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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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마자 겁이 더럭 났습니다. 사고 때 자동차 범퍼에 부딪혔던 왼쪽 무릎이 아팠거든요. 하지만 하필이면 오늘이 일요일이라 주치의 회진도 없고, 물리치료도 없는 날입니다. 지난번 응급실에서 엑스레이를 찍었을 때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이렇게 사흘째 되는 날 갑작스레 아파오니 무진장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리를 쭉 펴고 두어 시간쯤 가만히 누워 있자 다행히도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일시적이었던 모양이에요. 무르팍에 큼지막하게 든 멍과 상처를 어루만지며 내일은 꼭 의사양반(...)에게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무료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병실로 돌아가 이제는 얼굴이 익숙해진 같은 방 아저씨에게 밤새 잘 주무셨냐고 물어봅니다. 어제 들어온 환자가 새벽 다섯 시까지 웅얼대는 바람에 잠을 완전히 설쳤다고 대답하네요. 그러면서 제게 비결을 하나 알려주었습니다. 헤드폰을 귀에 끼고 자면 그래도 조금은 낫다나요.
그 환자가 오전 내내 잠들어 있었기에 오전은 평온하게 흘러갔습니다. 가져온 서피스로 서류 작업을 좀 하고, 출사도 좀 쓰고 하다 보니 기특한 친구놈이 문병을 왔지 뭡니까. 외출증 끊고 절뚝거리며 밖으로 나가 파파이스에서 치킨! 을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먹는 치킨!은 정말 맛있더군요.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서도 친구놈이 한참 동안 저와 놀아주다 이윽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오후가 되니 다시 옆 침상 환자가 지속적인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그뿐이면 어떻게 참아보겠는데 이제 십 분에 한 번씩 우렁찬 방귀를 뀌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쉬지 않고 방귀를 뀔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세 시간 가까이 지속적인 방귀 냄새를 방출하니 저도 버티기가 힘들더라고요. 게다가 어두워서 불을 켰더니 갑자기 불을 끄라고 고함을 버럭. 답답해서 커튼을 걷어 두었더니 갑자기 외발로 뛰어와서(반대발은 깁스) 커튼을 촥. 그 때마다 환자 어머님이 따라오셔서 아이가 강박증이 있어서 그렇다고 사과하시더라고요.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에 그냥 앉아 있기도 고통스러워서 결국 밖으로 나왔습니다.
마침 아내가 딸아이와 함께 문병을 와 줘서 함께 1층 테이블에 앉아 잡담을 나누며 아이 손톱을 깎아 주었습니다. 원래 아이 손톱 깎는 건 담당인데, 아내가 한 번도 안 해본 일이라 겁나서 못하겠다고 그러길래 그냥 손톱깎이 가져오라 그랬죠. 그리고 잠시 잡담을 나누다 가족들을 돌려보낸 후, 저는 병실 밖 소파에 앉아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차에 비어 있던 마지막 침상에 또다른 환자가 도착했습니다. 이 마지막 환자의 상태가 넷 중에 가장 좋지 않은 것 같네요. 트럭에 다리를 깔렸다는데 하필이면 예전에 다쳐서 수술했던 무릎을 또다시 다친 모양입니다. 동년배의 여자분이 따라왔는데 환자를 지속적으로 타박하는 걸로 봐서 애인이 아니라 아내가 틀림없다고 저 혼자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무튼 난생 처음으로 차대사람 사고를 당해 일단 입원은 했지만 다행히도 2박 3일 동안 추가로 더 나빠진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가장 걱정되는 무릎을 월요일에 체크해본 후 별 일 없으면 퇴원을 할까 합니다. 이 번잡스러운 병실에서 더 오래 버티는 것도 곤욕이지만, 그보다 사실 아이 생일이 월요일이거든요. 적어도 월요일 저녁에는 가족들이 같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가면 좋겠다는 심정입니다. 제가 합의금 때문에 불필요하게 병실에 죽치고 앉아 있을 만큼 살림살이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요.
다만 걱정되는 건 많은 지인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퇴원 후에 갑자기 어디가 또 나빠지면 어쩌냐 하는 것인데......
그럼 그것도 제 팔자겠죠 뭐. 여하튼 내일 회진 도는 주치의와 상담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저는 이제 옆 침상 환자가 잠들었는지 확인하러 가 보겠습니다. 다들 즐거운 일요일 저녁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