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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5/20 19:17:41
Name Enigma
Subject [일반] 친구의 병문안을 다녀왔습니다.
얼마 전, 정말 가까운 친구가 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다행히 큰 일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그 곁을 지키는 일도 참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 친구의 핸드폰을 정리하다가 메모장에 남겨둔 글을 보게 되었고,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이걸 공개해도 괜찮을까 많이 고민했지만, 친구와 충분히 이야기했고, 따뜻한 댓글들이 친구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올려봅니다. 혹시나 문제가 될 경우 삭제하겠습니다.

위법한 것도 아니고 결혼한 것도 아니니 문제 없다는 생각들이 어쩌면 소중했던 사람을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지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인기있는 연애 프로그램들도 어쩌면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다른사람을 품게되는 하나의 문화 현상을 만든 것도 같구요. 다들 행복하시고, 주변에는 이런일 없이 평안한 일만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힘든 이별 뒤에, 예상치 못하게 그녀를 만났다. 나와는 모든 게 달랐고, 그 다름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활기차고 자신감 넘쳐 보였지만, 알고 보면 낮은 자존감을 강한 말투와 태도로 감추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그런 점이 신비롭게 느껴졌고, 우리의 관계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어떤 연애보다도 격정적이고 불타올랐다.

그녀의 꿈은 oo전자 입사였고,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하며 도왔다. 이직 준비를 같이 하고, 멘탈이 무너질 때면 곁에서 붙잡아 주며 버텼다. 그녀는 결국 그 꿈을 이뤘다. 나는 우리가 서로 진심이라고 믿었고, 또 믿고 싶었다. 그녀가 나와의 대화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어느 날 우연히 그녀가 남자 동기와 나눈 카톡을 보게 되었다. ‘나중에 아이 몇 명 낳을 건지’에 대한 얘기를 꺼낸 건 그녀였고, 그 대화 속 남자는 “뭐해~”라고 답했다. 충분히 친한 사이끼리는 할 수 있는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각이 새벽이었고, 바로 그날 나는 그녀 옆에서 자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로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녀는 동기들과 단체방도 있었지만, 일부와는 따로 개인 톡을 자주 나눴다. 예전에는 무심코 넘겼던 것들이, 이제는 자꾸 불길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한때는 우리가 찍은 인생네컷을 부모님 사진 옆에 붙이며, 나를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그녀. 하지만 내가 그녀의 집에 갈 때마다, 우리 사진은 어디에도 붙어 있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가 정말 이 사람의 남자친구가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얘기했다. “주말에 남자친구랑 같이 있는데 새벽에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는 건 불편해.” 내가 메시지를 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관계를 조금 더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이미 말했다며 조심하겠다고 했다. 그 때가 25년 1월 초였다.

그 후로도 나는 몇 번이나 “나에게 좀 더 집중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를 속이고 있었다.

2월 2일, 전날 우리는 데이트를 했고, 그녀는 피곤하다며 먼저 잠들었다. 나는 복잡한 머릿속을 안고 거실로 나왔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예감이 너무 좋지 않아, 결국 그녀의 애플워치로 메시지를 몰래 보게 됐다.

전날 밤, 나는 그녀에게 울면서 말했다. “내가 네게 온전한 남자친구가 아닌 것 같아.” 오열하는 나를 그녀는 꼭 안아주며 “그런 생각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 말에 잠시 안정을 찾은 나는 침실을 정리하러 들어갔고, 그 사이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동생 옆에 누웠어”라는 말과 함께, 그를 애칭으로 부르며 “잘 자”라고 보냈다. 그리고 그에게 받은 답장은 “사랑해융”이었다. 총에 맞은듯 가슴이 아려왔다. 2년 가까운 기간을 그녀에게 헌신했지만, 돌아온건 기만 뿐이였다.

사랑도, 일도 모두 잘 안 되던 시기였다. 나는 내가 잘못했기에 모두가 떠난 거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내 편은 어머니 한 사람뿐이라는 생각만 남았고, 어머니마저 없다면 정말 아무 미련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고통 없이 사라지는 방법을 검색하면서, 이런 비참한 생각조차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는 내 처지를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나는 원래 행복해질 운명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30년 넘게 살아보니, 어쩌면 그건 내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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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픈커리
25/05/20 20:01
수정 아이콘
진짜 나쁜 여자네요.
25/05/20 20:50
수정 아이콘
친구분께 위로를 전합니다. 세상에는 아무런 죄책감없이 타인을 그저 도구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여성도 그런 사람이었던거죠. 저 여성과 혼인까지 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그나마 마음을 추스리는 방법 같습니다. 친구분의 쾌차를 바랍니다
AMBattleship
25/05/20 21:54
수정 아이콘
좋은 사람에겐 좋은 인연이 찾아올 겁니다. 벌써 주변에 좋은 친구분도 있고 사랑하는 어머니도 있네요. 조금은 더 주위를 둘러보시길 바랍니다.
우상향
25/05/20 22:00
수정 아이콘
존경하는 정신과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어떤 일들은 드라마 영화에서나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나쁜 일들로 세상을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곤란한 것 같습니다. 어떤 일들이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입니다. 별 거지만 별 거 아닌 일입니다. 누구든 뭐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에이치블루
25/05/20 22:09
수정 아이콘
세상 다 무너지는 것 같았겠네요.

친구분이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너무 재수가 없었던 거여요.

이상한 사람에게 충실했던 그 마음씨를 중요하게 보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날 겁니다. (희망이 아니라 경험입니다)
세상은 아니 우리나라는 그만큼 충분히 넓더라고요.

제가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아는 여자 선배가 해줬던 얘기입니다.
"너의 사랑을 받아주고 그만큼 사랑해줄 사람이 다시 꼭 나타나. 그냥 사실이야!"

한 5년 지나고 그 말이 맞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친구분 기운내시길 기원합니다. 꼭 보여드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나크모나크
25/05/20 22:15
수정 아이콘
쓰레기.... 차라리 깔끔하게 떠나라고
타츠야
25/05/20 22:21
수정 아이콘
쓰레기.... 차라리 깔끔하게 떠나라고(2)

아내가 회사 사람들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당신에게 못되게 군 사람들은 발 편안히 뻗고 잘 자고 잘 노는데 피해자인 당신은 고통을 받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복수 이런거 떠나서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내 인생에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더 중요한 사람들이랑 더 알차게 보내는데 집중하는게 훨씬 낫죠.
아우구스티너헬
25/05/20 22:21
수정 아이콘
아마 애정결핍된 성장과정에서 오는 집착증일겁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도 이전 사람을 정리하지 못하는건 애니멀 호더 처럼 애인 호더증에 걸린 사람인거죠.
사람을 사랑한다기 보다 사랑받는 상태를 사랑하기 때문에 둘다 놓지 못하고 집착하는거죠
저렇게 헤어진경우는 매우 높은 확률로 다시 찾아오고 다시 만나고 불행히도 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최대한 빨리 정리하시길 조언드립니다.
루체시
25/05/20 23:29
수정 아이콘
너무 안좋은 사람을 만나 너무 힘든..과정을 거쳐오셨네요. 친구분이 기운 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훨씬 좋은 사람을 만나서, 헤어지길 잘했다라는 생각을 하실 수 있길 바랄게요.
인간실격
+ 25/05/21 00:36
수정 아이콘
글을 보니 친구분이 드물게 순수한 사랑을 하셨네요.

겉으론 강하지만 속은 여린 여자? 제가 보기엔 여기서부터 레드플래그입니다. 저렇게 단기간에 불타는 사랑을 하는 자존감 낮은 동물들은 애정결핍이 정말 많고, 그래서 끊임없이 외로워하기 때문에 이사람 저사람 다 만나고 다니면서 애정을 갈구하다가 결국 그 가치를 다하고 비참하게 버려지는 꼴을 종종 보게 되네요.

이 유형은 자연재해에 가깝습니다. 친구분이 어떤 행동을 했어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을테니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경험상 이런 관계는 끌면 끌수록 더더욱 안좋게 끝나기 마련이기도 하구요. 이렇게 마음써주는 좋은분도 곁에 계시니 금방 회복하시고 더 좋은 짝 만나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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