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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7/05/21 18:33:23
Name 김성수
Subject
나는 항상 생각했다. 프로토스 유저는 절대 저그를 좋아할 수가 없다고. 9드론인지 12드론인지도 궁금해 죽겠는데 지금 저 라바는 저글링인지 드론인지 알 길이 없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더 답답해져서 도대체 상대 저그는 뮤탈을 가려는 것인 히드라를 가려는 것인지…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등장하는 울트라.

아무리 천하의 옐로우라고 해도, 내겐 그저 저그일 뿐이었다. 밉고 또 미운 저그. 그것도 최강의 저그. 그는 항상 준우승을 하곤 했지만 그의 결승 상대는 테란이었을 뿐, 단 한번도 프로토스였던 적이 없었다. 나는 항상 생각했다. 옐로우가 만약 결승에서 프로토스를 만났었다면 이미 우승 경험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가끔은 그가 ‘많이’ 밉기도 했다. 인터뷰도 매끈하게 곧 잘하곤 했고(사실 당시 인터뷰를 제대로 하는 게이머는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었다) 글도 꽤나 잘 쓰는 선수였다. 저그 팬들의 우상이자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고 그러면서 동시에 프로토스를 곧잘 떨어뜨리는 그런 저그였다.

그래서 그런지 스카이배 준결승은 아직도 내 머리속에 또렷하다.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의 준결승. 영웅과 옐로우의 미친듯한 치고 박기. 옐로우는 진짜 폭풍 같았고 영웅은 마치 방패 같았다. 뚫릴 듯 뚫릴 듯 막히고 또 막히면서 영웅의 템플러가 하나 둘씩 늘어갈 때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는 묘한 경험을 했다. 그렇게 영웅이 결승에 갔고 생각보다 싱겁게 박서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2002년의 가을이었던가?

내가 그를 밉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가 너무 잘 하기 때문이었고 프로토스를 자주 떨어뜨렸기 때문이었고 또 모든 면에서 무엇 하나 흠잡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왜 프로토스가 아닌거야?’라는 자조섞인 아쉬움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런 그가 어느 날부터인가 부진하기 시작하더니만, 스타를 하는 프로게이머 중 가장 많이 ‘까이는’ 선수가 되어있었다.

처음 그가 ‘까이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저 어린 학생들이 장난처럼 글을 쓰는가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도대체가 까일래야 까일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팬 관리도 잘해, 게임도 잘해, 외모도 잘생겼고 말주변도 좋은 이 선수를 무얼 가지고 깔까.

그러던 어느 날, 스갤에 갔다가 ‘아차’하는 마음을 느꼈다. 그냥 심심하면 그를 희화화하고, 그냥 할 이야기가 없으면 옐로우의 아픈 기억들만 끄집어내는 모습들.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도 알 수 없고 그냥 그저 ‘까는’ 모습들. 조금 감상하기 버거운 춤을 추었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많은 동영상들이 그를 비웃고 있었는지. 팬 미팅에서 팬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몸짓이었을 텐데, 그는 그 춤 하나로 만년 대세가 되어있었다. 결국, 처음으로 저그 유저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 깔려고만 하면 아무리 깔 게 없어도 깔 수가 있는 것이구나.”

내게는 사실 밉기도 했던 옐로우였는데, 사신의 묻지마 다크에 밀리던 그의 모습에서 난 희열을 느꼈었는데, 왜 내가 그를 보며 연민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그는 프로토스의 주적인 저그의 대표 주자였는데, 왜 나 같은 강력 플토빠에게 마저 연민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참으로 ‘답 없는 캐리어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난 번 프로리그, KTF 와 T1의 경기. 나도 모르게 엔트리 발표 그 날부터 옐로우의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는 카나타, 강한 상대이다. 팀 내 랭킹전에서는 무적에 가깝다던가. 예전 같으면 그냥 ‘조금 어렵겠는걸’하고 생각하고 말았을 텐데 난 왜 자꾸 불안해지고 답답해지던 것인지. 난 플토빠인데, 몽상가와 머슴의 매치업도 아니고 내가 왜 이런 것일까? 당일 곰티비를 켜고 생방송을 틀었을 때, 그때 난 느꼈다. 내 머릿속에 ‘영웅’도 없고 ‘몽상가’도 없고 그저 옐로우만 남아있을 뿐이라는 것.

이상하다. 난 플토빠인데.

아쉽지만 그는 패했다. 좋은 경기를 했지만 여전히 후반 운영은 아쉬웠다. 왜인지 마에스트로 같은 모습을 기대하기는 앞으로도 어렵겠구나 하는 느낌도 받았다. 그렇게 강력했던 그가 평범하게 느껴지던 그날. 오랫동안 내 가슴속에 주적으로 느껴졌던 ‘홍진호 저그’가 따듯하게 느껴졌다.

그날 나의 느낌이 맞다면(생각보다 잘 들어맞아 스스로 놀라곤 한다) 그는 앞으로도 개인리그 우승을 경험하기 힘들어 보인다. 어쩌면 이제 앞으로는 평범한 선수로 계속 남아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완벽해 보여서 미웠던 그를 이제는 따듯한 시선으로 진심을 담아 응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설사 개인리그에서 영웅과 마주한다고 해도, 또 그래서 영웅을 떨어뜨린다 해도 이제는 예전처럼 아쉬워하거나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듯싶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한들 믿지 않으면 그만이랬던가. 아무리 그가 훌륭한 선수라 한들 ‘콩까’들은 앞으로도 여전히 그를 열심히 ‘깔’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까이는 그에게 보내는 ‘나의 따듯한 시선’, 그리고 나와 비슷한 수 많은 스타팬들의 따듯한 시선을 느끼고 있을 ‘옐로우의 심장’.

프로리그 경기 전날 새벽, 혼자 남아 연습을 하던 모습, 그리고 패한 후 쓸쓸하지만 또 한편으론 따듯한 웃음을 보였던 옐로우. 사람은 누구나 익어간다고들 하던데, 내가 일에 지치고 성공에 치여 살던 이 몇 년 동안 그 역시도 많이 익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혼자 웃었다. 역시 콩은 익어야 제 맛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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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iFadA
07/05/21 18:39
수정 아이콘
제목을 보고 발끈하고 들어왔습니다만 내용은 그렇지 않네요..^^;
좋은 글입니다만 pgr 규정 위반이 아닌가... 걱정됩니다. 글 자체의 느낌을 잘 살린 제목이긴 한데 수정을 검토해 보시는 것도...^^;
07/05/21 18:43
수정 아이콘
문제는 Only 저그가 아니라죠[...] 박경락 선수도 0:3 패 당시 테란으로 했고...
저도 플토 팬입니다. 지독한 박정석 선수 팬이죠[...] 하지만 우리 홍&조는 영원합니다[?].
히로하루
07/05/21 18:44
수정 아이콘
그... 진호선수가 혼자 연습실에 남아있던 그 동영상 어디서 볼수있죠?
해리콧털;;;;
07/05/21 18:45
수정 아이콘
글쎄요 수정한다면 이 느낌 사라질 것 같네요 ㅠㅠ 콩빠로써 울고갑니다.
마술사
07/05/21 18:46
수정 아이콘
박정석선수가 홍진호선수와의 처절한 접전 끝에 4강에서 승리하고 결국 임요환선수를 꺾고 우승한 건 2002년 스카이배죠..
새로운시작
07/05/21 18:59
수정 아이콘
음 따뜻한 글이네요 ^^
가끔 홍진호선수가 웃고있으면.... 저 속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가
궁금해집니다. 힘든걸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선수라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까여도... 아직 신고할 정도는 아니더라구요.. 심할정도는 아니라고 이야기는 하는 대인배...
팬을 위해서 정말 그동안 쌓은 이미지 다 무시하고 열심히 열정적으로
춤을 쳐준 진정한 대인배...
홍진호...
07/05/21 19:45
수정 아이콘
최소한 저 군대가기전까진 우승해야죠...
나두미키
07/05/21 21:22
수정 아이콘
제목을 보고 발끈하고 들어왔습니다만 내용은 그렇지 않네요..^^; (2)
오리지날 테란을 거쳐서, 이젠 저그만 플레이합니다. 정말 공방양민인 저는 YelloW의 가난하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아직도 선호합니다. 질 때가 많지만, 이길 때는 정말 재밌거든요... YelloW 화이팅!!
오즈의마법사
07/05/21 21:56
수정 아이콘
아마도 대부분 공감하실겁니다.. 이번 시즌 영웅처럼.. 옐로우 결승가면 스타의 모든 올드팬들은 상대가 누구든지 설령 [임]이라고해도 옐로우만 응원할테고 우승을 한다면 저는 눈물이 날꺼 같은데 아마도 눈물 보이는 분들도 꽤 있을듯.. 정말 다른거 다 필요없이 옐로우 우승하는 거 한 번 보고싶네요..
LaVigne.
07/05/21 22:06
수정 아이콘
임진록결승에서 옐로우의 우승 한번 보고싶습니다.
경기가 끝난뒤 "이게 정말 마지막인거같다. 수고했다"라면서
서로 안아주는 모습........제가 소설을 쓰는군요...
07/05/21 22:19
수정 아이콘
태엽시계불태우자님// 봉준구 선수는 3판중에 1판을 프로토스를 선택했구요.. 기욤은 랜덤을 선택했지만 프로토스가 걸린것입니다. 초이스토스와 랜덤토스는 성격이 좀다르지요. 프로토스 Vs 저그의 경기가 아니었던것만은 확실합니다.
태엽시계불태
07/05/21 22:22
수정 아이콘
글에대해서는 참 공감갑니다. 홍진호 선수의 우승을 저도 바라기도 하구요
제가 기욤의 광팬이라 약간 울컥해서 본의아니게 공격적인 리플이 된거같아 죄송스럽네요.

봉준구선수의 결승은 저도 잘 기억이 안났지만 기욤선수와 국기봉선수와의 왕중왕전 결승은 그냥 프로토스였던거같은데요. 아닌가요?
경기를 보고도 몇년뒤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제가 좀 멍청해보이네요.. -_-;;
07/05/21 22:24
수정 아이콘
제목을 보고 발끈하고 들어왔습니다만 내용은 그렇지 않네요..^^; (3)
홍진호 선수가 웃어도 웃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그날 고인규 선수와의 경기에서 저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홍진호 선수 부활합시다~!!
(그래도 제목이 좀...홍진호로 바꾸는게 낫지 않을까요....)
여자예비역
07/05/21 23:23
수정 아이콘
제목에 발끈! 했다 내용에... ㅠ.ㅜ 홍진호선수 우승해요!! 난 기다릴꼬야....ㅜㅡ
07/05/22 00:07
수정 아이콘
아, 정말 좋은 글이네요... 감동입니다.

태엽시계불태우자님/
저도 초기에는 기욤선수 굉장히 좋아했는데...
태엽시계불태우자님 말씀처럼, 기욤선수가 초기에는 랜덤말고 그 뭐죠? 선택랜덤이라고 하나요? 저는 기욤선수가 상대 종족에 따라 플토로 할때도, 테란으로 했던게 기억이 나네요(다른 몇몇 선수들도 선택랜덤했었죠) 그러다가 중계방송에서 엄재경 위원께서 하신 말씀인가... 선택 플토에서 완전플토(?)로 전향했다고 했던 멘트가 기억나네요. 봉준구 선수와 경기는 아마 플토로 전향한 뒤의 경기라 생각되네요. 오래전 일이라...
안단테
07/05/22 13:53
수정 아이콘
제목 보고 심각하게 놀랐습니다^^
한 번 팬은 영원한 팬이라고 하죠.
지금은 홍진호 선수의 부진이 마음 아프지만 그래도 언제나 응원합니다.
폭풍저그!! 화이팅~
거지깽깽이
07/05/22 14:48
수정 아이콘
그런데 홍진호 선수가 플토전을 잘했던가요??
유동닉
07/05/22 16:46
수정 아이콘
전성기때도 아마 테란전 60대 플토전 60대였을겁니다 당시 최강 저그치고는 플토전이 약했죠 그리고 홍진호 선수는 전성기때도 4강에선 토스에게 결승에선 테란에게 약했죠;
 내 
07/05/22 19:29
수정 아이콘
이런 글은 그냥 지나쳐 갈 수가 없네요ㅜ.ㅜ
4년동안 -_- 좋아하면서... 지금 처럼 옐로우나, 팬들이
힘든적은 없었는듯...(충격적인 경기들은 제외하구요-_-;;;)
그냥 포기하시지만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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