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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7/09 22:06:51
Name 사장
Subject [일반] NFL: 가끔은 가장 사악한 자가 사회의 정의를 이끈다
미식축구 역사상 가장 사악했던 자, 혹은 가장 미움받았던 자를 꼽으라면 반드시 거론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알 데이비스(Al Davis), 오클랜드 레이더스의 구단주 겸 단장이었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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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만 봐도 웬 마피아 두목같이 생겼습니다.


이 사람에겐 온갖 수식어가 다 따라붙지만, 아무튼 절대 "좋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데이비스는 NFL의 모든 팀과 심지어 NFL 사무국마저 자신의 팀을 함정에 몰아넣기 위해 결탁했다고 확신한 피해망상자였고,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슨 수단이든 괜찮다고 생각한 승리절대주의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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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의 입버릇이었던 ["닥치고 이겨라(just win, baby)"]는 오클랜드 레이더스의 캐치프레이즈가 되었습니다.


데이비스는 구단주 겸 단장으로서 자신의 철학대로 철저하게 팀을 구성했는데, 그 철학의 요체 중 하나는 "반드시 경기 초반에 상대 쿼터백을 담가버려라. 그것도 철저하게."였습니다. 그리고 데이비스의 지시대로 레이더스 선수들은 NFL 역사상 가장 악명높은 폭력 플레이를 자행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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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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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패고


NFL 역사상 가장 증오받는 팀이라면 누가 뭐래도 알 데이비스 치하의 레이더스였습니다. 레이더스에 학을 뗀 타팀 팬들은 데이비스의 캐치프레이즈를 바꿔서 ["닥치고 죽어라(just die, baby)"]라고 저주를 퍼붓곤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라면, 이렇게 증오받던 알 데이비스가 정작 NFL의 정의실현에 가장 기여한 인물 중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데이비스는 아직 흑백차별이 만연하던 1970년대에 NFL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흑인 선수들을 등용했습니다. 전국의 흑인 고등학교나 흑인 대학교를 돌아다니며 다른 팀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흑인 선수들을 마구 끌어모았지요. 어느 날은 원정경기를 치르러 간 지방에서 흑인 선수들의 호텔 투숙을 거부하자 격분해서 경기도 안 치르고 떠나버리고는 했습니다. 또한 데이비스는 현대 미식축구 최초로 흑인을 팀 감독으로 임명했습니다. 지능 스포츠라 불리는 미식축구에서 흑인을 감독으로 임명한 것은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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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의 임명으로 NFL 최초의 흑인 감독이 되는 아트 쉘(Art Shell)과 데이비스


나아가 데이비스는 미식축구 역사상 최고로 여성을 구단 CEO로 선임했습니다.
참고로 한국 메이저 스포츠에서는 아직까지도 여성 단장이나 CEO가 취임한 사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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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가 NFL 최초로 임명한 여성 CEO 에이미 트라스크(Amy Trask), 레이더스 팬들과 한컷.


그런데 데이비스가 딱히 착한 사람이어서 흑인이나 여성들을 앞장서서 등용한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이 사람은 절대 착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흑인이나 여성들을 등용함으로써 NFL에 기여한 것은, 그가 착하고 나쁘고의 문제에는 별 관심도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하겠다고 맹세한 승리절대주의자였고, 따라서 승리를 위해 필요한 최고의 인재들을 능력대로 기용했을 뿐이었습니다. 아트 쉘이 유능하니 기용했고, 에이미 트라스크가 유능하니 기용했습니다. 흑인이나 여성을 기용하면 사람들이 칭찬해 주겠지? 라든가 흑인이나 여성을 기용하면 괜히 평지풍파 일어나는건 아닐까? 따위의 고민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도움이 되니 썼을 뿐이지요.



그는 미식축구 역사상 가장 사악했고 증오받던 자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랬던 자가 어떻게 NFL의 정의에 가장 크게 기여했던 것일까요.

그에겐 아무런 정의감도 없었지만, 동시에 어떠한 편견도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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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데이비스 (1929~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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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야한다
17/07/09 22:12
수정 아이콘
순수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일까요?
17/07/09 22:13
수정 아이콘
조조를 보는 느낌이 드네요
Agnus Dei
17/07/10 04:34
수정 아이콘
조조가 능력으로만 사람을 썼다는건 현대에 만들어진 '이미지'죠. 실제 역사상의 조조와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신의와배신
17/07/10 07:13
수정 아이콘
능력만 보고 사람을 쓴 사람은 유방이었죠. 장량과 함께 전략을 펼친 진평이 대표적이었습니다. 형수와 간통했다는 인물평에도 불구하고 중용되었습니다.
sen vastaan
17/07/09 22:16
수정 아이콘
효율주의자군요
마스터충달
17/07/09 22:16
수정 아이콘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평등이 아닐까 싶네요.
Essential Blue
17/07/09 22:19
수정 아이콘
질서/혼돈과 선/악은 다른거 아니었습니까?
17/07/09 22:21
수정 아이콘
이사람의 캐치프레이즈는 간단하죠. 이길수있는 플레이는 어떤식으로든 이용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런관점에서 보면 대단한 사람이라고 봐요.
17/07/09 22:24
수정 아이콘
예전에 상대 선수에 입히는 부상에 대해 현상금을 걸었던 인물도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네요.
17/07/09 22:33
수정 아이콘
뉴올리언스 세인츠 수비 코디네이터 였나.....

검색해보니 그렉 윌리엄스네요.
꺄르르뭥미
17/07/09 22:42
수정 아이콘
그랙윌리엄스라는 당시 뉴올리언즈 세인트 수비코치였습니다. 무기한 정지 당했다가 풀려서 아마 LA램즈 수비코치하고있을거예요
Arkhipelag
17/07/10 10:12
수정 아이콘
바운티게이트였지요. 덕분에 픽 날라가고 징계먹고 어휴..
꺄르르뭥미
17/07/09 22:31
수정 아이콘
말년에는 자기취향대로 선수를 드래프트하고 트레이드해서 팀을 완전 암흑기로 몰아넣었지요. 달리기 패티쉬가 있는지 닥치고 단거리 육상기록 좋은 리시버에 집착했습니다. 이 할배가 싸놓은 똥을 치우고 요즘에야 다시 뜨고있죠.
17/07/09 22:38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대로 말년의 알 데이비스는 진짜 맛이 갔죠. 그때야 레이더스 팬들도 저 영감은 죽지도 않나 벼를 정도였으니........
보통블빠
17/07/09 22:39
수정 아이콘
원래 나쁜거랑 능력은 별개문제이니...
Otherwise
17/07/09 22:41
수정 아이콘
기계적으로 평등을 맞추려고 비효율성을 계속 감수해야하는 것보다는 능력 위주로 뽑는게 맞다고 봅니다.
17/07/10 05:05
수정 아이콘
그 능력이란 것도 저정도로 선입견이 없을 때나 순수하게 능력만 보게 되는 거죠.

특정 계층이 주류가 되는 사회에서는 그 계층이 아니면 선입견에 빠져 능력을 못 보는 게 다반사입니다. 예를들어 군대 문화가 만연한 조직에서 군대를 안 다녀와서 그 문화에 빠르게 적응치 못하면 무능하다던지, 특정 대학이나 특정 과를 못 나오면 선입견을 가지고 본다던지 하는 것 처럼요.
말다했죠
17/07/11 07:19
수정 아이콘
좋은 댓글 잘 읽었습니다.
마르키아르
17/07/10 01:15
수정 아이콘
약물을 쓴다거나, 심판을 매수한다거나, 경기 외적으로 폭행, 살인 사건 같은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그래도 그런 내용은 다행히(?) 없나 보네요.. -_-;;
김첼시
17/07/10 01:56
수정 아이콘
프리더가 생각나네요.
17/07/10 06:30
수정 아이콘
메이저 리그는 재키 로빈슨 이후로 50년대부터 흑인 선수를 쓰기 시작한걸로 아는데 이 사람이 7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흑인선수를 끌어다 썼다고하면 미식축구는 그보다 상당히 늦게 쓰기 시작했다는건데 좀 신기하네요. 다른 리그에서 흑인선수들이 재키 로빈슨이나 윌리 메이스 같이 성공적으로 활약하는거와 별개로 그 만큼 인종차별이 심했던 걸까요?
Arkhipelag
17/07/10 10:24
수정 아이콘
그래서 재키 로빈슨과 그를 영입한 브랜치 리키, 경기장에서 함께했던 피 위 리즈가 위대한 거지요.
재키 로빈슨은 단순히 스포츠계에서만이 아니라 미국 사회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인물이에요. 괜히 '베이브 루스가 야구를 바꿨다면 재키 로빈슨은 미국을 바꿨다'란 말이 나오는 게 아니지요.

미국의 4대스포츠에서 MLB나 NBA가 인종차별에서 그나마 좀 자유롭지만 NHL이야 흑인이나 히스패닉이 선호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핑계라도 있지, NFL에서 여전히 쿼터백 같은 포지션은 진짜 뛰어나지 않는 한 어지간하면 무조건 백인이죠. 대학무대에서 날렸던 쿼터백들도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프로 와서 다른 포지션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고요. 물론 이러한 경향은 전보다 많이 줄어든 상태이긴 합니다.
언어물리
17/07/10 06:46
수정 아이콘
선/악을 규정하는 것이 편견일 때는, 차라리 그 선/악 구분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나을지도.
구밀복검
17/07/10 08:24
수정 아이콘
고리짝 이야기긴 한데 문득 생각나서 인용해봅니다.

"부르주아지의 이러한 각 발전 단계에 발맞추어 정치적 진보도 함께 이루어졌다...어디서나 모든 봉건적, 가부장적, 목가적 관계를 파괴했다. 사람을 '천부적 상전'들에게 매어놓았던 온갖 봉건적 속박을 사심없이 산산히 찢어버렸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에는 숨김없는 이해 관계와 냉혹한 '현금 계산'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남지 않게 되었다. 부르주아지는 종교적 광신, 기사도적 열광, 속물적 감상 등의 신성한 열락을 이기적인 타산이라는 차디찬 얼음물 속에서 익사시켰다. 부르주아지는 중세에는 그처럼 감탄해 마지않던 야만적인 힘 자랑이 실은 안일한 태만함으로 요령껏 지탱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틀에 박히고 녹슨 모든 관계들이 고대와 고색창연한 선입견과 의견의 다발들과 함께 해체되고, 새롭게 형성된 것들도 모두 자리잡기도 전에 진부하게 된다. 단단한 것들은 모두 녹아버리고, 신성한 것들은 모두 불경해지며, 마침내 사람들은 냉철하게 그의 삶의 진짜 조건들과 동류들의 관계들을 냉철하게 직시하게 된다."

딱 이짝이죠. 돈의 흐름 앞에서 '백인의 신성함' '남성의 우월함' 같은 비합리적 윤리들이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
무무무무무무
17/07/10 22:58
수정 아이콘
6.25 생각나네요.
17/07/10 10:36
수정 아이콘
흑인이나 여성을 기용하면 사람들이 칭찬해 주겠지? 라든가 흑인이나 여성을 기용하면 괜히 평지풍파 일어나는건 아닐까? 따위의 고민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도움이 되니 썼을 뿐이지요.
그에겐 아무런 정의감도 없었지만, 동시에 어떠한 편견도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문장들로 알 데이비스의 사례를 능력주의자가 의도치 않게 차별의 벽을 허문걸로 포장하는 건 사실과 다릅니다.
오클랜드 레이더스의 오클 연고지인 오클랜드는 엄청난 흑인 인구 비율에도 불구하고 50년대까지 인종분리의 전통이 남아있었고 법률적으로 인종분리 정책이 폐지된 이후에도 흑백갈등이 심한 지역이었습니다. 알 데이비스는 자연스럽게 이런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출했고, 60년대에 한창 흑인 민권운동이 한창일 때 인종분리를 시행하는 앨러바마에서는 경기를 치를 수 없다며 오클랜드에서 경기를 치르자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흑인과 백인 선수들을 다른 방에서 숙박시켜야만 하는 지역에서는 경기를 치르지 않겠다고도 했고요. 민권운동에 적극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데이비스가 자신의 악명을 희석시키기 위해 평등주의자 행세를 한 것인지 그게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60년대의 열기에 잠깐 취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충분히 의도적인 평등주의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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