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506호 퇴실했다."
이제 막 일어난 야간 총무가 이제 막 출근한 주간 총무에게 업무를 인계했다.
"그거 말고는 별일 없지?"
"응. 맨날 똑같지 뭐."
"그럼 바로 청소 가자. 빨리 끝내고 공부하는 게 낫지."
퇴실 방 청소는 두 총무가 함께한다. 업무 분담은 암묵적으로 이뤄졌다. 야간 총무는 침실. 나는 화장실. 이유는 내가 청소를 더 잘하기 때문이다. 고시원 총무를 시작했을 때, 나는 질겁했다. 세상에 이렇게 더러운 곳이 또 있으랴. 아마 청소기만 돌릴 뿐, 다른 청소는 전혀 하지 않았나 보다. 온 사방천지가 털옷처럼 먼지를 수북이 입고 있었다. 주방 타일은 기름때투성이였고, 전기레인지에는 무언가 눌어붙어 지옥도가 부조(浮彫)되어 있었다. 최악은 배수구였다. 음식물 찌꺼기가 3cm 두께의 벽을 이루어 배수구와 수챗구멍에 달려있었다. 그래 봤자 달총무에게는 별거 아니었다. 군대도 다녀 왔는데, 똥통도 치워 봤는데, 이까짓 것쯤이야. 나는 음식물 찌꺼기도 맨손으로 긁어버릴 정도로 비위가 좋았다. 쓱싹쓱싹, 뚝딱뚝딱. 그렇게 2주 동안 구역질 나는 공간을 사람 사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2리터 들이 락스만 세 통을 썼다. 그렇다고 야간 총무를 책망하고 싶지는 않다. 나야 어릴 적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자라왔지만, 요즘 애들은 세탁기 한 번 돌려본 적 없는 경우도 많다. (입실자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세탁기 사용법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예뻐서 그런 건 아니다) 그런 연유로 나는 고시원의 청소통이 되었다.
506호로 가는 길은 음침했다. 5층은 남자 전용구역으로 야간 총무 담당이다. 내가 한 번 대청소했지만, 꾸준한 보살핌이 없으면 단체 생활 구역은 금세 더러워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남자들만 있으니 퀴퀴한 홀아비 냄새까지 더해진다. 층수는 위로 올라왔건만, 지하 던전으로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퇴실자는 깔끔한 사람이었을까? 깔끔한 사람이라면 시트만 교체해도 괜찮다. (물론 그래도 청소는 한다) 하지만 더러운 사람이라면? 쓰레기만 20리터 세 봉지가 나온 일도 있다. 과연 506호는 어떨까?
방문을 열자 톡 쏘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역시 남자 방은 냄새가 난다. 그래도 방은 깨끗해 보였다. 이불과 시트만 제외하면 갖다버릴 쓰레기도 별로 없었다. 여자방처럼 머리카락이 그득하지도 않았다. 금방 해치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화장실 문을 열자 순진한 예상은 무너져버렸다. 톡 쏘는 냄새의 정체는 오줌 지린내였다. 화장실 안에 지린내가 가득했다. 하얀색이어야 할 변기 속은 노란 때가 뒤덮여 있었다. 변기뿐만이 아니었다. 바닥에도 온통 노란 때가 가득했다. 나는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나는 한숨을 푹 쉬다가 폐 속으로 파고든 지린내에 다시 한번 헛구역질을 했다.
그래도 별수 있는가. 이 변기를 닦는 것이 나의 임무인 것을. 아마 506호는 오줌을 아무 데나 쌌나 보다. 구석진 곳, 작은 그릇, 물이 고일만한 곳이라면 어디에도 오줌 천지였다. 변기에 싸도 물 한 번 내리지 않은 듯싶다. 공중화장실도 이 정도로 오줌 때가 끼지 않는다. PB1(욕실 세척제)을 뿌리고 찌든 때를 벅벅 닦기 시작했다. 어찌나 오래 묵혔는지 잘 닦이지도 않았다. 세찬 솔질에 오줌물이 얼굴에 튀었다. 정말 토할 수 있다면 토하고 싶었다. 그렇게 반 시간 동안 누런 변기를 새하얗게 만들었다. 바닥과 벽, 구석진 곳까지 506호의 흔적을 말끔히 지웠다. 마무리로 락스물을 한 바가지 뿌려두었다. 이미 코는 오줌 냄새에 마비되었지만, 크게 숨을 들이마셔 보았다. 지린내는 나지 않았다.
코가 마비됐으니깐!
나는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손과 발을 비누로 두 번씩 씻었다. 발을 헹구고 고개를 드니 거울이 보였다. 자괴감이 들었다. 나이 서른 먹고 남의 오줌이나 닦고 있어야 하나. 이러려고 대학까지 나왔나. 열심히 공부했던 지난 20년의 결과가 결국 오줌 닦이란 말인가. 이딴 일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다. 고시원 총무 따위 그만둬도 아쉬울 게 없다. 당장 밥벌이가 급한 것도 아니다. 최저시급을 제대로 챙겨주지도 않는다. 확 관둬버릴까?
...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사장이 바뀌며 잘릴까 봐 전전긍긍하던 나였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다. 공부도 하고 돈도 받고. 내 처지에 이만한 일을 어디서 또 구하겠는가? 고작 오줌물에 투정이나 부리고... 좋게 생각하자. 좋은 경험이다. 내가 살면서 언제 남의 오줌을 닦아줘 보겠... 크흡 ㅠ.ㅠ 내가 오줌 닦이가 된 것은 다 내 탓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번듯하게 합격하고 취업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다. 누굴 탓하겠는가. 누굴 원망하겠는가. 스스로 구원하는 수밖에 별수 있는가. 노력하기 위한 동기로 삼자. 공부하기 싫을 때면 오늘을 떠올리자.
"공부도 안 하고 흥청망청 살면 오줌 맛 웰치스 먹는다. 공부해라."
01. 똑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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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충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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