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테러의 충격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 스페인은 1930년대 피가 낭자했던 정치적 혼란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카탈루냐 주정부는 마드리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면서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를 강행하기로 결정했고 스페인 중앙정부는 이에 대해 강경대처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주정부가 독립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그 어떤 법적 권리가 없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불법이며, 따라서 경찰이 이를 제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강한 독립열기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말았죠. 경찰이 투표함을 강제로 철거했고, 일부 언론인들을 연행했으며 주정부 일부 인사들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스페인 중앙정부가 합법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지만, 카탈루냐인들은 이를 탄압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카탈루냐 각지에서는 전례없는 수준의 대규모 시위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극단적인 경우, 내전의 악몽이 재현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카탈루냐는 왜 독립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사실 카탈루냐는 과거 아라곤 왕국으로 불렸었고, 현대 스페인의 모체를 이루고 있는 카스티야 왕국과는 별도의 언어와 행정체계를 갖춘 왕국이었습니다. 강력한 군사력과 전쟁으로 성장했던 카스티야와는 달리 아라곤 왕국은 상업으로 번창했고 지중해에서 베니스와 겨루기도 했습니다. 아라곤 왕국의 전성기 때에는 사르데냐, 시칠리아, 일부 그리스 섬들, 그리고 나폴리까지 손에 넣었던 거대한 해상제국을이루기도 했죠. 그런데 15세기,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자가 카스티야의 이사벨 공주와 세기의 결혼을 하면서 두 나라는 하나로 합쳐지고 함께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고 또 유럽의 패자로 군림하기도 했었습니다. 스페인(Espagna, Hispania) 제국이 탄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 왕국의 결혼은, 마치 현실의 결혼처럼 잡음이 많고 끊임없는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스페인이 유럽의 패자였을 시절에는 갈등이 노출되지 않았지만, 유럽의 병자가 되면서 아라곤과 카스티야 지방은 항상 서로 견제하고 갈등했고 절대왕정의 강력한 왕권만이 이들의 갈등을 봉합시킬 수 있었죠. 한편 19세기에 이르면 자유주의 성향의 카탈루냐(아라곤)인들은 공화주의 세력을 주도했고 일시적으로 스페인 전역에 공화국을 선포하고 연방제를 채택하는 정부를 구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공화국은 11개월밖에 지속되지 못했죠. 근데 마드리드와 카탈루냐의 갈등이 폭발한 것은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때였습니다. 이 당시 스페인은 이미 공화국이었고 꽤 자유주의적이고 또  상당히 좌파적인 정부였는데, 파시즘이 유럽의 대세가 되자 전통적으로 보수적이고, 종교적이었던 카스티야 지방출신들은 공화국 전복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코 장군이 자기 사병을 이끌고 공화국을 전복하고자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스페인 내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흔히 스페인 내전이라고 알려진 이 전쟁은 사실 어떻게 보면 카스티야와 카탈루냐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화주의파가 가장 많았던 카탈루냐 지방사람들이 가장 맹렬히 저항했고, 또 가장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코가 정권을 차지한 이후 카탈루냐어를 탄압했고, 스페인어(카스티야어) 사용을 강제했습니다. 그리고 카스티야가 전통적으로 누리던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물론 이는 프랑코의 파시스트 정부가 다른 모든 지방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한 것이긴 합니다). 

지금 스페인은 민주정부입니다. 1978년 민주화 이래 유럽 여타 국가와 같은 민주적 질서가 제 기능을 하고 있으며, 과거사청산위원회도 만들고 프랑코 시절의 잔재를 많이 없앴습니다. 스페인을 40년 가량 통치한 프랑코는 역사에서 이제 공식적으로 악당이자 역적입니다. 그리고 카탈루냐는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자치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탈루냐는 마드리드를 깊게 불신합니다. 마드리드의 정책을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도) 카탈루냐에 대한 탄압으로 보고, 현재 카탈루냐가 어려운 이유는 마드리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현재 스페인의 집권여당이 보수당인 Partido Popular(약칭 PP, 민중당)이어서 반발이 더 심합니다. 스페인의 민중당(PP)은 우리나라 새누리당의 포지션인데, 과거 프랑코 시절의 부역자들이 많이 섞여들어간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페인의 진보층은 전통적으로 PP를 혐오하며, 카탈루냐는 이들을 더욱 더 혐오합니다. 게다가 현재 독립여론이 갑자기 불거진 데에는 카탈루냐 주정부의 예산에 관한 자율권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카탈루냐 주정부는 예산 관련 더 많은 자율권에 대한 건을 채택하고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잘 안나네요 ㅠㅠ) 중앙정부도 이를 수용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입장을 선회하고 헌법재판소에 안건을 넘겼고 법원은 주정부의 법안을 부결시켰습니다.

그때부터 카탈루냐의 독립열기가 엄청 강해졌고,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실 최근의 위기가 정치적으로 원만히 해결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아니 사실 무장테러단체까지 있었던 바스크와도 관계를 원만히 해결했는데!!!) 양측이 수차례에 걸쳐 삽질을 계속하면서 서로 걷잡을 수 없이 감정이 악화되었고, 이제 "원만한" 해결은 없는듯 합니다. 마드리드는 카탈루냐 사람들이 위선자에 돈밖에 모르며 내야 하는 세금을 안 내려고 하는 역겨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카탈루냐 사람들은 자기들이 핍박받고 있는 소수민족, 마땅히 독립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민족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마드리드의 삽질로 인해 독립에 반대하던 카탈루냐인들마저 마드리드를 성토하기 시작했고, 스페인어권 웹사이트는 이미 카스티야인과 카탈루냐인 간의 전쟁터입니다. 

어쩌면 근 미래에 카탈루냐 공화국이 탄생하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