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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9/10 18:51:39
Name 헥스밤
Subject [일반] 금요일 밤이 즐거웠으면 - 어느 논술강사의 푸념.
이래뵈도(이래뵈도, 란 사회과학 전공 대학원생. 극히 불한당스러운 외모. 정리된 적이 없는 일상. 저그가 주종족. 등을 의미한다) 무려 5년간 꾸준히 해온 '직업'이 있다. 논술강사라고. 아, 솔직히 말하면 꾸준하지는 않았다. 중간 중간 몇 달 쉰 적이 많으니. 덕분에 입사동기(라는게 대기업도 아닌데 있을 리가 없고 비슷한 시기에 일을 시작하게 된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들 중 몇몇은 전임급 강사가 되었으나 난 애매한 그저강사.

논술학원이라는 게 우스운게 대게 주말에만 일한다. 아. 대게가 먹고 싶다. 아무튼 참 좋아 보이지만 그게 좋지 못하다. 전임 '급' 강사가 아닌 '전임' 정도가 된다면 모를까, 이것만으로 생계유지가 되기는 힘들다. 평일에 다른 일을 하고 주말에 논술강사를 한다. 평일에 하는 일이 돈이 되는 일이면 모르겠는데 이 전임 '급' 친구들이 주로 평일에 하는 일은 영화감독, 대학원생, 시나리오작가, 언론고시준비, 고시준비 등등이다. 주로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러고보니 지지난 주에 한 친구가 드디어 언론사시험에 붙어 학원을 떠나갔는데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고(그냥 부러운 일이지, 쳇). 중요한 일은 돈도 없는 것들이 돈드는 짓을 한다는 건가. 쳇.

그렇게 토요일 일요일을 일한다. 강의와 첨삭이 밀릴 때는 열 시간 동안 밥먹을 시간도 없이 일해본 적이 있다. 쉬는 시간 동안 김밥 몇줄 삼킨게 전부였다. 차라리 항상 바쁘면 돈이라도 시원하게 벌텐데 그건 한철이고, 보통은 수업 하나 공강 다섯시간 수업 하나 이런 식이다. 몸은 몸대로 지치고 돈은 돈대로 안벌린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간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모두들 신이 난다. 직장인들이나, 직장인과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금요일 저녁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일요일은 너님들의 금요일보다 화려하다, 이런 건 아니다. 그저, 일이 끝나고, 다른 일이 시작될 뿐이다. 대학원이라거나, 촬영장 스탭질이라거나, 시나리오 창작이라거나, 백수짓이라거나, 시험준비라거나. 집에 돈이 많다면야 학원 훈장질 그만두고 평일에 내 일이나 하면서 살텐데, 그게 아니니 훈장질이지, 쳇.

대게(아아, 대게가 먹고 싶다. 정말로) 젊은 비전임 논술학원 강사라는 족속들은 1. 운동권 출신이거나. 2. 문학.영화.음악.미술 등의 예술창작자 지망생이라거나. 3. 시험준비생이라거나. 4. 대학원생이라거나. 5. 주위에 1-4에 해당하는 친구들이 아주 많아 인생이 낚인 경우라거나 하는 족속들 중에,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였으며, 대충 이름 정도는 들어본 대학을 졸업했으며, 돈이 없는 족속들이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거나, 꿈도 시궁창인데 현실까지 시궁창인 인생들. 그런 인생들이 무려 이틀이나 일하고 짜증이 안 날 리가 없다. 마신다. 난다. 저하늘끝까지. 달린다. 엔진이 불타 터져버릴 때까지. 301버스가 안 다닐 때 까지 성질 삐딱하기 컨테스트라도 있었더라면 모두 수월하게 입상권이었을 다양한 그러나 돈없는 불만종자들이 그렇게 마시고, 월요일엔 자신의 삶에 복귀한다. 무슨말인고 하니, 월요일은 일단 논다. 일단은. 영화고 대학원이고 인생이고 화요일부터다. 쳇. 이틀이나 일했는데.

일요일 밤의 유흥가란 굉장히 슬프다. 많은 술집들은 이미 문을 닫았고, 많은 술집들은 닫을 채비를 한다. 월요일엔 많은 사람들이 일하러 나간다. 일요일에 술을 먹는, 아니 퍼먹거나 처먹는 사람들은 결국 논술강사나, 그보다 조금 우월한 백수들이다 아아. 일군의 강사 무리들-그들 중 몇몇은 다른 강사들이 수업을 마칠 때까지 인근 피씨방에서 실버리그를 전전한다. 골드 찍을 열성이면 이미 인생이 이렇지 않았다 아아-은 그렇게 쓸쓸한 일요일 술집에서 저마다의 꿈을 이야기하는 대신 남의 꿈을 디스한다. 야 그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 네 인생의 논제는 그렇지 않아. 넌 평생 강사나 하다 죽을꺼야. 킥킥.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술자리일 지 모르겠지만,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임온 트웨니나인 고잉온 서티가 일요일 밤에 누구랑 마시겠는가. 그렇게 우리의 연대는 강철처럼 단련된다.



허나, 이렇게 비탄스런 어조로 장난친다 해도 어쨌거나 일요일에 술을 마시고 월요일을 쉬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주말만 일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일이다.

나쁜 일은 금요일이다.

논술강사들은 금요일에 월요병을 앓는다. 아 시방 내일 수업 아오. 수업은 참 신기한 일이다. 수업 안의 상호작용은 사회학적 연구 대상이다. 듣는 놈도 짜증나지만 하는 놈도 짜증난다. 그 짜증나는 일을 준비해야 하고, 준비 안해도 스트레스 때문에 시원하게 놀지도 못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한 주를 마감하고 노는 유흥가를 그저 지나쳐야 한다. 금요일 저녁에는 직장인 친구들에게 연락이 온다. '오늘 한잔 하자'. 우리는 대답한다. '꺼져 내일 출근이야.' 그리고 배배 꼬인 우리들은 일요일에 그들을 짓밟는다. '개새야 오늘 한잔 하자.' 그들은 대답한다. '내일 출근해야돼.'

그렇게 오늘도 금요일이다. 어제까진 연구계획서 쓰느라 정신이 없었고, 연구계획서를 쓰기 전까지는 수시 대비 학원수업자료를 만드느라 정신없었다. 내일 오전에는 잡다한 번역일을 해야 하고, 오후의 시작과 함께 출근, 밤 열한시에 퇴근하고 다음날 아침 아홉시에 출근해서 또 저녁까지 일해야 한다. 높은 확률로, 열한시 퇴근과 아홉시 출근 사이에 학원 앞 피씨방에서 몇몇 강사들간의 우주를 둘러싼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아오 내가 대학원생인것도 학원강사인것도 짜증나는데 게다가 저그라니. 하지만 괜찮다. 대학원생 논술강사에 넥센팬인 놈도 있고, 언데드인 놈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아 아무튼, 금요일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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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Vgoodtogosir
10/09/10 18:54
수정 아이콘
헥스 밤 헧 밤 유마 헧 밤~ ....

이 노래가 구슬프게 들릴줄이야...
사카모토료마
10/09/10 18:50
수정 아이콘
헥스 밤 헧 밤 유마 헧 밤~ 크크크
abrasax_:JW
10/09/10 18:56
수정 아이콘
역시 헥스밤님 글은 맛깔납니다. '대게'도 의도한 것이겠지요?
10/09/10 18:52
수정 아이콘
헥스밤님 글은 참 좋아요.
라됴헤드
10/09/10 18:53
수정 아이콘
잼나네요~ 술한잔 걸치고 글쓰시면 더 좋은 글이 나올것같은 느낌이 들어요 흐흐흐 물론 지금도 충분히 읽는재미가있어요
지금만나러갑니다
10/09/10 19:01
수정 아이콘
대게 먹고 싶어요
박진호
10/09/10 19:12
수정 아이콘
아 웃겨. 넥센팬 대박. 언데드도 대박. 논술강사는 스타2는 다 저그만 하나요?
검은창트롤
10/09/10 19:16
수정 아이콘
음...일부러 그렇게 쓰신 것 같기도 합니다만, 대게 가 아니라 대개 가 맞는 말 아닌가요?
관심좀
10/09/10 19:28
수정 아이콘
글 너무 재밌네요. 추천 누르겠습니다. 흐흐

근데 제가 지금 재수생이고 요즘 수시철인데 쪽지로 뭐 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10/09/10 19:26
수정 아이콘
아아
역시 강사는 인터넷강의를 해야....
국내최대학원 행정직알바를 오래하며느끼는거지만
조교+강사가 제일 힘든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첨삭논술..
힘내세요
10/09/10 19:27
수정 아이콘
그나저나 이런게 프로의 글인가요. 잘 쓰시네요 부럽습니다...난 언제쯤 이렇게 쓸수있을까


전 주말은쉬니까 한잔해야겠어요
10/09/10 19:45
수정 아이콘
지난번에 편의점에서 초딩만난 에피소드 쓰신 분 맞죠? 흐흐

글 좀 자주 써주세요~ pgr에서 글 읽는 재미를 오랜만에 느끼네요.
그 해 철쭉
10/09/10 19:59
수정 아이콘
글 참 맛있게 쓰시네요...
주위에 위에 언급하신 1~4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헥스밤님과 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잘 알고 있죠. ^^
(사실은 금요일 밤과 일요일 밤에 엇갈린 통화를 하는 직장인일지도?)
뭐...인생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겠죠. 이렇게 맛깔나는 글을 쓰실 재주가 있으신만큼 잘 될 것 같습니다.
힘든 주말 잘 보내시고 신나는 일요일 저녁도 잘 보내세요~
소르바스의 약속
10/09/10 20:17
수정 아이콘
논술강사 아무나 하는게 아니군요.
이정도 글빨은 돼야 하는거군요..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지금 한잔 할 생각인데...다가올 일요일 밤을 생각하며 오늘은 신나게 마셔야겠습니다. 하하
10/09/10 20:28
수정 아이콘
듣는 놈도 짜증나지만 하는 놈도 짜증난다. 그 짜증나는 일을 준비해야 하고, 준비 안해도 스트레스 때문에 시원하게 놀지도 못한다.

정말 수업의 신비............ ㅠㅠㅠㅠㅠㅠㅠ
케이스트
10/09/10 20:49
수정 아이콘
이정도 써야 논술강사 하는 거군요....글 재밌게 잘 쓰시네요...잘 읽었어요..
베일리스
10/09/10 21:10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래뵈도가 아니라 이래 봬도 아닌가요? 전 그렇게 알고 있어서...
10/09/10 21:54
수정 아이콘
우하~ 게다가 저그라니... 라는 한탄이 뼛속깊이 울려드는 글이네요.

그럼 저그의 神의 어머님 말을 곱씹어 보시는건 어떤가요. '테란해라'

어쩌면 금요일이 2% 더 즐거워 질지도 모릅니다.
아스트랄
10/09/10 22:01
수정 아이콘
푸하하 진짜 재밌네요. 덕분에 야근하면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금요일이라고 다들 노는 건 아니에요. 전 오늘도 야근하고 있고 내일도 출근한답니다..흑흑.
몽정가
10/09/10 22:54
수정 아이콘
논술강사라고 해서 그런가요... 오타 지적이 많네요 크크크 저도 하나 뿌리고 갑니다
야 그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 안돼 가 맞지요.
민첩이
10/09/11 01:39
수정 아이콘
그래도
나름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입장인데
수업만큼은 책임감을 갖고 즐겁게 하시는게 ^^;


학원강사란, 참 평범하지 않은 직업이죠 크크
10/09/11 02:25
수정 아이콘
헥스 밤 헧 밤 유마 헧 밤~ .... 이 노래가 구슬프게 들릴줄이야... (2)

제 와이프도 헥스밤님의 글을 좋아합니다.
10/09/11 08:57
수정 아이콘
글 잘봤습니다~ 이런 글 자주 보고 싶어요
그런데 난 그 좋은 금요일밤...왜이렇게 일찍 잠이 들었던가...잠깐 눈붙인다는게 일어나보니 아침8시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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