초에 관심이 없으니까요 사실여부를 매번 찾게 만드는 기xx랑 똑은 놈으로 봅니다
20/10/30 20:47
그냥 역사 공부 대충하고 억지로 시국 까려고 만든 정치유머 짤이죠. 이런글은 진지하게 보기보단 그냥 피식웃고 넘기면 됩니다. 틀린게 너무 많아서 고치는게 의미가 없는 수준.
전형적으로 역사 대충 배우고서 웹에서 유교탈레반 같은 소리나 하는 사람들이 만드는거. 학생들 보고 배우기 쉽게 하려고 훈구/사림 나눠놓은거지 실상은 그거랑 좀 많이 다릅니다. 비슷한게 려말 권문세족/신진사대부 구도고.
20/10/30 21:33
훈구파와 사림파의 구분은 사실 무의미한 건 맞습니다. 훈구파의 아들이 사림파인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그렇다고 훈구파와 사림파를 구분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정권 다툼을 할 때 당시 정치인들이 서로가 서로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았거든요. (현대의 우리가 아니라 그당시의 정치인들이 패싸움 할때 너는 훈구파, 나는 사림파 이런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원래 글에 있는 내용이 틀린거는 별로 안보입니다.] 조광조가 개판을 친 것은 맞거든요. [실무경력도 없이 입만 산 아가리 파이터]인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고요. 특히, 현량과는 당대에서도 비판이 많았습니다. 동아시아의 관료 등용 방법을 보면 [추천에서 시험]으로 바뀌었는데, 현량과는 추천제(이미 생명력이 끝난)로 바꾸자고 했으니... 조광조가 중종 14년 쯤에 죽었는데, 중종은 연산군을 몰아낸 반정에 의하여 등극했기에 이때까지도 [군권을 독점]하지 못했습니다. 즉, 중종 자신부터 군권을 가진 신하들의 눈치를 보는 판에 조광조가 폭탄의 뇌관(위훈 삭제)을 건드립니다. 평소 죽이고 싶은 놈이 정치판을 펑하고 터트릴려고 하니 안죽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한마디로, 조광조는 죽을 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죽었어야 하고, 실무능력과 경험도 없이 개판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20/10/30 21:16
현재에 끼워맞추려고 역사를 이리저리 비트는 글이네요.
예전에는 좌에서 잘 하던 짓인데 이제는 우에서도 똑같이 하는거 보니까 재미있습니다. 크크크;;
20/10/30 21:34
좀 과장되거나 심하게 비판하는 내용도 있기야합니다만 군자-소인론으로 비판을 막아버린거나, 현량과를 통한 불균형한 인사, 김정이 형조판서로 있을 때 옥사 문제, 조광조가 왕을 계도의 대상으로만 여긴 것등, 조광조 정권의 모순점은 이미 20년 전에 임용한 박사가 쓴 책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만...
20/10/30 21:42
사실과 왜곡, 과장을 적당히 섞어서 쓰는 글들이 제일 귀찮죠. 지적하면 '아닌데? 그래도 많은 부분 사실인데?' 하면서 자동반사 튀어나옴.
20/10/30 21:53
또 댓글 답니다. 제 지식의 한계상 저 글에서 왜곡, 과장의 면을 크게 못 찾겠습니다. 프로히빗님께서 보시기에 어느 정도의 왜곡과 과장이 들어갔기에 맞다는 의견에 대해 '아닌데? 그래도 많은 부분 사실인데?'같은 떼쓰기 의견으로 치부 할 수 있는건가요?
20/10/30 23:04
천거제를 제외하고는 전부다 과장이고 끼워맞추기죠.
성리학 이상주의만 부르짖음. 성리학이 국가 근본인 시대에 성리학을 추구해야지 뭘 추구하나요. 그럼 중국식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우리는 민주주의 이상주의만 부르짖는 겁니까? 성리학 이외의 사상은 이단으로 배척한다는 건 도교식 제사 지내던 소격서 혁파에 대한 것 같은데, 조광조뿐 아니라 당시 성리학자들이 다 주장했던 것들입니다. 하다못해 소격서 혁파하고 조광조 탄핵한 이후에 중종이 다시 부활시키려고 하자, 조광조와 척을 졌던 신하들과 대간들 반대로 무산 됐고 나중에야 중종이 본인 어머니 병환을 핑계로 대간들 반대에도 부활시킵니다. 당시 모든 신하들이 다 원하던 걸 조광조가 총대 맸던 거고 신하들 입장에선 선대 왕들이 했던 것이니 쉽게 못 없앴던 거죠. 정책에 조금만 반대해도 소인배로 모는 것도 그럼 개혁하려고 하는데 이것저것 다 받아줍니까? 당시는 연산군 바로 이후였고 조선 초기의 시스템이 다 무너져서 나라가 죽니 사니 하던 때였습니다. 개혁의 급진성이나 무관용으로 따지면 정도전이 조광조보다 훨씬 더 심합니다. 적어도 조광조는 자기 반대한다고 죽이진 않았죠. 정도전은 자기 의견 반대하면 죽일 수 있는 인물은 다 죽이거나 제거하려고 들었습니다. 5도 과장인게 당시 과거시험을 안 보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출세라는 게 그렇게 빨리되는 것도 아니에요. 조광조가 중종밑에서 힘을 발휘하던 시기는 아무리 길게 봐줘도 딱 3~4년입니다. 대체 3~4년동안 학맥약한 선비의 출세를 조광조가 뭘 얼마나 막았을까요? 참고로 과거시험은 기본적으로 3년에 한 번 봅니다. 6은 저도 조광조의 최대 실책이라고 봅니다. 개혁의 속도조절을 해줄 인물... 다른 개혁가들은 그런 사람이 누가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네요. 정도전의 개혁엔 누가 브레이크 역할을 했을까요. 김육의 대동법에 브레이크를 건 송시열은 시대의 역적처럼 묘사되고 있는 마당에요. (참고로 송시열은 나중에 대동법에 찬성까지 했습니다.) 왕을 설득하는 게 가르치려고 든다는 건 그냥 조선의 아이덴티티 아닙니까? 도끼 올려 놓고 상소하던 게 조선시대에요. 이런 논리면 세종이 훈민정음 반포할 때 신하들 반발 싸그리 다 무시했는데 그건 신하를 설득하려고 안 하고 겁박한 거겠네요? 요즘보면 사림에 대한 반발로 훈구를 마치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학파라는 이미지까지 만들어지던데, 아무리 그래도 선은 지켜야죠.
20/10/31 00:03
와~ 이해가 쏙쏙 되네요.
정도전이 조선을 사대부의 나라로 만들었죠. 중종이 쓰다 버렸다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했던것 같네요.
20/10/31 00:33
길게 썼다가 다시삭제했다가 그냥 결국 매우 짧게 씁니다. 저는 사림에 대한 반발로 훈구가 현실적이라고 한 적 없는데 왜 선을 넘었다고 하신건지 모르겠습니다. 그와 별개로 님의 의견은 잘 봤습니다. 수고하세요.
20/10/31 07:22
너무 [조광조에 호의적]으로 해석한 것 같습니다.
5번 항목에 대해서 과장이라고 했는데, 그건 아닙니다. 조선시대 과거가 3~4년에 한번 있었지만, 별시라고 나라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한 추가시험이 있었기에 훨씬 회수가 많았습니다. 더구나,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는데 현대에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자리가 주어졌으나, 조선시대 과거는 의사 자격시험과 비슷했습니다. [과거에 합격하더라도 벼슬자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합격한 사람은 앞으로 벼슬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고, 합격후 바로 벼슬이 주어진 사람은 아주 적은 숫자의 사람뿐이었습니다. 즉, 과거에 합격했지만 벼슬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는 뜻입니다. 또, 조선시대에도 벼슬에 앉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업무평가 점수가 있었습니다. 점수가 낮으면 승진 못하거나 물러나야 하는 것은 현대와 똑같았습니다. 이 업무평가가 권력자들의 수단이었습니다. 여기에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가 끼어들어 적극적으로 자기 패거리를 쓰려고 합니다. 앞에서 말한대로 업무평가나 정치투쟁을 통하여 같은 편이 아니면 내쫓고 수두룩한 벼슬자리 얻지 못한 과거합격자들 중에서 자기편을 뽑아 올립니다. 이게 조광조가 하던 짓거리인데, 과거제 3년을 들먹이는 것은 너무 터무니 없는 쉴드같네요. 그리고,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과격해야한다고 하면서 정도전을 비교하여 예를 들었는데, 정도전은 고려 멸망 조선 건국 시기입니다. 조선 자체의 구조가 마련된 성종 이후의 중종시기에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개혁을 위하여 모두 쓸어버려도 된다는 사고방식은 과격이 아니라 나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20/10/30 23:39
예전 엠팍 불펜 좌담에 올라가던 역사학자 분의 마이너판이에요.
진짜 조선 성리학 틈만 나면 두들겨 맞는군요. 한국 역사교과서가 성리학을 악의 포지션으로 잡아놓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애들 배운거보면 그렇게 흘러가게 놔둔 느낌도 들고.
20/11/06 14:38
아무래도 망할때까지 성리학을 붙들고 현실 파악 못하거나 현실 도피했다는 점, 게다가 그 지식인, 지배 계층에서 망국의 책임을 지기보단(독립운동 등) 일제에 협력해서 호의호식 했다는 점이 성리학이 절대악이 돼가는것 아닌가 싶네요.
20/10/31 10:29
정부 욕하고 싶으면 자게 정치글 적으세요
그리고 다른 분들은 읽고 그냥가지 말고 정치글로 신고라고 갑시다 이런거 넘어가면 다음엔 더 큰 똥을 투척할 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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