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2/03/29 03:24:51
Name 벚꽃피는계절에
Subject [일반] 나는 정말 그의 첫사랑이었을까.
건축학개론 때문일까요,
다시 꽃피는 계절이 와서 그럴까요,
부쩍 첫사랑에 대한 생각이 많은 밤이라 몇 자 써보려 합니다.

스무살, 한 학번위의 그 사람을 만났고 조금, 아주 조금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꼭 처음 맛 본 소주같았어요.

곧 그는 군대를 갈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군대에 갔고, 어느 날 편지한통을 받았습니다.
참 오랜만에 받아보는 편지, 훈련소에서 보낸 편지였습니다.

너무 힘들다. 이 곳은 지옥이다. 많은 남자들이 공감할 이야기로 빼곡한 그 편지 한통에, 봉투를 열기도 전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가족 아닌 다른 사람으로 인해 많이 울었던 때가.
- 아, 내가 이 사람을 너무 깊이 좋아해버렸구나 -

그와 내가 주고 받았던 많은 편지들.
편지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친한 친구에게도 털어 놓지 못할 이야기들을 나누며 그와 저는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집을 나서며 우편함을 확인하고
집에 들어오며 우편함을 확인하고
일찍 집에 들어온 날이면 6시에 다시 우편함을 확인하고
제 스무살은 오롯이 그 사람과의 추억, 그리고 편지였습니다.

어느 날, 편지봉투속에 들어있던 벚꽃잎 하나.
'떨어지는 벚꽃잡았는데 소원이루어 준다더라. 너한테 주는 거니까 소원 니가 빌어도 돼.'
- 오빠가 나를 좋아하는거면 좋겠다 -

우편함, 9시면 늘 울리던 휴대폰 벨소리.
그는 제게 그렇게 남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벚꽃은 정말 제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딱 소원 만큼만.





제대하기 전, 이유도 모른체 전 이별통보를 받았거든요.

- 정말 나는 그 사람의 첫사랑이었을까. -
다시 학교를 다니는 그를 마주칠때면
그의 새로운 여자친구를 마주칠때면  
아직도 장롱 저 끝의 봉인된 편지 상자를 볼 때면
벚꽃이 피는 봄이 오면
달을 보며 이야기하던 그 때가 떠오르는 날이면
궁금해집니다.
그 이후로 몇 년이 지나고, 다른 사랑을 해보았음에도.

이제 저도 더이상 나름 순수했던 스무살이 아니고,
쓴 맛, 세상에 나쁜 사람도 많다는 그 쓴맛을 알아 버린 지금이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묻어둔다는 것은 어려운것 같아요.

추억이라는,
아픈 기억이라는,
미련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에요.

우리는 정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을까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가만히 손을 잡으
12/03/29 03:28
수정 아이콘
딱 자러가기 전 잘 읽고 갑니다. 조금 서글프네요.
좀 더 큰 사랑이 와서 덮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봉인된 편지는 이제 태워버리세요.
벚꽃피는계절에
12/03/29 16:21
수정 아이콘
네, 확 불사질러버려야하는데... 아까워서 차마 그렇게 까진 못하고 있어요.
올 봄에 마당 한켠에 매장하는 것은 시도해보겠습니다.
물론 그 '놈' 말고 편지와 멋 모르던 시절의 저를요.
벌렸죠스플리터
12/03/29 03:34
수정 아이콘
서글프네요.
예전에 소개팅녀가 묻더군요 '정말 남자는 첫사랑을 못 잊냐고'
대답은 yes였지만 되물어보고싶었어요

그럼 여자는 잊는걸까?

첫사랑이란게 누구에게든 소중하겠죠.
내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였다면, 나도 그 사람의 소중한 기억이겠죠..
Hook간다
12/03/29 04:08
수정 아이콘
봄은 봄이로구나... 숨어계셨던 여성분들이 고개를

내미시네요.

남성분들 뭐하시나요 .. 이럴때 돌직구 날리는겁니다?

============================================
첫사랑이 잊혀지지않는 이유..
가장 순수했던 시절 처음 느껴본 감정들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와서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가 좋지 못하더라도 말이죠.

소중할수 밖에요
12/03/29 04:15
수정 아이콘
참 가슴아픈 이름이 첫사랑이라서 기억한다 거나 아니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에게 첫사랑은 그냥 이젠 잊혀졌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큰 상처를 받기도 하였지만

그것에 지나지 않아 여러 첫사랑이 사건 사고를 주변에 치고가서 그걸 다 해결하니 그냥 이젠 그러려니 하고 잊혀져버렸네요

순수했고 단순했으며 제가 어리숙해 너무 많은 상처를 받고 또 주기도 하였지만 그냥 잊혀져 버렸네요...

친구들끼리 술마시거나 어른들과 이야기해도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지만 전 그냥 그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애정으로 시작해 분노와 슬픔의 과정을 거쳐 진짜 그 말 그대로의 무관심으로 바뀌어 버렸네요...

어떤 의미에서 첫사랑에게 매우 감사합니다... 잊을수 있게 그 많은 좋은 추억들을 하여야 할 시간에 사고처리를 하게 만들어줘서...
12/03/29 06:38
수정 아이콘
제 첫사랑은 지금 방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네요. 깨워줘야겠네...

마음이 조금 시리다 하여 잊고 싶다면 첫사랑이라 부를 수 없지 않을까요.
Miss Angie
12/03/29 07:53
수정 아이콘
오늘 방금 나온 버스커버스커 앨범에 있는 "첫사랑"이란 노래 한번 들어보세요.
글 읽다보니 생각이 나네요...
고윤하
12/03/29 09:34
수정 아이콘
솔직히 건축학개론은 저하고는 코드도 안맞고 나한테는 절대 일어날 일이 아니라서 공감도 안생길것 같아 안보고 있습니다
주위에선 혼자 보는 영화라며 말 하던데 어째 저하고는 영;;
SNIPER-SOUND
12/03/29 09:40
수정 아이콘
제 첫사랑은 어제도 제 친구들이랑 소주 먹던데 ;;

시집이나 가버리지...
12/03/29 11:29
수정 아이콘
모두 잊었지만..
그때처럼 시작할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끝낼 때 소화불량에 뱃속이 쓰라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그 기억만은 아직도 생생해요.
벚꽃피는계절에
12/03/29 16:28
수정 아이콘
네, 정말 동감해요.
그 때처럼 두근두근, 으아아아아아아. 가 올까요?
오늘도 낮엔 참 따뜻하더군요, 정말 벚꽃피는계절이 온 것 같아요
다들 한번 기대해봅시다. 두.근.두.근
9th_Avenue
12/03/29 12:33
수정 아이콘
건축학개론이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멘붕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글쓴분이 멘붕이란 말은 아니니 오해마시길~)
보고난 사람들이 전부 지나간 사람 추억하는데..;; 그래서 영화를 보고싶어도 보기가 너무 무섭네요
뒷감당 안될까봐;;

근데 사람마다 첫사랑을 기억하는 이유는 아마 그때는 처음이라서 그런지~
조금은 서툴렀기 때문에 그래서 기억나는게 아닐까요?
저는 첫사랑 생각하면 너무 서툴렀던 기억만 나서 자책감이 생겨요.;;

모 유저분처럼 안찌른게 참 다행이라..응??;;
12/03/29 16:43
수정 아이콘
첫사랑은 기억에 묻고,
마지막사랑에 삶을 묻어야 되지 않을까요... 허허
은하관제
12/03/30 02:06
수정 아이콘
뭔가 많이 짠하다는 기분이 드네요.

저는 제 첫사랑이 첫사랑이 맞는지 조차도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하핫.
살면서 처음으로 좋아한다는 말도 한 것도 맞고, 좋아했던 적이 있었던것도 맞지만,
그 당시도 그렇고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렇고 뭔가 '내가 그 사람을 첫사랑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더군요.
그래도 제겐 그 사람이 첫사랑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를 이성적으로 좋아했었던 사람이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들긴 하고요... 아 슬프다 흑흑)

아무튼 빨리 모태솔로 타이틀 때고 연애하고 싶습니다 어흑흑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6300 [일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성향 자가진단 [41] kurt4345 12/03/29 4345 0
36299 [일반] 감히 게임을 하다 [72] 삭제됨6749 12/03/29 6749 0
36298 [일반] 현직 부장 검사 여기자 성추행 파문 [42] empier6467 12/03/29 6467 0
36297 [일반] 여자사람친구 만들기 어렵네요 [31] 삭제됨5832 12/03/29 5832 1
36296 [일반] [정치]드디어 안철수 원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네요. [23] 아우구스투스6975 12/03/29 6975 0
36294 [일반] 이것도 보이스피싱일까요? [6] wish burn3932 12/03/29 3932 0
36293 [일반] 박물관 만찬 [33] nickyo7914 12/03/29 7914 0
36292 [일반] MBC가 드디어 맛이 갔군요. [81] 허느8792 12/03/29 8792 4
36291 [일반] 신화와 스피카와 소란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습니다. [3] 효연짱팬세우실3693 12/03/29 3693 0
36290 [일반] 나는 영어공부 이렇게 했다!! [10] 백호5153 12/03/29 5153 1
36289 [일반] 나만 보면 토하던 여자 [48] 삭제됨6142 12/03/29 6142 1
36288 [일반] 숙취 [5] 로렌스3117 12/03/29 3117 0
36287 [일반] 영어 발음에 대해 또 다른 생각입니다. [9] gibbous3916 12/03/29 3916 2
36286 [일반] 나는 정말 그의 첫사랑이었을까. [25] 벚꽃피는계절에5126 12/03/29 5126 0
36285 [일반] 임요환&김가연씨가 출연한 해피투게더 방송일이 오늘입니다. [25] 대청마루7694 12/03/29 7694 0
36284 [일반] 8년지기 남자 인간 친구와 한순간에 깨져버린 우정 [85] Absinthe 13057 12/03/29 13057 0
36283 [일반] 19대 총선 D-13 각종 언론 여론조사 [21] 타테시7260 12/03/29 7260 0
36282 [일반] 2012년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텔 스위트룸 Top 15 [13] 김치찌개5532 12/03/29 5532 0
36281 [일반] pgr 분들의 20대부터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음악자동재생입니다) [23] 새강이4091 12/03/28 4091 1
36280 [일반] 태평양 전쟁 - 2. 토라 토라 토라 [55] 삭제됨7388 12/03/28 7388 3
36279 [일반] 욕을 하면 안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78] 스타핏18456 12/03/28 18456 0
36276 [일반] k팝스타의 우승은 누가 할까요? [21] 연이5506 12/03/28 5506 0
36275 [일반] 슈스케2를 늦었지만 정주행 했습니다 크크 [17] 다음세기4424 12/03/28 4424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