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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6 22:18
조선이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했던 게 유교 사상에서 나오는 덕치의 부작용으로 과도하게 근검절약과 청렴결백을 강조하면서 너무 낮은 세율을 유지한 나머지 나라가 길게는 가도 도저히 굵게 갈 수가 없었던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작물 생산량이라면 차고도 넘치는 중국조차 같은 길을 택했다는 건 굉장히 신기하네요.
22/09/26 22:28
근데 덕치를 해서 정말 민생이 풍요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세율만 보면 낮지만 조선이든 중국이든 중간에서 떼어먹는 게 많아서 전국시대 일본이랑 별 차이 없었다는 얘기도 있고요. 그래도 더 낫긴 했다는 설도 있긴 합니다만.
물론 세계관 단절이 없어서 사방에서 침략당한 중동, 인도에 비하면 그래도 덜 혼란스러웠던 건 맞겠군요. 근데 그건 유학이 원인이 아니라 결과네...?
22/09/26 22:58
덕치를 국시로 삼는다고 모든 농민들에게 덕치가 적용되는건 아닙니다. 그러기위해선 군주의 확고한 의지. 행정기관과 담당관리의 확실한 배치와 꾸준한 감사관운용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전근대 국가에서 이게 재대로 이루어지는 상황은 별로 없었습니다.
여기서 따져볼건 농민을 대놓고 일개 '소모품' 따위로 취급하느냐 그래도 명목상으로는 국가의 근본대접을 해주고 차별 개혁도 가끔씩 하느냐의 차이입니다.
22/09/26 23:08
그리고 전국시대 일본과 비교하면 단언코 조선과 중국 농민들의 사정이 나았습니다. 물론 가끔가다 만력제같은 암군이 국정은 안살피고 만력3대정 같은 짓거리만 안한다면의 가정이지만요.
22/09/26 23:23
그렇긴 한데 추가로 공납(이라기보다는 방납)도 있고, 요역도 있고, 잡세도 있고, 아전에게 뇌물도 줘야 하고, 소작농이면 소작료도 내야 하고 해서 계산하기가 난망한 점이 있습니다.
22/09/27 09:49
공납 요역 잡세 및 뇌물 등등은 우리만 있었던게 아니죠. 전국시대 일본에서 온갖 잡세를 혁파한, 오다 노부나가가 최초로 도입한걸로 유명한(실제로는 아닙니다만) 라쿠이치라쿠자가 괜히 혁신 소리 들은게 아닙니다...
22/09/26 23:11
유목민족 대상으로 법가 입장이 그다지 현실성 없었다고 봅니다. 결국 유목민족의 땅을 점령하지 않으면 끝없이 전쟁해야 하는데 화약무기가 발전하기 전엔 유목민족 본토 점령은 말도 안됐거든요. 그렇다고 끝없이 전쟁은 돈이 남아나질 않죠.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중국이라는 거대제국에 맞서 유목민족이 힘을 합칠수도 있고요.
22/09/26 23:23
기본적으로 그게 이익 되냐? 이건데 중국은 중국 밖으로 나가서 딱히 크게 이익 볼게 없었죠. 중국의 거의 모든 대외 원정은 변방을 어지럽히는 외적을 섬멸 하는 거 이상의 이익을 내부의 집단들에게 이익을 줄 수가 없었으니까요. 한무제의 흉노 원정도 흉노를 물리쳤다. 이거지 흉노를 물리쳐서 흉노에게 존재하는 금은 보화를 가져오고 흉노의 영토를 정복해서 그게 이익이 되고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요. 명나라 영락제도 그렇고 청나라의 여러 대외 원정들도 땅을 넓히긴 했지만 그게 제국에게 도움이 됐냐고 하면 좀...?
22/09/27 01:24
중국 변방에 중국수준의 국력 -군사, 경제, 문화를 종합해서- 을 가진 나라가 없었다는게 중국의 행운인 동시에 족쇄였습니다. 주변에서 유일하게 비슷한 체급인 인도마저 티베트와 히말라야로 가로막혀있었으니까요. 주변국과의 패권경쟁을 통한 국가체질개선, 기술발전, 시대관발전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하다못해 유목제국들이 다른건 몰라도 군사력이라도 중국제국과 비슷했으면 그나마 나을텐데 중국이 전성기를 맞이해 열심히 대외원정을 나가면 유목민들은 일시적으로 복속하는 제스처를 취하거나 잠시 더 깊은 대초원으로 도망가는 것으로 중국의 시도를 손쉽게 파훼했습니다. 중국 내부도 완전한 행정력 투사를 못하는 중국제국이 유목민들의 똥땅에 지속적인 파병과 점령시도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요. 그리곤 중국제국이 내부적으로 썩어들어갈때를 기다려 카운터펀치를 날렸죠. 중국입장에서는 뭐 이런 가불기가 있나 싶었을 겁니다.
22/09/27 07:58
대초원을 가로질러 쫓아가지 않았다고 중국 왕조들을 비판할 수도 없으니까요. 중국이 유목민을 쫓아가서 원정이 지속될만한 이득을 거두려면 몽골처럼 위로는 러시아, 밑으로는 페르시아, 터키 이정도까진 가야 한다는 건데 이건 몽골이나 하는 거지 정주민족 왕조가 못했다고 비판 할 수도 없어요.
22/09/27 00:30
애초에 중국은 외국의 부를 가져올 필요가 없는 나라니까요.
송대 전세계 GDP의 절반에 육박하는(물론 정확하지는 않은 수치입니다.) 나라가 외부의 부를 가져와아겠다고 생각하는게 더 이상하지요.
22/09/27 01:04
나일-메소포타미아-인더스 문명권은 서로 열심히 싸우고 교류했던 반면
황화-중국 문명은 초원길은 유목민족에게 대부분 막힘/실크로드-타클라마칸 북로남로 모두 험하고 인구가 적어 수요 부족으로 자급자족전 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무역로 발전이 제대로 되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고 해양로는 일단 중국에서 말라카 해협까지는 남북으로만 긴 항로라 편서풍, 무역풍 같은 향상풍을 제대로 이용하기 어렵고 베트남 이남으로는 딱히 대도시도 없어서 지중해나 홍해, 페르시아 만 같이 좁은 바다에서 가까운 도시끼리 내륙 수운처럼 운영도 어려웠고.... 여러모로 중국 제국이 단일 제국으로 밖에 운영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초원 제국이었던 몽골은 제외하면 중국에서 서쪽으로 최대한 진출했던게 카슈가르 지역인데 여기는 당이 8세기 수십년 지배했다가 탈라스에서 패배하고 물러나고 그 이후 중국이 진출했던게 17세기 청입니다. 그냥 지리적 운명이 고립을 지향할 수 밖에 없었죠.
22/09/27 02:56
개인적으로는 국가 간 경쟁시스템의 부재가 유럽과 중국의 차이, 소위 대분기를 만들어낸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유럽 국가들은 살아남기 위해선 행정-군사시스템을 끊임없이 변혁해야 했었다면 (Military Revolution, 그리고 이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할 관료제 및 세수체계), 중국은 Mark Elvin 이 말하는 High-Level Equilibrium 에서 벗어나올 유인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해요.
22/09/27 03:46
중국제국중 자신의 전성기에 진정한 적수를 만나 포텐셜이 만개한 케이스가 하나 있었죠. 바로 남송입니다.
문자 그대로 세계(유목민 세계, 중원, 서하, 아랍, 동유럽 등등)를 집어삼키던 전성기 시절 몽골제국을 상대로 불과 강남과 파촉지방만 가지고도 강남재계발을 해가면서 국력을 뽑아내어 정면대결을 하며 구속구가 해제된 중국왕조의 실력수준이 어느정도인지 보여주었습니다.
22/09/27 10:17
그 포텐셜 만개한 송나라조차도 물량 한타에 다 리셋되버린걸 생각하면 유럽에 비해 혁신이 꾸준히 지속되기 어려웠던게 이해가 갑니다. 머릿수 앞에 기술이며 과학이며 그딴게 무슨 소용?
22/09/27 12:41
https://pgr21.co.kr/recommend/2856?page=3&sn1=on&divpage=1&sn=on&keyword=%EC%8B%A0%EB%B6%88%ED%95%B4
'세계를 정복한 최강의 제국, 여기에 맞서던 지상 최대의 장벽' 이글에서 진심모드 중국의 저력을 알 수 있습니다.
22/09/27 09:46
너무나 자질구레한 얘기지만, 한무제의 흉노 원정 맨 마지막 전투인 연연산 전투가 너무나 참담한 패배였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흉노 원정을 재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연연산 전투에서 이긴 흉노가 다시 한의 위협이 됐냐면 그건 또 아니고요. 그리고 대외 원정을 주도한 한무제가 정작 죽을 무렵에는 '윤대의 조'를 내려서 원정 위주의 정책을 뒤엎고 휴식을 하고자 한 것도 염철회의에서 법가가 패배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22/09/27 10:04
염철 논쟁이 향후 중화권 이천년의 방향타를 결정지은 거대한 이데올로기 논쟁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요성에 비해 언급은 그리 많이 안 되더라고요. 오히려 마행처우역거 같은 대체역사물에서 염철론을 중요하게 다룬 걸 보고 엄청 신선하게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22/09/27 10:09
그때 염철논쟁에서 승리한 이데올로기가 중국의 방향타를 결정한걸까요 아니면 여러가지 지정학적 한계가 중국을 자연히 그렇게 만든것일까요 결론은 안나겠지만 참 재미있는 생각거리 같네요. 소개 감사합니다.
22/09/27 18:13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딱히 중간에 국경선을 긋기가 애매한 중국의 지정학적 요소와, 풍부한 중원의 곡물생산력, 인구.. 등등도 유교사상이 자리잡기 좋은 환경이었다고 봅니다.
22/09/27 21:49
현대의 중국이 발전하는 이유도 외부의 적이 있기 때문일까요... 재밌네요. 강력한 중화사상이 없으면 나라가 무너질거라 생각해서 동북공정, 문화 예속 시도를 하면서 강한 중국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외부에서는 납득가지 않는) 전랑외교를 굳이 하는건가... 미래가 어떻게 될까 궁금하네요. 지금 돌아가는 모습으로는 한국이나 중국이나 출산율 여파로 타격을 분명 받을 것 같은데
22/09/27 22:30
외부의 적은 양날의 검입니다. 외부의 적이라는 시련을 잘 극복하면 국가발전의 기회가 되지만 반대로 대응을 그르치면 멸망의 위기가 도래하죠. 전근대 중국은 이러한 외부의 적 자체가 없어서 발전이 뎌뎠지만 현대의 중국은 반대로 과거에는 조공국 수준이었던 주변국가들의 체급이 강력해졌을 뿐 아니라 역사상 최강의 제국인 미국까지 상대해야하죠. 때문에 중국의 앞날은 살얼음판과 같다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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