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도 도축장에 끌려갈 때,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대충 압니다. 그럴 때 돼지도 비명을 지르며 웁니다. 구제역이 한번 터지면 돼지를 무수히 생매장하는데, 이 일을 담당하던 공무원들이 후일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하기도 합니다. 돼지가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아마 그 바탕에는 인간은 특별하다는 인식이 깔려있을 겁니다. 인간이 특별하다는 점이 바로 인본주의의 근거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인본주의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 근거는 신이었습니다. 신은 모든 인간을 고귀하게 창조하였으니, 모든 인간은 특별합니다. 세월이 흘러 신이 사라진 뒤에도, 인간의 특별함에 대한 믿음은 살아남았습니다. 사실 인간이 특별하다고 믿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린 정말로 특별합니다. 지난 수만 년간, 지구상에 인간의 두뇌를 능가하는 정보처리체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전 우주에서 따져봐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습니다. 인간지능은 지난 수만 년간 제자리 걸음이었던데 반해, 기계지능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간 인간지능이 기계지능에게 추월당하는 것도 시간 문제일 뿐이죠. 그러니, 인간이 뛰어나기에 인간이 특별하다고 하긴 좀 찜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인간에게 절대성을 부여해주던 신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인간이 특별하다고 말하기 위해선, 능력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기반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과학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사실 인간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는 게 밝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인간과 동물을 비교해보죠. 코끼리는 인간처럼 부족사회를 이루고, 죽은 동료의 사체에 정기적으로 모여 추도까지 합니다. 죽은 자를 애도하는 건 인간만의 특권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리고 인간이 자연적으로 이룰 수 있는 집단의 한계(친구가 될 수 있는 숫자)가 150 정도인데, 코끼리는 그게 100 정도라고 합니다. 이 50의 차이가 인간만의 찬란한 후광인 걸까요?
인간은 대화를 한다는 점이 특별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화는 돌고래도 합니다. 아예 돌고래 고유의 문화, 통역사까지 존재하고, 현재 이 돌고래 언어를 번역하는 작업이 진행중입니다. 자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끼리, 돌고래, 유인원 등 인간만이 고도의 자의식을 갖춘 존재가 아닙니다. 이들도 인간처럼 웃고 슬퍼하고, 기쁨과 고통을 느끼고, '나'가 누구인지 인지합니다.

생물학은 한술 더 뜹니다. 아예 생명체 자체가 복잡한 알고리즘에 불과하다는 쪽으로 생물학의 이론이 흘러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인간 또한 이런 알고리즘, 즉 데이터 처리장치에 불과한 존재인 건 아닐까요? 우린 단 음식에 본능적으로 끌립니다. 인간이 진화한 사바나 환경에선 단 음식이 많은 칼로리를 제공하기에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선 더이상 단 음식을 선호하는 알고리즘은 유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린 단 음식에 높은 점수를 매기는 철지난 알고리즘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죠. 인간 두뇌는 이런 알고리즘의 집합이며, 의식은 알고리즘 간 싸움의 발현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 과학이 향해가는 결론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에겐 정말로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죠. 그렇지만 지금 추세는 점점 인간이 특별하지 않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추세가 계속 유지되어서, 인간이 동물과 별로 다를 게 없고, 심지어 알고리즘에 불과한, 그다지 특별할 거 없는 존재라고 생물학 정설이 확립된다고 해봅시다. 그래도 인간이 세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우리가 동물이나 컴퓨터랑 별다를 게 없든 말든 무슨 상관입니까. 어차피 총을 쏘려면 인간의 손가락이, 공장을 돌리려면 인간의 손이 필요한데 말이죠.

하지만 문명이 계속 발달하는데 반해, 인간 지능은 정체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문명 발달을 멈추든가, 아니면 기계지능에 문명의 관리를 위임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우린 문명의 브레이크를 밟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냥 기계지능에 더욱 많은 부분을 위임하는 쪽으로 흘러갈 겁니다.

이걸 내비게이션에 빗대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조언자에 불과합니다. 그 다음엔 내비게이션에 자기 차량의 주행을 맡깁니다. 훨씬 편하고, 인간이 주행하는 것보다 안전하니까요. 마지막으로 모든 차량의 통제권한을 내비게이션에 넘깁니다. 내비게이션이 차량 흐름을 최적으로 분배하여 교통흐름을 완벽하게 유지합니다.

이걸 한번 사회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인공지능 조언자가 처음 도입됩니다. 인공지능이 계속 발달하면, 인공지능에게 판단을 위임하면 위임할수록 그 기업, 사회, 국가의 경쟁력은 높아질 겁니다. 점차 인간이 직접 판단하는 영역은 줄어들고, 인공지능에게 일임하는 영역이 늘어납니다. 마지막에는 사회전체를 인공지능이 관리하게 됩니다. 인공지능이 재화 흐름을 최적으로 분배하여 사회를 완벽하게 유지합니다.

인간이 주도권을 잃은 이 시점이, 인간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결론과 결합하면 우린 더 이상 특별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그 시점에서 인권의식, 인본주의도 사실상 수명이 다하겠죠. 위에서 가정한 대로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알고리즘, 정보 처리장치에 불과하다고 결론이 났다면, 구식 프로세서를 굳이 대우해줄 이유가 없으니까요. 인간을 초인간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들도 결국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될 테고, 무엇보다도 486을 업그레이드해서 쓰느니 그냥 새 프로세서를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겁니다. 그렇게 문명은 인간을 버려두고 계속 발달하겠죠.

물론 아직 전부 멀고 먼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인간지능은 정체되어 있고 기계지능은 계속 발달한다면 결국은 인간이 문명의 주도권을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린 인간이 최고인 세상에서 수만 년을 살아왔는데, 그게 더이상 아닌 시점이 재수없으면 내 세대, 혹은 자녀 세대에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두렵습니다.

전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존중받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은 세상이 내가 살아있는 미래에 다가올 수 있다는 게 두렵습니다.
무언가 인간에게 특별한 것이 존재하기를 바랍니다. 아니면 인권개념을 인간 외의 존재에게도 설득시킬 강력한 근거라도 있기를 바랍니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를 읽고 싸한 기분이 들어서 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