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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11/20 23:46:17
Name 개념은?
Subject [LOL] 고마웠어요, 제오페구케
스포츠에서 내가 응원하는 팀이 우승한다는 건 정말 꿈과 같은 일일 겁니다. 팀을 잘 고른(?) 사람에게는 그게 흔한 경험일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그 기다림이 너무 고달프죠. 짧게는 몇 년이겠지만, MLB 시카고 컵스의 염소의 저주처럼 108년이 지나서야 우승을 맛보는 경우도 생기는 거고요. 아니면 아예 한평생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우승하는 걸 못 보기도 하고요.  

저 같은 경우, 제가 온힘을 다해 응원한 선수나 팀이 우승한 경험을 돌이켜보면 마지막은 2008 인쿠르트 스타리그 송병구 선수였습니다.  

그러다 2022년, 처음으로 응원하는 팀이 생겼습니다. 네, 바로 T1이었습니다. 저는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페이커라는 선수의 존재는 알고 있었고, T1의 존재 역시 알고 있었지만 롤을 시청하기 시작한 건 상당히 늦게 입문했습니다. 제가 정확히 언제부터 롤을 보기 시작했고, 또 언제부터 그리고 왜 T1을 좋아하게 됐는지 떠올리고 싶어도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T1에 대한 호감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T1의 우승만을 바라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일례로 제가 양대인 감독님에게 분노를 잘 안 하는 이유는 ‘돌려 돌려 돌림판’ 시절엔 롤을 라이트하게만 봤기 때문에 당시의 분위기를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페이커라는 선수가 대단한 역사를 써왔다는 건 나무위키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사실 제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었습니다. LCK 결승을 아예 안 봤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찌됐든 제 머릿속에 남아 있는 페이커의 첫 우승은 2022 스프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첫 우승이 알고 보니 페이커의 열 번째 우승이더군요.  

2022 롤드컵 결승전에서도 T1을 응원하긴 했지만, 온힘을 다해 응원했냐고 물으면 솔직히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T1이 우승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응원은 했던 것 같은데... 그 당시만 해도 데프트가 우승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나쁜(?) 생각이 잠깐잠깐 들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정말로 온힘을 다해 응원했던 결승은 바로 다음 해인 2023 롤드컵 결승전이었습니다.  

2008년 11월 1일, 인쿠르트 스타리그 결승전
2023년 11월 19일, 2023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사실 그 사이에도 응원했던 팀이나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둔 적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축구 국가대표팀 벤투호가 16강에 진출한 것도 너무 짜릿했고, 메시가 월드컵 우승을 한 것도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됐든 벤투호는 8강에서 아쉽게 멈췄고, 메시의 우승은 기쁘긴 했지만 온힘을 다해 응원했다고 하긴 어려웠습니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간절히 우승을 바랐던 팀이 우승하는 경험은 무려 15년 만이라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2022년 결승 이후로 너무 힘들었던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었고, 팀의 네 번째 우승이었지만 제가 본 T1의 첫 우승컵이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보다 더 기대감이 없었던, “제발 롤드컵만이라도 진출하자”라고 생각했던 2024 롤드컵 2연속 우승은 너무 짜릿했습니다.  

제우스, 오너, 페이커, 구마유시, 케리아

롤드컵 역사상 역대 최고의 팀(이라고 들었던)을 이렇게 보내는 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중간중간 언해피라던가 뭔가 언질이라도 줬으면 혹시나 했을 텐데, 너무 후다닥 지나가버린 것 같아 참 허무하기도 합니다.  

저는 제우스 선수를 비난하는 팬분들을 모두 이해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같은 리그 내에서, 그것도 팀의 핵심 선수가 우승 경쟁을 하는 다른 팀으로 가는 걸 온전히 이해하길 바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애초에 그렇게 쿨하게 보내줄 선수였다면 그렇게 열렬히 좋아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조금 다른 예일 수도 있지만, 황인범 선수가 FC서울로 잠시 임대 왔을 때 대전 팬분들에게 양해를 구했던 모습이 스쳐 지나가면서,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좀 더...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습니다.  

앞으로 저는 제우스 선수를 비난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응원하는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딱 남의 팀, 남의 팀 선수처럼 대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난 시즌의 도란 선수처럼? 정말 잘할 때는 잘한다고 무섭다고 할 것이고, 못하면 못한다고 할 것입니다. 만약에 다음 시즌 롤드컵에서 LCK 팀이 다 떨어지고 LPL + 한화만 남는다면, 그때는 한화를 응원하겠죠. 제우스가 아니라 한화를요.  

2024 결승전 전에 T1 응원글을 쓸까 하다가 뭔가 부정 탈 것 같아서 안 썼었고, 결승 후에도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바쁨 때문에 못 쓰고 있었습니다. 은연중에 생각했던 게 “제오페구케 엔트리가 확정되면 그때 한 번 더 써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이 글을 쓰는 시점이 이렇게 슬플지는 생각을 못 했던 것 같네요.  

제오페구케의 마지막 응원글이라는 게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15년만에 온힘을 다해 응원했던 팀이 우승했던 그 도파민은 잊지 못할겁니다.

고마웠습니다. 제오페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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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속에모카치노
+ 24/11/20 23:55
수정 아이콘
어제는 마음이 헛헛했지만 하루 자고 일어나니 좀 괜찮네요
이상하게 제오페구케 이 조합에 정이 많이 들었나봐요
서사도 많았고 결과가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보니..
저도 원글자님처럼 정말 감사했다는 마음 뿐이네요

25시즌 이후 티원이 그리고 제오페구케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남은 우리 오페구케도 떠난 우리 제우스도 고생많았다고
그동안 식어버린 아재 가슴 뛸일 수차례 선물해줘서
진심으로 감사했다고 꼭 전하고 싶네요..

그리고 덧붙여 새로운 우리탑 도란이랑 신나는 서커스 시즈2 기대합니다
저그의눈물
+ 24/11/21 00:02
수정 아이콘
지옥과도같았던 21년 돌림판을 겪으며 나자신은 페이커팬에 더 가깝다는 확신을 얻었고, 팀원들에게 너무많은 정을 주지않겠다... 그냥 그 애정은 구슼에게 쏟겠다 다짐하며 더샤이가없는 ..22년을 맞이했었는데 정신차려보니 벌써 꿈같은 3년은 지나갔고 제 맘속에 ZOFGK는 너무 커져버렸네요.

다시는 느끼지못할것이라 생각했던 가족놀이라 불리는... 그 느낌을 구슼 이후로 다시 느낄수 있어서 정말 많이 행복했고 월즈 리핏은 너무나도 큰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성적이 어떻더라도 이들이라면 계속함께해도 괜찮겠다싶었지만 제 욕심이었겠죠.
정말 많이 행복했습니다. 지나간 추억까지 부정하고 싶진않네요 많이 많이 사랑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사랑하고있는것 같고요 허허.. 누구에게 말하긴 참 자존심 상하고 그렇지만요. 어떻게 말을 맺어야할지 모르겠네요. 앞으로도 건강하게 프로생활 했으면합니다. 22년 스프링을 보내면서부터 역체탑이 될 선수라고 느꼈던 제 안목이 맞아서 참 다행이었어요. 굿..바이~
다시마두장
+ 24/11/21 02:1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오랜 부침을 겪은 후에 극적으로 혜성같이 구성된 로스터
티원의 근본을 중심으로 티원 성골이 셋, 2년차에 와서 쭉 활동중인 진골 하나
젠지라는 벽에 계속 가로막히면서도 드라마틱하게 반등해서 가장 큰 무대에서 연달아 우승
동일 로스터의 이런 진한 드라마가 이어지면서 페이커의 왕위를 팀 전체가 하나되어 계승하는듯한 그림이 나왔죠.

제오페구케는 그런 의미에서 멤버들이 시즌 단위로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기존 이스포츠팀과는 다른, 팬들에게는 (좋은 의미에서) 일종의 아이돌 그룹같은 위치를 구축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아이돌 팬덤은 팀이 멤버 변경 없이 끝까지 끈끈히 뭉치는 걸 선호하는 게 기본 정서구요.
아이돌에 크게 관심이 없는, 그리고 티원이 최고 응원팀이 아닌 저인데도 어느샌가 제오페구케의 아이돌스러운 마력에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우스의 이적 뉴스가 믿기지 않았고, 이 팀의 로스터가 깨진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네요. 제가 이럴진데 티원 팬분들은 얼마나 상심과 아쉬움이 크실까 싶습니다.

감상에 젖는 걸 뒤로하고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사실 매년마다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스포츠 선수의 팀 이적입니다. 문득 역으로 제우스 선수의 퍼포먼스가 나빴으면 반대로 팬들이 교체를 요구했을 수도 있었을, 어차피 그 정도로 드라이할 수도 있는 관계였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욕 먹을 수 있을 사족같지만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크크.)

해서 저는 그저 한화생명의 제우스 선수도, 그리고 티원의 도란 선수도 앞으로 계속 멋진 경기력을 보여주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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