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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6/15 15:19:51
Name 102
Subject [일반] 친일파, 6.25지휘관, 사학재단, 국회의원 김석원이란 사람
김석원 1893-1978




김석원은 무려 일본군 대령까지 간 입지적인 인물입니다.
왕족이나 대한제국군 고위장교출신들은 따로 봐야하고
일본군 3스타에 전범재판으로 사형받은 끝판왕 홍사익이 있으니 김석원은 그 아래급정도 됩니다.
김석원의 친일행적은 계급만 보아도 굳이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만주사변때는 중대장으로, 중일전쟁에선 대대장으로 전투를 치뤄 큰 전적을 올립니다.
2개 중대로 중국군 1개 사단을 물리치기도 했다니 능력은 있었나 봅니다. 받을 수있는 최고의 훈장도 여러번 받습니다.
그뿐 아니라 태평양전쟁때 학도병 지원유세도 적극적으로 했습니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사학재단 운영, 정치생활 하다가 천수를 누리고 사망합니다.
당연하게도 친일파로 선정되었고, 본인 아들도 일본군 장교로 전사해서 친일파에 선정되어있습니다. 제국주의의 화신이란 설명까지..
(또 다른 아들들은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전사한 분도있고..)

이런 부정못하는 대네임드 친일군인인데 왜 굳이 적어보느냐 하면,
김석원의 친일 행적만 빼면, 흥미로운 점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몇가지 일화들을 적어봅니다. 저는 역사전공도 아니고 이것저것 썰들을 보고 적는거니 전부 학계에서 인정받는다거나 하는건 아닐수 있습니다.
교묘하게 세탁하는 경우도 있다보니, 혹시 그런것이라면 지적해 주세요.

1.
김석원은 일본군에 속해있으면서 육사 선배인 지청천, 김경천 장군의 가족들을 보살펴 줍니다. 육사 동기인 이종혁이 독립운동하며 고초를 겪자 부끄러워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고, 평양학병사건(1944년, 강제징집된 학병들이 무기를 탈취하여 무장투쟁을 하려다가 밀고로 무산된 사건)재판을 방청하며 형이 확정되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네요. 당시 형을 받은 전상엽 선생이 증언했으니 사실 같습니다. 그리고 육사 동기들 친목모임 편집장을 하며 본인처지를 자책하기도 하고 희한한 사람입니다.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1기수 후배고, 가족까지 돌봐줬으니 광복후 이런점도 어느정도는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바로 아래 언급하겠지만 김구선생도 알고 있었다네요.

2.
김구를 좋아했습니다. 45년 백범이 귀국하자 동기들이랑 찾아갔는데 백범이 자신을 먼저 알아보면서 [김동지 말 많이들었다. 지금부터 잘해보자]고 했답니다. 이때 이승만 보다 김구에게 호감을 느낀듯 합니다.  이후 성남고 이사장, 교장시절 학생들과 백범 김구 묘소에 매년 참배하고 청소하러 다녔다고 하네요. 반대로 이승만은 본인을 군에 복귀시켜줬지만 좋아하지 않은 듯 합니다.  

3.
김석원은 광복후 군에 복귀 못(안)하고 있었는데, 이승만이 1사단장으로 복귀시켜줍니다.
이때 국군과 인민군 사이에 밀무역이 오가는걸 잡아냅니다. 압수품이 북어였는데 시장에 처분해서, 부식, 과일, 과자 음료수 등을 산 후 병사들에게 나눠 줍니다. 그뿐 아니라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을 윗선으로 지목하는데 이승만이 둘 다 일단 전역 시켜버립니다. 1사단장이 참모총장에게 저럴 수 있었던건 까마득한 후배였기 때문이겠죠. (김석원 27기, 채병덕 49기)
밀무역이 있었던건 사실입니다. 다만 채병덕은 밀무역을 묵인하면서 정보를 빼내려는 의도였다고 말합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의용군이라도 모집해서 싸우겠다고 이시영의 허락도 받아내고, 이후 신성모의 추천으로 현역에 복귀합니다.  
과거 본인의 적이었던 중국군 출신 김홍일 장군에게 찾아가서, 도와주고 싶다고도 하고. 수도사단장으로 복귀하는데, 과거 1사단장 시절 부하들이 많이 찾아왔다니 인심은 얻었나봅니다. 전쟁때 지휘관으로 몇몇 전투나 후퇴에 기여한 듯 합니다.  


4.
김석원은 1930년대 현 성남고를 공동설립했습니다. 당연히 민족학교 이런건 아니었죠. 그래도 광복후 성남고가 이승만 3.15부정선거 반대시위를 가장 먼저한 학교입니다. 이때 경찰들이 학생들을 탄압하고, 학생들 지도 잘하라도 하자 김석원이 나서서 [정의는 막을길이 없다. 내가 지도할게 아니다] 라며 대응했다고 합니다. 고은의 만인보에 이부분이 적혀있습니다. 경찰이 김석원을 모를리가 없는데 빨갱이라고 하는게 참 아이러니네요. 1960년에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는데, 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나서, 의원직이 바로 상실되었습니다. 그래도 박정희가 김석원을 탄압했다거나 그럴 위치는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5.
김석원은 1970년대 회고록을 쓰면서, 일제시대 군대 경력을 부끄러워하고 반성합니다. 반성해서 용서받을 작은 위치가 아니었습니다만, 70년대 노년에 반성이라도 한건, 본인 입장에서 용기를 낸게 아닌가 싶긴 합니다.

[어떤 경우는 무지했던 탓으로 또 어떤 경우는 올바른 인생관과 올바른 세계관을 못 가졌던 탓으로 그동안 내가 저지른 잘못은 많다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이유야 어쨌든 일제식민지시대에 오래토록 일본군인 노릇을 했다는 것은 나의 생애 중에서 가장 큰 불명예라 생각되는 것이다]
다행히? 학교 뒷편에 묻혔고 현충원에 없네요.



대 네임드 일제에 부역한 군인인데, 어느정도 괜찮은 부분도 보인다 정도가 제 생각이네요. 더하여 일본육사출신들에 대해 좀 더 살펴보고 싶은 맘도 들었습니다. 독립운동으로 투신한 생도들과, 남아있던 생도들이 계속 소식을 주고받고 도움도 주고, 어떤 감정들이 오갔는지 참 궁금합니다. 작다면 작은 커뮤니티 안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남아서 일제 부역을 하는데 불이익은 받지않고, 일본인 상관들도 알면서 눈감아 준것들이 있다더군요. 뜻을 품은 지사를 존중하는 무사의 문화같은게 남은건가 싶기도 하고 쉽게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것들도 있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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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alist
19/06/15 15:27
수정 아이콘
친일행적이 뚜렷하고, 보기에 따라서는 학도병 징집에 적극 나섰다는 점에서 상당히 악질적이기까지 한데, 말년에 본인 행적을 부끄러워하고 불명예로 여겼다는건 좀 재미있네요. 다른 노골적인 친일 인사들이 입 싹 씻고 나는 잘못 없다, 시대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 따위의 변명을 늘어놓던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이게 과연 자기 행적이 누가봐도 빼박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진짜로 본인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느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요.
19/06/15 15:55
수정 아이콘
학도병 모집할때 김석원은 무조건 1빠따로 연단에 세워야 할 인물이었죠. 일본인 기준에서 조선인출신 영웅이었을테니까요.
그 기대를 져버리지도 않았고요. 친일파 선정에서 빼박 부분일겁니다. 그리고 해방 이전부터 부끄러움을 감추지도 않았던 사람인것 보면
선배나 동기들을 보며 복잡한 맘을 가지고 계속 살았던듯.
참돔회
19/06/15 15:27
수정 아이콘
사람은 늘 복잡합니다.
우리가 왕좌의게임에서 제일 열광했던 부분은, 아마도 수많은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변하며 선과 악을 명확히 나눌수도 없고, 계속 바뀌는게 우리 현실 속과 닮아서일거 같아요.

이 분도 공과 과가 있네요. 각각 평가했음 좋겠고, 과를 뉘우친 점에서 좀 더 점수를 줄 수 있겠습니다.
19/06/15 15:59
수정 아이콘
끝이 나름 괜찮아도 원죄가 워낙 크다보니 평가를 더 해줄것도 없네요. 다만 염치는 있었구나 싶습니다.
19/06/16 06:30
수정 아이콘
인간이 복잡하다는걸 시야에 넣되

물러설수 없는 선이란것도 같이 생각해야겠죠
거품맨
19/06/15 15:28
수정 아이콘
다 훌륭하다고야 당연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멋있는 점이 많은 사람이네요. 부득이하게 좋지 못한 길을 걸었던 대부분은 그런 나를 지키기 위해 자기세뇌를 시작하곤 하는 데, 그런 게 없으신 분이었네요. 어쩔 수 없었다는 시대는 항상 있지만, 항상 문제는 그런 사람들을 두고 지금 사람들이 '아 그땐 어쩔 수 없었다니까~'라고 해주려면 꼭 자기세뇌의 결과로 시대 자체를 감싸기 시작하면서 추해지면서 문제가 생기는 데(그것도 사람의 본능이긴 하지만요), 정말 어쩔 수 없었던 분 같습니다.
19/06/15 16:06
수정 아이콘
김석원 회고록 같은걸 다 읽어보지 않아서 어떤 맘으로 저런 반성을 한건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한국전쟁 이후, 예편하고 교육사업말고는 별 감투를 얻지않았긴 하네요. 사학재단을 운영한것 까지는 아는데 이후 어떻게 운영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리건 앤슬랜드
19/06/15 15:43
수정 아이콘
이사람의 인생 경로나 훗날의 회한등을 봤을때 드는 생각은 성장 과정에서 나라가 망하는 과정을 보았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가치관에 의해 식민제국의 2등국민으로서의 삶에 순응한 인물이라고 봅니다. 자신처럼 동화되어 노력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인정받는것이 후의 '조선인'들 입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거라 생각했을거구요. 물론 2등국민일지언정 인정받고 싶고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방향이었던 명예욕같은것도 있었겠지요. 아무나 갈수있던 일본 육사는 아니니까요. 그와중에 자기 자신은 안될거라 생각하는 길에 인생을 바치는 선후배들을 보며 자괴감과 부채의식도 들었겠지요. 소위 말하는 노덕술같이 적극적으로 친일 부역을 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악한사람은 아닌것같다는 인상을 많이 받습니다.
19/06/15 16:15
수정 아이콘
딱 홍사익과 비슷하죠. 대한제국은 망했고 일제식민치하에서 열심히 살면 조선인들도 똑같이 대우를 해주지 않을까. 뭐 이런..
실제 본인들은 그러한 삶을 살았고.. 대신 민족의식이 없었는가 하면 그건 아닌것 같습니다.
님 말 처럼, 안될것 같은 독립운동에 목숨거는 주변인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본게 아니라, 대단한 일을 한다. 내가 부끄럽다고 생각했고
다만 자기는 이미 일제에 인정받는 삶을 연장하고 싶었고 힘들게 살지는 않았죠. 부채의식은 있으니 지원은 해주고
광복후에도 49년에 입대한건 좀 스스로 자숙은 했던것 같습니다.
임나영
19/06/15 16:43
수정 아이콘
저도 이 의견이 많은 부분에서 공감합니다.
현실에 순응하면서도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고민하는 회색주의자의 삶이라고 봅니다.
가만히 손을 잡으
19/06/15 15:45
수정 아이콘
뭐 일단 반성을 해야 용서를 해 줄 것인지 말지 고민이라도 하는데 끝까지 입다물고 괘변을 늘어놓는 동물들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19/06/15 16:18
수정 아이콘
반성은 했지만, 여전히 친일파 딱지는 붙었죠. 광복이후 30여년간은 괜찮은 삶이었던것 같은데, 광복이전 30여년을 일본군에 있었으니..
22raptor
19/06/15 15:4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사회 지도층 원로 분들 중 그나마 이런분들이라도 많아야 하는데... 반대로 자신의 친일 행적에 떳떳하신분들이 훨씬 많아보여 씁쓸합니다.
기다리다
19/06/15 16:18
수정 아이콘
그런분들이 누가 있나요.진짜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19/06/15 16:19
수정 아이콘
인생을 부정하는거라, 쉽지는 않겠죠. 더군다나 지금 순간까지 살아있다면 더더욱.. 그나마 얼마 있지도 않지만.
LightBringer
19/06/15 16:04
수정 아이콘
이런 분은 그래도 용서받으실 가치가 있죠
19/06/15 16:21
수정 아이콘
용서까지는 모르겠고, 본인은 짐을 덜고 간듯 합니다. 판단은 역사가 할듯한데 다시 판단하려면 재평가를 해야하는데
친일이란게 너무 크다보니 좀 힘들거같아요. 어느정도 이미지를 만들어 놨지만, 친일파로 선정되어서
스타본지7년
19/06/15 16:09
수정 아이콘
이전부터 알던 사람이지만 참 복잡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인물이죠. 어느 정도의 처벌은 불가피하다고 생각되지만 악질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참작은 가능.
19/06/15 16:24
수정 아이콘
따져보면, 광복이후에도 본인스스로 속죄할 기회는 잡은것 같습니다. 무게감이 친일을 한국전쟁참전으로 덮긴 그렇지만..
이승만 독재에 저항한 학생들을 지지한것은 본인이 대좌일때, 학생들이 무장투쟁시도 재판을 방청하며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던게 아닐런지
쥬갈치
19/06/15 16:32
수정 아이콘
인물이 한면만있지는않을테니 그렇지만 이사람은 그럼에도 죄가 너무 크죠
착한일좀했다고 죄가 없어지는거는아니니
19/06/15 16:49
수정 아이콘
위관급도 아니고 대좌까지 갔으니 정말 일제에 도움을 많이 줬죠. 물론 억지실드 치자면 주로 중국이랑 싸워서 공을 세웠다지만,
중국군 내에 조선인이 없던것도 아니고..
사후세계가 있다면 형량이 좀 줄어들겠죠 뭐..
지금뭐하고있니
19/06/15 17:01
수정 아이콘
그냥 저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적당히 괜찮은 평으로 살았을 거 같은 행적이네요.
그런 점에서 상황에 따라 사람이 달라질 것을 예견했던, 허소(조조의 인물평을 했던)의 말이 이럴때마다 기억에 깊게 남더라구요.
19/06/15 18:05
수정 아이콘
암울했던시기 본인의 능력을 펼쳤고 득을 보았으니, 평가를 받는것도 본인 몫이죠. 학교도 군인으로의 공과 포상금이 있었으니 설립할 수 있었고
백년지기
19/06/15 17:07
수정 아이콘
이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용서란 단어를 꺼낼 자격이 될까요..
19/06/15 18:12
수정 아이콘
거기까지는 생각 안해봤는데, 일제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중, 본인이 친일파가 아닌데 친일파 선정에 불만을 가진 분들은 있더군요.
저는 친일파로 합쳐놓지말고 민족의 반역자를 따로 선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쪽입니다.
19/06/15 18:37
수정 아이콘
궁금한데 인촌 김성수같은 분은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19/06/15 19:03
수정 아이콘
그분에 대한 연구나 평가가 많기때문에 저같은 사람이 평가하기는 그렇고,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한 인물의 공과를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가장 적절한 인물이라 봅니다.
PERESTROIKA
19/06/15 19:02
수정 아이콘
이유야 어쨌든 이라는 문구가 들어간것을 보니 반성을 제대로 하지도 않았네요.
19/06/15 19:04
수정 아이콘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부끄러워는 했죠. 저정도 위치에서 저정도의 반성을 안한 사람들이 다수라.
센터내꼬야
19/06/15 19:45
수정 아이콘
이런거 보면 사과문 해석법 같은 글.. 유병재씨가 썼던 것 같은데..
그런 글들이 사람들이 글을 받아들이는 태도들을 싹 다 오염시켜버린 것 같아요.

살펴보면서 이유야 어쨌든의 맥락을 판단해야하고
그 부분에 들어간 다양한 이성적, 감정적 요소들을 생각해봐야하는데
일단 다 조건반사 시켜버리는 것 같거든요.

저는 저거면 반성 충분한거로도 보입니다.
반성이 자기 삶의 100 전부를 부정하라는건 아니거든요.
존콜트레인
19/06/16 05:20
수정 아이콘
[이유가 어쨌든]은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면 넣을 필요가 없죠.
19/06/15 20:02
수정 아이콘
저 정도면 정말 반성을 한 축이고 인정해줘야죠. 당장 현대 한국에서도 높으신 분들이 서민은 고사하고 중산층한테도 소속감 전혀 못느끼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저 시대면 오죽하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어쨌든 죄책감이라고 가지고 살던 사람인 것 같은데요. 이광수처럼 대놓고 뻔뻔하게 나가는 축 아니고서는 마지노선을 김성수 정도로 두고 그 안쪽으로는 어느정도 인정해주는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이상적이고 교조적인 관점에서 보면 식민모국의 잔재를 완전히 청산한 나라같은건 이 세상에 없고요.
19/06/15 20:21
수정 아이콘
김성수 이야기 나와서 예전 기억 나는데
어떤 30년대생 노기자가, 50년대부터 기자했는데 해방되고 언론이나 정치인이나 독립운동쪽에서도 김성수를 친일파라고 까던사람 못봤다고 그를 지금관점에서 친일파로 선정한걸 비판했던 기억 나네요.
이렇게 말하면 저도 친일옹호가 되다보니 남의 말을 빌어서..
palindrome
19/06/15 21:25
수정 아이콘
625때도 후퇴작전 등 무너지는 전선 속에서도 상당한 공적도 남기셨고, 미군과의 트러블로 인해 빨리 예편하지 않았다면 김홍일 장군과 함께 노병의 진면목을 보일 수 있었던 분이죠.
본인의 과오를 반성하며 6.25, 4.19 다 뜻있게 살다 가신 분이니 공과를 다 봐야 하되 공이 더 큰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19/06/15 21:56
수정 아이콘
김석원은 일본군지휘관, 김홍일은 중국군 지휘관으로 야전지휘해봤던 군인인데.. 50대 후반인데 한국전쟁때 계급도 좀 낮았던것 같아요.
아예 안쓸거면 몰라도, 필요해서 썼다면 확실하게 쓰는게 어땠을까 싶네요. 인재풀도 없던때... 나름 경력직들인데
둘은 정말 말그대로 적군들이었는데도 관계가 나쁘지 않았던것 같아요. 그닥 언급하기 싫지만 이응준도 포함해서.
다만 다른 장성들과는 관계가 좋기가 어려웠을것 같긴 합니다. 한 세대 앞선 사람들이라..
군령술사
19/06/15 23:24
수정 아이콘
흥미롭고 인간적으로 매력적일 것 같은 분이네요.
일제 부역자에 대한 재평가가 의미 있으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진솔한 반성은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반성도 없는 기회주의자들을 승자의 논리로 긍정하는 건 미래를 잘못된 방향으로 비트는 일이라고 봅니다.
19/06/16 00:31
수정 아이콘
요즘 일본 육사 출신인물들 보고있는데,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은것 같아요.
참 여러 관점에서 그시절에 살아보지 못해서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네요.
이게 육사라서 특별한건가 싶기도 하고..아 근데 독립운동으로 빠지지 않은 사람중 반성이란걸 한 인물은 김석원뿐인듯해요.
사악군
19/06/16 03:49
수정 아이콘
(수정됨) 김석원은 1893년생입니다. 백선엽이랑은 27살 차이가 나요. 한일합방 당시 17살. 그게 어떤 일인지 알만한 나이였고, 부끄러움을 느낄만하죠.

맹장이었고 김석원 밑에 가면 산다고 의용병들이 김석원에게 몰려갔다고까지하니 인망은 훌륭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19/06/16 09:27
수정 아이콘
김석원이 대한제국 유년무관학교 졸업하고, 무관학교가 폐지되면서 일본육군사관학교 27기로 유학갔죠.
일본육사 26기, 27기들이 마지막 무관학교 생도들이고 그들과 교류하며 아마도 여러 이야기들을 했을겁니다. 육사 동기들 회보 편집장도 했고, 광복이후 일본군 출신모임 회장으로도 추대된것 보면...
그들은 일본육사에서 배운 후 독립운동 하자고 약속했었고, 일부는 약속을 지켰지만 일부는 지키지 않았죠. 김석원도 선배,동기들과 저런 이야기를 안나눴을리는 없고, 하지만 자기는 남았습니다. 홍사익 이응준 이런 사람들.. 본인의 선택.
그런데 독립운동과 일제부역으로 나뉜 후에도, 연을 끊어버린건 아니고 감정들이 남아있었다는게 제 흥미를 끌어요. 뒷이야기 보면 홍사익, 이응준 같은 사람들도 일화들이 몇개씩은 있고..
무관생도관련 책도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단순히 일본 육사 출신이라고 친일파 선정된건 아니고, 엄청난 전과를 올린데다가 이응준과 함께 태평양 전쟁 학병모집 강연도 했죠.
아마 똑같은 사고체계로 한국전쟁때도 병사들을 모집하고 전쟁을 수행했을겁니다. 이때는 우리편이었다는게 다른것이고...
한국전쟁때 학병 모집할때도 김석원 이름을 내세워서 모집했었다고 합니다. 불과 몇년전에 전쟁영웅으로 내세우며 학병모집을 했었으니 뭐..
일본식 코디에 콧수염 기른 50대 야전장군이 지휘하니, 일제 부역 군인이었지만 어떤전과를 올렸었는지는 들어왔었을테니까요. 저사람이 우리편일때 주는 안도감 같은건 컸을거라 봅니다. 백선엽이야 20대 만주군 중위였을 뿐이죠.
19/06/16 06:32
수정 아이콘
입싹닦고 뻔뻔한 사람에 비하면 대장부네요
19/06/16 09:34
수정 아이콘
복잡한 심정으로 살았고, 광복전후 본인의 과오를 씻어내봤지만 원죄가 너무 컸다 정도..
이른취침
19/06/16 10:50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이해되는 측면이 많고 내가 같은 처지였어도 이 분보다 더 잘 처신했을까 싶지만 대한민국국민으로선 인정해
줄 수 없는 인물이네요
19/06/16 20:57
수정 아이콘
천수를 누리고 살면서, 후회할 짓도 하고 영원히 꼬리표가 붙겠지만 어쨋든 각 시대를 겪으며 원하는걸 이룬 삶이죠.
열심히는 살았지만 그걸 우리가 찬양해주기엔 좀 억울하죠
19/06/17 08:58
수정 아이콘
능력은 있었고 친일매국쪽에 붙어서 누릴거 잘 누리며 살았지만 그래도 나름의 애국(?)심은 있었고 말년에 자기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겸손함도 있긴 했다. 라는 거네요. 음.. 인간답네요.
19/06/18 09:00
수정 아이콘
일본육사 간 사람들, 처음엔 대부분 독립운동을 생각했지만 1919년쯤을 계기로 선택의 기로에서 나뉜것 같더군요. 몇명만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남은 다수의 생도들은 일본군에 복무. 마음의 짐이있다보니 독립운동으로 떠난 사람들의 가족을 돌봐주고.. 저게 애국심도 애국심이지만 몇년간 같이 지낸 동기애도 큰게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김석원은 회고록에서 반성을 했다는 점에서 약간 참작해줄만 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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