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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9/11 10:24:53
Name 해랑
Subject [일반] [잡담] 게으른 고시생의 하루

아침에 눈을뜨고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어제도 나태하게 보냈구나 하고 밀려드는 씁쓸함을 이겨내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이다. 안 그럴수가 없는게 나는 7시 40분에 출석체크 모임하러 가야하고

늦거나 안가면 벌금을 내야한다.. 이 천원.

사실 뭐 벌금 이 천원 정도 한 껏 달콤한 아침잠과 바꾼다고 치면 크게 나쁜 건 아니라는 생각도 뭉클뭉클 든다.

근데 중요한건 이 천원이 아니라 내 아침시간을 위해서라고 애써 다짐하고 대충 씻고 문을 나선다.


신림동에는 어느 시간에 나가도 길거리에 사람들이 있다.

이유야 각자 다 다르겠지만서도 새벽에 나가봐도 늘 사람들은 있다. 다들 무슨 생각으로 이 시간에 있는걸까?

나는 사실 밖에있을때 별 생각을 안하는데.


출석체크하는 장소까진 걸어서 10분이 채 안되는 거리이다. 다만 내 방에서 모임장소까지는 계속 내리막이고

2,3분 남짓 출석체크를 마치고 나면 문제의 그 내리막을 헥헥거리며 다시 올라와야 한다는게 썩 좋지않다.

그래도 다행인건 주로 내려갈 때보다 올라올 때 마음이 더 편하고 담배라도 하나 피워 물 수 있다는 점이다.


요 며칠은 비가 계속 내려서 밖에 나갔다 오면 찝찝하다. 아침을 시작하면 오늘 내가 해야 할 것을 점검한다...

PSAT를 푼다던지, 오후엔 경제학과 행정법을 읽다가 저녁에 행정학 강의를 본다던지 같은 오늘이나 내일이나

사실 생활의 변화는 전혀없지만 꼭 해야만 고시생스럽다는 느낌도 받는것 같고 아니 별로 느낌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려고 신림동에 온거니깐 해야한다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낼 준비를 한다.


내 기분은 그렇게 우울하거나 절대로 쳐지지 않았는데 내 하루중 아침을 적는 것만으로 이렇게

우울하고 쳐져보인다는 사실이 슬프다. 아 고시생의 하루는 원래 아침부터 우울하구나 라고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내가 사실을 적는 것 만으로도 우울하고 슬퍼지게 만드는 나도 모르는 스킬이 있었나 알수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울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딱히 기분좋은 일이 있는건 아니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고시생들은 대부분 유쾌한 하루와는 먼 쳇바퀴스러운 하루를 보내는데

예컨데 어제는 스터디룸에 누가 허브티와 빵을 새 것으로 두고 갔는데 우리가 강의를 듣는 두시간 반까지

주인은 나타나지 않아서 배고픔과 갈증을 못참고 스터디원 두명이 음료를 홀짝이는데 갑자기 주인이 나타나 빵을 정중히

찾아가는 일이 발생해서 보는 내가 더 뻘쭘했던

그런 일상에서의 소소한 사건이라도 없는 이상 딱히 웃을 일도 없겠지 라고 생각했다.

아 물론 위의 고시생이란 단어를 빼고 직장인, 학생, 군인( 아 군인은.......더 좀..그런가? 흑), 기타 여러사람을 넣어도 통용되겠다.


얼마전 친구놈한테 CPA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래 이건 기쁘면서도 역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건 내 다른 친구 공돌이가 삼성에 갔다던지 여자사람친구가 항공사에 취직했다던지 같은 일과는 굉장히 다른 느낌을 준다.

그래도 뭔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게 있었는데 저놈은 이제 결혼하고 싶은 직업 상위권에 들어갈 수도 있을것이고(노력에따라)

나는 흔히들 농담으로 말하는 결혼하고 싶은 직업에서 광부보다 못하다는 고시생이 아닌가. 며칠 전만해도 같았는데 제길!

(딱히 광부 직업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직업을 가진 사람들 모두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그 순위표도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니도 열심히 해서 붙으면 돼! 라는 초딩도 알만한 얘기를 해대는 녀석을 뒤로 두고 담배를 한대 피워물었다. 내가 빠가도 아니고

누가 그걸 모를까 그냥 나는 부러운 것 뿐이야 임마. 그 말은 마치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면 된다... 나 아니면 모 신문에서 보았던

생활의 지혜란에 실린 음식이 싱거울땐? 소금을 치면 된다... 만큼이나 영양가 없는 말이라고!


아오 근데 사실 붙고싶다.

사무관 사무관 사무관이 되고싶다. 공직에 몸을 싣고 국민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며 국가의 이상적인 발전에 힘이되는..에이 그것도 좋지만

그냥 붙고싶을 뿐이다.

하고싶다는데 딱히 이유가 있는가.


날이 갰다. 비가 오거나 해가 쬐거나 둘 다 고시생한테 큰 의미는 갖지 않지만

나가서 기지개라도 펴고 광합성이라도 해야 게으른 고시생의 굽은 허리라도 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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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11 10:58
수정 아이콘
저도 3개월전까지만 해도 공시족으로 살아서 글이 참 와 닿네요..

사소한 일에서 웃음을 찾으려는 노력도, 합격한 친구나 형들의 전화가 부담스러운 것도...

지금은 겨우겨우 합격한 상황이라 예전의 기억들이 추억이 되었네요..

모든 건 결과가 말해주겠죠.. 합격하시면 웃으면서 되돌아 보실거에요..
"루찌"
10/09/11 11:10
수정 아이콘
사무관 참 좋아요. 열정도 있고요
고구마군
10/09/11 11:48
수정 아이콘
10년 전에 비슷한 길을 걸었던 선배로서 정말 힘내라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좋은 습관을 새로 만드시고 안좋은 습과 줄이시라는 충고도 같이 하고 싶습니다.
배수의 진을 치고 열심히 한다는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5급 사무관 이외에 다른 것은 절대 안돼 하는 고집은 버리시고
다양한 기회에 응하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아무쪼록 열심히 하셔서 좋은 결과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맞다. 2차 응시할 기회가 있으시면 경제학 모두가 인정할 때 합격의 길이 열립니다.
모아드림
10/09/11 14:01
수정 아이콘
제 대학 동기 두명도 고시생인데, 그 친구들의 하루가 이럴까 생각해 보게 되네요.

힘내시고, 열정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
10/09/11 14:18
수정 아이콘
위에 댓글 달아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격려와 조언 잊지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리는망내
10/09/11 22:51
수정 아이콘
저랑 같은 처지시군요^^
같은 공부하시고 같은 동네에 계시겠네요.

열심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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